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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14. 02:18

속성 욥기 카테고리 없음2019. 7. 14. 02:18

7/1 부터 오늘까지 Encounter with God 로 욥기 QT 를 시작했다.

워낙 긴 책 중 몇 챕터만 뽑아놓은 QT 였고 휙 읽고 말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이전에 욥기를 읽을 때는 항상 내 상황이 안 좋았기에 욥에게 감정이입해서 읽었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1998 년 여름 즈음인가 욥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QT 했었다. 무척 어려운 책이었다. 그 당시 내릴 수 있던 결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자였다. 그걸 실천하는 것도 어렵다. 그 QT 이후 지난 20 년을 돌아보니 나의 좌충우돌 속에서도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본다.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기도한다. 

5 년 전  슬픔/그리움/황망함/상실감/분주함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후, 한국집으로 돌아가 현실을 마주하며 정원을 거닐다 갓 태어나서 눈도 못 뜨는 야생 아기새를 봤다. 욥기 마지막 부분의 하나님이 떠올려졌다. 

 

이번에는 좀 더 객관적으로 읽었다고 해야 하나? 정말 어려운 책이라는 걸 다시 발견한다.

속성으로 읽어서는 안되는 책. 


가볍게 읽었지만 그래도 새롭게 다가오는 몇가지를 기록한다 


(1) 41 장에 붙은 Encounter with God 제목처럼 The Supreme Otherness

욥기의 마지막 부분은 가장 인간다운 (인간스런) 인간모습의 욥과 가장 '신'다운 모습의 하나님의 Encounter 인 듯 하다. 


(2) 흔히들 욥기를 예수님 십자가 사건의 shadow라고 한다. 그렇다면 십자가 위의 예수님 안에서  가장 인간같은 모습의 인간과 가장 '신'다운 모습의 하나님 사이의 벽이 허물어져서 '하나'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 분이 예수님이시다. 


(3) 욥기 41 장 마지막 부분: 하나님께서 욥을 회복시켜 주시며 다시 일곱 아들들과 세 딸을 주셨다는데, 일곱 아들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데, 세 딸의 이름은 써놓았다..    그리고 딸들에게도 아들과 같이 inheritance 을 주었다고 명시한다. 왜 굳이 그걸 써놓았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시대에는 드문 일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 딸들이 너무 아름다운 여인들이었기에, 저자도 흑심을 품었기에 그 딸들의 이름을 써 놓았는지도 모르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  그저 그 전에는 간과했던 부분이다


(4) 욥기를 쓴 저자가 누군가 불분명하대는데, Psalm 88 을 쓴 이가 저자라는 설도 있다고. 그게 사실이건 말건 시편 88 편도 함께 읽어봐야겠다.


(5) 이건 번외: 어쩌다 보니 욥기 QT 하는 기간에 아모스서를 함께 읽었다. 욥과 같은 의인의 고난도 있긴 하겠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하나님을 잘못 예배하고 있던) 죄를 저지르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연단으로서의 고난도 있다는 것. . 욥에게 엉뚱한 말을 하던 욥의 세 친구같은 이들도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따끔한 말을 해 주던 선지자들도 있다. 시대와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분별력이 필요하다


(6) 욥기의 happily every after 같은 결말은 참 유혹적이다... 기복신앙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그보다는 하나님께 촛점을 맞춰야 한다. 약 4000 년 전 족장시대가 아니라, 21 세기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회복은 뭘까? 



이번 주말에는 욥기와 아모스를 좀 더 깊이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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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