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

« 2024/4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2023. 3. 26. 15:03

마태복음 단상. 카테고리 없음2023. 3. 26. 15:03

1.    Matthew 6:1-4  Be careful not to practice your righteousness in front of others to be seen by them. If you do, you will have no reward from your Father in heaven.  2 “So when you give to the needy, do not announce it with trumpets, as the hypocrites do in the synagogues and on the streets, to be honored by others. Truly I tell you,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3 But when you give to the needy,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hand is doing, 4 so that your giving may be in secret. 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어린시절부터 아주 중요한 virtue 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이다.  어린시절부터, 어른들이 자신의 선행이나 사역같은걸 말하고 다니고 자랑하는 걸 별로 안 좋아헀다. 목사님들도 그렇고 장로님/집사님들도 그렇고. 교회모임에서 '울면서' 기도했다는 또래 어린 학생들의 으쓱거리는 나눔도 그야말로 '으쓱'으로 보였다. 심지어는 어머니께서 교회봉사하신 얘기를 친구분과 share 하시는걸 듣고도, "어머니께서 왜 그걸 친구분하고 share 하실까? 왜 자랑하실까?.."보다 좀 더 심한 어조로 비판하는 글을 내 일기장에 썼다가 들켜서 어머니께 엄청 혼났었다.  어머니는 감동을 단순히 나누셨을뿐일텐데.... 그 당시 내가 중2, 그 무섭다는 대한민국의 중2 이긴 했었다.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동생과 나의 '어두운' 과거를 나누는 시간이 오면, 나의 그 에피소드를 얘기하신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그 당시 어머니께서도 속이 많이 상하셨을거다. 

그런 종류의 '날카로운' 면은 여전히 세상에 대해서, 사람들에 대해서, 주위에 대해서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다. 참 많은 말들을 참고 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그러했듯,  여전히 지금도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나 삶/존재 자체의 변화보다는, 자신의 '행위나 눈물을 더 우상화'하는 이들을 참 안 좋아한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 또한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참으며 많은 말들을 참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   Matthew 7:1-2. Do not judge, or you too will be judged. 2 For in the same way you judge others, you will be judged, and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to you.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to you 라는 것이 타인에 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그리 할 수 있다.  많은 경우, 다른사람을 비판할 때 갖다대는 잣대를 스스로에게도 갖다대기에 스스로의 언행의 폭이 좁아지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다른 사람에게 쓴 measure 를 스스로에게 들이대면서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다른 이들의 '외식'에 엄격하기에 혹시라도 내가 잘 한 일이 있더라도 share 안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어머니와 어른들께 그랬듯이, 우리 아이와  젊은 세대도 날 다 보고 있을텐데 하면서 조심하게 된다.  물론 인간이기에 blind spot 도 있고 자기정당화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 인정한다.  (외식하지 않기 위함도 있으나, 그보다 더 큰 것은 타인을 의식안하고,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에의 소중함도 있다. ) 

 

3.  위와 같이  내가 행한 일을 share 안 하는 편이지만,  다음은 올해의 결심이고  바람이기에 쓴다.

마태복음 6:21 은 올해 초에 실현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말씀 중의 하나이다.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Matthew 6:21

5+ 년 전에, 다니던 교회의 tithe challenge 에 참여했다. 물론 아무하고도 share 하지 않고 혼자만.

그 tithe challenge 라는 것이 굳이 10 % 가 훨씬 넘는 '십일조'를 하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고, 이전에 하던 헌금보다는 많은 정도의 '십일조'를 하라는 거였다. 헌금을 3% 정도해 왔다면 5 % 해보라거나 그런 식이다. 그 교회에서 캠페인하기를,  그만큼 더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시라며, 만약 tithe challenge 에 참여했는데도 수입이 늘지 않으면 그 교회에서 '십일조'를 환불해주겠다는 거다. 기복신앙같아 들리지만, 그 교회에서는 건강한 신학으로 잘 설명했었다.  

 나도 이전보다 헌금을 늘렸었다. 교회에 헌금하지도 않았고 다른 기관들에 헌금했다. 그러니 수입이 늘지 않아도 환불받을 생각같은 건 전혀 없었다. 헌금을 늘린 결과가 10% 미만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뭐 그렇다. 아주 많이 늘리지는 않았다. 그 교회 교인 어떤 사람은 50%, 90% 십일조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 교회 목사님이 그랬었다.  굳이 수입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전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헌금에 대해서 했던 결심이 있고ㅡ  신앙 공동체/교회에서는 내가 하는 일이 그다지 없으니 그렇게라도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었다.  그런데 아이아빠가 자신의 헌금비율을 좀 줄여서 우리 가정 총 헌금은 비율상 아주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사실 우리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니 소비를 할 때도 조심하고 기도하면서 결정해야지... 

나눔의 criteria 도 세웠다. 지리적인 면이나 다른 면에서 여러모로 비교적 가까운 이웃과는 나누지 않는다. 지인의 단체에게도 하지 않는다. 제 3 세계의 정말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고 전문구호단체를 통해서 나눈다. 그런 이유는 나눔도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느꼈기에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toxic charity 가 될 수도 있고, 엉뚱한 데 쓰여질 수도 있으니까. 나눔이 신형 아이폰이나 랩탑 같은 걸 사는데 쓰이는 걸 봤다.  또 상대방에게 생색내거나 상대방의 존엄성을 해하거나, 상대방이 내 노고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섭섭해지는 '시험'받는 것도 방지하기 위해서다.  

수입이 이전보다 좀 늘긴 늘었으나 그것도 은혜겠지만, 그것보다는 광야같은 척박한 세상에서 그렇게라도 하나님의 큰 세상에 참여한다는게 내게는 살아갈 수 있은 힘을 줘 왔다. 내 노동의 수고를 세계 곳곳의 이웃들과 적게나마 나누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작은 일부분이 된다는 감사함. 그렇게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 

헌금을 할 때,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가에도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데,  여러 뉴스레터와 모임들이 있으나, 하루하루의 삶이 바빠서 잘 읽지도 않고 참여도 안하게된다. 헌금하는 걸 한군데에 몰빵할 경우, 연락이 오는 빈도수가 많아지고 만나자고 하기에 될 수 있으면 여기저기 조금씩 헌금하기도 한다.  여유시간이 날 때 관심을 가지고 기도도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헌금이 될 수 있지 않을지 모르겠다.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걸까? 부자들의 체면치례 헌금보다는 전심으로 헌금하는 과부의 동전 두 닢을 훨씬 더 소중히 여기시는 예수님이신데... 언젠가부터 내 heart 가 헌금에 들어가 있지 않다. 

혹시 내 treasure 는 물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무심결에 하나, 그건 아닌것도 같다. 인간인 이상 물질에의 관심은 평생 싸워야 할 욕망이니까. 물론 물질보다 더 소중하고 우선되는 treasure 가 많기도 하다.

그래도 올해는 좀 더 세계 곳곳의 이웃들에게도 더 관심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맘의 여유가 더 생기길 기도한다.  이런 저런 이메일 뉴스페이퍼도 읽고 보내주는 동영상도 좀 잘 보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또한, 내 관심과 기도와 상관없이 세계곳곳에서 그의 일을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러한 하나님의 큰 picture 안에 작은 구성원으로 참여할 떄 경험하는 큰 은혜. 그리고  훨씬 더 큰 일을 하고 계신 하나님과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이웃들을 바라본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3. 3. 24. 02:43

다양한 경험 카테고리 없음2023. 3. 24. 02:43

여러 군데의 치과에서 일한다.
owner 와 employee, 일하는 치과의사들의 cultural background 도 각각 다르고, 환자들의 demographic 도 다양하고, 각 치과의 system 도 다르다. 오피스 셋업, 치과 기계들이나 microscopes 도 다양하다.   그래서 덜 지루하다.
스케줄링을 하거나 환자들의 전화나 이메일에 답하거나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acedemic enviroment 나 engineering 세계와는 전혀 달리, 이메일을 잘 안 쓰고 문자/전화 답장이 늦는 치과들도 있다.  실리콘 밸리 culture 에 어울리게 문자/이메일에 금방금방 답하는 치과들도 있다. 심지어는 밤늦게도 이메일 답장하는 곳이 있다 (20 대 젊은 employee 들이 있는 곳이 그러하다).  그래서  밤에는 이메일도 안 한다.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그런 치과들이 일하기에는 훨씬 수월하다. 환자들도 더 좋아한다. 아무래도 실리콘 밸리 문화가 그러하니. 
좀 outdated 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더라도 또 다른 종류의 장점이 있고, updated and efficient 시스템이 있더라도 또 다른 단점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불만 안 가지고, 그들의 수고에 감사하려 한다. 일처리가 늦고 철저하지 않으면,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나지만, 속으로는 도를 닦으면서 기간을 두고 독촉하기도 하고 내가 일을 채우기도 하며 산다.  일처리가 늦어지고 있는데, 예상 처리기간이 어느 정도라고 연락도 없이 마냥 기다리게 하는 거 너무 싫어한다. 
그런 시스템이나 문화의 고착화는 각각의 치과들끼리의 교류도 별로 없고, 한가지 스타일로 일하는데 오랜기간 익숙해져서  그런듯도 하다. 
치과가 좀 크다고 해도 웬만한 회사에 비하면 small business 이니까. 아니 큰 회사나 병원, 학교들도 그러할까? 
학부를 다닌 대학원의 우리 전공과에서 그 학교 학부생은 같은 학교 대학원에 못 오게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 학교 저 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연구환경을 경험하라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치과와 직업도 그러하고, 학문도 그러하고, 또 교회, 신앙공동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한 군데에서만 같은 스타일로 꾸준히 머무는 것도 좋겠지만 다른 환경과 다른 사람들도 경험해 보고, 여러 방법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도 해 보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더 큰 하나님을 경험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3. 3. 13. 13:40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카테고리 없음2023. 3. 13. 13:40

오늘 열린 오스카에서 영화  Everythis everywhere all at once 가  7 개의 상을 받았나보다. 
BEST PICTURE
ACTRESS IN A SUPPORTING ROLE (Jamie Lee Curtis)
ACTOR IN A SUPPORTING ROLE (Ke Huy Quan)
ORIGINAL SCREENPLAY
ACTRESS IN A LEADING ROLE (Michelle Yeoh)
DIRECTOR
FILM EDITING
 
양자경 (Michelle Yeoh)이  동양인으로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최초로 받은 역사적 날이다. 인디아나 존스의 아역배우였던 Ke Juy Quan 이 헐리우드에 동양인 배우로서 설 기회가 없어서, 긴 세월 동안 무술 담당 스태프로 일하다가 38 년만에 배우로 복귀. 수상을 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Jamie Lee Curtis 가 완전히 망가져서 나왔는데, 그녀의 첫 오스카를 받았다.  워낙 유명한 배우이기에 오스카를 이미 받은 적이 있었다고 생각헀는데 아니었나보다. 
나는 이 영화와  Dr Strange 2 를 비슷한 시기에 봤다. 아이의 추천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볼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영화보는 눈이 까다로워서 여러 이유로 Dr Strange 2 는 물론이고 avatar2 와 Black Panther2 도 안 봤는데, 이 영화는 보고 "너무너무 좋았다"고 평했었다.  정말 독특한 영화였다. 여러모로 틀을 꺤 영화라고 해야 하나. 보면서 "양자경이나 Jamie Lee Curtis 가 이런 실험적 영화에 왜 출연했을까,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일까" 하는 생각했었다.   Dr Strange 2 도 multiverse 를 다루는데, 그 영화는 헐리우드 전형적 superhero 영화라는 것 외에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위 영화는 superhero 가 전혀 아닌 지극히 평범한 한 여성의 multiverse 에서의 삶을 다른 영화라 관객들의 상상력과 공감을 살 수 있었을 듯도 하다. 
영화를 잘 모르기에 이 영화가 왜 많은 상을 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미국 영화계에서  새로운 얼굴들과 다양하고 독특한 것들을 honor 하는것이 자리잡혀가는가 싶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