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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9. 03:49

Waiting expectantly for 카테고리 없음2020. 2. 9. 03:49

1. 국민학교 5-6 학년 교회 수련회에서 마태복음 25: 1-13  에 관한 극기훈련 (혹은 상황극?) 을 한 적이 있다.  등불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라려야 했던 처녀들 비유처럼,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불시에 오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은 안 잤고, 한두시간 후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announcement 가 나왔고, 아이들은 부리나케 방에서 뛰쳐나가서 '예수님'을 맞이하러 갔다. 그런데 그 커트라인이 많이 높았던게, 나는 풀러진 신발끈을 묶느라고 몇 초 더 늦었을 뿐인데, 내가 거기 도착했을 때는 '문이 닫혀버렸었다.' 

그게 뭐라고 많이 속상해서 합격못한 친구들과 투덜거렸던게 기억난다, "잠이 들어서 못 일어난것도 아니고 신발끈 묶는라 몇 초 늦었는데 그것도 안 봐주냐?" 등등.  또 친구들에게 얘기는 안 했겠지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당첨?된) 누구누구보다 더 모범생이고 공부도 잘 하고 선생님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착한 아이니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으면 천국에 꼭 갈 수 있을거야."

별 것 아닌 어린 시절 극기훈련인 거 같지만, 몇 년 후 대학생이 되어 예수님을 영접할 때 위의 경험이 기억났다. 3 대째 모태신앙으로 대학생이 될 때까지 교회는 계속 다녔으면서  은혜와 구원이 뭔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선행과 자기의가 신앙이라고 생각했었다는 걸 꺠달았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예수님의 은혜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아직 긴 여정 중이다. 


2. 작년 말 QT 말씀 본문에 다시  열처녀의 비유가 나왔다. 준비하고 깨어있는 삶에 대해서도 묵상했지만,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곰곰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3. 그리고 또 다른 QT 본문에서 하나님꼐서 솔로몬에게 한 가지 소원을 묻는 장면이 나왔다. 내가 솔로몬이라면 뭘 구할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봤다.

4. 심사숙고 후에 내린 결론은, 깨어서 기다려야 하는 한가지 소원은 "예수님 빨리 오세요," 여야 하지 않을까 였다. (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이 땅에 임하는 날,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 그 날. 

----  흠.. 출제자가(하나님께서) 원하는 '정답'은 뭘까 고려한 답이라고 할 수도 있다. 

5. 어찌 보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이래 (대학생 시절 이래)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온거나 마찬가지다. 모든 크리스챤들이 그러하리라.

6.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라는 뉴스에 대해서, 일터의 한 라티노 계열 사람이 "God is coming" 농담한다, 그러니까 마침 옆을 지나가던 중동계 사람이 "ooo (야), STOP preaching in front of the patients" 라 받아친다. 그 상황이 웃겨서 한참 웃었는데, 그처럼 기독교에서 예수님(하나님)께서 언젠가 다시 오신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세계관이다.

7. 물론 2000 년 전 예수님께서 already 의 세계를 여셨지만 not yet 의 삶을 살아가면서, 기다림과 인내는 크리스챤 삶의 자연스런 모드다. 



8. 어떤 기다림인가?

9. 1996 년인가 1997 년인가, 보스턴에서 다니던 한인교회에 한참 새벽기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때, 새로 부임하신  청년부 목사님께서 누가복음 2 장의 시므온 (Simeon) 과 안나 (Anna) 에 관한 설교를 하셨었다. 그 전까지 크게 주목하지 못했던 인물들인데, 한 설교를 다 할당해서 그들을 조명하시니 신선해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중 안나라는 인물의 삶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긴 세월동안 성전을 떠나지도 않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예배하던 인물. 그렇게 기다린 끝에 아기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10. 누가복음 2 장의 본문을 영어 the message 로 보면:

In Jerusalem at the time, there was a man, Simeon by name, a good man, a man who lived in the prayerful expectancy of help for Israel.....

 At the very time Simeon was praying, she showed up, broke into an anthem of praise to God, and talked about the child to all who were waiting expectantly for the freeing of Jerusalem.


Prayerful expectancy  그리고 waiting expectantly, 즉 expectancy 라는 표현을 쓴다. 


11. Expectancy 는 좀 낯선 표현이다. 평소 expectancy 라는 말은 잘 안 쓰고 expectation 을 더 많이 쓰는데 한국어로는 둘 다 "기대"라고 번역된다.  그 두 단어의 차이에 대해서 <Longing for Revival>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져있다. 책 본문을 옮겨오면:


Expectaions demand a certain result; expectancy trusts and hopes. Expectations create anger and disillusionment in our faith when they aren't met; expectancy is an openness to any outcome God desires. Expectations force God into a box to act as we want; expectancy allows God to be God in our lives, acting on his own will. Broken expectations, on their own, lead us to despair; expectancy takes our broken expectations back to God to rebuild our faith. The crisis gives us an opportunity to relinquish our expectations so that expectancy can grown in our soul.  (p53, Longing for Revival) 


러니까 인간이 원하는 모습의 것들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긴 모습이라 할 수 있겠지. 책에서 "Surrender is the essential posture (p54)" 라 한다. 


12. waiting expectantly  의 모습의 근본은 하나님께 surrender 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인간이 그리는 예수님의 재림이던, revival 이건 무엇이든지간에의 expectation 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들을 기다리는 것인가보다.

기다림의 자세는 waiting expectantly/surrender 가 근본 foundation 이지만 그 기다림이 manifested 되는 모양은 여러가지다. Anna 처럼 성전에서 기도/예배/금식하며 기다릴 수도 있고 히브리서 11-12 장의 믿음의 조상들의 모습일 수도 있고 사도바울이나 히브리서 12;1-2 장처럼 믿음의 경주를 뛰는 전투적 모습일 수도 있을테고.



13. 큰 천재지변이나 큰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위의 라티노 계열 coworker 처럼, 말세라고 또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농담(?) 하기도 하지만 에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천년후가 될지 만년후가 될지 언젠가 될지 기약이 없다. 

14. 그런 가운데 <Longing for Revival> 에서 revival 을 longing 하는거처럼, 갈망하게 되는 것은 "메마른 땅에 단비와 같은 은혜" 일텐데...  <Longing for Revival> 에서는 "breakthrough" 라는 표현을 쓴다.  (outpouring (of) grace, ourpouring (of the) Holy spirit, 부흥, breakthrough, 하나님의 임재, 기타등등 결국 다 같은 현상? 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 아닐까? )

 

15. "단비와 같은 은혜" 조차 expectation 이 아닌지. 메마른 은혜도 있는거 아닌지 --  십자가를 치열하고 잔인하고 아픈 은혜라 할 수 있을까?

16. 또한 2000 년 전 오신 예수님도 그 시대 사람들이 기대 (expectation) 하던 메시야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지...


16. 결국 집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실 것들에 대해서 expectation 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기다리며 깨어있어야 하는 거구나.  열처녀 비유에서처럼. 

17. 그런데 지금 곰곰 생각해 보니, 2000 년 전 이미 오셔서 새 세상을 여신 예수님도 깊이 알지 못하면서 더 "큰" 것만을 바라는 거 아닌가 자각한다

18. <Longing for Revival> 에 2000 년 전 오신 예수님에 대해 써 놓은 다음 문장이, 거의 1 주일간 내 존재 안에서 resonate 했었다.

Heaven broke through (p33) 

헉.. 


19. 그래, 물론 앞으로의 은혜들도 약속된 것들이고 믿는 자로서 마땅히 expectantly 기다려야 하지만, 이미 부어주신 엄첨난 은혜를 제대로 깨달아가는 것도 어마어마한 복 (heavenly blessing) 이구나 깨닫는다. 

20. 그걸 제대로 깨달아가는 여정이 breakthrough 의 나날인지도 모르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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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조금은 지치는 일상을 살아가며 이렇게 waiting expectantly for 하려고 하루하루 struggle 하고 있다. 

(Hope is a fuction of struggle - Brene Brown, Daring Greatly - cited in <Longing for revival>,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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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