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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1 20:30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분류없음2016.11.21 20:30


1993 년도 즈음, 대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봤던 영화.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는 일그러진 영웅들. 소설을 찾아 읽어본다.


픽션이지만, 학교, 교회, 사회. 조직, 어떤 모임에서든 엄석대와 한병태의 학급과 비슷한 면들을 찾을 수 있어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소설 결말에도 사회의 모습을 꼬집지만.


비밀독서단에서 토론하는 대로,

그 엄석대 (일그러진 영웅)를 또 다른 엄석대가 replace 하기도 하고.

우리 안에 내재한 엄석대의 모습.

변화는 아래에서부터 올라와야 한다는데 그렇게 아래로부터 올라온 변화의 물결을 자신의 권력과 위치 강화에 전혀 이용하지 않고 잘 수렴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궁금해진다  그 유혹에서 백프로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정치계 인물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저 일반적 이야기일뿐)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나,[각주:1]

Ultimate 영웅은 '아래'에 머무르셨고 그 아래에서 스러져가셨다는 것. (세상적 시각으로 볼 때)











위 영상에는 편집되어 안 나오는, 그 전 부분에 인용된 단락. 영웅되기를 격려?받고 꿈꾸던 세대?가 떠오른다. :


나는 먼저 그날 내가 겪고 본 엄석대의 짓거리를 얘기한 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아버지에게 물으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겨우 엄석대가 그날 한 일들을 모두 얘기한 내가 막 충고를 바라는 물음을 던지려는 아버지가 불쑥 감탄 섞어 말했다.     

「거, 참 대단한 아이로구나. 엄석대라고 그랬지?  벌써 그만하다면 나중에 인물이 돼도 큰 인물이 되겠다.」

  도무지 불의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 소리였다.  

후끈 단 나는합리적으로 선거되고 우리의 자유를 제한한 적이 없던 서울의 급장 제도를 얘기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그 합리와 자유에 대한 내 애착이 나약의 표지로만 이해되는 것 같았다.

  「약해 빠진  놈. 너는 왜 언제난 걔를 뺀 나머지 아이들 가운데만 있으려고 해?  어째서 너 자신은 급장이 될 수 없다고 믿어?  만약 네가 급장이 되었다고 생각해봐.  그보다 더 멋진 급장 노릇이 어디 있겠어?」







  1.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은 긍정적 표현 으로 많이 쓰이는듯 한데, 데 이 해석도 일리가 있는듯 하다 --- 난세에 영웅이 난다’[亂世英雄]는 말은 평화로왔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인재(人才)가 혼란기에는 두각을 드러낸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다수의 민중들은 좀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으로 정치를 하더라도 세상을 안정시킬 독재자를 지지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허소(許劭)는 조조에게 세상이 평화로운 시기에는 범죄자[奸賊]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조용히 초야에 묻혀 지낼거라 하지 않았다. 난세영웅이 권력을 얻으면, 그 비윤리에 맞서는 소수의 충의지사들 또한 영웅이 된다. 촉나라 영웅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결국 난세가 이래저래 영웅을 대량생산 하는 것이다. http://playin.innori.com/5811 [본문으로]
Posted by pleasing2jc
2016.10.21 21:10

정의와 신뢰와 기도 분류없음2016.10.21 21:10

The Locust Effect (by Gary Haugen)   책 앞쪽에 보면 human trafficking 등이 공공연히 이뤄지는 나라들의 정의가 얼마나 타락해 있는가 이야기한다. 그런 나라들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맘이 너무 많이 힘들어진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게 힘들어 진도가 무척 느리게 나가고 있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하는 법의 보호가 부재된 곳에서 일어나는 불의하고 잔인한 일들... 가슴이 찢어지는 일들이다. 


물론 미국이나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일어났던 S 모 명문대의 수영선수 성범죄 사건을 둘러싼 논란 등등.


하지만 문 밖을 나서기만 해도, 아니 집에 있어도 맘 놓고 살 수 없는 불의가 공공연히 이뤄지는 끔찍한 나라들이 있다. 그리고 공권력조차도 그 불의를 덮어버리는 악이 되어버리는 그런 나라들 (The Locust Effect 에 나온 나라들..)


그런 곳에 산다면 당연히 타인과 국가기관/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또 적개감, 혐오, cynicism (냉소) 등이 몸에 밴 일부 사람들도 있을테고. 


그런데, 만약 그렇게 불의한 곳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았기에 타인과 국가 등을 신뢰 못 하는 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나라에 옮겨 놓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옮겨진 이들이 곧바로 타인과 국가를 신뢰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잘 모르지만 몸에 배어있는 불신의 자세를 곧바로 버리긴 어려울 거다. 


한 사회의 가해자의 몸에 밴 악함은 큰 문제다. 

예를 들면, 힘없는 자를 착취하고 권리를 남용하면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조금의 죄책감도 못 느끼고 심지어 그것이 나라와 사회를 위하는 등의 선한 목적 때문이었다고 굳게 믿는등의...

그와 더불어 불의한 사회에서 산 피해자들의 몸에 밴 습성도 풀어나가야 하는 큰 과제이고 치유되어야 하는 상처다.


약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려도 

여전히 서로 불신하고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못 누리고 겁쟁이처럼 항상 경계하며 살지도 모른다. 적개감, 혐오, 냉소 등의 자세도 쉽게 버리기 힘들 거고. "상처"가 치유되고 기억이 "성화"되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혼란한 "세계 곳곳" - .지금 무너진 세상 속에서 무너진 관계들의 양상이 "세계 곳곳"에 사는 많은 이들의 몸에 밸까봐 염려가 된다.

(최근 "그곳"에서 온 몇몇을 접하며 든 생각이다. 그리고 이 시대와 이 땅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 스스로를 포함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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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framework를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구도로 옮겨보자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Already 의 하나님 나라) 그 나라의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1) 외부적 요인:  Already 이지만  not yet 의 하나님 나라. 아직 이 세상에 그 세력을 발휘하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있기 때문이고 --- 이 세상의 한계와 악함으로 인해 자유와 권리를 못 누림. 

(2) 내면적 요인: Already but not yet 상황에서도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권리와 자유가 있음에도, old self/life/world 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불신하고 (믿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유도 있을 듯 하다. 믿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제한하는.... 물론 new life 의 의무 또한  있겠지만 그 의무란  (예수님에의 전인격적 ) 믿음과 신뢰 성격이 크다.


결론은, 뭐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2000 년 전이나, 50 년 전 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혼란한 세상에도 불구하고,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 세상의 습성을 버리고 그를 신뢰하며  하나님 나라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며 사랑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한다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그의 아들딸 답게 살아가는 것.  


믿음과 신뢰의 문제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가?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보고 그 안에 속해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그의 사랑을 알고 신뢰하고 있는가?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습성/가치/삶의 방식의 차이를 알고  하나님 나라의 것들의 비교할 수 없는 우월함을 믿는가?  그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렇게 살고 있는가? 온전히 이뤄질 그의 나라의 소망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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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cust effect 에 나온 거 같이 터무니 없는 불의가 행해지는 곳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가 임하길 기도한다.

그 기도 또한 그를 믿고 신뢰하는 자녀의 자유와 권리이며 의무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이들 (몇 달 전 살해된 채 발견되었던 케냐 변호사 같은 이들) 을 위해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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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들은 보통, 세상/자신에게 실망하거나 discourage 된 조금 힘빠지는 하루를 보내고, 참된 좌표 안에 속한 스스로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encourage  하기 위한 외침의 기도와도 같다. 또한 무엇이 중요한가 다시 확인하는 기도. 시선을 세상과 나에게서 돌려 그와 그의 나라를 바라보기 위한 기도. 내가 겪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세계 곳곳의 이웃들과 연대하는 한 방법.

Posted by pleasing2jc
2016.10.01 08:21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2016.10.01 08:21

누군가가 내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본다면 금방 대답하기가 어렵다. 


꼭 먹어야 한다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을 수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정해져있다기보다 새롭고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가끔 crave 하는 음식 중에 갈비, 라면, 떡볶이, 각종 디저트 등을 포함한 고탄수화물/고지방 음식들이 있지만,

건강에 안 좋을 수 있기에 가능한 피하려 한다는 정도로 대답할 수 있을까?  


아... 물론 음식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며 사는 편도 아니다. 날이 갈수록 하루 세끼 꼭 먹는게 귀챦아지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힘이 빠지고 신경질/짜증이 늘기에 먹을 때가 더 많고... 

새로운 레스토랑을 try 해보는것도 맛있는 음식을 맛보려 가는것보다는 경험의 차원에서 간다.

(에니어그램으로 따지면 장형은 확실히 아니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음식은 딱 꼽기 곤란하지만, 

싫어하는 음식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속빈 강정 & 빛좋은 개살구


흠.. 그런데 그것도 그것들 자체를 음식 혹은 과일로서 싫어한다기보다 

그것이 상징하는 것들이 싫기 떄문이라고 볼 수 있지... 허영, 허세, 겉멋,  속은 부실하면서 번쩍번쩍한 외관, 허례허식..


나이가 들어가면서,

(음식에의) 식탐이 강해지기보다는 -- (신진대사도 느려지는데)

속이 꽉찬 것들을 알아보는 눈을 더 가질 수 있음 좋겠고 그렇게 영글어갈 수 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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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