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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9. 15:08

thanksgiving 카테고리 없음2022. 12. 9. 15:08

지난 추수감사절은 무척 low key 로 보낸 며칠이었다.
방향 candle 만들기, cooking, 독서, 운동, 청소 등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low key 로 지내는게 얼마만인지, 이런게 '안식'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안한 며칠을 지냈다. 그 시간 자체가 참 감사했다.
며칠이 끝나고 또 다시 시작된 일상은 정글이다. 본질에 집중하고 싶으나 번잡한 사사로운 것들에 신경쓰고 감정을 소모해야 할 때가 많다. 요즘 신경쓰이는 일이 좀 있어서 오늘은 몸이 지끈지끈 아플 정도였다. 퇴근 후 누워있다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밥도 먹고 운동도 다녀오고 online 세미나도 듣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감사함을 회복하려 한다.
추수감사절날, 한 환자로부터 감사 메시지를 받았다. 환자가 좋은 사람이라, 좀 오버스러운 메시지이긴 한데, 그래도 내가 지향하는 바들이 reflect 되어있어서 많이 감사했다.

레지던시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지 딱 10 년이 되었다. 그런데 일을 많이 하는 편이라 condensed version 의 15 년 이상 경력이라고 스스로 여긴다. 연륜이 조금 쌓였다고, 가족들앞에서 "지금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렸는데!"라고 큰소리 치기도 하는데, 환자의 메시지를 받고는 오히려 고개를 숙이게 된다. 앞으로 더 겸손한 맘으로 기도하며 정진해야겠다.

동생은 근무병원인 암센터에서 무슨 상을 받았나보다.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교통 때문에 늦은 환자를 기다려주고 여전히 친절하게 대했다니. 자신의 수술속도가 다른 의사들보다도 2 배 더 빠르다고 우리에게 자랑하더니, 약속시간에 몇 시간 늦은 환자에게 친절하기까지.. 찍어보낸 사진 옆에 십자가를 둔 거 보니, 신앙에서 나온 환자 섬김인가보다. 강적이군. 동생에게서 또 한 수 배운다. 일 부분에서 동생이 나보다 선배이긴 하다. 동생이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내 치대선배가 동생 밑에서 구강외과 레지던시를 했을 정도니까.


미국와서 고등학교&대학시절, 또 그 후 우리가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어떤 일들을 겪었나 알기에, 그 시간 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감사하게 된다.
또한 여전히 쉽지 않은, 한순간 한순간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일상이지만 예수님 닮아갈 수 있도록 화이팅한다. 아이아빠와 아이를 위한 기도와 화이팅도 물론이고~~

:
Posted by pleasing2jc
2022. 12. 8. 15:47

예례미야애가 카테고리 없음2022. 12. 8. 15:47



이번 주 초, 위 찬양을 흥얼거리며 전체가사가 기억 안 나서 검색하다 새로이 발견한 사실. 위 가사가 예레미야 애가 3:22-23 이라는 것. 예레미야 애가를 많이 읽었는데도 위 노래가 예례미야 애가인지 잘 몰랐었다. 위 노래를 부를 때는 그저 "feel good" 찬양정도로 여기며 불렀으리라. 그래서인지 위의 가사가 예례미야 애가 구절이라는것이 살짝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거 엄청난 노래었구나..

예레미야 애가의 배경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폐허가 된 이스라엘 성이다. 묘사된 모습은 정말 처참하다.
3 장에서는 저자 자신이 겪고 있는 극도의 고통을 나열한다.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고 뼈를 꺽으시고, 흑암에 묻어버리시고, 화살로 심장을 꿰뚫고 모든 백성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시고.... 희망(소망)이 사라지는 순간.
그런 극심한 고통의 climax 에서의 대반전이 위의 노래다.
저자는 우렁차게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하나님에의 믿음과 기다림, 회개와 회복, 소망을 얘기한다. 아마도 외쳤겠지.
엄청난 반전이다. 물론 성경에 이러한 종류의 반전은 많지만 예례미야 애가의 반전은 멸망한 이스라엘 성의 처참한 폐허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것이기에 더 dramatic 하다.
저자(예레미야)의 엄청난 믿음의 눈과 의지, 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사랑, 인자, 자비, 신실(성실)하심을 바라본다.
위 찬양을 부른지 수십년이 지난 후 비로소  이해하다니..

:
Posted by pleasing2jc
2022. 11. 21. 15:41

자녀를 위한 기도 카테고리 없음2022. 11. 21. 15:41

맥아더 장군이 아들을 위해서 했던 기도를 읽었다. 

 

오 주여, 제 아이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소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알 만큼 강하고, 두려울 때 두려워하는 자신에 맞설 만큼 용감하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꿋꿋하며, 승리를 얻었을 때 겸손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생각할 때에 고집하지 않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초석이 됨을 아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기도하나니, 그를 쉽고 편안한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과 도전이 주는 시련과 자극을 받게 하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도 담대히 맞서며, 실패하는 이들에게 동정심을 가지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마음이 깨끗하고, 목표를 높이 세우며, 남을 다스리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또 웃는 법을 배우되, 우는 법을 잊지 말게 하소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되, 과거를 잊지 말게 하소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게 하신 다음에,  기도하나니, 넉넉한 유머감각을 더 주소서.
그리하여 늘 진지함을 잃지 아니하면서도 지나치게 심각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그에게 겸손함을 주시어,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비되는 저, 스스로에게 “내가 인생을 헛되이 살지는 않았구나” 라고 감히 속삭일 수 있게 하소서.

 

어린 시절 한 번 쯤 읽었던 거 같은데 그 때는 당연히 관심이 없었을테고, 요번에 읽으며 "아니 이런 멋진 기도문이라니," 했다.

나도 당장 이 기도문 실천에 들어가야겠군 하다가 "그럼 맥아더 장군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검색해 보니, 맥아더 장군의 아들은 전쟁영웅 아버지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는데, 그게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름도 바꾸고 잠적해 버렸단다. 뉴욕 여기저기에 살았다는 설도 있다는데 자세한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나보다. 

맥아더 장군 집안이 명문 군인 가문이라는데, 맥아더 장군은 아들도 군인이 되길 바랬다고 한다. 위의 기도문을 쓰고 그렇게 기도할 때도 아들을 향한 그런 꿈을 품고 있지 않았을지?

맥아더 장군 아들이 어떻게 되었나를 발견하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은, "기도 응답을 못 받았구나. 기도 응답도 못받았는데 저 기도가 왜 그리 유명하지?" 였다.

그러나 기도문을 다시 찬찬히 읽으며 보니, 맥아더 장군의 아들이 굳이 장군이나  큰 업적을 세우는 인물이 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기도문 속의 인물처럼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문 속에서도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다 하지 않는가?  맥아더 장군이 품었을지도 모르는 몇 대째 장군집안의 꿈은 안 이루어졌겠지만 말이다.

부모의 자녀를 향한 꿈과 욕심이 자녀의 것보다 더 우선되기도 하는 시대이고, 한 드라마 영향인지 어쩐지 "몇 대 째 의사 집안"이 유행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어떤 꿈을 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소명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을 위한 것이라면 설사 그 꿈이 이뤄지더라도 하나님의 역사 속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 맘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나? 

하나님께서 00 를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사랑하시니, 하나님께서  00 와 함께 하여주시고 00 를 하나님 뜻대로 인도하소서.  00 가 기쁜 맘으로 주께 순종하고 주를 따를 수 있게 하소서.

그리 해야 하나? 

 

PS: 기도문을 영어로 다시 읽어보니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다라는 건 약간 오역이다. 참된 위대함은 simple 하다 (소박하다/단순하다/간결하다) 이지,  소박한게 위대하다는 뜻은 아니다. 

Give him humility, so that he may always remember the simplicity of true greatness, the open mind of true wisdom, and the weakness of true strength. 

영어로 읽으니 "build me a son"이라는 문구가 반복된다. 그와 더불어 마지막 문장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 을 두고 볼 때 처음과 시작이 다 자신이 중심이 된, 결국 아버지 자신을 위한 기도로 여겨질 수도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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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