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09

« 2018/09 »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  
  •  
  •  

'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64

  1. 2018.09.16 The Gold Child Syndrome
  2. 2018.09.03 숙제하듯 영화보기
  3. 2018.09.01 9/1 아침
  4. 2018.08.31 옆집 개
  5. 2018.08.29 Asian American movie -
  6. 2018.07.14 random thoughts: to bypass ? or to conquer? the cycle?
  7. 2018.07.07 귀감
  8. 2018.07.06 Psalm 48 at 45
  9. 2018.06.13 Answered Prayer
  10. 2018.06.08 남의 슬픔이나 아픔을...
2018.09.16 16:26

The Gold Child Syndrome 분류없음2018.09.16 16:26

밑의  영상이 추천에 떠서 호기심에 봤다. (The School of Life 을 subscribe 해서 그런 듯)

Golden child syndrome: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 해주기보다, 비현실적으로 과도하게 너는 특별하다는 칭찬만 해 줄 경우 생기는 부작용을 얘기한다.


일리가 있다. 

이전에는 자존감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칭찬을 더 많이 해주고 상을 많이 주는 교육법이 학교나 양육법으로 유행한 적도 있는 거 같은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한 때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자녀양육법인 줄 알고 그렇게 실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크면서,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이고 어른들이 아이의 존재와 삶을 좌지위지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걸 많이 깨달았다. 그것이 선한 의도라더라도 나의 뜻대로 한 인간을 좌지우지 (manipulate) 하려하는 것은 playing god 하는 자기중심적 숨은 동기와 교만이 뒤섞여있는 행위일 수도 있다. 아이에게 아무리 최선의 것을 준다고 하더라도 어떤 것이듯 인간이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자녀도 커 가면서 부모의 한계를 깨닫고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quick search 를 해 보니, 자기애성 성향이 강한 가족 안에서는  부모의 편애에 따라 어떤 아이는 golden child 가 되고 또 다른 아이는 scapegoat 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굳이 자기애성 성향이 강한 가족들이 아닌 모든 가족 안에서도 충분히 그러할 수 있는 거 같다. (아이가 하나라서 잘 모르겠지만)  

성경에도 그런 예는 많으니까. 당장 생각나는 이들은 부모의 편애를 각각 받은 에서와 야곱, 야곱의 편애를 받은 요셉 등

결국 그들은 부모들로부터 떨어져 광야에서 생활하며 성장해 나간다.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하나님의 쓰임을 받으며.


런데 아이들이 모두 다 야곱처럼 12 지파 조상이 될 필요도 요셉처럼 애굽의 총리가 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이전 어머니세대들은  자녀들이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 이가 되게 해 달라고 많이들 기도하셨을텐데...

옛날 한국의 한 대형 교회 목사 어머니도 새벽마다 그 아들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기도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선교사업을 비롯해서 큰 일들은 많이 하신 거 같은데, 다른 문제가 많아서 신문지상을 오르내렸다. 

글쎄..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또 Matthew 20:17-28 의 예수님의 답을 염두에 둬야 하겠지.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있을 테니,  하나님께서 맡아 해주시길 기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나님께는  Golden Child 가 없으리라. (독생자 예수님 말고 인간 중에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golden child 에게 집중하지 않으시고  길잃은 어린 양을 찾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의 비유에서처럼


흠 한 설교에서 단편소설 the lottery 예화를 들며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scapegoat 가 되었다고 했었는데,

예수님은:

God's Golden child became a scapegoat to bring redemption to his (human) brothers and sisters 다


Posted by pleasing2jc
2018.09.03 17:19

숙제하듯 영화보기 분류없음2018.09.03 17:19

왕가위 감독이 2018 년 H 대 졸업식 명예 박사를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한두달 전 (무료로) 배달받고는 관심없이 책상위에 올려둔 잡지를 뒤늦게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기사.


안 그래도 몇 년 전 화양연화를 보고 그 영상미 에 잠시 혹한 기억이 있어, 잠시 여유가 있는 틈을 타서 그의 영화 몇 편을 몰아서 봤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영상미 등등을 미쟝센이라고 한단다.


Chungking Express: 중경삼림 (1994 년) 

2046 (2004? 년)

The Grandmaster: 일부종사 -송혜교도 나온다. 


대단한 미장센의 영화들이라도 한꺼번에 보니 밀린 숙제하는 기분이었다. 

시각적 청각적 '감각'에 푹 빠져 헥헥거리며 아둥바둥 헤엄쳐서 수영장 끝까지 겨우 간 느낌.

중경삼림과 2046 은 특히 더 그랬다. (일부종사는 좀 예외)

내가 공감하지 못하나, 이 세상 어딘가에 충분히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을법한 이들의 이야기라는 것 -- 예술을 통한 간접경험의 시간,

세 영화 모두 화제작이었다는 기사도 많이 읽었었고 사운드 트랙도 여기저기서 들었었는데 이제야 catch up 했다.

왕가위 감독의 다른 작품들은 또 몇 년 후에야 보게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H 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잡지 기사에서 그에 대한 소개를 옮긴다. 영화계의 거장이긴 한가보다. 

Wong Kar Wai. The creator of visually vibrant, character-driven films from Chungking Express to In the Mood for Love to the Grandmaster. Doctor of Arts: A cosmopolitan grandmaster of kinetic flair, whose tales of tears and ashes, foresaken spouse and fallen angels, transfix the senses, transcend conventions, and evolve dark shades of longing and love.


PS: 이런 이들에게 예수님 믿으세요. 그럼 당신이 그리고 구하는 longing 이 해결되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 주신답니다. 하면서 (진리이긴 하지만 수사학적인 면에서) 단답형 원론적 예술파괴적 전도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예술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음. 아니면 복음 안에서의 예술 등 은 어떤 것인가 생각의 가지를 뻗게 되지만 내가  지금 큰관심가져야  할 문제는 아닌듯하다.








Posted by pleasing2jc
2018.09.01 09:19

9/1 아침 분류없음2018.09.01 09:19

존 ㅁ케인의 장례식 오바마의 eulogy 를 들으면서 장례식 미디어 커버리지를 대충 훑어보고 드는 질문.

만약 지금 ㅌ럼프가 대통령이 아니었고 ㅋ린턴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지금 이 정도로 그 분의 삶과 가치를 찬사했을까?


미국의 이상적 가치가 변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열려지는 그 분의 장례식이,

비교적 바람직했던 전통적 이상과 가치을 어떻게 해서라도 기억하고 붙잡고 되살려보려는 몸부림으로 느껴진다.

그의 딸이 "America was always great," 라 했다 하고, 오바마의 eulogy 도 그렇고.

이 시간 ㅌ럼프는 자신의 골프장에 있단다. 


떄마침 아침 일찍 깨서  <the Silk Roads: A New History of the World>[각주:1] 를 첫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그리스, 로마, 중국, 페르시아, 쿠샨 등등의 제국 역사를 짧게 쭉 훑는다.

그들의 흥망성쇠를 다시 돌아보며,  ㅁ케인의 장례식 현장중계를 들으며... 

앞으로 미국과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런 가운데 평화롭기만 한 실리콘 밸리 아침 (오늘 새벽 옆집개도 안 짖었다). 

 자다 깬 모습으로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고 있는 소시민의 관심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막강한 영향력의 정치가나 실리콘 밸리 CEO 도 전혀 아니고.  모처럼의 long weekend 이기도 한데.


그래도 이 시대에 깨어있는 것이 (민주주의가 소중하게 생각해 온) 시민의 책임일지.

(친미도 반미도 아니고 미국에 대해서 아주 특별한 sentiment 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나와 우리가 살아왔고 살고 있고 어쨌거나 이 지역 local community 에 속해 있으니 가지는 권리와 의무/책임 등이 있으니. )





  1. 책이 너무 두꺼워서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본문으로]
Posted by pleasing2jc
2018.08.31 04:26

옆집 개 분류없음2018.08.31 04:26

옆집에 개가 새로 들어왔는지 어떤지, 이틀 새벽동안 연속으로 30 분 이상씩 짖는다.

그 소리에 깼다.


어제 새벽에는 멈추기를 기다리다가, 혹시 주인이 어떻게 되어서 개가 짖나 싶어서...

옷입고 그 집 앞에 가서 문도 두드리고 벨도 눌렀는데, 개는 계단 위아래를 오가며 문 앞까지 와서 짖는데 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며칠 전 남겨진 듯한 전단지도 문 앞에 떨어져 있고...

이건 개를 두고 주인이 휴가를 갔거나 아니면 주인이 쓰러져 있거나 한거라는 생각에.

911 을 불러야 하나 어떡해야 하나 집에 와서 남편을 깨워서 의논하는데, 개짖는 소리가 멈췄다.

아마 주인이 미안해서 나오지는 못하고 개짖는 소리를 멈추게 했나보다 싶었다.


오늘 새벽, 또 왕왕 소리에 깼다. 꽤 큰 개인가보다. 

이건 주인이 잘못되어서 짖는게 아닌게 확실해서, 좀 더 편한 맘으로 또 그 집에 가서  주의를 줘야겠다 했는데

옷을 입고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주인이 깼나보다. 아니면 다른 이웃이 가서 주의를 줬는지.

아침에 그 집에 부탁해야겠다. 새벽마다 짖지 못하게 해 달라고.

그래도 다행이다. 주인이 어떻게 되거나 한게 아니라서. 


아이가 대학 가고 개입양에 대한 관심이 약 2% 정도 있었는데, 그  관심마저 말끔히 사라졌다.

개들이 귀엽고 사랑스럽긴 한데, 위와 같은 현실적 이슈들을 deal with 할 여유가 없다... 

우리 하이디도 저녁에 조금씩 짖은 적도 있었는데  이웃들에게 bother 가 되지 않았었나 모르겠다.

창문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고 한번에 1-2 분씩 짖었다. 그러면 못 짖게 달래곤 했었다. 창문 그림자를 못 보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웃 누구도 뭐라고 한 적이 없다. 착한 이웃들이다. 하이디 짖는 소리는 좀 작아서 안 들렸을 수도 있고. 


일하러 가려면 다시 자야 하는데 아직도 귀가 아프고 머리가 띵하다. 






Posted by pleasing2jc
2018.08.29 21:19

Asian American movie - 분류없음2018.08.29 21:19


 

영화 <Crazy Rich Asians> 이 흥행 1 위를 달리고 있다길래 호기심에 봤다.

Joy Luck Club 이후 25 년 만에 나온 all asian casting 을 한 major studio 영화라고.


내가 대학생일 때 친구들이랑, Harvard Sq. LOEWS theatre 에 가서 Joy Luck Club 을 봤는데,

25 년 후 아이가 대학생이 되니 all asian casting 영화가 나오다니. 한 세대에 하나씩 나오는 류의 영화라...

올해는 Black Panther 와 더불어 Crazy rich asians 등이 주목받은 뜻깊은 해인듯. 

앞으로는 이런 영화들이 더 많이 나오리라 기대된다. 문화 영화계에 진출한 동양인들이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많기도 하니까 (African american 은 물론이고).


Joy Luck club 도 그랬던 거 같고, 이번 Crazy Rich Asians 도 그렇고 세대간 문화&가치 충돌과 조화 등이 주요 이야기. 

Crazy Rich Asians 영화는   재미로 보면 되는 영화. 더 어린 세대들이 좋아할 듯 하다. 


Memory

인터넷 어딘가에서 퍼옴



2012 년에 문을 닫았다는 Harvard Sq movie theatre.  

이 극장에서 본 영화가 꽤 되는데...

왼쪽 코너를 돌면 있던 the Body Shop 도 closed 되었다고 하고..

 심지어는 Harvard Sq 중심의 상징과도 비슷했던  Au Bon Pain 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캠브리지/보스턴도 많이 변하고 있구나.



Posted by pleasing2jc


1.    이스라엘 백성의 the cycle of sin 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단다. 인터넷 서치하면 쉽게 나오는 이미지다. 

 

2.    이 근처 교회의 오 목사님은 (교인들은 그를 존/쟌 이라고 부른다.)  한 설교에서 이 싸이클을 이렇게 정리했다.

(다이어그램을 그리기 싫어서 그냥 다음과 같이 쓴다)

(A)     Self-sufficiency -> idolatry -> judgment -> suffering -> cry for help -> deliverance -> (다시 돌아가서) Self- sufficency -> idolatry ->...

그 설교는 위 싸이클보다는 데보라와 그 당시 사건에 관한 거였다.

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cry  하시면서 eternal judgment 와 suffering 을 감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인류를 또 세상을 deliver 하시는 work 를 시작하셨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삶은 위의 싸이클을 어느 정도 따라가기도 하는 거 같다. 공동체나 세계의 싸이클도 그렇고.

4.    그를 믿는 이들에게는 Judgment 라기보다는 discipline 이라고 봐야하겠다 (hebrews  12:4-12)



5.     NT Wright 은 위와 비슷한 구약의 storyline 을 다른 perspective 로 바라보며, 스라엘의 고난과 vindication 을 통한 전세계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plan 으로 본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 -> 이스라엘의 exile -> Suffering of Israel -> vindication of Israel/Return of Israel/renewal of covenant etc. -> blessing to the world via Israel


6.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실패했고 True Israel 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 등을 겪으심으로써 전세계를 구원하셨다는 게 NT wright 의 perspective 다.



7. 이래저래 저 위의 싸이클을 벗어나는 최후 승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건데, Already but Not Yet 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오늘날도 끊임없이 개인의 삶에서 공동체에서 반복되는 싸이클인 거 같다.

8.  그냥 갑자기 떠오르는: 알버트 슈바이쳐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역사의 수레바퀴에 몸을 던진 예수님. 그 예수님은 결국 그 수레바퀴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수레바퀴의 방향을 바꾸는데는 성공헀다는.

9.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는 알버트 슈바이쳐의 시각은 반쪽짜리이긴 하다.

10.  개인들이나 공동체들은 스스로의 죄로 인해서 위의 싸이클을 반복하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discipline  받고 예수님 십자가 앞에 다시  회개하고 회복하고 또 반복하고 한다. 물론 그리하면서 소위 성화/성숙의 길을 나아가는 것일수도 있다. 



11. 저 cycle 을 bypass 혹은 초월하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길인데 : (A) 의 싸이클에서 self-sufficiency 와 우상숭배에 다다르기 전에 -- 즉 스스로의 죄와 shortcoming 으로 인한 저 싸이클을 반복하는 것을 멈추고, 이웃의 고통과 울분 등에 동참하는 십자가가 저 싸이클을 전복시키는 한 방법이라고 하면 어떨까. 즉 아래 (B) 처럼 되는거지. 

 (B)   Self-sufficiency -> idolatry -> judgment -> suffering -> cry for help -> deliverance -> Suffering with neighbor and cry with them (go to God/Jesus with them) -> delieverace together ->...


12. 위와 같은 시각은 단순화 또는 reductionism 의 오류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세상의 아픔과 모순, 이웃의 고통을 바라보게 될 때, 또 그 앞에서 너무나도 작고 무력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됨은 사실인거 같다. 

13. 만약 세상의 아픔과 모순, 이웃의 고통 등을 인간의 노력으로 정복해야 할 문제로 볼 때 그것은 인본주의가 되는 거겠지.

14. NT wright 이 얘기하는 거처럼 우리가 Build the Kingdom 하는 것이 아니라 Building for the Kingdom 한다는 거처럼...


15.  예수님을 처음 믿었던 약 25 년 전.... 자선과 구제 (justice mission 등도 포함되는) 등은, 복음적 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인간적 선행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복음전도 말씀공부 공동체 교제 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또 한편으론 이런 얘기도 들었었다: 복음의 능력이 약해지는 시대에는 자선과 구제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그것도 사실이었을수도 있다. 

15. 그러나 최근에는 다른 흐름을 볼 수 있다.  : 사랑, 공의, 정의의 하나님께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을 사랑하시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시기를 바라신다는 걸 성경적으로 설명해내는 책들이나 설교들. 그것을 인간적 사랑이나 약해진 복음으로 보기보다는 더 comprehensive 하게 이해되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 또 복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17. 이래저래 떠오르는 random thoughts - 더 많이 읽고 생각해야 하는 주제. 

Posted by pleasing2jc
2018.07.07 16:03

귀감 분류없음2018.07.07 16:03

잘못된 예를 타산지석으로 그처럼 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예를 바라보며 그렇게 되려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거 같다.

타산지석처럼 되지 않으려 하는 삶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만, (혹은 역으로 타산지석을 닮아가기도 하지만)

귀감이 될만한 이를 쫓아 사는 삶은 더 발전이 클 듯 하니.


저 밑의 타산지석의 라이프 스타일과 사고방식을 쫓지 않는다면

귀감이 될만한 예는 더 나아가 사랑과 섬김 등등을 실천하는 삶이리라.


개인적으로 귀감이 될만한 이는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 시몬느 베이유를 떠올렸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전기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 내용이 떠올라서 - 그녀의 철학의 깊이와 믿는 바실천하려던 노력 - 노동자와 연대함 등. 


이번에는 그녀에 대한 다른 시각의 전기를 읽었다. 심리학자 교수가 쓴 전기. 그녀의 심리를 분석한다. (Simone Weil: A Modern Pilgrimage> 라는 책.  

시몬느 베이유는 전쟁터에서 굶는 병사들과 연대하기 위해서 굶다가 건강상태가 나빠져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결핵환자였는데 굶기까지 해서.  심리학자 저자는 그녀의 그런 실천이 anorexia 의 증상이 아니었을까 질문한다. 시몬느 베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hunger 에 집착했었다고.  또 anorexia 와  narcissism 의 연관관계도 살짝 짚고.

(하기야 배고픈 예술가, 청렴결백 선비 등 -- 배고픔과 가난을 어느정도 glorify 하던 낭만적? 시절이 있기도 헀었지. Kafka 의 A hunger  artist 라는 단편소설도 떠오르네)


시몬느 베이유처럼 자신이 믿는 바를 철저하게 실천하려 했던 이의 심리도 분석하면, 인간의 한계와 약함을 볼 수 있다. 

선행의 동기에도 자기의 (self-righteousness) 와 자기애 (self-love) 의 요소가 뒤섞여있을 수 있으니.


역시 selfless love 의 귀감은 예수이신데..[각주:1]

그 귀감을 따르는 삶이란  갈라디아서 2:20 처럼 내가 그와 함께 죽고 내 안에 그가 사는 것으로 가능할터인데... 참으로 오묘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의 이 구절은 사랑보다는 소위 justification/righteousness - 칭의와 의로움 에 관한 말씀인듯 하지만,  그렇게  의로워져야 새로운 realm 에서의 참사람이 가능핱테니)




  1. 예수님의 selfless love 라는 명제는 믿지만, 솔직히 아주 꽉 짜인 논리 (머리)로는 완전히 이해 못하고 있다 - 공부해야 하는 주제 중 하나. [본문으로]
Posted by pleasing2jc
2018.07.06 10:42

Psalm 48 at 45 분류없음2018.07.06 10:42

Psalm 48[a]

A song. A psalm of the Sons of Korah.

Great is the Lord, and most worthy of praise,
    in the city of our God, his holy mountain.

Beautiful in its loftiness,
    the joy of the whole earth,
like the heights of Zaphon[b] is Mount Zion,
    the city of the Great King.
God is in her citadels;
    he has shown himself to be her fortress.

When the kings joined forces,
    when they advanced together,
they saw her and were astounded;
    they fled in terror.
Trembling seized them there,
    pain like that of a woman in labor.
You destroyed them like ships of Tarshish
    shattered by an east wind.

As we have heard,
    so we have seen
in the city of the Lord Almighty,
    in the city of our God:
God makes her secure
    forever.[c]

Within your temple, O God,
    we meditate on your unfailing love.
10 Like your name, O God,
    your praise reaches to the ends of the earth;
    your right hand is filled with righteousness.
11 Mount Zion rejoices,
    the villages of Judah are glad
    because of your judgments.

12 Walk about Zion, go around her,
    count her towers,
13 consider well her ramparts,
    view her citadels,
that you may tell of them
    to the next generation.

14 For this God is our God for ever and ever;
    he will be our guide even to the end.


at Christ Church Cathedral in Dublin, Ireland


Posted by pleasing2jc
2018.06.13 00:04

Answered Prayer 분류없음2018.06.13 00:04



Today, as you read this, millions of people around the world are praying: 

an orphan in India, a widow in Niger, a teenager in an inner city, an elderly woman in your neighborhood, 

someone struggling to raise a disabled child, another person just diagnosed with cancer. 

And they are crying out to God through prayer. Might you be the one God is sending? 

Might you be the answer to someone's prayer? 


He Walks Among Us by Richard and Renee Stearns 에서


Posted by pleasing2jc
2018.06.08 22:31

남의 슬픔이나 아픔을... 분류없음2018.06.08 22:31

남의 아픔이나 슬픔을 예술화하는 건 지극히 조심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사업적, 상업적인 성격이 짙다면 훨씬 더더욱 그러하다.


한 여배우가, 역사 속 아픔을 겪은 여인들의 얘기를 노출이 심한 사진집으로 제작했다가 호된 비난을 받고 활동을 멈춘 적이 있다.

ㅅㅇㅎ 사건을 유가족도 접촉하지 않고 영화로 만들었다가 혹평을 받은 이들도 있다. .

참혹한 아픔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로 불러서 온갖 비판을 받다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울면서 기자회견해야 했던 가수도 있다.

주인공이 불치병으로 죽는 스토리를 미화한 영화나 드라마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겪은 이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 

그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면 더더욱 그러할 거다.


슬픈이나 아픔을 겪은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의 앞에 그것을 내놓고 싶지 않아서 침묵하는 기간을 거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슬픔/아픔을 섣불리 끄집어내어 예술화하거나 상업화하려한다면

본인에게 위로가 되기는 커녕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클 것이다.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