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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4. 13:57

"저기야" 의 교훈 카테고리 없음2022. 8. 4. 13:57

자원 봉사하고 있는 곳, 담당 치과의사분이 뭔가 필요한 것이 없냐고 얼마 전 연락하셨다. 그래서 필요한 것 하나를 답했더니, 그 밑 책임자에게 말씀하시길, "(하나가 아니라) 네 개를 오더하라, Dr. 어쩌구가 원하니까, "고 그러셨단다. 그렇게까지 많이는 필요없는데 말이다.
그처럼 자원봉사하는 곳에서 내가 오히려 대접을 받아서 송구스러울 때가 있다. 전에 예상치도 않은 무슨 상을 준 적도 있다. 그 때, 어머니께 그 말씀을 드렸더니 "네가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 가 있어서 그런 거지 아무나한테 안 그런다," 그러신다. 어머니께서 언젠가 어느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하셨던 경험을 나눠주셨다. 교회/단체에서 함께 자원봉사한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가서 잠시 일을 도우셨다. 어머니께서 영어도 잘 하셔서 다른 곳에서 영어 자원봉사도 하신 적도 있고, (내가 중학생일 때) 신학대학원 석사도 하셨지만, 전문 사역자나 의료봉사자가 아니기에 호스피스에서 부엌일/청소일을 도우셨다고 한다. 그런데 호스피스 직원들이 의료봉사자들이 오면 반갑게 뛰어나가서 환영을 하는데 일반(?) 봉사자들이 오면 그런 환영은 별로 없었다고 하셨다.
그 때 깨달았다. 아, 내가 그런 송구스런 대접을 받은데는 그런 이유도 있겠구나...
일상을 살아가면서는 사회적 지위를 의식하기보다는, 노동자 분들과 더 공감하는 하루하루이지만 말이다. 아이 아빠에게 배운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적 지위는 무슨 "개뿔."
그래도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이나 환자분에게서 전문성을 포함한 다른부분들을 인정 받는 건 느끼기는 한다.
그러할 때 내가 경험하는 세상과 나의 시각만에 한정되지 않고 다른 분들의 입장을 많이 생각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 다른 형태의 삶의 모습을 살아가는 분들을 향한 respect 를 잊지 않으려 많이 노력하려 한다.
부모님께서도, 부하직원들, 파출부 아주머니들,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에게 함부러 대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는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들에게도 존댓말을 쓰기도 해서 어머니께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동생도 함께 일하는 수술 어시스턴트들을 함부러 못 대하는 성격이라고 몇 년 전 나누기도 했다.
그 영향도 있겠지만, 오래. 전 다른 자원봉사를 했던 시절, 약간 불쾌했던 경험이 있어서 더 신경쓰는 편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원시절, 어딘가 자원봉사를 하러 갔었는데 어쩌다 보니 잔심부름 하는 일을 맡게 되었었다. 자원봉사하는거니까 개의치 않고 했다. 마침 학업과정 속에 큰 단계 하나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있는 기간이었기에, 머리 안 쓰고 감정적으로 얽히지 않는 단순노동을 하는게 내게 더 낫기도 했다. 일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수다에도 참여하고 싶지 않았고, 여러모로 피로했기에 '잔심부름 노동'에 기계적으로 집중했다. 일하면서, "한국 회사들 어린 여직원들이 이렇게 일하겠구나," 혹은 "한국 학교 내 선후배 위계질서가 이런걸까," 속으로 생각했다. 훨씬 뒤에 나온 드라마지만 <나의 드라마> 속 여주인공 이지안이 회사에서 하는 그런 종류의 일들이었다.
거기까지는 다 좋았는데, 내게 심부름을 시키시던, 나보다 나이 많은 한 분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저기야,"라고 부르셨다. 한국 사회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그 당시 내게 "저기야,"는 상당히 무례한 호칭으로 여겨졌었다. 나름 고급인력으로서 허드렛 일을 하고 있는데,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고 "저기야" 라고 불리면서 잔심부름을 하는 상태라니. 예를 들면 "저기야, 뭐 좀 가져올래," 하며 내 저 쪽에 있는걸 가져오라는 심부름이다. 그런 식의 대우는 거의 처음 받아봐서 더 열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부르고 존댓말로 얘기했다면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꾹 참고 그 기간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당시 다니던 교회 구역예배에서 그러한 울분을 나눴던 기억이 난다. 모두가 공감하고 위로해줘서 고마웠었다.
그런 일을 겪은 훨씬 후, <나의 아저씨> 를 볼 때, 남주인공 박동훈이 여주인공 이지안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챙기고, 또 이지안의 이름의 뜻을 물어보는 장면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저기야,"라고 불린 사건으로 인해, 이지안같은 위치에 있는 이들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거다. 한국 고딩 학창시절, "반장"이라고 내내 불렸었고 , 미국 대학원시절 지도교수님하고도 서로서로 first name 을 부르는 입장이었고, 지금은 "Doctor 누구누구, 혹은 doc" 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으니, '이지안'같은 경험은 전혀 못해볼 수도 있었는데, 오래전 자원봉사의 현장에서 겪은 일이 감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 때문에라도 assistants 분들을 포함 남들에게 이것저것 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할 때 최대한 공손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가 도울 부분이 있으면 도우려고 한다. 그러할 때 그분들은 하지말라고 그냥 자신들이 하겠다고 그러기는 한다. 미국은 위계질서 의식보다는 평등개념이 훨씬 더 철저하기에, 누군가가 일을 시킬 때, 누군가의 명령에 따른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냥 그것이 자신의 job 이라고 생각하고 일한다. 일터의 setting 밖에서는 동등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거들먹거리면서 무례하게 자신에게 일을 시킨다면 불쾌해 할 것이다. 웨이터같은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걸 말해준다는 the waiter rule 도 공공연히 이야기되어지고있고.
요즘 한 일터에서 한 분이 내게 고민을 털어 놓으실 때가 있다. 여러모로 속상했던 일들을 나누시는데, 그 분의 얘기에 조금이라도 공감하면서 들어드릴 수 있는 것도 위와 같은 경험 덕분이다.
어쨌거나,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만나는 아주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어떤 사람의 배경, 위치, 지위, 나이 등등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어느 곳에서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약한 이들을 알아보고 높이 올릴 수 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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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