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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17:53

하이디 분류없음2017.11.28 17:53

하이디가 우리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암 수술 후 씩씩하고 행복하게 6 개월을 잘 지냈다.

집에서 더 편해지고 재롱도 더 늘었고 밥도 더 잘 먹었고.


 그러다가 상태가 점점 더  나빠져서 마지막 며칠 갑자기 악화되어서

자리에 누워서 먹지도 못하고 힘들어하고.

가는 날 아침, 입에 물을 넣어줘도 삼킬 힘도 없으면서 우리가 자신의 시야에서 없어지면 컹컹 짖었다.


하루라도 더 일찍 보냈어야 하는데, 우리가 잘 몰라서 하이디를 며칠 더 많이 힘들게 했다. 

하이디가 집의 자기 침대에 누워서 편하게 가도록 도와준 의사의 말에 따르면 

개들은 끝까지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다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단다. 


4 년 동안 하이디에게 많이 고마웠고 미안했다.


지금은 하늘나라 Home 에서 영원한 주인을 만나서 행복해하고 있으리라. 


Heidi, 2013. 9.4 (~8 yo) - 2017. 11.28 with us.





Posted by pleasing2jc
2017.11.16 21:12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분류없음2017.11.16 21:12


영화 Hidden Figures 에 나오는 court scene

이 시대 버지니아주는 여전히 segregated state 이였다고. (노예해방 아주 훨씬 후이지만)

한 흑인여성이 NASA 의 engineer 가 되고 싶어서 법정에 나가  All White school 의 클래스를 듣고 싶다고 하는 장면이다.


이 court scene 이 실화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저 scene 속의 judge 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겠는가?


그 누군가가 그녀에게, 

악법도 법이라며 segregation 의 법을 지켜야 한다며, 그녀에게 NASA 의 엔지니어가 되는 꿈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NASA 의 엔지니어가 되는건 이기적 자기실현의 꿈이라며, 그녀를 정죄한다면?


Out of all the cases you are gonna hear today, which one is gonna matter 100 years from now?

Which one is gonna make you the first?


Posted by pleasing2jc
2017.11.13 22:34

그런데 분류없음2017.11.13 22:34

그렇게 21 세기를 살아가는 흑인에게, 

조리한 언행을 하는 백인들을  감내하고 견디라며

노예 해방 이전 흑인노예들의 신앙을 종용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어떤 논리라고 볼 수 있을까?


A birth of a Nation 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투쟁하다 비참하게 죽어간 이들도 있고. 무모한 싸움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찌 하랴.

톰아저씨의 오두막에서처럼 노예주인들의 학대를 받으며 죽어간 톰아저씨같은 이들도 숱하게 많다. 

그렇게 살아간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롭다고 볼 수 있을까?

시대에 전혀 걸맞지 않다.


safe 하지 못한 환경을 피하는 것이 더 지혜로울 수도 있다.

직원을 학대하는 상사가 있는 직장을 고치지 못한다면, 더 나은 환경의 직장을 찾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경우가 있듯이. 

(항상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편협하고 왜곡된 좌표 안에서 그것을 감내하는 것보다는 

당분가 피해서 더 나은 환경 - 더 safe 한 곳으로 갈 수 있다면 가서,

편협하고 왜곡된 좌표더 지혜롭고 과감히 고쳐나갈 수 있는 자질을 키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방법들 중에 한 방법일 수 있다.

 방법을 택한다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어떤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침뱉은 이들 사이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했는데,

실제로 얼굴에 침을 맞은 이에게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traumatic experience 들을 겪으면 치유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선 뚜렷한 미션을 가지셨고 새 세상과 새 사랑을 시작하신다는 부활에의 믿음 하에 그런 십자가를 실천하신거다.

예수님께서 그냥 마냥 순하고 착하게 사역하신 건 아니다. (e.g.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시기도 하시는 등)

강자에게 희생만 당하는 약자로서 그렇게 침뱉는 이들 사이에 들어가는 건 어리석을 수도 있다. 

doormat 가 되는 것과

강단있게 중심이 뚜렷하게 선 이 (다른 말로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이)가 낮아져서 온유하게 섬기는 것은

명확하게 다르다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