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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1 23:58

individualism and collectivism 분류없음2017.03.21 23:58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주의.

그런 민주주의가 멋지게 회복되고 있는 것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면서 뒤죽박죽 많은 생각과 질문들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전 어디선가, 교회나 기독교 신앙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간 개개인의 autonomy 나 권리보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림이 우선된다는 뜻이었겠지.  NT Wright 말처럼 theoracy 라는.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다수의 의견이 하나님의 뜻도 아닐테고.


그런데 그런 하나님 나라는 실제 공동체나  교회 등 속에서 어떻게 실천? implement 되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게 된다.

보이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성경은 있으나 실제 음성은 (audibly) 들리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통치하고 계신가? (성령님을 통해서이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을 통해서이다. 


그런 질문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회 '권력'이 일부 리더에게 집중되는 일들도 많았고, 교회구성원을 교회나 공동체의 부속품처럼 보는 전체주의/집단주의 도 있어왔으니 말이다. 


뒤죽박죽된 a myriad of questions 중, 내 핵심 질문은 기독교는 (성경은) individualism 과 collectivism 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하는가? 로 refine 되는 듯 하다. 


개인과 공동체를 어떻게 보는가가 공동체의 집합적 이익과 개인의 권리 등이 대립될 경우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 도움이 될 듯 하기에도 그렇다. 실제 살아가는데 필요한 답인거 같다. 


(위에 언급한 민주주의는 individualism 과 collectivism 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하는 건 또 다른 질문일테고 그에 관한 논문들도 많을테고...)


기독교가 individualim 과 collectivism 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하는가 하는  질문은  구원 자체가 개인구원인가? 공동체 구원인가? 하는 질문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듯 하고.


게다가, 한국은 지난 수십여년간 급변해온 역사 속에 봉건주의, 전체주의, 개인주의가 뒤섞여있고, 그런 한국에서 또 다른 문화의 나라로 이주한 이들에게 더더욱 그러하다. 아무래도 전통적으로 동양은 collectivism 이 지배해 왔고, 서양은 individualism 이 더 발달해왔고. 스스로의 삶 속에서 각각의 요소들을 sort out 하고 생각해 보는 작업이 필요한 듯도 한다.


글쎄.. 아직도 질문들이 완전히 refine 되지 않았고, 질문의 scope 가 어떠해야 하는지, 용어나 개념들의 정의도 완전히 잘 모르겠고 아직은 뒤죽박죽이다~


그래도 여기저기 찾아보니 여러 자료들이 있고 도움이 되고 있다.

영어자료보다,  한국 글이나 책들이 훨씬 더 많은 것도 흥미롭네. 잘 읽어봐야겠다.


====

search 결과:


(1) "묻고 답하다: 강영안, 양희송 2 박 3 일의 대화" 의 6 - 10 장에서  위의 질문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Great!

(2) Reinterpreting individualism and collectivism. Their religious roots and monologic versus dialogic person-other relationship. by Sampson EE ( 2000 Dec;55(12):1425-32) 은  rabbinic tradition (아마도 1 세기 유대주의 시각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에서의 individualism 과 collectivism 을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기타등등


Posted by pleasing2jc
2017.03.19 10:24

웃프다 분류없음2017.03.19 10:24


Posted by pleasing2jc
2017.02.12 22:35

릴케: 젊은 시인에게 충고 분류없음2017.02.12 22:35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삶과 세상의 많은 문제들, 현상들, 사람들, 또는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 쉽게 결론을 내리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던 중 마주친 시.  당장 결론을 내리려는 태도, 또 많은 것에 대해서, 사람들과 하나님에 대해서 쉽게 평가하고 단정하는 태도 또한 reductionism 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릴케가 시인 지망생에게 했다는 충고이라지만, 시쓰기/감상에 큰 관심이 없는 이에게도 참고가 된다. 


다음의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말 또한 떠오른다. 신앙은 답을 모른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 이라..


"나는 기독교 신학자다. 사람들은 내가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중략) 그러나 내가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사는 법을 배울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 된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위의 인용문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본다.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간다고 해서, 문제를 회피하고 내버려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거 같다. 인생과 신앙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struggle 하면서, 어설픈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고 인내를 가지며 나아가는 것. 어설픈 결론을 진리인 양 설파해서는 더더욱 아니되고. 어쩌다가 얻게 되는 답조차 하나님의 지혜에 못이르는 불완전한 결론일 지 모른다는 여지를 항상 남겨두고 열린 맘과 자세를 유지하는 것.


많은 경우, 해답은 커녕 질문조차 정확히 뭔지 모르고 헤매이고 고뇌할 때가 더 많은 거 같다.

 

기의 온갖 질문들과 어설픈 답들 끝 마지막 부분,  욥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질문들에 해답은 안 주시고 다른 말씀들을 하시며 (우문현답?)  모습을 드러내신 하나님이 문득 떠오른다. 그런  하나님을 마주하고 신뢰하는 것...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