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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에 해당되는 글 4

  1. 2017.10.26 It was not you who sent me here, but God.
  2. 2017.10.23 영화 남한산성
  3. 2017.10.10 perfect love
  4. 2017.10.06 기억
2017. 10. 26. 13:16

It was not you who sent me here, but God. 카테고리 없음2017. 10. 26. 13:16

요즘 Encounter with God 의 본문이 창세기 요셉부분이다.

참 묘하게도 시기적절하다. 

QT 를 오늘의 운세 보듯 현 상황에 억지로  끼어맞추고 싶지 않지만서도 어찌 이리 시기적절한지....

https://scriptureunion.org/daily-encounters/sold-or-sent/


요셉은  자신을 노예 상인에게 팔아버렸던 형제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후,

"It was not you who sent me here, but God," 라고 세 번 얘기한다.


그를 인신매매해서, 그의 인생을 말아 먹었던 형제들이었다.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을 하면서, 

순간순간 그들을 원망하고 미워했을지도 모르고, 

매일매일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밤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끝이 없어보이는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범죄자/배반자 형제들에게 "It was not you who sent me here but God,"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요셉 자신이 총리가 되어서가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 또 하나님의 큰 구원계획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God was not disorientated by teenage arrogance or sibling resentment, by false accusation or social injustice: in it all, he was weaving his plan of deliverance, of reconciliation, salvaging the wreckage of human sinfulness and making it into a tapestry of divine salvation. Three times Joseph asserts the truth that has changed everything for him: “it was not you who sent me here, but God”   (Encounter with God 설명에서)


It was not you who sent me here, but God.

그리고 진정한 구원자였던 예수님의 기도 또한 떠올린다.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던 이들은 자신들이 악 혹은 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에겐 그것이 의 (righteousness) 였다. 예수님께선 그런 그들을 아시고 자신을 못박은 이들의 용서를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이런 요셉의 고백과 예수님의 기도가 처절한 십자가 고통 앞의 고백과 기도가 되는 이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그들을 기억한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위로하심이, 하나님의 큰 계획을 온전히 보고 그 안에 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가 임하길 기도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17. 10. 23. 12:19

영화 남한산성 카테고리 없음2017. 10. 23. 12:19


대의명분과 살 길

명나라와 청나라

척화파와 친화파

왕과 백성

벼슬아치와 민초

삶과 죽음

겨울과 봄


무척 서글픈 영화

날쇠 역 고수의 대사 하나와, 마지막 부분에 김윤석&이병헌이 잠시 나누는 대화가 핵심 이었던 듯 싶다. 적어도 내게는. 

고수 인터뷰에서 인용된 김수영 시인의 시 <풀>을 옮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PS: 신앙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랑 전혀 상관없는 영화이지만 그들의 삶과 죽음을 건 신념 때문에 그러했다. 유교적 신념이라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척화파와 주화파의 격론을 들으며 전도서가 절로 떠올랐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Posted by pleasing2jc
2017. 10. 10. 06:13

perfect love 카테고리 없음2017. 10. 10. 06:13

진정한 사랑이란, 

사랑을 받는 사람의 조건에 dependent 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character 라는 것을

살면 살수록 더 느끼고 있다.


진정한 사랑보다는 왜곡된 사랑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다.


어떤 강의에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human trafficking 을 하는 pimp 들이 어린 소녀들에게 하는 말이, "그들을 사랑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라고. 

세뇌이다. 한 인간의 세계관과 존재를 온통 뒤틀어버리는...   

이런 경우도 들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폭행하면서 참으라고 하는... 그 얘길 전해 들으며, 치가 떨렸다.


그런 극단적인 예까지 들지 않더라도 왜곡된 사랑의 예는 많다.

영화 등등 일부 대중문화 속의 왜곡된 사랑의 모습도 있고,

행동은 따르지 않는 사탕발림 말뿐만인 사랑,

상대방의 눈동자 안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는 사랑,

상대방의 조건과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사랑,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말들을 하며 그것이 친밀감의 표현이라고 하는 이들,

기타 등등


력이 일상화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그런 폭력을 행하는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한다.

그것이 육체 폭력이건 언어 폭력이건.

폭력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폭력이 아닌 다른 관계의 형태를 잘 보지 못해서가 아닐까?

언어 폭력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이는 언어 폭력 정도의 수위 까지는 아니더라도 

삐딱한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 되었음을 잘 모르기도 할 듯도 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꼭 폭력이 아니더라도 왜곡된 사랑을 참사랑이라고 잘 못 알고 있는 경우,

참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For example, 알맹이 없는 피상적 사탕발림말을 사랑으로 여기는 이는, 듣기 좋은 말만 듣길 원하고.

              Dear children, let us not love with words or speech but with actions and in truth. (1 John 3:16)


정한 사랑의 모습을 바로 세우는 것.

진정한 사랑을 아는 자는 왜곡된 사랑을 가려낼 수 있고,

왜곡된 사랑에 희생되지 않고, 아니, 그 어느 누구라도 자신을 해치지 못함을 알고 (영원의 realm 에서)

더 나아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안다.

God is love.... perfect love drives out fear.

왜곡된 사랑을 극복하고 참사랑 안에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이들이, 

injustice 와 violence 에 의해서 고통받고 상처받은 이들에게도 치유의 통로가 될 수 있지 않을지...


그런데 사랑은 정말 어렵다.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이웃사랑은 물론이지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던 예수님의 삶을 또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본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했다는 코리 텐 붐의 책 등을 읽어봐야겠다 ===>

이 책은 context 등이 달라서 그다지 도움을 못 받을 듯 함.

<용서에 대해여> 등 한국책들이 context 상 더 적절함

예수님의 용서: Luke 23:34: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do.


:
Posted by pleasing2jc
2017. 10. 6. 11:11

기억 카테고리 없음2017. 10. 6. 11:11


       의 외할머니께서는 어리실 때 어머니를 여의셨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시고 새 장가를 가서 바쁜(?) 아버지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거의 고아처럼 지내셨다고  한다.

       그 대신 옆집 아주머니께서, 나의 외할머니를 딸처럼 보살펴주셨는데,

       그 아주머니께서 크리스챤이셨다고.

       그 아주머니 덕분에 외할머니께서도 하나님을 믿게 되셨고 

       평생 헌신된 삶을 사셨다. 


       외할머니는 그 당시 여성들이 많이 그러했듯 고등교육을 못 받으셨는데, 

       하나님 잘 믿어서 의사 남편 만나서 잘 사셨다고,

       나의 이모님들은 농담하신다. 

       (그 당시 일제시대에,  양반이라는 이유로 외할아버지와 맺어지셨다고.) 

    

 범신론자에 가까우셨다는 외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외할머니께서는 혼자서 혹은 자녀분들과 함께 교회에 다니셨고... 

내가 보기엔 외할아버지께서 외할머니같은 분 만나셔서 무지 복 많이 받으신 거다. (아마도 외할아버지께서도 그렇게 인정하고 계실거다)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셨던 외할아버지 덕분에  자녀들은 다들 음악을 좋아하시고 음악을 전공하신 분도 몇 되시는데,

외갓댁에 가면 이모님들의 피아노 반주에 따라서 옹기종기 모두 둘러서서 함께 찬양을 하던 기억이 난다.   

노래를 잘 하는 자녀분들에 비하면 외할머니는 음치셨지만, 그래도 그 순수한 목소리와 표정이 기억난다.

외할머니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 는 말씀을 잘 하셨다는데, [각주:1] 무척 온유하고 온화하신 분이셨다. 

속은 안 그러면서 온유한 척 하거나 온유하려고 애써 노력하는게 아니라, 내면이 정말 온유하고 온화한 분이셨다. 

순진하고 어린이같은 면이 많으셨던.... 이모님들 표현에 따르면 '바보'같은 면이 있으셨던.

외할머니께서는 아마도 그런 온유함을 예수님의 온유함으로 여기셨는지도 모르겠다 -- 

(사실  그 시대 여성들은 그런 것을 미덕으로 여겼을 듯도 싶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외할머니께서는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것들로, 선산 시골에 아주 작은 교회를 지으셨다. 30 년 전 일. 


그 교회가 '부흥'했으면, 스토리가 멋질텐데, 안타깝게도 30 년이 넘도록 교회 사정은 어렵단다. 교인도 적고, 담임 목사님들도 많이 바뀌었고.  워낙 시골이기도 하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자녀들이 힘을 모아 교회를 support 해 왔었는데, 시골 동네 사람이 헌금을 사기친 일도 있댄다.  

또  한 담임 목사 사모님 중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헌금을 강요하던 황당한 이도 있었다 하고.  

외할머니의 존함? 성함? 이 들어간 기념비를 세우자는, 이전 담임 목사님의 제안을, 그 자녀분들이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 했다고.


몇 년 전 그 교회에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외할머니의 흔적은 조금도 있지 않고, 평범한 시골 교회인 그 교회. 

우리가 어렸을 때 쓰던 피아노가 거기 놓여 있어서 반갑긴 했다.  

그 지방 도시 대학생들이 수련회를 와서 교회 건물을 고치는 (선교) 봉사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 지역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아'처럼 자라셔서, '과부'가 가진 것을 바치셔서 교회를 지으신 외할머니의 신앙.

온유하고 잔잔한 동시에 다소 모험적이기도 하셨던 신앙... 

(물론 기복적인 면도 있었을 거고  빈틈도 많으셨겠지만)

그와 더불어, 옆집 어린 아이를 딸처럼 보살펴주셨다는, 얼굴도 이름도 모를 이웃 아주머니의 신앙 


문득 그녀들의 신앙이 기억나고 궁금해지는 계절이다. 


  1. 아, 물론 그 성경구절을 기복신앙적으로 받아들이셨을 수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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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