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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7. 00:43

네친엄 and 엄친아, 엄친딸 카테고리 없음2023. 12. 17. 00:43

        내게는 네친엄이 있다. 어머니가 항상 그렇게 부르시는 어머니의 동창 친구분이다. 
                "네 친구 엄마"
              어머니 친구분 한 명의 딸이 내 친구라고는 하는데, 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같은 중학교인지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하고 "내 친구" 는 나를 좀 기억한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 친구가 기억한다는 내 모습이 엄청 재수없다. 시험에 하나 틀렸다고 울었단다. 내가 생각해도 참 rice 맛이다. 중 2 병이었나보다.  그 친구가 기억 못할 수가 없겠다. 어머니와 "네 친구 엄마" 분은 동창모임도 함께 하시고, 친구분들 sleepover party 도 함께 하시며 자주 교제를 하시고 계시다. "네 친구 엄마"의 딸분의 최근 사진을 며칠 전 전달받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이 눈에 익긴 하다. 아주 친한 친구는 아니었고 살짝 알고 지내던 같은 학교 친구였을 거 같다. 지금은 어딘가의 교수라고 하는데, 언제 직접 만나서 추억을 더듬어 보면 좋을 듯 하다.  또한 살아오면서 무참히 깨져서 개과천선한 걸 알려주며 이전 기억은 잊어달라고 하고 싶다. 
                 그 외에 내게는 또 다른 엄친아 한 명과 엄친딸 한 명이 있다. 어머니의 동갑친구들에게 있는 자녀 두 명이다. 나와 동갑이다.  엄친아는 나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며 어울려 놀았으니  ㅂㅇ 친구라고 할 수도 있으나 유치원 이후로는 직접 만난 적이 한 번 정도다. 부모님들 모임에 가서 봤는데 유치원 시절과는 달리 엄청 서먹서먹했다. 그 엄친아도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엄친딸과는 고등학교 입학 직전 함께 학원에 다닌 적이 있지만 고등학교 입학 후 만난 적은 없다.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ㅋ 톡이 있던 시절도 아니니.  
                  우리 셋 다 근처에 살긴 헀는데 다른 학교들을 다녔다. 물론 어머니들끼리는 매일/매주 전화를 하시고 만나기도 하셨고, 자녀 소식들을 나누셨다. 우리 고등학교 시절에는 과외/학원이 합법화된 초기시절이라 사교육 정보도 나누셨다. 엄친아의 수학과외선생님을 소개받기도 했다. 당연히 그 엄친아, 엄친딸과 암묵적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었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항상 그들을 의식하며 공부했었어야 했다. 요즘 교육 다큐멘터리에 보니 한국 학생들은 스스로의 기준을 위해서 공부한다기보다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공부하는 마인드가 강하다던데, 그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경쟁 상대를 염두에 두고 공부하는 마인드. 같은 학교 친구들도 경쟁상대였지만, 그에 더해지는 엄친아, 엄친딸 스트레스. 우리 세 사람 성적은 엎치락 뒤치락이었던 듯 싶다. 중학교 졸업할 때 보던 연합고사는 내가 가장 잘 봐서, 엄친아가 자기 엄마한테 혼났다고 우리 어머니께 실토했다고, "oo (내 이름) 이는 잘 봤는데 너는 뭐니?" 라는 식으로 혼났단다. 
                  나는 미국에 와서 그 치밀한 경쟁구도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그 엄친아와 엄친딸은 한국에서 다 의사다. 엄친아는 재수를 해서 S 대 의대를 가서 지금은 한 의대 교수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얼마 전 미국연수를 왔다가 돌아갔다고 들었다.  엄친딸은 다른 의대를 가서 classmate 와 결혼해서 부부 다 개업의로 강남에서 아주 풍요롭게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엄친딸의 어머니가 주로 나누는 얘기가 딸이 쇼핑을 얼마어치 하고 아파트 종부세가 어떠하고 뭐 그런 말씀이라고.  물론 그 이야기를 듣는 친구분들은 그런 류의 자랑을 달가워하지 않으신다고. 그 엄친딸의 가정이 어려웠기에 지금의 '성공'을 이룬 '개룡녀'인 딸을 자랑하고 싶은 그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되긴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엄친딸 어머니의 자랑이 너무 '자본주의적인' 면에 집중되어 있어서 이것이 한국사회의 단면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요즘 한국 의대 열풍의 이유를 찾아보니, 의사의 직업정신 떄문이라기 보다는 의사의 수입과 지위 떄문인거 같던데 그게 사실처럼 보인다 .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건 그 엄친딸의 어머니를 통해서 들려오는 이야기이니, 그 엄친딸의 실제 삶의 모습은 다를 수도 있겠지. 
        엄친아와 엄친딸의 소식들을 듣다 보면, 만약 내가 미국에 오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의 소식을 통해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한국에서의 삶을 간접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어린 학창시절에도 이미 느꼈던 치밀한 경쟁구도와 획일화된 삶의 평가기준에서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려고 허덕이며 살고 있었을까? 아니면 한국에서도 그 구도를 벗어나 contra mundum 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지금은 어떠한가?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내 친구가 되어버린 "네친엄"의 딸도, 엄친아와 엄친딸도 항상 어머니들의 대화를 통해서만 소식을 전달받는데, 훗날 언젠가는 우리도 모두 직접 만나 우리들의 회포를 나눌 수 있음 좋겠다. 직접 만난적은 별로 없지만 어느 새 우리는 수십년을 함께 한 사이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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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3. 12. 10. 07:09

미리 해본 2024 작심삼일 카테고리 없음2023. 12. 10. 07:09

2024 년에는 어떤 새해 결심/목표를 세워볼까 고심하다가, concrete 하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있음 좋을 듯 해서 성경필사를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성경읽기보다는, 신앙서적 독서나 인터넷의 설교/강의 듣기를 더 많이 하는 경향이 많아져서이기도 하고, 매일 조금 읽는 말씀도 대충대충 읽게 되어서였다. 또 바쁜 삶 속에서 성경필사를 하면서 성경을 깊이 한단어한단어 음미하는 serenity 를 경험해 볼 수 있을까해서였다.  아일랜드의 the Book of Kells 를 필사한 수도사들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서사에 푹 빠지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2024 년이 시작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당장 시작해 보자 해서 notability 도 다운로드받고, 성경필사본 template 도 찾아서 업로드하고, 아이패드 스타일러스 펜도 하나 구입했다. 야심차게 예례미야서 QT 본문을 예례미야 37 장부터 필사하는데, 레터용지 3 페이지 정도다. 그리고 한시간 좀 넘게 걸린 거 같다. 또 예례미야서의 37 장 부근은 등장인물도 많고, 각종 지명이 나오기에 마치 고전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복음서나 서신서, 시편 필사 등은 그나마 좀 나을 듯 한데, 고전소설 같은 문체의 예례미야서를 필사하는 것에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안 그래도 내 글씨체는 '필기체'인데, 날이 갈수록 글씨가 더 엉망이 되어갔다. 묵상의 은혜는 커녕 어린 시절 수학 문제집 매일 할당량을 억지로 푸는 듯한 기분이 충만해졌다.  이걸 매일 한 시간 넘게씩 해야 하는가? 결국 약 사흘만에 예례미야 필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아이패드에 약간의 필기를 하면서 묵상하기로 했는데, 그게 훨씬 더 낫다.
그 대신 매주 한번씩 복음서나 시편 등은 필사해 보면 어떨까 싶다. 성경묵상 외에도 일상 속 다른 결심들도  있기에 복음서 하나 정도 필사끝내는 걸 2024 년 목표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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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3. 11. 30. 11:56

새로운 부부의 세계 카테고리 없음2023. 11. 30. 11:56

우리 부부를 칭하는 제목이 아니다. 드라마 얘기도 아니다. 
부부의 한자를 찾아보니  夫婦 인데, 주위의 夫夫 와  婦婦 에 부쩍  익숙해지고 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남자에게 "oh, your husband is 어쩌구 저쩌구" 라고 하거나, 여자에게 "Your wife is.." 라고 하는게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그래도 혹시라도 실수를 할까 조심스럽기는 하다.
동성연애자 (남성) 을 처음 직접 본 건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되어서였다.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30 여년 전 일인데도 그렇다. 학교 캠퍼스에서 한 백인남성을 봤는데, 핑크색 리본을 단 운동화, 딱 달라붙는 청반바지 (아주 짧은) 그리고 흰티셔츠를 입고 살랑살랑 걸어가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말로만 듣던... 그 후로도 그 분을 여기저기 큰 강의실에서 보곤 했다. 그 분외에는 동성연애자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니 그 분처럼 표시가 잘 나는 이가 없었기에 잘 몰랐다.
막상 치대에 가니 교수분중에 몇 분 계시고, 치대나 의대 classmates 중에 있다는 걸 루머로 들었다. 그 분들과 아주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기에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최근 소식을 보니 확실하다.
요즘 같이 일하는 분들 중에 그러한 분들이 계시다. 가까이 일하기에 대화도 나누고 가족들 소식도 나누고. 떄로는 이성 부부보다도 더 행복하게 사는듯 보인다. 그들의 가족들도 그들을 잘 받아들인 상태이고. 夫夫 인 경우 대리모를 통해서 아이들을 낳아서 기르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부모님이 크리스챤인 경우도 있고. 어떻게 coming out 을 했는가 가족은 어떠했나 물었더니, 가족들이 너무 잘 받아들여주었단다.  
개인적으로.... 이건 뭐 이 상황을 기독교적으로 잘 해석하고 말고의 과정을 거칠 틈도 없이 그들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어버렸다. 
그들에게 어떤 잣대를 들이내민다는게 내 권한 훨씬 밖의 일인거 같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존중할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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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