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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 21:53

일하며 사랑하며 분류없음2017.01.26 21:53

직업의 특성 상, 12-1  월은 가장 바쁜 시기다.

좀 과장하자면 대학교 때 학기말기사 기간이 떠오를 정도로 바쁘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그 기간에  어머니께서 오셔서 많이 도와주셔서 한결 수월했다. 감사하다...


화장실을 갈 틈도 없이,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일을 하면서...

왜 이렇게 일하고 있지?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random thoughts.


1. 중,고등학교 때 나는 독신주의자였고 외과의사가 되고 싶었다. 개인생활없이 환자들을 치료하며 수술실에서 수술만 하며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에 빠져 살고 싶었다.


2. 대학생 시절, 세계에서 가장 tough 한 학교로 꼽히는 곳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사생활이 거의 없이 일에 빠져 사는 이들을 많이 봤다. 과학과 공학의 발전을 위해서 밤낮없이 헌신한 이들. 어둑어둑한 캠퍼스에서  실험실이나 도서관을 향해 터벅터벅 걸으며, life 없이 일에 빠져 사는 것이 어린 시절 생각했던 거처럼 의미있고 낭만적인 걸까 회의가 들었었다.


3. 대학원 공부까지 하고 직종을 바꾸기로 한 이유는 정말 여러가지가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왜 내게 그런 결정을 했냐고 물었다. 질문을 하는 사람에 따라서 답이 달라진다. 이제는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적어졌고 그 당시 이유가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먼 훗날 간략하고 솔직하게 정리해 보고 싶긴 하다. 먼 훗날.... 


대학교 시절, 선교사가 되겠다고 어머니와 argue 한 적도 있고, 남편에게 함께 선교를 가면 어떡겠냐고 막연한 아이디어를 나눴더니, 남편이 자신의 소명은 선교에 있지 않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기도 했다. 또 선교라는 것이 낭만적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하지만 항상 이 일상에 온전히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일상에의 passion 이 없다는 것... 깊은 내면은 허무주의에 가깝다는 것. (전도서 -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4.  왜 이렇게 일하고 있지?  지금도 계속 질문을 던진다. 며칠 내내 웬종일 수술만 하는 외과의사는 아니지만, 어떤 날엔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없다. (외과의사인 동생은 긴 수술을 하긴 하지만 매일 수술만 하는 건 아니란다. )


5. 생각해 보면 2015 년 11 월인가? 까지는 좀 더 여유있는 스케줄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lay-off 를 당한 기간 동안, 일을 늘렸었다. 그 당시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었다. 아이는 11 학년 고등학생인데, 남편 직장이 어디 되는가에 따라 다른 주로 이사를 가야 하나? 미국에 계속 살 수는 있을까? 아이 대학은 보낼 수 있을까? 등등... 남편이 내게 와서 (아마도 자신도 힘이 들어서 그랬겠지만) 아이 학비를 나보고 책임지라고 했다. 


6. 남편이 lay off 되어있던 기간, 불안하고 힘들긴 했지만,  불확실성 마주하고 약 3% 의 excitement 가 있었다. 그 excitement 의 정체는 잘 모르겠다. 글쎄... 대학시절 내 개인적 위기, 아님 남편 대학원 졸업 직후 job 을 구할 떄까지의 어려움 등을 겪어서 단련되어서일지, 아님 믿을 구석이 있다는 믿음 떄문인지? 그 excitement  의 정체는 아직도 모르겠다.

 

7. 그 당시 영화 <Martian> 을 봤다. 최악의 위기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problem solving 을 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 주인공처럼 한 번, 나도 panic 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가 보자고 결심했었다.  이미 일하는 곳 몇 군데에는, (경험이 쌓였으니) compensation 을 좀 더 올려달라고 부탁했고, rigorous search 와 negotiation 후에 새로운 job 을 찾아서 더 add 했다. 그래서 금요일 밤 늦게까지 일하기도 하고, 토요일에도 일하고, 크리스마스 이브와 new year's eve 에 저녁 8 시까지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된 건 영화 덕분도 있지만 은혜라고 믿는다. 광야에서 만나를 공급해주시는 은혜. 


8. 그래서 그 시기부터 무척 바빠지기 시작했다... 


9. 아이가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아니 그 훨씬 전부터 대학학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항상 염려가 되었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아예 도달 못할 황당한 목표는 아닌듯도 싶다. 


10. 나와 내동생 모두 미국 사립대를 갔다. 25 년 전이긴 하지만, 나와 내동생은 대학 학비나 학업에 필요한 비용 등은 전혀 걱정 안 해도 되는 환경에서 자랐다. 우리 부모님께선 우리에게 명품은 커녕, 학창 시절 나이키 운동화같은것도 안 사주셨지만 (사 달라고 한 적도 없지만) 교육에는 전혀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 우리는 아이가 summer program 을 갈 때도 비용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는데, 나와 내동생은 동부 사립대 summer school class 들을 부담없이 다녔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혜택을 입고 자랐으니 미안해서라도 아이에게도 그렇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데, 그렇게 해 줄 수 있을지, 또 그렇게 해 줘야 하는지 생각이 많다. 


11.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안 그러셨는데, 왜 우리 세대는 이럴까 가끔 곰곰히 생각해 볼 때도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 또한 절약하시며 규모있게 사시긴 하셨지만 집장만, 자녀 학자금 대출 같은 거 안하셔도 되었었다. 어머니는 일을 안 하셨어도 가족 생활이 충분히 되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모두가 일을 꼭 해야 한다. 요즘 어머니께 가끔 농담한다. 부모님은 부르조아 세대고 우리는 프롤레타리아라고(진짜 노동계급이 들으면 분노할 얘기지만). 미국에서 오래 살아온 일부 노동계급은 이전에 부동산 투자와 은퇴계획 등을 잘 해서 삶의 여유가 있기도 하다. 또 한국도 그렇다. 사회 전반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더 많겠지만 일부 시골 농업 종사자들 (이전에) 땅값이 올라서 서울의  중산층보다도 녀들 support 를 더 잘 해서 자녀들은 서울에서 좋은 직장 잡아서 잘 살기도 한단다.  한 번은 경기도 시골의 한 카페에 놀러가서, 그 근처의 무너져가는 기와집을 보면서 저런데서 사는 이들은 참 안 됐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니께서, "저 사람들은 땅값이 많이 올라서 너희보다도 훨씬 더 부자다," 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Bay Area 우리의 삶은 중산층을 넘지 않는다. 어떤 친구가  자신이 서민이라고 했는데 우리도 서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의 차이가 뭘까?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여기 쓸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것도 먼 훗날에나 정리할 수 있을지...


12. 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지? 분명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면은 있다. 내가 지금 가진 직업에 대해서 많은 이들은 "돈 (물질적 보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런 연상작용을 내 내면 속에서는 꺠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것을 첫째 목표로 삼지 않으려 애써 노력한다. 그러나 감사하긴 하다. 아니, 때로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육체&정신&감정 노동이라는 생각도 든다. 문화personality 등의 차이에 의한 관계 속에 오는 감정측면을 대하는게 참 어려운 순간도 있다.  더더구나 극심한 육체의 통증을 이미 겪고 있는 이들과 interact 한다는 건 인격수양과 공감능력&냉철한 이성적 판단의 균형 등을 요구한다. 요즘도 참 많이 배운다.  대체적으로 치료 성공률이 95% 로 높은 편이지만 (연구결과, 그리고 Retreatment (재치료) 성공률은 60-85% ), 치료를 해도 잘 안 될 경우 맘이 많이 힘들기도 하다. 지금은 1-2 시간이면 끝나는 procedure 를, 학생 때는  8 시간이 걸려서 했으니, 그만큼 수련이 요구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자리를 빌러 내 직업을 defend 해 본다)


12. 학생/수련의 떄와 비교해서 월등히 늘어난 spending 은 (헌금/보험/학회 membership fee 등 을 제외하곤) 책구입비다. 


13.  왜 일하고 있지? 아침에 일하러 가면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오고, 때로는 응급환자도 오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decision making 을 신속히 해서 행동으로 옮겨서 치료를 시작해야 하고. 일단 시작하면 최선을 다 해서 치료를 끝내야 하고... 그렇게 하루가 진행된다. 일의 byproduct 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아이를 support 할 수 있다면 많이 감사한 일이다. 언젠가 내 오피스도 열긴 해야 하는데... 내 오피스에 관한 뭔가 뚜렷한 소명의식이 생기면 시동이 걸릴 듯 하다. 아직은 관심이 안간다.  


14. 그냥 그저 지금 하는 일을 참 좋아하긴 한다.. 감사한다. 직종을 바꾸길 참 잘했다고 지금까진 생각된다. 여러모로 그렇다. 앞으로 사람 일이 어찌 될 지 모르기에 또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한 번 직종을 바꿨기 떄문에 이제는 더 이상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임하기에  감사하며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5. 어쨌거나 그런 이유같은거 지금은 크게 생각 안 하고  그냥 하루하루 매순간 매순간 최선을 다 하고 싶다.. 내가 치료하는 이들에게도 그래야 하고.


16. 어느 순간에나 그를 바라보자. 



17. 문득....

일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원래의 나는 삶에 큰 애착이 있진 않다 (지금도 그렇다).  예수님 만나기 전, 애써 삶의 목표를 높이 정했던 것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허무주의에 빠져서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 만난 이후의 삶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도바울의 빌립보서 1:21-26 을 떠올린다.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게 낫지만 그가 사는 이유는 빌립보 서신을 받는 이들을 위해서라고.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살고 누고 또 저항하고? 투쟁하고? (ㅋ) 섬기는 삶...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삶의 이유가 되는 그런 삶.... 그런 삶이 되면, 삶을 계속해 나가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속 쭉 많이 있어야겠구나. 일터에서 만나는 이들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이 생각은 몇 년전, 삶에 염증을 느낄 때 일기에 이미 썼던 거다. 다시 되새겨본다.


 

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22 If I am to go on living in the body, this will mean fruitful labor for me. Yet what shall I choose? I do not know! 23 I am torn between the two: I desire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which is better by far; 24 but it is more necessary for you that I remain in the body. 25 Convinced of this, I know that I will remain, and I will continue with all of you for you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 26 so that through my being with you again your boasting in Christ Jesus will abound on account of me. (빌립보서 1:21-26)




Posted by pleasing2jc
2017.01.25 22:14

narrative 분류없음2017.01.25 22:14

누가 narrative 를 장악하는가가 power 인 게 확실한 거 같다.


post-truth 가 2016 년의 단어로 선정되었었고,  

며칠 전에는 alternative facts 라는 말이 문제였다.

한국에서의 국정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도 그렇고,

한국이나 미국의, 언론과 정치권과의 마찰도 그렇고...


인간사에서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가 그렇다.

세계관, 관점의 차이 등에 따라서 narrative 가 완전히 바뀌고,

사소한 사실을 드러내고 말고, 또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서, 잘못된 정보에 의해서 어떤 사람은 영웅이 되기도 하고 누명을 쓰기도 한다. 


모든 narrative 를 facts 에 근거함으로 하면 좋으련만.

세상이 요상하여 alternative facts 라는 말까지 나왔다.


거짓되고 꼬여진 정보들과 조각난 정보들, 

post-truth, alternative facts 가 흘러 넘치는 세계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도 어떡하면 true narrative 를 볼 수 있는가?...

Posted by pleasing2jc
2017.01.24 21:47

From Darkness to Light 분류없음2017.01.24 21:47



늘 받은 소식지 하나.

정크 메일로 버릴 수도 있는 소식지인데, 그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From Darkness to Light.


칠흙같은 어두움 속에서 빛으로 구출되어서 자유를 찾아 회복하고 있는  소녀의 소식.

오늘 하루종일 가슴에 머문다.


그녀가 겪은 어두움과 그녀가 지금 거하게 된 빛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만약 구출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처참한 삶을 계속해서 살고 있을것이다.

그런 어두움. 그런 빛...

 


그래, 어두워만 보이는 세상....

세상이 총체적으로 변화되어 세상 전체에 눈부시게 찬란한 빛이 비치 날은 언제 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 어디선가, 세상이 무관심한 그 어딘가, 작은 사람 한 명이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진다면,

바로 그곳에서 그는 한없이 기뻐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찬란한 빛의 미소를 짓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그 어디선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각주:1]에 남겨두시고, 길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오시며 기뻐하시고 계실지.

그리고.... 칠흙같은 어두움 속에서 길잃은 어린 양들을 찾아 온 산을 헤매고 계실지. 

  1. 들판: wilderness 라고 되어있는 version 이 많으니 들판이라기보다는 황무지라고 해야할까? 아주 안전한 목장을 지칭하는 건 아닐듯하다. 원어로는 어떤 의미일지? [본문으로]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