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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116

  1. 2017.02.09 출산지도?
  2. 2017.02.07 ....
  3. 2017.02.03 Guilt and Grace
  4. 2017.01.26 일하며 사랑하며
  5. 2017.01.25 narrative
  6. 2017.01.24 From Darkness to Light
  7. 2017.01.17 공동체?
  8. 2017.01.16 믿음
  9. 2016.11.21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0. 2016.10.21 정의와 신뢰와 기도
2017.02.09 17:52

출산지도? 분류없음2017.02.09 17:52

출산지도를 다시 그려보았다는 오늘 신문기사

정부의 출산장려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한 환경이 잘 안 되어 있다는 것이 기사의 결론이다.


작년 말, 가임여성 인구수 지도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분노했지만 나 또한 그러했었다.


옛날은 족보/계보나 농경사회 노동력  위한 출산의 의무를 여성들에게 명령하고 강요하는 전근대적 사회였다면,

(또 여전히 그러한 면이 남아있기도 하고), 

지금의 출산장려는 국가 생산력/경쟁력을 위한 것인 듯 하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앞뒤 안 가리는 출산장려/요구만 한다면, 

여성만을 애 낳는 기계나 가축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을  가축취급하고 objectify 하는 사고방식이다.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대부분 위와 같이 생각할 것이다.

인간 존엄성과 권리가 무시된 상태에서 출산의 의무를 요구당한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여성들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을 받아보지 않은 이들 또한 인종차별에 대해서 분노하는것이 상식인거처럼)


"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는 희한한 시대"에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 포 를 넘어선 7 포, 8 포세대라는 젊은이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 출산하라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서,

사랑하기에 또 사랑하기 위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이상적일텐데...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도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인간답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텐데. 

Posted by pleasing2jc
2017.02.07 22:47

.... 분류없음2017.02.07 22:47

오늘 기도하면서, 문득 How was your day, 예수님? 하고 여쭸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참 많은 이들을 돌보느라 일이 많고 가슴이 아프구나" 하시는 장면이 떠올랐다. 

(상상일뿐이지만, 공생애 기간동안 보여주신 예수님 모습도 그러했으니... )

오바마가 대통령일 때, 임기 기간동안 주름과 흰머리가 부쩍 늘어나는 걸 보면서, 미국 대통령이라는 job 이 어떠한 것인가 실감했었다.

하나님/예수님/성령님께서는 더 하시리라 - battlefield, 굶주리고 핍박받는 이들, injustice 하에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시느라.  

그들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까지도 들어주시는 게 한없이 감사할 뿐이다.


오늘, 이곳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 갔었다. 

올해의 resolution 중 하나가, 교회의 소그룹 모임에 가기 시작하는 거였는데...

2 년 전 가려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못 갔었었고,

오늘 처음 가 봤다.


전에 이곳 교회 분에게서 일대일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깨어진 이들이 vulnerable 한 상태로 서로를 있는 그대로 accept 하며 예수님을 바라보는 걸 본다.

 

https://vimeo.com/202681577

지금 다니는 교회의 지난 주일 설교 - No body's perfect 설교처럼,

의로운 바리새인이 아닌 세리와 같은 사람들.

I need God, I need Jesus. I need You desperately 라고 기도하는 것이 존재로 느껴지는 사람들.


종교적 열정이나 열심이 있는 모임도 아니고,

어떤 깊은 성경연구를 한 것도 아니고,

아주 단순한 나눔을 했을 뿐인데도 가슴이 저며올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고 왔다.

서로서로 위해서 더더욱 기도한다.

Posted by pleasing2jc
2017.02.03 22:37

Guilt and Grace 분류없음2017.02.03 22:37

Guilt and Grace - 폴 투르니에의 책 제목이다. 책은 집에 있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아무튼 밑에 쓰는 건 그 책과는 상관없이, 주제에 관한 my own random thoughts..

1.   최근 누군가로부터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set on a hill cannot be hidden.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others, so that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and give glory to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Matt 5: 14,16" 를 인용한 감사 이메일과 전화를  받았다. 지극히 작은 평범한 일을 했을 뿐인데......     최근 의기소침해져 있었다는게 영적으로 전달되었는지,  encouragement 의 차원에서 해 준건 아닌지 싶다.

2.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성경말씀이 스스로에게 적용된다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그다지 없다.

3.   항상 하나님의 빛을 간구하고 그런 빛과 소금이 되길 소망하며 기도했지,   이미 세상의 빛이 되었다고 여겨 본 적은 별로 없다.

4.   왜 그럴까 생각해 본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에 비하면 죄인일 뿐이고 한없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사랑해 주시고 의롭게 하시는 그 은혜는 분명 알고 있는데,

6.   (예수님 발끝은 커녕) 사도바울이나, 본훼퍼나, 짐 엘리엇이나, 마더 테레사나, 또 일부 평범하지만 "대단한" 사람들의 발끝에도 이르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기 때문인거 같다. -- 믿음, 헌신이나 사역 등의 면에서... 특히 헌신이나 사역의 면에서. 

7.   그래, 잣대가 뭔가. 헌신이나 사역,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역에의 헌신이라고 볼 수 있을까?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구조화/체계화되어있는 사역을 안 하고 있기에? 

8.  흠... 그런면에서 부족하기에,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빛과 소금이 되는 기준에 못 이르는 것처럼  움츠려져 있는거 같다. 

9.  한 종류의 기준에 못 이른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에 가깝다고나 할지.

10.  그런 죄책감은 하나님께서 오는 걸까? 

11. 어떤 구조화/체계화된 사역 하나를 한다면, 빛과 소금이 된 듯 떳떳해 질 수 있을까?

12.  어떤 기준/목표에 이르지 못해서 오는 죄책감에 의해서 drive 되는 헌신 vs.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서 하는 헌신의 차이는 뭘까?

13.  죄책감의 열매를 낳는 헌신 vs. 사랑과 은혜의 열매를 맺는 헌신 이라고 한다면 너무 섣부른 결론일까? 

14. 그리고 일이나  라이프 스타일에의 헌신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인격에의 헌신은 어떤 모습일까? 예수님의 사랑에 항복하며 하는 예수님에의 헌신이, 일이나 라이프 스타일에의 헌신으로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것이고.. 또 그런 순서를 밟아야 죄책감의 열매보다는, 사랑과 은혜의 열매를 낳게 되는 것 아닐지...

15. 목표에 못 이른다는 죄책감에 의해서 이끌리는 삶이 아니라, 은혜에 의해 이끌리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느리게 걸어가는 삶이라 하더라도... 그의 목자국 난 손 잡고 사랑과 은혜의 발걸음 따라서, 차곡차곡 꽉 찬 걸음으로 걸어가고 싶다. 

16. 그러고 보니 마태복음 5:14, 16 의 말씀도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전, 예수님을 따르던 여전히 버벅거리던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인 듯... "(성령의) 불" 받은 사도행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성경은 잘 모르지만, 단순하게 보니 그렇네..)


Posted by pleasing2jc
2017.01.26 21:53

일하며 사랑하며 분류없음2017.01.26 21:53

직업의 특성 상, 12-1  월은 가장 바쁜 시기다.

좀 과장하자면 대학교 때 학기말기사 기간이 떠오를 정도로 바쁘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그 기간에  어머니께서 오셔서 많이 도와주셔서 한결 수월했다. 감사하다...


화장실을 갈 틈도 없이,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일을 하면서...

왜 이렇게 일하고 있지?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random thoughts.


1. 중,고등학교 때 나는 독신주의자였고 외과의사가 되고 싶었다. 개인생활없이 환자들을 치료하며 수술실에서 수술만 하며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에 빠져 살고 싶었다.


2. 대학생 시절, 세계에서 가장 tough 한 학교로 꼽히는 곳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사생활이 거의 없이 일에 빠져 사는 이들을 많이 봤다. 과학과 공학의 발전을 위해서 밤낮없이 헌신한 이들. 어둑어둑한 캠퍼스에서  실험실이나 도서관을 향해 터벅터벅 걸으며, life 없이 일에 빠져 사는 것이 어린 시절 생각했던 거처럼 의미있고 낭만적인 걸까 회의가 들었었다.


3. 대학원 공부까지 하고 직종을 바꾸기로 한 이유는 정말 여러가지가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왜 내게 그런 결정을 했냐고 물었다. 질문을 하는 사람에 따라서 답이 달라진다. 이제는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적어졌고 그 당시 이유가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먼 훗날 간략하고 솔직하게 정리해 보고 싶긴 하다. 먼 훗날.... 


대학교 시절, 선교사가 되겠다고 어머니와 argue 한 적도 있고, 남편에게 함께 선교를 가면 어떡겠냐고 막연한 아이디어를 나눴더니, 남편이 자신의 소명은 선교에 있지 않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기도 했다. 또 선교라는 것이 낭만적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하지만 항상 이 일상에 온전히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일상에의 passion 이 없다는 것... 깊은 내면은 허무주의에 가깝다는 것. (전도서 -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4.  왜 이렇게 일하고 있지?  지금도 계속 질문을 던진다. 며칠 내내 웬종일 수술만 하는 외과의사는 아니지만, 어떤 날엔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없다. (외과의사인 동생은 긴 수술을 하긴 하지만 매일 수술만 하는 건 아니란다. )


5. 생각해 보면 2015 년 11 월인가? 까지는 좀 더 여유있는 스케줄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lay-off 를 당한 기간 동안, 일을 늘렸었다. 그 당시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었다. 아이는 11 학년 고등학생인데, 남편 직장이 어디 되는가에 따라 다른 주로 이사를 가야 하나? 미국에 계속 살 수는 있을까? 아이 대학은 보낼 수 있을까? 등등... 남편이 내게 와서 (아마도 자신도 힘이 들어서 그랬겠지만) 아이 학비를 나보고 책임지라고 했다. 


6. 남편이 lay off 되어있던 기간, 불안하고 힘들긴 했지만,  불확실성 마주하고 약 3% 의 excitement 가 있었다. 그 excitement 의 정체는 잘 모르겠다. 글쎄... 대학시절 내 개인적 위기, 아님 남편 대학원 졸업 직후 job 을 구할 떄까지의 어려움 등을 겪어서 단련되어서일지, 아님 믿을 구석이 있다는 믿음 떄문인지? 그 excitement  의 정체는 아직도 모르겠다.

 

7. 그 당시 영화 <Martian> 을 봤다. 최악의 위기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problem solving 을 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 주인공처럼 한 번, 나도 panic 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가 보자고 결심했었다.  이미 일하는 곳 몇 군데에는, (경험이 쌓였으니) compensation 을 좀 더 올려달라고 부탁했고, rigorous search 와 negotiation 후에 새로운 job 을 찾아서 더 add 했다. 그래서 금요일 밤 늦게까지 일하기도 하고, 토요일에도 일하고, 크리스마스 이브와 new year's eve 에 저녁 8 시까지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된 건 영화 덕분도 있지만 은혜라고 믿는다. 광야에서 만나를 공급해주시는 은혜. 


8. 그래서 그 시기부터 무척 바빠지기 시작했다... 


9. 아이가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아니 그 훨씬 전부터 대학학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항상 염려가 되었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아예 도달 못할 황당한 목표는 아닌듯도 싶다. 


10. 나와 내동생 모두 미국 사립대를 갔다. 25 년 전이긴 하지만, 나와 내동생은 대학 학비나 학업에 필요한 비용 등은 전혀 걱정 안 해도 되는 환경에서 자랐다. 우리 부모님께선 우리에게 명품은 커녕, 학창 시절 나이키 운동화같은것도 안 사주셨지만 (사 달라고 한 적도 없지만) 교육에는 전혀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 우리는 아이가 summer program 을 갈 때도 비용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는데, 나와 내동생은 동부 사립대 summer school class 들을 부담없이 다녔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혜택을 입고 자랐으니 미안해서라도 아이에게도 그렇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데, 그렇게 해 줄 수 있을지, 또 그렇게 해 줘야 하는지 생각이 많다. 


11.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안 그러셨는데, 왜 우리 세대는 이럴까 가끔 곰곰히 생각해 볼 때도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 또한 절약하시며 규모있게 사시긴 하셨지만 집장만, 자녀 학자금 대출 같은 거 안하셔도 되었었다. 어머니는 일을 안 하셨어도 가족 생활이 충분히 되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모두가 일을 꼭 해야 한다. 요즘 어머니께 가끔 농담한다. 부모님은 부르조아 세대고 우리는 프롤레타리아라고(진짜 노동계급이 들으면 분노할 얘기지만). 미국에서 오래 살아온 일부 노동계급은 이전에 부동산 투자와 은퇴계획 등을 잘 해서 삶의 여유가 있기도 하다. 또 한국도 그렇다. 사회 전반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더 많겠지만 일부 시골 농업 종사자들 (이전에) 땅값이 올라서 서울의  중산층보다도 녀들 support 를 더 잘 해서 자녀들은 서울에서 좋은 직장 잡아서 잘 살기도 한단다.  한 번은 경기도 시골의 한 카페에 놀러가서, 그 근처의 무너져가는 기와집을 보면서 저런데서 사는 이들은 참 안 됐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니께서, "저 사람들은 땅값이 많이 올라서 너희보다도 훨씬 더 부자다," 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Bay Area 우리의 삶은 중산층을 넘지 않는다. 어떤 친구가  자신이 서민이라고 했는데 우리도 서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의 차이가 뭘까?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여기 쓸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것도 먼 훗날에나 정리할 수 있을지...


12. 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지? 분명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면은 있다. 내가 지금 가진 직업에 대해서 많은 이들은 "돈 (물질적 보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런 연상작용을 내 내면 속에서는 꺠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것을 첫째 목표로 삼지 않으려 애써 노력한다. 그러나 감사하긴 하다. 아니, 때로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육체&정신&감정 노동이라는 생각도 든다. 문화personality 등의 차이에 의한 관계 속에 오는 감정측면을 대하는게 참 어려운 순간도 있다.  더더구나 극심한 육체의 통증을 이미 겪고 있는 이들과 interact 한다는 건 인격수양과 공감능력&냉철한 이성적 판단의 균형 등을 요구한다. 요즘도 참 많이 배운다.  대체적으로 치료 성공률이 95% 로 높은 편이지만 (연구결과, 그리고 Retreatment (재치료) 성공률은 60-85% ), 치료를 해도 잘 안 될 경우 맘이 많이 힘들기도 하다. 지금은 1-2 시간이면 끝나는 procedure 를, 학생 때는  8 시간이 걸려서 했으니, 그만큼 수련이 요구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자리를 빌러 내 직업을 defend 해 본다)


12. 학생/수련의 떄와 비교해서 월등히 늘어난 spending 은 (헌금/보험/학회 membership fee 등 을 제외하곤) 책구입비다. 


13.  왜 일하고 있지? 아침에 일하러 가면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오고, 때로는 응급환자도 오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decision making 을 신속히 해서 행동으로 옮겨서 치료를 시작해야 하고. 일단 시작하면 최선을 다 해서 치료를 끝내야 하고... 그렇게 하루가 진행된다. 일의 byproduct 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아이를 support 할 수 있다면 많이 감사한 일이다. 언젠가 내 오피스도 열긴 해야 하는데... 내 오피스에 관한 뭔가 뚜렷한 소명의식이 생기면 시동이 걸릴 듯 하다. 아직은 관심이 안간다.  


14. 그냥 그저 지금 하는 일을 참 좋아하긴 한다.. 감사한다. 직종을 바꾸길 참 잘했다고 지금까진 생각된다. 여러모로 그렇다. 앞으로 사람 일이 어찌 될 지 모르기에 또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한 번 직종을 바꿨기 떄문에 이제는 더 이상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임하기에  감사하며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5. 어쨌거나 그런 이유같은거 지금은 크게 생각 안 하고  그냥 하루하루 매순간 매순간 최선을 다 하고 싶다.. 내가 치료하는 이들에게도 그래야 하고.


16. 어느 순간에나 그를 바라보자. 



17. 문득....

일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원래의 나는 삶에 큰 애착이 있진 않다 (지금도 그렇다).  예수님 만나기 전, 애써 삶의 목표를 높이 정했던 것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허무주의에 빠져서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 만난 이후의 삶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도바울의 빌립보서 1:21-26 을 떠올린다.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게 낫지만 그가 사는 이유는 빌립보 서신을 받는 이들을 위해서라고.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살고 누고 또 저항하고? 투쟁하고? (ㅋ) 섬기는 삶...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삶의 이유가 되는 그런 삶.... 그런 삶이 되면, 삶을 계속해 나가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속 쭉 많이 있어야겠구나. 일터에서 만나는 이들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이 생각은 몇 년전, 삶에 염증을 느낄 때 일기에 이미 썼던 거다. 다시 되새겨본다.


 

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22 If I am to go on living in the body, this will mean fruitful labor for me. Yet what shall I choose? I do not know! 23 I am torn between the two: I desire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which is better by far; 24 but it is more necessary for you that I remain in the body. 25 Convinced of this, I know that I will remain, and I will continue with all of you for your progress and joy in the faith, 26 so that through my being with you again your boasting in Christ Jesus will abound on account of me. (빌립보서 1:21-26)




Posted by pleasing2jc
2017.01.25 22:14

narrative 분류없음2017.01.25 22:14

누가 narrative 를 장악하는가가 power 인 게 확실한 거 같다.


post-truth 가 2016 년의 단어로 선정되었었고,  

며칠 전에는 alternative facts 라는 말이 문제였다.

한국에서의 국정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도 그렇고,

한국이나 미국의, 언론과 정치권과의 마찰도 그렇고...


인간사에서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가 그렇다.

세계관, 관점의 차이 등에 따라서 narrative 가 완전히 바뀌고,

사소한 사실을 드러내고 말고, 또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서, 잘못된 정보에 의해서 어떤 사람은 영웅이 되기도 하고 누명을 쓰기도 한다. 


모든 narrative 를 facts 에 근거함으로 하면 좋으련만.

세상이 요상하여 alternative facts 라는 말까지 나왔다.


거짓되고 꼬여진 정보들과 조각난 정보들, 

post-truth, alternative facts 가 흘러 넘치는 세계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도 어떡하면 true narrative 를 볼 수 있는가?...

Posted by pleasing2jc
2017.01.24 21:47

From Darkness to Light 분류없음2017.01.24 21:47



늘 받은 소식지 하나.

정크 메일로 버릴 수도 있는 소식지인데, 그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From Darkness to Light.


칠흙같은 어두움 속에서 빛으로 구출되어서 자유를 찾아 회복하고 있는  소녀의 소식.

오늘 하루종일 가슴에 머문다.


그녀가 겪은 어두움과 그녀가 지금 거하게 된 빛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만약 구출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처참한 삶을 계속해서 살고 있을것이다.

그런 어두움. 그런 빛...

 


그래, 어두워만 보이는 세상....

세상이 총체적으로 변화되어 세상 전체에 눈부시게 찬란한 빛이 비치 날은 언제 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 어디선가, 세상이 무관심한 그 어딘가, 작은 사람 한 명이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진다면,

바로 그곳에서 그는 한없이 기뻐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찬란한 빛의 미소를 짓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그 어디선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각주:1]에 남겨두시고, 길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오시며 기뻐하시고 계실지.

그리고.... 칠흙같은 어두움 속에서 길잃은 어린 양들을 찾아 온 산을 헤매고 계실지. 

  1. 들판: wilderness 라고 되어있는 version 이 많으니 들판이라기보다는 황무지라고 해야할까? 아주 안전한 목장을 지칭하는 건 아닐듯하다. 원어로는 어떤 의미일지? [본문으로]
Posted by pleasing2jc
2017.01.17 20:50

공동체? 분류없음2017.01.17 20:50

경제 공동체- 한 뉴스에서 새로운 유행어가 될 지도 모른다고 힌 용어 (정확히는 기억안나고 대충 그리 얘기한 듯 하다)

그들의 목적은 너무나도 잘 못 되었는데,
그들의 공동체적 삶은 무척 완벽하다.
평생을 함께 해 왔고
한 맘 한 뜻으로 모든 걸 나누고
함께 결정하고 실행하고
서로를 위해서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리기도 한다.
한 지갑 경제 공동체까지..

그 형태만 보면 일부 기독교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공동체의 모양일 듯도 하다.
그들을 포함한 사이비종교나 일부 문제 교회의 공동체성은 무척 철저하고 투철하다.

많은 것에의 답이 공동체가 되어버린 듯 한데..
공동체 이전에 우선되어야 할 것들은...?


Posted by pleasing2jc
2017.01.16 12:56

믿음 분류없음2017.01.16 12:56

혼란스러운 역사 속에서도 한결같이 이어져온 사랑의 언약 하나님을 바라보고
인간 역사 속에 오셔서 그의 나라를 임하게 하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데,
그런 소망이 한없이 갸날프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어그러진 세상의 뉴스들. 

환한 곳에서 빛을 보는 것을 믿음이라 할 수 없고,
어두운 가운데 빛을 볼 수 있는것이 믿음일텐데...

깜깜한 곳에서 빛을 보게 하는 믿음은:
빛을 보리라고 굳게 맘 먹는 결심이나 신념 (의지)도 아니고,
어두움 속에서 빛을 그려보는 상상력도 아니고,
긍정적/낙천적 사고방식도 아니고,
지식을 더 쌓는 것에 의한 것도 아니고.
어두움에 무관심해지고자 해서도 안되고,
화려한 가짜 빛을 쫓는 것도 아닐테고...
(맘이 힘든 가운데, 위와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었다.)

그저 아프고 힘들고 황망한 가운데 무릎 꿇고
진정한 빛이신 그를 바라는 것.
또한 우리로 하여금 빛(과 소금)이 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바라는 것.
그의 사랑과 약속을 신뢰하는 것

그의 Good News 를 믿음. 


Now faith is the assurance of things hoped for, the conviction of things not seen -Hebrews 11:1


Posted by pleasing2jc
2016.11.21 20:30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분류없음2016.11.21 20:30


1993 년도 즈음, 대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봤던 영화.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는 일그러진 영웅들. 소설을 찾아 읽어본다.


픽션이지만, 학교, 교회, 사회. 조직, 어떤 모임에서든 엄석대와 한병태의 학급과 비슷한 면들을 찾을 수 있어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소설 결말에도 사회의 모습을 꼬집지만.


비밀독서단에서 토론하는 대로,

그 엄석대 (일그러진 영웅)를 또 다른 엄석대가 replace 하기도 하고.

우리 안에 내재한 엄석대의 모습.

변화는 아래에서부터 올라와야 한다는데 그렇게 아래로부터 올라온 변화의 물결을 자신의 권력과 위치 강화에 전혀 이용하지 않고 잘 수렴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궁금해진다  그 유혹에서 백프로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정치계 인물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저 일반적 이야기일뿐)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나,[각주:1]

Ultimate 영웅은 '아래'에 머무르셨고 그 아래에서 스러져가셨다는 것. (세상적 시각으로 볼 때)











위 영상에는 편집되어 안 나오는, 그 전 부분에 인용된 단락. 영웅되기를 격려?받고 꿈꾸던 세대?가 떠오른다. :


나는 먼저 그날 내가 겪고 본 엄석대의 짓거리를 얘기한 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아버지에게 물으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겨우 엄석대가 그날 한 일들을 모두 얘기한 내가 막 충고를 바라는 물음을 던지려는 아버지가 불쑥 감탄 섞어 말했다.     

「거, 참 대단한 아이로구나. 엄석대라고 그랬지?  벌써 그만하다면 나중에 인물이 돼도 큰 인물이 되겠다.」

  도무지 불의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 소리였다.  

후끈 단 나는합리적으로 선거되고 우리의 자유를 제한한 적이 없던 서울의 급장 제도를 얘기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그 합리와 자유에 대한 내 애착이 나약의 표지로만 이해되는 것 같았다.

  「약해 빠진  놈. 너는 왜 언제난 걔를 뺀 나머지 아이들 가운데만 있으려고 해?  어째서 너 자신은 급장이 될 수 없다고 믿어?  만약 네가 급장이 되었다고 생각해봐.  그보다 더 멋진 급장 노릇이 어디 있겠어?」







  1.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은 긍정적 표현 으로 많이 쓰이는듯 한데, 데 이 해석도 일리가 있는듯 하다 --- 난세에 영웅이 난다’[亂世英雄]는 말은 평화로왔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인재(人才)가 혼란기에는 두각을 드러낸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다수의 민중들은 좀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으로 정치를 하더라도 세상을 안정시킬 독재자를 지지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허소(許劭)는 조조에게 세상이 평화로운 시기에는 범죄자[奸賊]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조용히 초야에 묻혀 지낼거라 하지 않았다. 난세영웅이 권력을 얻으면, 그 비윤리에 맞서는 소수의 충의지사들 또한 영웅이 된다. 촉나라 영웅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결국 난세가 이래저래 영웅을 대량생산 하는 것이다. http://playin.innori.com/5811 [본문으로]
Posted by pleasing2jc
2016.10.21 21:10

정의와 신뢰와 기도 분류없음2016.10.21 21:10

The Locust Effect (by Gary Haugen)   책 앞쪽에 보면 human trafficking 등이 공공연히 이뤄지는 나라들의 정의가 얼마나 타락해 있는가 이야기한다. 그런 나라들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맘이 너무 많이 힘들어진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게 힘들어 진도가 무척 느리게 나가고 있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하는 법의 보호가 부재된 곳에서 일어나는 불의하고 잔인한 일들... 가슴이 찢어지는 일들이다. 


물론 미국이나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일어났던 S 모 명문대의 수영선수 성범죄 사건을 둘러싼 논란 등등.


하지만 문 밖을 나서기만 해도, 아니 집에 있어도 맘 놓고 살 수 없는 불의가 공공연히 이뤄지는 끔찍한 나라들이 있다. 그리고 공권력조차도 그 불의를 덮어버리는 악이 되어버리는 그런 나라들 (The Locust Effect 에 나온 나라들..)


그런 곳에 산다면 당연히 타인과 국가기관/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또 적개감, 혐오, cynicism (냉소) 등이 몸에 밴 일부 사람들도 있을테고. 


그런데, 만약 그렇게 불의한 곳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았기에 타인과 국가 등을 신뢰 못 하는 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나라에 옮겨 놓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옮겨진 이들이 곧바로 타인과 국가를 신뢰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잘 모르지만 몸에 배어있는 불신의 자세를 곧바로 버리긴 어려울 거다. 


한 사회의 가해자의 몸에 밴 악함은 큰 문제다. 

예를 들면, 힘없는 자를 착취하고 권리를 남용하면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조금의 죄책감도 못 느끼고 심지어 그것이 나라와 사회를 위하는 등의 선한 목적 때문이었다고 굳게 믿는등의...

그와 더불어 불의한 사회에서 산 피해자들의 몸에 밴 습성도 풀어나가야 하는 큰 과제이고 치유되어야 하는 상처다.


약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려도 

여전히 서로 불신하고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못 누리고 겁쟁이처럼 항상 경계하며 살지도 모른다. 적개감, 혐오, 냉소 등의 자세도 쉽게 버리기 힘들 거고. "상처"가 치유되고 기억이 "성화"되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혼란한 "세계 곳곳" - .지금 무너진 세상 속에서 무너진 관계들의 양상이 "세계 곳곳"에 사는 많은 이들의 몸에 밸까봐 염려가 된다.

(최근 "그곳"에서 온 몇몇을 접하며 든 생각이다. 그리고 이 시대와 이 땅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 스스로를 포함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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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framework를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구도로 옮겨보자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Already 의 하나님 나라) 그 나라의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1) 외부적 요인:  Already 이지만  not yet 의 하나님 나라. 아직 이 세상에 그 세력을 발휘하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있기 때문이고 --- 이 세상의 한계와 악함으로 인해 자유와 권리를 못 누림. 

(2) 내면적 요인: Already but not yet 상황에서도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권리와 자유가 있음에도, old self/life/world 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불신하고 (믿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유도 있을 듯 하다. 믿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제한하는.... 물론 new life 의 의무 또한  있겠지만 그 의무란  (예수님에의 전인격적 ) 믿음과 신뢰 성격이 크다.


결론은, 뭐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2000 년 전이나, 50 년 전 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혼란한 세상에도 불구하고,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 세상의 습성을 버리고 그를 신뢰하며  하나님 나라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며 사랑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한다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그의 아들딸 답게 살아가는 것.  


믿음과 신뢰의 문제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가?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보고 그 안에 속해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그의 사랑을 알고 신뢰하고 있는가?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습성/가치/삶의 방식의 차이를 알고  하나님 나라의 것들의 비교할 수 없는 우월함을 믿는가?  그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렇게 살고 있는가? 온전히 이뤄질 그의 나라의 소망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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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cust effect 에 나온 거 같이 터무니 없는 불의가 행해지는 곳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가 임하길 기도한다.

그 기도 또한 그를 믿고 신뢰하는 자녀의 자유와 권리이며 의무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이들 (몇 달 전 살해된 채 발견되었던 케냐 변호사 같은 이들) 을 위해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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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들은 보통, 세상/자신에게 실망하거나 discourage 된 조금 힘빠지는 하루를 보내고, 참된 좌표 안에 속한 스스로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encourage  하기 위한 외침의 기도와도 같다. 또한 무엇이 중요한가 다시 확인하는 기도. 시선을 세상과 나에게서 돌려 그와 그의 나라를 바라보기 위한 기도. 내가 겪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세계 곳곳의 이웃들과 연대하는 한 방법.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