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000 00 님께서는 신앙생활을, 한국 모범샘처럼 하시는 거 같아요. (사실 난 000 00 님을 개인적으로 잘 모르고, 내가 보는 한정된 겉모습만으로 그렇다는 얘기. )
아이아빠: 그럼 나는 어떤데?
나: 광야의 외치는 소리?
아이아빠: 그럼 당신은?
나: 사막의 은둔자? 사막의 수도자? .. 아니 사막 뭐라고 하더라? (요즘 이런 term 들이나 사람 이름들을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노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삶이 복잡해지고 내가 기억해야 할 지식의 양과 사람이름들이 너무 많아져서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아이아빠가, 나의 rough assessment 에 동의하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큰 의미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으니.
그 후 나는, "사막의 뭐라고 하던가"의 정확한 term 을 검색해보다가, 사막의 교부들과 교모들에 대해서 remind 되었다 (여러 검색 결과 중, 요약 하나를 밑에 퍼옴)
사막교부들(사막 은자들)은 AD 3~5세기 동안 사막에서 생활한 수도자들을 가리킨다. 크리스천들이 사막으로 가장 많이 들어간 시대는 AD 4세기이다. 로마제국이 AD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자 사치와 부패로 물든 로마의 타락 문화가 교회에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이에 신앙의 정순성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대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의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에 힘쓰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홀로 서는 단독자의 삶, 곧 은둔자의 삶의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해서 AD 3~5세기에 걸쳐 ‘수도생활’이라 알려진 신앙생활 방식이 역사상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사들은 독신의 삶, 금식, 고독, 침묵, 철야, 기도, 무소유 같은 금욕적 생활을 추구했다. 이들이 바로 ‘사막교부’로 알려지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로 말미암아 유럽에서 수도원 운동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이집트 사막 수도자들은 성직자도 학자도 아니었다. 물론 그들 가운데 로마의 귀족 아르세니우스와 학자 에바그리우스처럼 고전을 배우고 품행이 세련되었던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평신도였으며 교육을 받지 못한 농부였고, 아폴로 같은 목동이었으며 마카리우스 같은 떠돌이 상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가르침은 그 어떤 기독교 석학도 따라잡을 수 없는 촌철살인 (寸鐵殺人)의 깨우침을 준다. 이 책은 그들 ‘사막교부들의 수행록’이다. 이 책의 라틴어 원본은 「Verba Seniorum」이다. https://mall.duranno.com/book/copyrighter_info.asp?mbr_num=10416938
사막교부들/교모들에 대해서 다룬 현대의 저자들 중에는 헨리 나우웬과 토마스 머튼 등이 있는듯. 또 로완 윌리엄스도 있다.
이렇게 찾아보니, 내가 지금까지 파악을 잘 못하고 있었던 듯 한데, 그들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듯도 하다. 헨리 나우웬의 책들을 아주 좋아했고 토마스 머튼을 읽으며 빠져든 시기도 있었다. 로완 윌리엄스 책들도 몇 권 읽었는데 딱 사막영성에 관한 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책 몇 권을 읽었다고 해서 그 종류의 영성에 대한 지식이 깊다고는 전혀 볼 수 없다.
엉뚱한 연관성이지만, 23&me 의 유전자 검사 결과에 보면 내게 0.1% 의 coptic Egyptian 의 피가 섞여있다.
만약에 하나, 이게 에러가 아니라면 아주아주 먼 조상 중에 coptic egyptian 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한국까지 이르렀을까 잘 모르겠다. 신라시대에 이란 및 중동지방과 교류가 있었다는데 그 떄일까?
어쨌거나 내가 매력을 느껴온 영성의 종류를 굳이 따지자면 사막교부들 (은자들) 의 그것인 듯 한데, 그것이:
유전자의 영향일까? 아니면 그런 영성을 나도 모르게 추구해서 epi-genome 이 되어버린걸까?
영성의 유전자도 있는가?
하는 엉뚱한 질문들을 던져본다.
이게 에러여서 0.1% 가 사라지면 괜히 섭섭할 거 같다. 에러일 가능성이 크지만~
나머지 99.9% 의 유전자에 대한 자부심도 무척 크다. 나머지 99.9% 에 합당한 기독교 영성은 어떠한 모습일까 하는 질문도 생긴다. 요즘 시대 풍조와 AD3-5 세기의 시대적 배경을 비교해 보면, 사막 영성이 어느정도 relevant 한 듯도 하다. 그걸 추구하시는 분들도 뵌 듯 하다. 물론 현대 저자들의 여러 책에서 보듯 세상 속 일상 속에서의 사막 영성 추구를 해야겠지.
작년 어머니와 나눈 대화 동생이 교과서 챕터를 썼다는 (first author) 소식을 전해온 후다. 사진은 그 챕터에 나오는 그림. 동생이 하는 수술 중의 하나다. 어머니: 00 (동생 이름) 이는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수술을 잘 하는 지 모르겠다. 나: 원래 00 이가 어릴 때부터 호러영화도 좋아하고 손재주도 좋았잖아요? 어머니: 집안에 외과의사는 없는데... (외할아버지, 이모부, 고모들/고모부들, 사촌들 등 의사/치과의사는 있는데 외과의사는 내 동생 하나다.) 나: 나도 (치아) 수술을 가끔 하지만 수술이 재미있더라구요. 어머니: 너네 어릴 때는, 네가 외과의사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00 이가 외과의사가 되었네. 네가 어린 시절, 내가 손가락을 다쳐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 나이도 어리던 네가 얼마나 침착하게 잘 대처하던지... (어머니께서 시키시는대로 붕대를 감고 응급조처를 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 아... 아마도 그럴 수 있었던 건, 그 때 이미 의사의 꿈을 품고 있었었기 때문일거에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이 생각하시기로는 동생은 할아버지를 따라서 법조계에 가면 좋지 않을까 하셨고, 나는 외할아버지와 고모들의 영향으로 의사를 하지 않을까 추측하셨었다. 나도 장래희망에는 항상 의사라고 썼었다. 교회에서 배운대로 사랑을 실천하기에는 의사가 좋을 듯 했다. 슈바이처나 나이팅게일, 리빙스턴같은 이들의 위인전의 영향도 받았다.
중고등학교 때는 외과의사가 되어서 수술실에만 살아야겠다 생각했었다. 그 때 그런 생각을 가졌던 이유는 중고등학생의 눈으로 보는 어른의 세계, 특히 한국어른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힘들어보였다 -- 복잡다난한 인간관계가 특히 그러해 보였다. 그래서 일과 공부에만 집중하는 삶만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듯 싶다. 세상을 피해서 수술실에서 수술만 하면서 살자 그랬던 듯. (드라마 낭만 닥터 김 ㅅ 부의 라이프 스타일이 내가 바라던 딱 그거다.)
동생은 미국에 와서 자연스럽게 이과를 전공했고 치대에 가고, 아주 오랜 구강외과 트레이닝을 받은 후 외과의사가 되었다. 동생이 이 직업에 더 어울리는게 동생은 더 사람들에게 공감을 잘 해주고 손재주도 좋다.
대학까지도 내 꿈은 항상 한결같았었다. 미국에 와서도 당연히 의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대학 3 학년 시절 Lordship 의 예수님을 믿게 된 후, "(어린시절부터 붙잡고 살아온) 의사가 되는 꿈을 하나님 앞에 바친다"라는 결심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바치듯 했었다. 교회에서 무슨 설교를 듣고 나서였다. 겁도 없이 그런 결심을 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돌려주셨듯 내게도 의사의 꿈을 돌려주시지 않으실까하는 약삭빠른 계산도 섞이지 않았나 내심 고민하기도 했다. 그 후 교회생활을 지나치게 열심히 했고, depression 에도 걸렸었고, 여러모로 어려움이 닥쳐와서 성적이 확 떨어졌었다. 그래서 실제로 의대를 포기해야 했었다. - 함부로 그런 결심&헌신하는게 절대 아니다. 의대포기 뿐 아니라 진로 자체가 어떻게 될지 전혀 불확실하게 되었었다. 한 때는 미국 시골에 가서 숨어 살아야 하나 심각히 고민했다.
그 후 이끄시는대로 좌충우돌하면서 살았다. Engineering 에 종사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일도 잘 안 풀렸고 적성에도 안 맞았다. 또 내 아이디어를 훔쳐서 프로젝트를 하는 post-doc 이나 내가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다른 석사과정 학생에게 주려던 지도교수님 등을 겪었다. 그 분야 선배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거였다. 만약 그런 일들을 겪지 않고 일이 잘 풀렸다면 engineering 을 했을텐데... 결국 여러 사건들을 계기로 healthcare 를 다시 고려하게 되었고 치대에 apply 했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내가 만약 싱글이었다면 의대에 apply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의대 수련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치대를 다니면서도 밤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한국에서부터 오셔서 도와주신 어머니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 부모님 뿐만 아니라 아이와 아이아빠도 수고가 많았었다.
사람을 보살피는 일이라면 왜 간호사는 아니고 치과의사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졌는데, nursing 을 하기에는 내 이공계 백그라운드가 지나치게 강해서라는 답을 스스로에게 했었다. 또 nurse 의 lifestyle (night-shift 등등의) factor 도 있었다.
치대를 가기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하나님꼐 기도하는 긴 기간이 있었다. 어떤 후배가 내 삶의 얘기를 듣더니, "정말 물 흐르는대로 사셨군요," 하던데, 그게 맞는 말이다. 지금도 그러하고..
어린 시절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은, 외과의사같은 본격적 수술은 아니지만 microscope 밑에서 환자치료를 하고, 수술도 가끔 하고, emergency 환자들도 치료한다. 지금은 안 그러지만 이전에는 응급환자가 있으면 전화를 받고 급하게 가야 하는 적도 있었다. 꼭 무슨 슬기로운 -- 생활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직업이 아니라, 치아의 생명이 오가는 직업이라 넘 다행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막중감... 그걸 감당해 내었을 거 같지 않다. 암전문수술을 하는 동생은 암환자를 10 분만 보고 나와도 맘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그에 반해 나는 환자를 보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다. 왜냐하면 치료를 하면 대부분의 치통은 괜찮아지고 대부분의 치아는 살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가끔 (다른 병을 가진) 중환자들이 치아 치료를 받으러 오면 ... 치아치료는 하지만, 그 다른 병이 너무 안타깝고... 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기억하며 기도하는 이들이 몇 된다...
점심도 못 먹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차트를 다 쓰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점심으로 싸 갔던 프로틴바나 고구마를 우걱우걱 먹으면서, 우리의 일상이 학생시절과 달라진게 뭐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만족한다.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인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아이아빠가 가져온 회사음식을 식탁 위에 펼쳐놓고 저녁으로 먹으면서, 아이아빠에게 우리는 여전히 학생처럼 살고 있다고 그랬다. 식탁도 학생시절부터 20 년 넘게 쓴 식탁이다. 아아이빠 왈, 최근 세일해서 10 불하는 바지 세 걔를 샀는데, 우리가 학생일 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는 거다. 그래.. 학생시절처럼 잔고가 얼마 안 남은 은행 통장 & 크레딧 카드 빚 땜에 걱정하고 기도하며 '돈'에 쪼달리는 삶은 이제 안 사니까 그게 크게 다른 점이다. 매일 회사음식과 고구마/프로틴바, 슈퍼에서 사 온 음식 등으로 간단히 먹으며 살지만, 주말에 한 번정도는 외식도 하고 일년에 한 두 번씩은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고 여행도 가니까.... 아이아빠도 최근 비용이 좀 많이 드는 일이 있었는데 (마땅히 그래야 했던), 그렇게 해도 그 전에 비해서는 큰 영향을 받지 않으니 학생일 때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아이아빠 회사에서는 밥도 공짜로 준다! 학생시절에는 밀카드 밥값을 내야 했는데~ 치과의사/의사들의 임금이 비교적 높고 안정적인 것도 수련이 많이 필요한 전문직이라서 그렇겠지만, 그러한 것이 환자들의 well-being 에 더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물질적 reward 가 직업에의 만족도에 도움이 안된다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요즈음 (한국에서도 그러하지만) 미국 의대/치대 들어가는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healthcare 도 자본주의 사상에 지배되고 있는데, 내가 왜 healthcare 의 일을 하고 있는가? 마치 시대의 trend 를 쫓아가듯 진로를 바꿔가면서 택한 길인데, (사실은 멀리 돌아서 온 길이지만) 어떻게 다르게 살아야 하는가? 진정한 healthcare provider 로서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하고 기도해야 하는걸 느낀다.
특히나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니 더더욱 생각할 것들이 많다. 그 일은 누가 옳고 그른지 잘 모르겠다. 다른 방법으로 그 일을 풀어갈 수도 있을텐데....
어쨌든간에, 환자들을 대하는 맘과 태도, 사람들을 대하는 맘, life style, 돈을 벌고 쓰는 방법 등등등 그 모든 게 다 달라야 한다. 어렵다... 이 시대에 healthcare provider 로서 제대로 살려면 더 맘을 단단히 먹고 struggle 하고 기도해야 하는듯하다.
11 and to make it your ambition to lead a quiet life: You should mind your own business and work with your hands,just as we told you,12 so that your daily life may win the respect of outsidersand so that you will not be dependent on anybody.
데살로니가전서 4:11-12새번역(RNKSV)
그리고 우리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대로,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바깥 사람을 대하여 품위 있게 살아가야 하고, 또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흔들흔들흔들... 흔들수록 쭉정이는 밖으로 밖으로 밖으로 흔들수록 알맹이는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만 남아요. 우리들은 모두 다 알곡이 됩시다. .... 흔들 흔들 흔들... 알곡 어린이
알곡과 가라지(쭉정이)에 관해서 지난 몇 년간 묵상하고 기도했어야 했었다. 기록을 찾아보니, 2019 년에도 같은 제목으로 글을 썼었다.
뉴스에 뜬 기사들을 예로 들긴 했었지만, 사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과연 내가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가? (Should I do something about it?) 아니면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있어야 하는가?" 심각한 고민을 하던 시절에 쓴 글이다. 2019 년의 그 글을 쓰기 몇 년 전부터 계속된 on-going 일들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가 뭔가 행동을 취하면 그 consequence 가 클 거라고 여겨저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었다 나에 미치는 consequence 가 아니라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에 미치는 consequence라고 볼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지혜'를 허락하시지 않으셨고, 나는 그저 기다리며, (나도 모르게) 위의 알곡어린이 찬양을 떠올리며 기도만 했었다.
지금 2024 년, 나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일을 해결하고 계시는듯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사건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겠지만, 내 시각은 그들이 그것을 보는 것과 좀 다르다.
그러나, 누가 그 사건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르게 보고 있는가도,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조차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걸 꺠닫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온전한 renewal 을 위해서 기도한다.
누가 옳다고 판단할 수 전혀 없지만, 이 상황 속에서 분명한 건,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일하시고 계시고,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만 또한 무서운 하나님이시라는 거다. 하나님께서는 거짓과 교만을 싫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희석 (watered down) 되는 걸 원하지 않으신다. 무서운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엎드려 고개 조아리고 그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고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의 은혜로 겸허히 이 세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알곡 어린이의 길일지.. 그리고 그것이 지난 수천년 믿음의 조상들이 이 세상을 살아온 길인지도 모르겠다.
Business networking 을 포함한 business 어쩌구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
networking 이라던가 business management 라던가 business 리더쉽이라던가 하는 건, 상대를 향한 순수한 맘이 아니라 개인적 이익을 위한 사심이 동기가 아닌가 싶어서 일부러라도 그쪽 분야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다. 대학원 지도교수님은 Networking 의 고수셨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실험실을 운영하는 것도 비지니스적 재능이 필요하구나 느꼈었다.
원래 성격이 introverted 인데다, 미국에서의 문화와 언어로 인해서도 그러해왔고, working mom/wife 로서 살아오면서 아주 적극적으로 networking 을 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 일하는 거보다는 팀워크를 확실히 더 좋아하기는 한다. 한국 중고딩 학창 시절에는 혼자 책상에 앉아 책만 파고드는게 최고인줄 알다가, 대학시절부터 함께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좋다는 걸 꺠달았고, 지금도 여러 치과병원들에서 다른 전공분야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걸 무척 즐기는 편이다.
요즘, 어찌하다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 Networking 을 할 필요가 생겼다.
위에 나열한 이유로 사람에 대한 순수한 관심 등이 아닌 어떤 목적이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는 것에 대해서 살짝의 껄끄러움이 느껴져서, 처음에는 그게 무척 어색했다. 뒤늦게 이 나이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 하는 회의가 살짝 들기도 했다.
그런데 새로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꺠달은 것.
지금까지 다양한 치과들에서 오랜 시간 일하면서 나도 모르게 인맥을 꽤 많이 쌓았다는 거다.
오랜시간 함께 일하면서 친구가 되었고 좋은 팀워크를 구축하게 되었고... 이제는 서로의 스타일에 무척 익숙한 팀들이 많다.
또한 이 바닥이 워낙 좁기도 하다. 다들 연결되어 있다. 한곳에서 만난 사람과 다른데서 만난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이곳이 워낙 국제적 곳이다. Bay Area 에서 세계 각국 출신 사람들을 만나는게 정말 재미있다.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Networking 이란 friendship & community buidling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쪽으로 좀 관심을 가지고 관련문헌들을 읽었다면 더 빨리 그걸 배웠을텐데...)
내 개인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serve 하는 이들을 더 잘 serve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과도 그렇게 friendship 을 쌓아가고 좋은 community 를 이루고 좋은 팀워크를 구축하게 되면 좋겠다.
2023 년 12/31에 11 시에 자고 2024 년 1 월 1 일 새벽에 일어나 쓰는 글이다. 12/30 일하고 New Year's Eve 에도 새벽부터 일어나 인터넷 예배 (몇 군데 교회) 드리고 코스코와 마켓을 다녀오고 집안일 등등을 했더니 피곤했다. 또 <팔복> 이란 책도 다 읽었다. 2023 년을 잘 마무리하고 평소와 같은 생활패턴으로 2024 년을 시작하고 싶었다.
동부 시간으론 2024 년이 시작된 시점, 병원에서 patient safety supporter 로 밤을 새며 새해를 맞이한 아이와도 문자를 주고 받았다. 아이는 healthcare 에 뜻이 있어라기보다는, 진로를 고민하는 가운데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간호사 친구의 추천으로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간호사 친구의 추천이 있기 전에는 healthcare 와는 전혀 상관없는 직장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그 지역 가장 큰 소아병원에서 입원 환자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보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큰 병원에서 가장 작아보이는 롤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아픈 환자들을 가까이서 오랜 시간 지켜보고 보살피는 일인만큼, 환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Jehovah Rapha 의 은혜가 아이를 통해 흘러 넘치길 기도한다. 아이가 앞으로 어떤 진로를 택하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healthcare 일을 하게 될지 어떨지 모르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instrument 로서 쓰임받는 소중한 경험을 하길 기도한다.
하나님의 이름 중에 Jehovah Rapha 가 있다는 건 작년에야 배웠다. Physical healing 을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도 포함하지만 많은 것들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인듯 하다. 한 찬양 가사의 "이 땅 고치소서(Heal Our Land) "처럼 무너진 하나님의 질서를 다시 restore 하는 뜻을 포함하는듯.
작년 초 <Jehovah Rapha> 라는 책이 있어서 구입했다. 책 초반을 보니 불치병에 걸린 이들이 기적같은 치유를 경험한 글들 모임이다. 몇 장 읽다가 읽는 걸 그만 두었다. 그런 기적같은 치유에 대한 기대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친가와 외가에는 말기암을 포함한 각종 병마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분들이 꽤 계시다. 그 중 두분은 초중고등학생 아이들을 남기고 40 대에 돌아가셨다. 물리학 천재로 불리던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뇌부상을 당해서 휴유증으로 평생 고생하시다 말년에는 병상에 누워계시다 돌아가신 교수 이모부도 계시다. 당뇨와 전립선암 등 합병증 등으로 80 대 후반 몇 년을 식물인간처럼 계시다 돌아가신, 본인이 의사셨던 큰이모부. 아픈 가족들로 인한 우울증으로 시작된 치매로 십년을 사신 큰이모는 2023 년에 약 93 세의 연세로 돌아가셨다. 아픈 분들이 생기실 때마다 어른들은 모두 전심으로 기도하셨고 치유를 바라셨다. 온 가족이 매달려서 기도했다. 그러나 기적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아, 몇 년 전에 유방암 수술 및 치료를 받았던 이종사촌언니 & 이종사촌오빠 부인은 건강을 회복했다. 그들의 30-40 대의 나이에 겪은 일이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를 잃고 쉽지않은 십대를 겪은 외사촌동생과 종종 연락을 하는데, 지금은 치과의사로 자신의 가정을 꾸미고 여러모로 잘 지내고 있어서 감사했다. 그들을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기도한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아픈 분들을 보시면서, 또 특히나 아버지의 부모님께서 말기암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시는 걸 보시면서 장기 투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계셨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평소 건강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다. 한번은 양성종양이 생겨서 수술을 받으셨는데, 심하게 걱정을 하셨다. 의사들도 전혀 걱정말라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걱정을 많이 하셔서 수술 전까지 체중 10 킬로정도가 빠지고 영정사진까지 찍으셨었다. 다른 가족들은 아버지께서 왜 그러신지 이해를 못했었다. 나도 그런 아버지를 전혀 이해 못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거의 십년이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우리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암이 발견된 초기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암처럼 보이지 않아서 안심하셨었다는 글이 써있었다. 그 당시는 80 년대 초반이었으니 지금처럼 의료기구 등이 발전하지 않았기에 그러했던듯 싶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안심하셨다고 일기까지 쓰셨는데, 그 암은 이미 아주 많이 진전된 상태였다. 그 할아버지의 일기를 최근에 읽고, 우리 아버지가 왜 그리 두려워하셨는지 비로서 이해하게 되었었다. 엑스레이나 다른 영상으로 보이는 소견을 신뢰하지 못하신거다. 아버지께 얼마나 죄송하던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십년이 다 되어서 또 가슴이 찢어지는거 같았다. 아버지의 트라우마를 상상도 못했었다. 양성종양 수술은 잘 끝났고, 아버지께서는 몇 년간 비교적 건강히 지내시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 양성종양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정말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기적이니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 틈은 커녕 임종도 함께 못했다. 병으로 인한 장기투병을 원하지 않던 아버지의 소원대로 된 것이 아니냐면서 어머니께서는 스스로를 위로하신다. 결국 양성종양 수술 직전 찍으신 사진을 아버지 장례식 영정사진으로 썼었다. 5-6 년 이전의 사진이었는데...
성경에서 죽은 이들을 살리고 병을 고치는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 읽을 때도, 난 무심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부활과 치유의 기적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도 나중에는 결국 다 죽지 않았나?" 기적을 경험한 그 사람들이, 세월이 흘러 죽을 때는 어떠했을까 상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한 어마어마한 기적을 경험했으니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한 삶에의 소망을 더 강하게 가지며 죽음을 맞이했을까?
기적에 대한 나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에 기록된 Jehovah Rapha 의 치유의 기적과 은혜를 구한다. 부활과 생명이신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모두가 건강하기를 기도한다. 또한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것들을 restore 하시는 은혜가, 이 세상에 또 개개인에게 임하는 2024 년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