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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에 해당되는 글 3

  1. 2022.01.26 긍휼 compassion
  2. 2022.01.17 2022-2
  3. 2022.01.08 2022
2022. 1. 26. 17:36

긍휼 compassion 카테고리 없음2022. 1. 26. 17:36

작년 말 '긍휼'에 대해서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관련 서적을 찾아보다가 헨리 나우웬 등이 쓴 책 Compassion 이 한국에서 <긍휼>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있는 걸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긍휼의 국어사전 정의: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
Compassion 의 정의: a strong feeling of sympathy and sadness for the suffering or bad luck of others and a wish to help them
이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긍휼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는 긍휼의 주체가 그 대상보다 더 나은 처지에 있고 그 대상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맘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했다. 예를 들면 부유층에 속하는 이가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볼 때 가지는 마음,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유기견을 볼 때 드는 느낌 그런 종류의 sentiment
영어 compassion 이라는 단어를 대할 때도, 긍휼보다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처지 차이가 좀 덜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제가 대상보다 좀 더 나은 형편이라는 걸 assume 했던 듯 싶다.
그런데 책 에서는

  • compassion 에 대비되는 인간본성을 competition (경쟁) 으로 본다
  • 책에서의 competition 의 개념은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려는 경쟁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 차이를 두려는 모든 움직임을 포함한다. 나를 구별하려는 모든 움직임을 포함한다는 거다.
  • 그런 all-pervasive competition 은, 타인과 solidarity 를 맺는데 장애가 되고 compassion 을 가지는데도 방해가 된다.
  •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비우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과 함께 하셨다. 그것이 "the mystery of God's compassion" 이다. (빌립보서 2:6-9)

성경사전에서는 긍휼을 mercy 라고 번역하는데, 그 어원이 '라함 (racham: 자궁) 이고 '같은 태에서 나온 이들에 대한 감정'이라는 기본적 의미라고.
젖을 빠는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 (사 49:15) ,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가지는 반응 (렘 31:20), 형제가 형제애 대해 기대하는 마음의 상태 (암 1:11) 을 나타내는데 이 단어가 쓰였다.
즉 다른 이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 할 때는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처지에 있다는 구별된 마음에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내가 solidarity 를 이룬 형제자매가족, 즉 하나라는 foundation 에서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라는 말씀이라는 거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아들딸 삼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형제자매라 하시는것도,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위 봉사와 자선, 사역을 하면서 상대편보다 자신이 더 낫고 뛰어나기에 봉사/자선/사역을 한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이미 compassion 이 아니고 competition 의 동기에서 시작되기에 하나님/예수님의 compassion 을 닮지 못한 거라 할 수 있을까?
남을 향해 불쌍하다는 말을 하는 경우, 그 말을 하는 자신의 깊은 내면에 어떤 동기가 있는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알고보면 자신이 불쌍히 여기는 상대편으로 인해, 똑같이 (어떤 경우는 더) 불쌍한 자신이 생존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치열히 싸워야 하는 competition 의 인간본능과 전심으로 배워야 하는 예수님의 compassion.
올해, 위의 책을 한번더 읽으면서 생각해 봐야 할 주제다.


사족) 위 글을 쓰다가 그냥 떠오른 드라마. 불쌍한 인간들에 대한 드라마로 <나의 아저씨> 가 있다. 그 드라마에서는 심지어 드라마 속 악당마저 불쌍한 이였다는 결론이었다. 드라마 속 악당 도준영에게 그의 불륜녀/주인공의 아내 강윤희가 하는 말에서처럼:
너 불쌍해. 대학 때부터 불쌍했어. 가진 거 없는 거 티날까봐 여유있는척 다 가진척 연기하는 거 우리 다 알았어. 너가 잘 풀리기 시작하면서 좀 기뻤어"... "근데 여전히 짠하더라. 여전히 긴장하고. 그래도 나랑 있을 땐 네가 긴장하지 않는 거 같아서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다보지. 난 내가 똑똑한 여잔줄 알았어

vs.
남녀주인공 동훈과 지안의 대화
동훈: 너 나 왜 좋아하는 지 알아? 내가 불쌍해서 그래. 내가 불쌍하니까 너처럼 불쌍한 나 끌어안고 우는거야.
지안: 아저씬 나한테 왜 잘해줬는데요? 똑같은 거 아닌가? 우린 둘 다 자기가 불쌍해요.
서로의 불쌍함을 인정한 인간들의 연대와 극복기(?), 불쌍함을 감추려 했던 악당과 그런 그의 거짓 메시야가 되려고 헀던 이의 말로가 절묘하게 그려진 드라마이기에 그 드라마가 그토록 인기가 많았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ㅡ 인간의 근본적 불쌍함을 인정하는 것을 벗어나, 나만 유난히 불쌍하다고 여기는 self-pity 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게 절대 아니라고 믿는다. 위의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을 구별하려는 competition 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

:
Posted by pleasing2jc
2022. 1. 17. 16:11

2022-2 카테고리 없음2022. 1. 17. 16:11

이 전 글과 같은 고민에서 집에 있던 <Doing God's business: meaning and motivation for the marketplace> by R Paul Stevens 의 책을 읽었다. 2006 년에 출판된 책인데, 우리 집 책장 한 켠에서 외면당하고 있던 책이다. 

굳이 business 를 하지 않더라도 세상 속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 대부분의 고민체계를 잡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위 책이 꽤 오래전 책이라서, 같은 저자의 가장 최근 책을 찾다가 발견한  2021 년 출판된 <Money matters: Faith, Life, and Wealth> 도 읽었는데, 돈의 가치가 절대 neutral 하지 않고 돈은 spiritual 하고 radioactive 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새로웠다.  

위와 같은 주제들은 절대로 사사로이 여겨서는 안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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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2. 1. 8. 15:24

2022 카테고리 없음2022. 1. 8. 15:24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 배면에 어느정도 consistent 한 묵상과 기도의 흐름이 있는 편이었는데
2021 년의 4/4 분기에는 그런 것이 잘 안 '느껴졌다'. 바쁘기도 했고 지극히 secular 해 보이는 사안들에 대해서 공부하느라.
같은 집에 사는 어떤 사람은 Paul and the Gift 라는 지극히 성스러운 주제를 공부하는데,
나는 business/tax entity, 세금 등등에 대해서 시험공부하듯 알아봐야했다. note-taking 을 해가면서.
어린시절부터 business&adminitration, 경제 등등은 전혀 간여하고 싶지 않은 분야였기에 그 흔한 클라스 하나 들은 적 없다.
공대동창들은 그 쪽 클라스 하나쯤은 자연스럽게 듣고, 부전공/전공도 했는데, 나는 그쪽 클라스를 듣는건 전혀 고려도 안했다.
corporate world 나 sales, business world 같은 건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의 work style 을 유지하는 이유도, 치과의 business aspect 는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환자 치료에만 집중하고 싶어서다.
치대에서도 보험이나 finance/accounting 은 안 가르쳐줘서 일을.시작하면서 치과보험에 데해서 배우고 세금 retirement plan 등을 figure out 하는데 큰 에너지를 들여야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싫어하는 걸 뒤늦게 catch up 하려니 무척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단 시작하면 속속들이 알아야 직성이 풀리기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에 집중하느니 "확 다 내려놓고 확 떠나버리면 안될까?" 는 생각을 아주 막연히 하게되었다.
이왕이면 해변 리조트가 좋은 동남아로 확 떠나서 봉사도 하고 좋아하는 책들도 맘껏 읽으면 어떨까 하는 어긋난 동기의 daydreaming 의식의 흐름 속에 해외 의료 선교를 간 분들의 책을 두 권 구입하기도 했다. (아직 읽지는 못했다)
그렇게 확 삐뚤어지려는 날 정신차리게 해 준건 Henri Nouwen 등의 책 <Compassion> .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voluntary displacement 를 해야 하는데, 그게 꼭 확 떠나야 하는 건 아니라고.
Rather, we must begin to identify in our own lives where displacement is already occurring. We may be dreaming of great acts of displacement while failing to notice in the displacements of our own lives the first indications of God' presence..
그리고 <compassion>책 마지막 부분, 남아메리카 오지에서 봉사하시던 한 의사분의 십대 아들이 그 지역 공권력의 injustice 로 인해서 죽음을 당한 이야기는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의사분이 그 책의 삽화를 그렸다고)
여러모로 회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로 2022 년을 맞으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새해의 '영적인' resolution 도 제대로 없고...
그저 내게 주어진 secular 해 보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to do list 를 하나님의 세계관 안에서 어떻게 잘 integrate 하고 잘 결정하고 풀어낼 것인가로 부터 올 한 해를 시작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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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