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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에 해당되는 글 4

  1. 2019.07.17 useful~
  2. 2019.07.13 속성 욥기
  3. 2019.07.02 약속의 앞자락, 약속의 끝자락
  4. 2019.07.01 hi angel
2019. 7. 17. 19:53

useful~ 카테고리 없음2019. 7. 17. 19:53



the Bible Project 의 위와 같은 유튜브 클립들 잼있다 (뒤늦게 발견). 도움도 많이 되고. useful 자료들이 정말 많구나. 


요즘은 쉬고 있지만 교회 소그룹 모임에 나갈 떄 보니까,

교재에 관한 비디오 시리즈를 함께 보고 discussion 하는 형태를 많이 취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방법도 이해가 된다.

예습도 제대로 안 해가는 상태에서 엉뚱한 discussion 을 하고 엉뚱한 결론을  낼 가능성도 있는데

검증된 자료들을 보면서 foundation 을 확실히 하고 그 위에서 discussion 을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듯 하다.


위의 Bible Project 에 관한 리뷰들 (나중에 읽어보자 - 지금은 일단 올리고). 

 

https://au.thegospelcoalition.org/article/review-bible-project-brilliant-flawed/

https://www.christianitytoday.com/ct/2019/april/bible-project-tim-mackie-jon-collins-scripture.html


어쨌거나 각종 책들의 개요 등을 대충 짚어보고 지나가는데는 도움이 되는 channel 일듯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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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13. 10:18

속성 욥기 카테고리 없음2019. 7. 13. 10:18

7/1 부터 오늘까지 Encounter with God 로 욥기 QT 를 시작했다.

워낙 긴 책 중 몇 챕터만 뽑아놓은 QT 였고 휙 읽고 말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이전에 욥기를 읽을 때는 항상 내 상황이 안 좋았기에 욥에게 감정이입해서 읽었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1998 년 여름 즈음인가 욥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QT 했었다. 무척 어려운 책이었다. 그 당시 내릴 수 있던 결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자였다. 그걸 실천하는 것도 어렵다. 그 QT 이후 지난 20 년을 돌아보니 나의 좌충우돌 속에서도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본다.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기도한다. 

5 년 전  슬픔/그리움/황망함/상실감/분주함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후, 한국집으로 돌아가 현실을 마주하며 정원을 거닐다 갓 태어나서 눈도 못 뜨는 야생 아기새를 봤다. 욥기 마지막 부분의 하나님이 떠올려졌다. 

 

이번에는 좀 더 객관적으로 읽었다고 해야 하나? 정말 어려운 책이라는 걸 다시 발견한다.

속성으로 읽어서는 안되는 책. 


가볍게 읽었지만 그래도 새롭게 다가오는 몇가지를 기록한다 


(1) 41 장에 붙은 Encounter with God 제목처럼 The Supreme Otherness

욥기의 마지막 부분은 가장 인간다운 (인간스런) 인간모습의 욥과 가장 '신'다운 모습의 하나님의 Encounter 인 듯 하다. 


(2) 흔히들 욥기를 예수님 십자가 사건의 shadow라고 한다. 그렇다면 십자가 위의 예수님 안에서  가장 인간같은 모습의 인간과 가장 '신'다운 모습의 하나님 사이의 벽이 허물어져서 '하나'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 분이 예수님이시다. 


(3) 욥기 41 장 마지막 부분: 하나님께서 욥을 회복시켜 주시며 다시 일곱 아들들과 세 딸을 주셨다는데, 일곱 아들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데, 세 딸의 이름은 써놓았다..    그리고 딸들에게도 아들과 같이 inheritance 을 주었다고 명시한다. 왜 굳이 그걸 써놓았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시대에는 드문 일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 딸들이 너무 아름다운 여인들이었기에, 저자도 흑심을 품었기에 그 딸들의 이름을 써 놓았는지도 모르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  그저 그 전에는 간과했던 부분이다


(4) 욥기를 쓴 저자가 누군가 불분명하대는데, Psalm 88 을 쓴 이가 저자라는 설도 있다고. 그게 사실이건 말건 시편 88 편도 함께 읽어봐야겠다.


(5) 이건 번외: 어쩌다 보니 욥기 QT 하는 기간에 아모스서를 함께 읽었다. 욥과 같은 의인의 고난도 있긴 하겠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하나님을 잘못 예배하고 있던) 죄를 저지르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연단으로서의 고난도 있다는 것. . 욥에게 엉뚱한 말을 하던 욥의 세 친구같은 이들도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따끔한 말을 해 주던 선지자들도 있다. 시대와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분별력이 필요하다


(6) 욥기의 happily every after 같은 결말은 참 유혹적이다... 기복신앙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그보다는 하나님께 촛점을 맞춰야 한다. 약 4000 년 전 족장시대가 아니라, 21 세기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회복은 뭘까? 



이번 주말에는 욥기와 아모스를 좀 더 깊이 들여다 봐야겠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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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기장을 뒤적거리다 저 밑의 저런 엔트리를 봤다. 2006 년 5 월. 이 때는 치대 1 학년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다. 이런 QT 를 했는지 학교 소그룹 모임에서 뭘 나눴는지도 잊고 있었다. 

이 때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QT 하며 히브리서를 떠올리지 않았나보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이삭과 이스마엘 두 명에 한정되지 않았다는걸, 불과 2 년 전에야 QT 하면서 발견했다.  

현재의 QT 도 글들도 그렇게 오점이 많고 불완전하지만, 부족한대로 그냥 QT 하고 그냥 써내려간다. 배움의 과정이고 긴 여정이니까... 내가 어디 가서 가르치거나 주장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설교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인 차원의 끄적거림이니.


하나님 나라의 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지금은 약속의 앞자락이 아니라 약속의 끝자락이라고 볼 수 있겠지. 하나님의 약속 자체셨던 예수님께서 오셔서 희미하던 것들의 뚜렷해졌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already 이뤄진 시대. 

하지만 여전히 Not Yet 의 realm 안에서 그 약속을 모든 영역에서 이뤄주시길 기도하고 있고, (혹은  세세한 영역의 약속들이 뭔가 여전히 파악하고 있고...)  언젠가는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는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이다 - 그리 해 주시길 기도한다.  히브리서 11:39-40 처럼  믿음의 조상, 신약시대 사람들... 또 우리 세대 모두, 전 세대를 꿰뚫는 역사를 토해서,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들을  완성해나가시는 하나님의 약속. 

39 These were all commended for their faith, yet none of them received what had been promised, 40 since God had planned something better for us so that only together with us would they be made perfect. (Hebrews 11:39-40)




2006 년 5 월 ========================================

아브라함에 대해서 QT 중이다. 지구 상위의 먼지와도 많고, 하늘의 별과도 많은 자손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 이삭도 아주 나이 들어서야 얻고...그가 이 생에서 본 자손은 이삭 한 명 이었던 같다. (이스마엘도 있지만 예외로 치고)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져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여러모로 정말 많다...
 
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란것... 어쩌면 이 생에서 그 약속이 이뤄지는 걸 내가 볼 수 있는 만큼은,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내 후대에도 계속해서 하나님께선 그 약속을 이뤄나가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어찌보면 좀 아쉬운 일이다. 이 생에서 그 약속들이 이뤄지는 걸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나는 거 사실이다.
 
흠.. 다시 한 번 촛점을 하나님의 purpose 에 맞추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뤄나가시는 큰 그림 속에서
난 그저 그림을 이루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것. 학교 소그룹 모임에서 얘기되어졌듯, 내가 주연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께서 주인공이시고  난 그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내지 소품이라는 것...
나에게 주어진 role 을 잘 소화해 내는 것이  내겐 가장 큰 기쁨이 된다는것. 
 
미국 첨 올 때 했던 기도들, Christian 이 첨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들, 그 후의 삶 속에서 하나님꼐서 약속해 주신 것들... 몇 가지 예를 들면, 보스톤의 부흥, 언젠가 내가 다니고 있던 교회들의 회복 등등과
내 개인적인 차원의 소망들
 
지금 그저 그 약속들의 가느다란 앞자락들을 보고 있는거 같다. 아브라함이 이삭 한 명이 태어나길 기다렸듯이,
혹은 이삭 한 명을 바라봤듯이...
 
하지만 그 가느다란 앞자락의 끝에는  하나님께서 완성하시는 엄청난 약속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생에서 그것들을 다 못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느다란 앞자락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기뼈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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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1. 00:09

hi angel 카테고리 없음2019. 7. 1. 00:09

저녁 아이와 함께 gym에 갔다

내가 먼저 운동을 끝내고 밖의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아이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까불며 놀던 5-6 세 두형제의 인형이 내 무릎을 때렸다.  같이 있던 엄마가 내게 "sorry" 를 연발하며 아이들을 혼낸다.  동양인이 아닌 유색인종이다. ㅌ 옹이 경계하는 종류의..  그 엄마의 영어도 서툴다.

나도 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인형이 퍽 날아와 방해가 되었길래 조금 언잖았지만 그냥 괜찮다고 하고 책에 다시 집중했다. 옆에서 다시 떠들고 노는 애들이 시끄럽다는 생각 등등이 몰려온다.  

그런데 문득...
이 아이들이 다른 인종이었어도 내가 이렇게 차갑게 반응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어떤 동양인들은 아이 자존감(?) 살린다고 (기 안죽인다고) 이런 경우에 사과도 안 하고 너무나도 당당한 경우도 봤다. 그럴 경우 나는 더 차갑게 대하거나 인형에 맞아서 아프다고 오버를 했겠지만. 
엄마는 내게 몇 번이나 미안하고 아이들을 타이르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미안해졌다
책에서 눈을 떼고, 인형을 들고 있는 아이에게 인형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영어를 전혀 못 한다
그 엄마가 알아들었는지 자기나라말로 뭐라고 뭐라고 통역해도 큰 눈으로 멀뚱멀뚱 답이 없다 그 엄마가 대신 "angel" 이라고 답한다.
아이와 인형을 쳐다보며 웃으며 " hi angel" 했더니
..

그 후로 약 10 분동안, 그 아이는 내 주위를 몇 바퀴 뱅뱅 돌며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날 쳐다보며 손을 흔든다. 기분이 무척 좋은가보다. 천진난만 그 자체. 나도 아이엄마도 미소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집에 와서도...

그 아이와 그 가족이 계속 떠오른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이 땅에 거주하는 이들일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지금도 어딘가에서 traumatic experience 을 겪고 있을 많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잠도 못자고 지켜본  ㅌ 옹의 깜짝쇼 탓에 다음 선거 때 그를 찍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기도한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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