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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4 21:57

Culture maps 분류없음2017.07.24 21:57

각나라의 leadership cultures map 은 다음과 같은 모양이 나온단다. 


hierarchical culture 이라고 리더만의 의견에 따라서 decision making 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본의 경우처럼 위계질서가 강하더라도 공통의 의견에 따라서 decision making 이 되기도 한단다.

또 미국의 경우처럼 egalitarian 이더라도 공통의 의견보다는 리더의 의견에 따라서 decision making 이 되는 문화이기도 하고.

기사는 미국에서 일하는 한국사람의 예를 든다.






communicating, evaluating, persuading, leading, deciding, trusting, disagreeing, scheduling 등에도 각 문화에 따라 다른 culture map 을 만든 기사도 있다. 

http://www.businessinsider.com/the-culture-map-8-scales-for-work-2015-1



각국 출신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참고가 된다. 



이건 내 생각...
미국같은 경우 (내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서 볼 때..): 일부 hierarchical culture의 상하관계 속에서는 리더가 리더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의견에 무조건 '순종'한다. 그러나 미국과 같은  egalitarian culture 속에서는 모두 동등하지만,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를 뿐인데 (리더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고.) 리더의 전문성과 지식, 경험 등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 리더의 의견을 따르는 것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리더의 의견이나 제안이 이해 안 될 경우, 질문해도 되고 나의 의견을 피력해도 된다. 그래도 그것이 '권위'에의 도전이 아니라, clarify 하고 improve 하기 위한 노력일 뿐이니까. 



Posted by pleasing2jc
2017.07.14 00:40

엉뚱한 묵상(?) 분류없음2017.07.14 00:40

오늘 encounter with god 본문 창세기 25 장의 시작부분을 읽다가,

이전에는 간과했던 사실에 충격을 좀 받았다. 아브라함에게 후처와 첩들과, 그들을 통한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 

아니, 뭐란 말인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아이들이 많았다니? 이삭과 이스마엘 두 명 뿐만이 아니었구나.


그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아들인 이삭의 정통성은 아브라함에게서 오는게 아니라 Sarah 에게서 오는 것 아닌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했던 에피소드에서, 독생자 예수님에 비교되는 이삭은 아브라함에겐 독생자가 아닌데, Sarah 에게만 독생자다. 흠.....


그러고 보니 야곱도 어머니인 리브가의 favoritism 으로 인해 이삭의 축복기도를 얻어냈고,

성령님으로 잉태된 예수님에겐 마리아의 염색체만 있다. (인간남자 의 염색체는 없다.)

그러고 보니, 유태인은 모계사회구나. 그건 예수님 시대 훨씬 이후부터 그렇게 된 거 라는 거 같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 마가복음 10:29-30 에서 예수님의 말씀. 29 절에서 언급된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녀, 땅 등 중 아버지와 아내는 30 절에 포함되어있지 않다. 아버지가 "deliberately"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만이 진정한 아버지이시기 떄문이라고 한다. 가부장제 중심 공동체가 아닌, 하나님께서 아버지되신 공동체를 칭한다고. (그리고 다른 데서 찾아본 내용 중, 아내가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아내는 한 명이지 예수님을 위해서 아내를 버린다고 해서, 아내를 백 명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ㅎㅎ -- 아내라고 했지만 배우자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겠지. )


흠.. 가부장 족장 시대에 가부장 중심의 시각에서 쓰여진 구약 스토리라인에선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었지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며 스토리를 쓴다면 믿음의 진정한 조상은 Sarah 가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예수님께서 여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다빈치 코드 비스무레할 수 있는 가설 ㅎㅎ....        fiction 소재인데...

(이 모든 주제에 대해서 이미 그런 가설들을 세워서 논문도 쓴 이들도 많으리라.)


안타깝게도 정절을 지키지 못하셨던 아브라함 할아버지.

그 믿음의 조상님 덕분에 엉뚱한 생각들을 해 봤다.


8/6/17 사라도 아브라함과 같은 언약의 주체라는 기사 발견


..............................................

믿음의 조상이 Sarah 이건 Abraham 이건 뭐가 중요하랴?

예수님의 새언약, 성령으로 거듭남, 하나님의 신실하심, 등등등이 중요하겠지.




Posted by pleasing2jc
2017.07.06 23:22

forgiveness 분류없음2017.07.06 23:22

어떤 강의에서 "Forgiveness must name and shame the evil, and find an appropriate way of dealing with it, before reconciliation can happen."와 비슷한 인용하는 걸 듣고 정확한 표현이 뭘까 검색하다가 발견한 책의 단락. 


용서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어정쩡하게 덮어버리며 지나가고 잊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분노하고 정죄하는 것도 아니다.


Naming, shaming the evil, and finding an appropriate way of dealing with it.

blame 은 하나 punish 는 하지 않고,

exclusion 의 단계가 embrace 의 단계에 선행되어야 하고,

무조건 잊는 것이 아니며,

시간이 걸리는 ongoing process.


A struggle to forgive someone is a voyage of anguish and discovery.



여기 인용된 G.K Chesterton 의 예화는 그 위에 설명된 용서와 어떻게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다. 

G. K Chesterton 의 예화가 원글의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찾아봐야 하겠지만....

(앗, 거장의 예화게 도전하다니.... 내가 잘못 이해했거나 틀릴 가능성이 크지만 막 떠오른대로 써보자면...)


예수님께서 인간을 또 세상을 용서하심의 결과는,

인간의 죄로 인한 고생 후, 창세기 원점 회복이 아니라 (에덴동산? 에의 복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발전된 관계와 상태에의 회복이라고 믿는다.

New Heaven and New Earth.


그와 똑같이...


인간관계나 공동체나 나라나 사회 속에서의 용서도 그렇지 않을지?

A 와 B 의 관계로 얘기하자면,

A 와 B 사이의 관계라는 거 자체는 똑같지만,

그 이전과 같은 양상 관계로 돌아감이 아닌 

exclusion and embrace 의 과정을 겪어,

A 도 B 도 변화된, 새창조?되고 관계도 새창조된 새로운 관계에로의 회복 아닌지 모르겠다.


오랜시간 일하고 와서 집에서도 일하고, 생각하려니 머리가 아프다. 

다음에 찾아보던지 생각해 보자. 






The Parish Handbook by Bob Mayo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