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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ndemic 기간동안 순전히 풍경 떄문에 본 영화 중에는 영화 Leap year 가 있다. 한국 제목은 <프로포즈 데이> 이란다. 

배경이 된 ireland 의 아름다운 풍경이 잘 담겨진 영화다. 영화 속 배경이 된 곳들에 대한 정보는 쉽게 검색해서 이런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아름다운 배경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내용도 등장인물들도 설득력이 전혀 없어서다.

특히 영화 속 여주인공같은 인물은 내가 정말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면 루이비통 suitcase 를 들고 다니며 "내 루이비통 루이비통"하면서 요란스럽게 챙기고, 폭풍우 때문에 비행기가 못 뜨는데, 여주인공은 공항 직원들에게 "나는 남자친구에게 프로포즈 하러 가야한다. 당장 비행기를 띄워라," 며 난리를 피우는 식이다. 인터넷 영화 리뷰평에도 여자 주인공같은 인물 맘에 안든다는 평이 많았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그런데....

이런 가벼운 영화에서도 속물 여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인 남주인공을 만나서 변화하는데,

실제 삶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영화 속 여주인공같은 스타일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 초반부의 여주인공같은  크리스챤이 실제로 있다고 할때, 난 정말로 난감해지고 시험에 든다.  

게다가 어찌어찌해서 그런 사람이  공동체 리더그룹에 끼거나 '사역'을 열심히 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구원'과 구원받은 후의 가치관 등의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 사람은 구원받았나 안 받았나?"를 따지는 환경에서 지낸 적이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과거 그런 사람들을 마주쳐서 시험에 들 때는, 다방면에서 self-reflection 을  했었다. 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할까? 나의 어떤 부분과 그 사람의 저런 면이 crash 하는 걸까? 기타 등등.... 나도 그런 면이 있어서인가? 내가 너무 self-righteous 한 건 아닌가?  나는 또 다른 면에서 속물일텐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나는 형제 눈 속의 티는 보면서 내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거 아닐까 등등등..  그러다 보면 머리 속이 복잡해 지고 숨이 막힐 정도가 되기도 했다. 한 번은 금식기도를 한 적도 있다ㅡ 아주 옛날에.. 그래도 소용없었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 하는 걸 피하게 되거나 절로 멀어졌다. 시험들고 머리가 복잡해지고 머리 아프고...어차피 나랑 그런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르고 잘 안 맞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그 사람들은 소중하게 생각 안 하고, 그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나는 무관심하고 뭐 그러하니...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경우 어떤가 궁금하다.
  
대체적으로 보면 이성에게는 좀 더 관대하고 동성에게 더 judgemental 한 경향이 있긴 했다.. 이전에 한 어른이 그런말씀을 했었고 실제로 관찰해 본 바도 좀 그런 경향이 있더라. 나도 그렇고..


지금은 뭐 어차피 팬데믹이라서 일터 외의 사람들도 잘 못 만나니 상관도 없지만서두..
그래도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인물들 중 나랑 전혀 안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상상하며 위와 같은 self reflection을 계속할 수는 있을텐데ㅡ---
괜스레 슬퍼진다ㅡ 팬데믹의 이 상황이..

:
Posted by pleasing2jc
2021. 3. 10. 14:29

요즘애들의 사랑법 카테고리 없음2021. 3. 10. 14:29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토요일 열일한 후 방전되어서, 오랜만에 netflix 에서 토/일동안 binge watch 한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 한 회가 30 분 남짓이라 좋았음. 

이 드라마의  특이한 연출법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고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는데, 첫부분에서는  강원도 양양의 풍경, 그리고 중반부 부터는 코믹하고 경쾌한 장면들이 재미있고 배우들이 귀여워서 봤다. 

제목은 <도시남녀의 사랑법> 이지만 등장인물들의 개방된 연애관이 내게는 "요즘애들"의 사랑법으로 여겨졌다.  그들의 이야기에 감정이입된다기보다 "요즘애들은 이렇군. 좋을 때다, "하면서 봤다.  

그래도 옛추억은 떠올렸다. 수십년전 아이아빠와 사귀던 시절 백일되던 날 둘이서 빈 교회가서  반지 나눠끼던 기억 등... 그럴 때가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보다도 훨씬 어릴 때다.  

드라마가 코믹하게 그려져서 그렇지, 드라마 속 같은 일이 실제 있다면 당사자들이 얼마나 힘들까? 또 개방적 이성관계에 따른 영적 damage가 얼마나 클까 하는 염려를 아주 살짝 했지만....  그래도 내내 킥킥거리면서 봤다. 

 

여행을 못 간지 오래되고, 반경 36.5 마일 이상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는 1 년이다보니, 요즘은  tv, 유툽 등을 볼 때 풍경을 유심히 보게 된다.  강원도 양양에 대해서도 검색해 봤다. 언젠가  꼭 가고 싶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1. 2. 28. 13:46

옛날 옛적에 카테고리 없음2021. 2. 28. 13:46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한 소작농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뿌리깊은 혈통을 자랑했으나 무척 가난했다. 그 마을 대지주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소작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들에겐 그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조상이 있었는데, 그 조상어른은 과거급제해서 벼슬도 하고 토지도 소유하고 노비도 거느렸었다고 한다. 그 분이 남긴 또 다른 업적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세우고 제사의 체계를 갖춘것이다.  그  분 세대까지는 그 가문의 번성기 같았으나, 그 후대부터 서서히 몰락해서 토지도 잃고 사당도 무너졌고 결국 그 가문은 가난한 소작농이 되고 말았다.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새로 만들긴 했으나, 전해지는 옛 사당의 영광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허름한 초가집같았다. 

그래도 그 가족들은 그들의 가문에 큰 자부심을 있었으며 언젠가는 훌륭한 자손이 태어나 가문을 다시 일으키리라는 소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조상을  잘 모시면 그러한 은덕을 베풀어주시리라 믿고,  수많은 제사를 꼭꼭 챙겨가며 정성껏 지냈다.  제사 의복을 갖춰입고 향을 피우며 절하는 제사의식은 누가 봐도 신성해보였다. 가난하지만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제기도구들이나 의복들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제사를 집전하는 어른들은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소작농으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지만 제사 때만은 거룩한  신령이 된 듯 의기양양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비뚤어진 특권의식을 가졌던 소수의 사람들은,  천민, 여성, 장애인들 같은 약자들을 함부러 대했다.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른 적도 있으나  온 가족이 나서서 그러한 잘못을 덮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나갔다.

그들은 제사전통을 이어가고 가문의 영광을 되살릴 아들들을 낳기 위해서, 아이들을 많이 낳았다.  그러다 보니 아들을 낳을 때까지 수많은 딸들도 줄줄이 낳게 되었고, 가족수는 느는데 식량도 부족하고 집도 좁으니, 일부 딸들은 어린 나이에 먼곳으로 시집을 보내거나 심지어는 노비로 팔아야 했다.

어쩌다 보니  집안 어른의 잘못으로 서자를 낳게 되었는데... 당연히 그 시대 그 집안에서 서자는 온 집안 사람들의 천대를 받았다.

그런데 그 서자가 성인이 되더니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축지법과 장풍 등을 쓰기 시작했다.그 서자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조상을 잘못 섬긴 죄로 장애와 병을 앓는다고 여김 받는 이들의 장애와 병을 고쳐주었다.  물질적인 도움도 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탐관오리의 곳간을 털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이가 그 서자였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유교의 인의예지신 같은 덕목들도 재미난 예화를 들어서 알기쉽게 가르쳤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고 예를 잘 지키는 것이 사람다운 길이라고 가르쳤고 양반 천민 등의 혈통은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가 한 천민여인에게 말하길, "제사를 선택된 일부사람들만 사당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사람이 진심을 다해 자유롭게 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 오리라" 했다는 일화도 유명했다. 

그 서자가 어느 날 밤 신령한 모습으로 변해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혼들과 함께 다과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그런 소문들과 그런 행적들로 인해ㅡ 그 동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서자를 따랐다. 그 무리 중에는 천민들, 여인들, 장애인들, 등 약자들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그를 왕으로 모시자는 움직임이 생겼다.

관가와 벼슬아치, 대지주들은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집안 사람들은. 그서자가 무척이나 못 마땅했다. 불과 서자에 불과한 녀석이 설치고 다니는 것도 꼴불견이었고, 그가 설치고 다니는 바람에 집안사람들도 관가와 대지주의 미움을 받게 될까 두려웠다. 그러면 훌륭한 자손이 태어나더라도 벼슬을 해서 가문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질텐데....만약 반역죄로 몰리기라도 한다면 삼족이 멸함을 받게 될텐데.... 

하루는 집안 어른들이 사당에서 제사를 거룩하게 열심히 지내고 있는데  그 서자가 나타나서 외치기 시작헸다

"가문의 영광이 이미 임했다. 이 사당을 허물어라.. 내가 이 사당을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 

그 서자는, 벼슬을 지냈던 자랑스런 조상의 위패를 가르키며 "내가 저보다 위대하다. 내게는 수천년 전 고조선을 세운 단군시조의 영이 함께 한다. 눈을 뜨고 똑똑히 보아라. 너희들이 상상도 못한 가문의 영광이 이미 임하였노라" 하며 외쳤다.

흠.. 워낙 허름한 사당이기에 사흘만에 다시 짓는게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아 보였으나, 사당과 조상을 모욕하는 행위에 그 집안 사람들은 무척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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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히브리서를 읽는데  이미 익숙한 말씀이 당연하면서도 먼나라 얘기처럼 느껴졌다. 예수님-히브리서 시대에 예수님의 impact 가 어느정도였을까 피부로 안 느껴져서 어찌할까 하다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봤다.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은 아론과 같은 사람의 계보를 따른 제사장이 아니라 멜키세덱 계보의 제사장이라고 하는데, 제사와 제사장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한국역사 속 context 로 가져와 보니 홍길동전에 예수님 얘기를 짬뽕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한국(조선?)의 context 로 (느슨하게) 옮겨보니, 그 시대 예수님의 impact 가 어느 정도였을까 유추된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나... 제한된 세계관(선민의식, 관습 등) 을 가진 이들의 한계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이해가 된다.

예수님께서 그 시대에 하신 일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었겠구나.

예수님의 impact 가 어느 정도였을까 짐작하는데는 좀 도움이 된 짬뽕 홍길동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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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