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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22. 14:55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카테고리 없음2021. 7. 22. 14:55

최근 본 한 환자가 내게 말했다, "마치 잠수함을 운전하는 것 같군요."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치료하는 내가 그렇게 보였나보다. 

그러면서 가끔은 현미경을 뒤집어서 different view 도 보라고 한 말씀하신다.  그 아이디어가 넘 웃겨서 킥킥 웃다가,  그 advice 대로 꼭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안그래도 내 전화에는 최근 하늘을 찍은 사진이 많다. 화창한 낮하늘, 그리고 상쾌한 밤하늘.

눈을 부릅 뜨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일하고, 각종 스크린도 잘 보기에 눈을 휴식하는 경우가 잘 없다. 눈이 많이 혹사당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눈휴식이 필요한 이들이 무척 많으리라. 눈을 감고 가만히 묵상하듯 있어도 좋지만, 눈에 힘을 빼고 맑은하늘이나 살랑거리는 나뭇잎을 쳐다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작년 9 월 apocalytic 오렌지 빛갈 캘리포니아 하늘을 경험한 후, 맑은 하늘을 참 많이 appreciate 하게 되었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 그 문구가 떠올라서 찾아보니 1990 년 학생 영화란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비슷한 영화라고. 그랬었군. 영화는 안 봤을 테고 신문 광고에서 그 제목을 본 기억이 남아있나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나아지지 않았네... 더 심하면 심해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하늘을 본다.

sky 하늘 도 보고 heaven 하늘도 보려하고.   

 

 

:
Posted by pleasing2jc
2021. 7. 8. 15:20

7 년 카테고리 없음2021. 7. 8. 15:20

아버지가 돌아가신 7 년 되는 날이다. 지난 세월동안 우리를 지켜주시고 위로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고모님들은 20-30 대 때 아버지(나의 할아버지)를 잃었는데,  7 년 전 내게 "세월이 지나도 한없이 그리울 거다," 말씀하셨다. 

막내고모가 20 대 초반 의대를 졸업하고 의대에서 만난 고모부와 결혼해 미국에 온 후 얼마 안되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었다.  인터넷도 없고 국제전화도 쉽지 않고 비행기여행도 드물던 시절,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아버지를 일찍 잃고, 총소리가 들리는 대도시 병원에서 레지던시를 하시기도 하며,  낯설었을 곳들에서 씩씩하게 살아오신 막내고모님을 보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고모는 돌아기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맘은 30 년이 지나도 한곁같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들아보니, 고모님들의 그 때  말씀이 진짜 맞다. 슬픔의 정도는 잦아드는지 몰라도 매일매일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그리워하시는 건, 말 할 필요도 없고.

 

지난 기록을 뒤지다가 아버지께서 생전 내게 이런 문구를 보내주셨던 걸 봤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깨달음)의 세계이니라." 어디서나 주체성을 갖고 전력을 다하면 진실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문구를 보내신 것도 잊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이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기도였을까? 

아버지 , 아버지께서 저의 아버지였음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많이 그립습니다. 

:
Posted by pleasing2jc

 

한국 방송을 보면 가스라이팅 등 심리적인 것들이 많이 다뤄지는 듯 하다. 드라마 주인공들도 소시오패스 싸이코패스 등이 많이 나온다. 

위 방송 프로그램은 보지 않는데. 유튜브에 위 클립 이 떠서 봤다. 

질문은 영어시험을 못 봤을 때 풀이 죽어 앉아있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하는 아이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아이겠냐고 한다. A. 엄마가 속상해 할 까봐 (풀이 죽어있다) B. 아빠에게 혼날까봐 (풀이 죽어있다). 답은 A 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A 가 개스라이팅을 당한 아이라는 건 맞겠지만, 영어시험을 못 봐서 풀이 죽어있는 이유는 위 두가지여서는 다 건강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아와 부모자녀관계가 건강하다면, 아이가 영어시험을 못봐서 풀이 죽는 이유는 그저 자신이 시험을 못 봐서 속상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위 프로그램은 가스라이팅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기에 문제출제 상 객관식 항목을 두개밖에 줄 수 밖에 없었겠지. 

나 또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훈육을 해야 할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를 진심으로  위하는 것인가 고민해왔고, 어떤 순간 위의 같이 "엄마는 속상해,"하려다가, 이건 아이중심적으로 생각하는것이 아니다 꺠닫는 순간이 있어서 그만둔 적이 있다. 나는 내 아이가 나에게 '연민'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나이가 훨씬 많이 들 때까지는, 아이가 safe 한 곳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되었음 좋겠다 (물론 아이가 우선으로 기대야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럼에도 아이는 내가 기억도 못하는, 어린 시절 자신이 상처받았던 일들을 얘기하기도 한다. 나름 조심하고 조심한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렇다. 

그래도 그 후로도 뭐 수많은 잘못을 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아이도 저런 심리학적인 지식이 늘어서 어떻게 건강한 boundary 를  형성할 것인가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것이 manipulation 인가 진정한 사랑과 관심인가 구분하기도 하는듯 하다.  아이는 문과라서 더 그런 것을 잘 알기도 하고, 아이친구들도 그런듯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therapist 한두번 안 본 사람이 없는듯 하다. 미국교회에서 책 <Boundaries: When to Say Yes, How to Say No to Take Control of Your Life> 책으로 설교나 북클럽을 하는것도 봤다. toxic people 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기사들이나 책들도 심심챦게 마주친다. 예를 들면 이런 Forbes 기사나 Harvard business review 잡지 등등.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행동과 말을 하는 내 동기가 무엇인가 상당히 많이 쪼개고 쪼개서 성찰해야 하는 것을 많이 느낀다. 내 행동과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어떤 영향을 끼칠것인가도 고려해야 하고.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한 것인가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하고.

누구나 다 그렇듯, 나도 개스라이팅을 겪었다. 특히나 이런 심리학적 상식이 없던 '옛날' 에는 더더욱. 우리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부모님들은 그러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셨던 시대이고.

그래도 나는 시험을 못 보면 어머니께서 속상해할까봐 풀이 죽지는 않았고 "혼날까봐" 걱정했었고, 혼을 내시는 어머니께 "이건 내 일인데 왜 나한테  속상해 할 틈을 안 주시냐. 엄마가 왜 그러시냐"고 대들기도 했었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는 좀 당황하셨었는데, 지금 잘 기억 못 하실거다.  그런거보면 나는 나의 어머니에게 '연민'은 없었고 사춘기적 반항심이 가득했었다. 죄송할 따름이다. 요즘은 어린 시절 얘기가 나오면,  그 때 혼내줘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린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스라이팅적 대우를 받아 곤란한 적도 있었다. 무척 힘든 일을 막 겪은 내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힘든 일로 인해) 00 를 걱정시키지 마세요."   난 OO 를 걱정시킬 생각도 없었고 00에게  의지하는 편도 아니기에 그런 말이 좀 당황스러웠었다. 오히려 그 말을 한 사람과 그 주변사람들이 OO 를 걱정시키는 경우가 많았기에 좀 황당했었다.  또 어떤 이는 한참 더운 날씨에 자기 집 에어컨을 끄며 "이건 더운 거 아니야." 해서 "더운 거에요" 반박하긴 헀으나, 솔직히 섬찟했다. 그 당시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날 컨트롤하러 드는구나 확 느껴졌었다. 

또 다른 사람은, 잘 지내고 있는 내게 힘들지 않냐며 내 감정과 상황을 구구절절 자기 본위대로 얘기해서 좀 당황한 적도 있다. 나름 공감을 실천하려했던 그 사람의 좋은 의도는 이해하기는 한다.   

그래도 그 정도는 mild 한 케이스이고, 더 정도가 심한 일들도 있어서 무척 피폐해졌던 적이 있다. 

물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적이 많을 것이다. 원래 선을 넘는 조언같은 거 남에게 잘 안하는데 큰 맘먹고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위 영상에 나오는 그런 가스라이팅으로 받아졌을 수도 있는거 같다. 내가 그 사람을 진정으로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그 후로   boundary 와 그와 비슷한 책들, 개스라이팅에 대한 책도 읽었었고 나 스스로도 성찰하기 시작했었다.  

또한 훨씬 더 심한 일들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생각한다.  이단이나 human trafficking, 거짓된 정치체제 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 

정말 심하게 깨어진 세상이다.  인간은 끔찍한 죄인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또 다른 질문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건강한 자아와 관계가 형성된 후에, 위 tv 프로그램 질문 같은 상황에서 "왜 풀이 죽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진정으로 부모님을 위하는 맘으로 "어머니께서도 속상해 하실까봐서요 " 답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 감정중심으로만 생각해서 풀이 죽어 있는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태라고 볼 수 있는.

또 위 tv 프로그램에서 가스라이팅으로 표현된 선 넘는 '오지랖'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남을 진정으로 위하는 말을 할 수도 있는데 그 fine line 을 어떻게 분별할까?  역시 성령님의 도움으로만 가능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까? 말 한마디 뒤에 숨겨진 수없이 많은 기도와 눈물들? 

역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기도하며 스스로를 쪼개고 쪼개고 성찰하며 죄성이 관여하고 있는 건 아니지 그리스도의 사랑인지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바래야 하나보다.  

그러나 스스로를 쪼개고 쪼개고 성찰하고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완전(완벽, 온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살 수도 없고.

십자가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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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