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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14. 15:34

그런데 카테고리 없음2017. 11. 14. 15:34

그렇게 21 세기를 살아가는 흑인에게, 

조리한 언행을 하는 백인들을  감내하고 견디라며

노예 해방 이전 흑인노예들의 신앙을 종용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어떤 논리라고 볼 수 있을까?


A birth of a Nation 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투쟁하다 비참하게 죽어간 이들도 있고. 무모한 싸움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찌 하랴.

톰아저씨의 오두막에서처럼 노예주인들의 학대를 받으며 죽어간 톰아저씨같은 이들도 숱하게 많다. 

그렇게 살아간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롭다고 볼 수 있을까?

시대에 전혀 걸맞지 않다.


safe 하지 못한 환경을 피하는 것이 더 지혜로울 수도 있다.

직원을 학대하는 상사가 있는 직장을 고치지 못한다면, 더 나은 환경의 직장을 찾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경우가 있듯이. 

(항상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편협하고 왜곡된 좌표 안에서 그것을 감내하는 것보다는 

당분가 피해서 더 나은 환경 - 더 safe 한 곳으로 갈 수 있다면 가서,

편협하고 왜곡된 좌표더 지혜롭고 과감히 고쳐나갈 수 있는 자질을 키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방법들 중에 한 방법일 수 있다.

 방법을 택한다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어떤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침뱉은 이들 사이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했는데,

실제로 얼굴에 침을 맞은 이에게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traumatic experience 들을 겪으면 치유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선 뚜렷한 미션을 가지셨고 새 세상과 새 사랑을 시작하신다는 부활에의 믿음 하에 그런 십자가를 실천하신거다.

예수님께서 그냥 마냥 순하고 착하게 사역하신 건 아니다. (e.g.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시기도 하시는 등)

강자에게 희생만 당하는 약자로서 그렇게 침뱉는 이들 사이에 들어가는 건 어리석을 수도 있다. 

doormat 가 되는 것과

강단있게 중심이 뚜렷하게 선 이 (다른 말로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이)가 낮아져서 온유하게 섬기는 것은

명확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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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