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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75

  1. 2018.06.20 타산지석
  2. 2018.06.16 아주 오래전 썼던 글: working mom
  3. 2018.06.15 본의 아닌 공주병
  4. 2018.06.13 Answered Prayer
  5. 2018.06.08 남의 슬픔이나 아픔을...
  6. 2018.06.05 accepting one another
  7. 2018.06.01 라마단
  8. 2018.05.25 ...
  9. 2018.05.17 읽고 싶은 책, 쓰고 싶은 글
  10. 2018.05.14 this week
2018.06.20 21:47

타산지석 분류없음2018.06.20 21:47

라이프 스타일 등의 부분에서 타산지석으로 삼는 예가 하나 있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맞는 표현인지 모르지만).


부모님께서 알고 지내던 분들 중....

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특별대우를 받고 큰 이였다고 한다. 

공부를  잘 하지는 않았지만,  인맥/성격등으로 사업에 성공해서 꽤 잘 사셨다고 한다.

1980 년대 이전에도 가족 모두를 데리고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하시고 (회사 사업 덕에 퍼스트 클래스 등만 타고) 

해외골프도 많이 치러 다니시고 집도 호화롭게 꾸미고 고급승용차에 운전기사 또 벽돌만큼 큰 카폰도 가지시고...


보이는 것들에 치중을 많이 하셨던 분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IMF 후 힘들어지기 시작해서 사업도 기울고 점차 가계빚이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분들께서 이전 삶의 스타일을 잘 포기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해외여행을 그전처럼 자주 가진 못해도 가끔 가더라도 고급 호텔 등에 머물고. 

더 이상 회사의 혜택을 받지 못해도 비지니스 클래스를 타고. 

친구들을 모아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턱을 내며 허세를 부리시기도 하시고. 가끔 온 가족들을 다 모아 해외여행을 가기도 하고.

가족들이 모두 다 외제차를 몰고 다니고.

그렇게 살고 계시니, 해마다 가계빚이 점점 늘어나더라고 한다. 집도 저당잡히고.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부부가 우리 어머니를 찾아오셨다고 한다. 

안 그래도 힘들어하시던 어머니를 위로해주시고 잘 해주셔서 어머니는 고마워하셨다.

그런데 얼마있다가 그 분들이 하시는 말씀: 당신들에게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 집도 못 장만해줬다고, 이제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우리 어머니 혼자 집에 계실 수 없으니 자신들이 우리 부모님 집에 싸게 전세 들어와서 살고 싶다고...

그러면서 남자분이 우시더란다. 자기 아들 집도 장만 못 해 줬다고.

그게 우리 어머니랑 무슨 상관인지... 


어머니는 기가 막히셨다고 한다. 나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된 후, 그런 얘기를 들으니 엄청 화가 났었다.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고, 그 후 그 분들은 점차 연락이 멀어졌다고 한다. 

어찌보면 영화 Blue Jasmine 주인공 같은 분들...


물질적인 풍요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시되고 자기중심적 (sense of entitlement 등) 경향이 강한  시대를 살아갈 때 타산지석(?) 이 되는 안타까운 얘기다. 


Posted by pleasing2jc
2018.06.16 16:08

아주 오래전 썼던 글: working mom 분류없음2018.06.16 16:08

주 오래전 어디선가 요청해서 쓴 글을 찾아본다. working mom 이라는 주제로 15 년 정도 전에 쓴 글인거 같다. (Anonymous 로)

오랜만에 보니 새롭네.

지난 세월 함께 해 오신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도우심을 본다. 믿음약한 나를 아시고, 믿음약한 이에 걸맞게 때로는 기적적으로 인도하시기도 하신...

사역을 안 한다고 썼는데, 한 성경공부 모임에서 청소/식사준비/베이비시팅을 하면서 성경공부 모임토론에는 적극적으로 참여못했었다. 싱글 때 생각했던 전투적 사역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안 썼던 기억이 난다.  또 실제로는 다 그리 잘 하고 있지도 않는데, 이것저것 골고루 하고 있다고 내세우는 거 같아서도 쓰기 싫었던 거 같다. 

지금 돌아보면 가정, 일, 사역 나누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거지만, 인위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그림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중심에 있고, 내 가정, 내 일, 내 사역 등 삼등분 그림이 그려진다는 게 문제다.  참주인되신 이를 중심에 모셔야 하고.. 굳이 그렇게 삼등분해야 하나?

(내) 소명이라는 표현도 좀 자기 중심적이다.

이 글을 쓸 때는 이미 지금 하는 일의 진로를 가려고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시험공부를 따로 했었다.  "앞으로 졸업을 하고 진로를 결정할 때, 하나님과 사람을 좀 더 적 극적으로 섬길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전임사역자가 되겠다 는 건 아니고, 지금껏 공부해 온 것들을 계속 연결해서 하면서 사람을 섬기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진로 결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라고 헀는데, 그 당시 공부한 전공분야는 잘 이용못하고 있다 - 흠........

하여튼 지난 세월 돌아보면 글만큼 정리되지 못하고 모두 다 뒤죽박죽되었던 시간들인데 그가 함께 하시고 도와주셨기에 살 수 있었던 시간이다. 

===========================================================
가정을 갖고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혹은 학교)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힘든 일들이 참 많을 것 같은데, 가정, 일(또는 학업), (교회 또는 캠퍼스)사역 들 가운 데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시는 기준은 어떤 것인 지요? 그리고 그 기준을 지켜 나 가는 데에 어떤 어려움이 있으신 지요?

가정과 일(학업)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 했던 것처럼 사역에 적극 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큰 후로 미뤄두고 있습니다. 그저 삶 속 에서 자연스럽게 섬길 기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아이와 제가 준비되고 (공식적 인) 사역을 적극적으로 할 시기가 되면 하나님께서 신호를 주실 것 같습니다. 결 혼 전에는 가정이나 학업보다도 사역을 더 중요시하는, 조금은 이원론적인 경향 이 있었고, 가정에 매여서 교회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어른들께 반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가정을 가져보니 가정을 잘 보살피고 아이를 하나님 안에서 잘 키우는 것이 얼마나 큰 사역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 생활 속에서 가정과 일이 충돌될 때에는 그 때 그 때 필요에 따라 가정이나 일 어떤 것을 우선으로 할지 정합니다. 몇 가지 꼭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 면, 학교 일이 아무리 바쁠 지라도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고 아이가 잠 들 때까진 함께 있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또 주말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합 니다. 매일 매일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은 compromise하지 않고 철저히 지키 려고 합니다. 어려운 것이 있다면. (공식적) 사역이라는 걸 못 하고 있기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래도 되나 하는, 아주 큰 죄책감과 위기감을 때론 느끼기도 합 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불러주실 거라고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어려움 들은 시간관리와 체력관리입니다. 항상 시간에 쫓기 고 일이 많아 피곤한 가운데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개인 시간을 못 가지기에 스스로를 충분히 점검하고 정돈할 시간도 별로 없고, 남편과 깊은 대화 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항상 피곤한 몸 상태로, 계속 쏟아지는 일을 계속 해 나가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시간, 체력, 또 다른 resources의 한 계 속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가족에게도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를 가지고 대하기가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족끼리 intimate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특별히 신경을 써서 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로서 직업을 가지고 계신 것에 대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믿고 계신가요? 그 렇다면, 그 소명을 함께 나누어주실 수 있으신 지요? 언제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셨는지요? 

가정과 일을 동시에 꾸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그 이유들은 다 음과 같습니다. 

우선 Os Guinness의 The Call에서처럼, 하나님의 소명이란 직업 등에 대한 calling보다는, 하나님 그 분을 향한 부름이 우선된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나님이라는 분께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으로 지금 나에게 허락하신 장이 현재 제 상황 (가정과 학업) 이라고 믿습니다. 때로는 입안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로 바쁘 고 힘든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어떤 때는 전혀 의미가 없 어 보이는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께 무조건적 순종을 배우기도 합니다. 자기 고집 을 피우는 아이와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배웁니다. 

두 번째로는 학문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학문의 주 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걸 매순간 인정하면서 살고 싶다고 기도합니다. 또 저희 분 야가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는 학문으로 온전히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또 하나님께 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쓰시는 학문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그런 계획 속에서 제가 담당할 일이 있다면 그 것을 위해서 준비시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 번 째로는 직장에서 하나님 과 사람을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실험실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섬긴다는 것, 사실 잘 못 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험실 내에서 각자 자기 project를 하는 가운데, 섬길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매일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졸업을 하고 진로를 결정할 때, 하나님과 사람을 좀 더 적 극적으로 섬길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전임사역자가 되겠다 는 건 아니고, 지금껏 공부해 온 것들을 계속 연결해서 하면서 사람을 섬기는데 적 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진로 결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으로 딸아이에게 좋은 role model이 되었으면 합니다. 딸아이가 일을 하게 될 지 전업 주부가 될지는 철저히 딸아이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서 결정될 일이지만, 지금 사회의 흐름으로 볼 때 딸아이 세대에는 대부분의 여성 이 직업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클 거 같습니다. 그렇게 될 때 제 딸아이도 저와 같 은 고민을 가지고 살게 되겠지요. 그런 딸아이에게 제가 지금 삶으로서 모범을 보 여 줄 수 있으면 좋겠고, 나중에도 대화와 의논의 좋은 상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합니다. 

위와 같은 소명을 매일매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확인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원하신다는 것을 경험하는 사건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이를 막 낳고 대학원에 apply 했을 때 있었던 일인데, 하나님께서 내가 상상도 못 했던 방법으로 가정과 학업을 다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한 1 년 반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있었던 기간이 있었 습니다. 아이를 낳기 한 달 전 GRE를 보고 원서 essay를 썼습니다. 아이를 낳고 application을 여러 학교에 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 가 있는 학교가 보스턴에는 하나만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보스턴에 서는 한 학교만 apply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들에 apply 했었습니다. 몇 달 후, Admission 결과가 나왔는데, 보스턴에 있는 그 학교에선 reject가 되고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에서만 admission이 왔었습니다. 남편과 떨어져 아이를 데리고 먼 곳에 있는 대학원에 가야 할 지, 아니면 대학원 가는 걸 포기하고 남편과 아이 와 다 함께 있어야 할 지,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오랜 고민과 기도 그리고 남편과의 의논 후에 선 결심은 가족이 흩어져서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일하길 아주 포기한 것은 아니고 보스턴에 있는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었습 니다. 이곳 저곳 알아보는 가운데 제 전공분야를 연구하는 교수가 지금 제 가 다니는 학교에 1 년 전 부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전에 apply할 학교 들에 대해서 알아봤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지요. Application deadline이 몇 달이 나 지났음은 물론이고 admission 발표까지 다 난 후였지만 application을 보냈습니 다. 얼마 후, 학교로부터 admission은 물론이고 펠로우쉽장학금까 지 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다 함께 있으며 저도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철저한 간섭과 섬세하신 인도하심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진로 결정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선 제게 가정도, 일도, 또 제가 공부하는 학문도 포기하지 않길 원하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특별히 일하는 여성으로서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으 신 지요? 

이기적으로 자기일 만을 챙기고, 자기를 내세우고, aggressive하고 competitive하 게 일을 추진해야 하는 work environment에서, Christian으로서의 섬기는 자세와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자세를 유지한다는 게 어렵습니다. 주변에 보면 가정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Christian 여성으로서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장에서 고민하며 사는 경우가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전 family-friendly working environment 에서 일하고 있기에 그런 고민은 크게 겪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지도교수도 가정을 꾸리고 있고, 같은 실험실에 지금 임신 중인 post doc도 있고, 같은 과에 얼마 전 아이를 낳은 다른 여자교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남자 researcher 는 아이를 데리고 실험실에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기에 직장에서 가지게 되는 괜한 자격지심으로부터는 자유로운 편입니다. 

지역교회나 공동체에서 여자이기에 기대되는 일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어떤 행사가 있을 때 음식 준비를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구역예배 때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거나 할 때, 아무래도 부담스 럽게 느껴졌었습니다. 아이가 어리고 시간에 쫓기는 가운데 한 가지 일이 더 주어 지는 듯 해서, 섬길 수 있다는 기쁨보단 일의 부담감이 더 크기도 했습니다. 다른 가정은 거창한 음식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죄송함 등도 컸습 니다.

일하는 크리스천 여성으로서 남편에게 기대하시는 바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저희 남편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큰 시험이 있을 경우, 공부에 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줬고, 집안 일도 잘 나눠서 해 주고 있습니다. 또 집에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시간이 적기에 이메일로 QT share도 하고 생각도 나누자고 initiate하기도 했구요. 일하는 크리스천 여성을 아내로 둔 남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정의 일을 나눠서 할 경우, 그것을 ‘아내의 일을 돕 는다’는 맘으로 하지 않고, ‘내 일을 하는 것이다’라는 자세로 임해 주셨으면 좋겠 다는 겁니다. 

엄마로서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장점과 단점으로 나누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장점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출퇴근했기에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몸에 베이는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다른 분이 봐 주시고, 더 어릴 적부터 학교 생활을 시작 했기에,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경험을 하 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낯을 별로 가리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도 금방 친해지는 편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독립적이고 부모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 아닙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제한되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아는 듯 합니다. 가끔은 엄마를 어린 자기가 care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자기가 절 위로해 주기도 합니다. 엄마가 피곤해 하고 스트레스 받는 기색을 보일 때, 옆에서 계속 웃으면서 재잘재잘 거리면서, 엄마를 결국 웃기고 맙니다. 또 아빠 가 학회에 가서 없을 땐 자기가 아빠 흉내를 내서 엄마에게 힘을 주기도 합니다. 정말 딸아이를 키우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라는 걸 매일매일 확인하게 됩 니다. 제가 딸아이와 함께 항상 있었다면, 딸아이를 양육하는데 제 생각과 제 고집 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 텐데, 어린 시절부터 떼어놓으면서 저도 딸아이를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습니 다. 제 딸이 세 살이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큰 시험이 있어서 새벽 일찍 학 교를 가야 했는데,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깨서, ‘엄마, 학교 가지 마’라고 매달리 더군요. 아빠가 일어나서 안아줘도 다른 때완 달리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 마 학교 가야돼, 엄마가 큰 시험이 있어서 학교 가야돼’ 라고 꼭 안아주면서 이렇 게 저렇게 잘 설명해 줬더니,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군요. 그러고 잠시 후,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단호한 어조로, ‘엄마 학교 가세요. 학교 가 서 공부하세요,’ 라고 어른처럼 얘기해서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집을 떠나 학교를 향하면서 딸아이가 너무 기특하기도 하고 딸아이에게 너무 고맙더군요. 그와 동시 에 그 순간 제 아이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반면에 단점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데는 장점이겠지만 또 한편으론 단점이기도 합니다. 함께 있을 때도, 아 이가 원하는 관심을 못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가 혹시 불만을 가지게 되 지는 않을까, 내가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못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가 듭니다.

여성학이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고 활발히 활동하게 하는 계기를 제시했습니다. 하 지만, 최근에는, 그 여성학이 "일하는 여성은 우월하고, 살림하는 여자는 열등하다" 는 바람직하지 못한 이원론을 제공했다는 역풍 또한 맞고 있는데, 그로 인해 고민 을 하신 적이 있으신 지요?

있습니다. 일을 쉬는 동안 그런 사고방식에 많이 젖어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기에 가지는 열등감도 있었고 이러다가 영영 일을 다시는 못 하게 되지는 못 할까 하는 불안감도 크더군요. 하지만 전업 주부로 있었던 약 2 년 동안, 교회 어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전업 주 부들의 고충과 생활 속의 도전들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일하는 여성을 더 인정해 주는 분위기 속에서 전업 주부로서의 설움과, 일을 하기 원하심 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닿지 않고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일을 하지 못하는 고민 등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사시는 분들을 보면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반대로, 가정을 가지고 일하는 Christian 여성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Christian 분들도 뵙습니다. 언젠가 자녀교육에 대한 기독교 서적을 보다가 아이가 있음에도 직장을 가지는 엄마들은 이기적이고 잘못되었다 라고 매도해서 말하는 부분을 보고는 분노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한 여성이 전업주부를 하건, 직장을 가지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에 따라서 결정할 일이라고 봅니다. 어떤 생활방식으로 살게 되건 간에 그것이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걸 알고 순종하고, 또 그 안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Posted by pleasing2jc
2018.06.15 19:06

본의 아닌 공주병 분류없음2018.06.15 19:06

얼마 전 있었던 일들:

1. 일하는 한 직장의 다른 분은 보톡스와 필러도 함께 시술하는 일을 한다킴 카다시안같은 입술유행이 계속 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한 분이 내게 입술 필러를 받으면 어떡겠냐고 묻는다. 내 대답:  No, my lips are perfect.

2. 한 모임에서 눈썹문신이 대화의 주제로 등장했다.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 - 눈썹문신했냐고. 내 대답: 나는 눈썹이 있어서 눈썹문신 안 해도 돼.

3. 또 다른 곳에서 투명교정 promotion 기간이라서 디스카운트가 많이 되기에  투명교정을 하려면 지금 하는게 좋다고 묻는다.  내 대답: My teeth are perfect.


의치 않게 공주병 같은 답들을 늘어놓고 있다. 

내 치열은 (이미 교정을 받았어도) 완벽하지 않다. 입술이나 눈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 중 하나는 외모에 많이 신경쓰는 것도 피곤하고, 외모나 치장을 주제로 얘기하는 것도 불편해져서 그렇다.
찾아보니 최근 한국에서 탈코르셋 운동이라는 것도 있다 하네.  
그에 대해 자세한 것도 모르고 그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이런 기사 (다른 사람 외모평가, 일주일만 참아 보세요) 는  흥미롭다.
안 그래도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 comment 하고  (eg. 동안이세요 하는 인사), 외모에 대한 칭찬이라 할지라도  comment 를 듣는것이 약간 지쳐 있었는데 나만 그런게 아닌가 보다. 


외모라는게 신경쓰려면 끝이 없는 거다. 
 
 
어린 시절, 외모에 꽤 신경쓰던 시기도 있었다.
자매들이 모이면 다이어트가 대화에 자연스레 등장하고 다이어트 방법에 대한 discussion 과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가/더 노력해야 하는가 자기 비판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교회에 가면 "살 빠졌네," "더 이뻐졌네," 하는 것들이 형제자매 할 것 없이 서로서로에게 인삿말인 시절도 있었다. 매주 주일 교회 갈 때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하나, 화장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문화에서 좀 떨어져 살다보니,  그런 분위기에 다시 들어가는 기회가 있더라도 참 낯설고 불편하다.

지금 이 나이에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면 고쳐야 하는 부분은 훨씬 더 많아졌을거다. 그걸 다 의식하고 신경쓰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을 거다.  하루 24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하더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온갖 관리를 받는 연예인들도 나이를 거스르지 못한다. 
또 어차피 10, 20, 30, 40 년 후면 또 다른 삶의 stage 일 거고...


한편으로는 흘러가는 (흘러가버린)  청춘이 아쉽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좋다.

나이를 거스르는 외모보다는 나이에 걸맞는 모습으로 살고 싶다.

아예 신경을 안 쓸 수 없지만 외모에 집착하고 싶지 않다. 

더 중요한 것들에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

외모 등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다른 것들 - 더 중요한 것들이 더 크게 보였음 좋겠다. 

그리고 내가 다른 이들을 그렇게 볼 수 있음 좋겠다.  


Posted by pleasing2jc
2018.06.13 00:04

Answered Prayer 분류없음2018.06.13 00:04



Today, as you read this, millions of people around the world are praying: 

an orphan in India, a widow in Niger, a teenager in an inner city, an elderly woman in your neighborhood, 

someone struggling to raise a disabled child, another person just diagnosed with cancer. 

And they are crying out to God through prayer. Might you be the one God is sending? 

Might you be the answer to someone's prayer? 


He Walks Among Us by Richard and Renee Stearns 에서


Posted by pleasing2jc
2018.06.08 22:31

남의 슬픔이나 아픔을... 분류없음2018.06.08 22:31

남의 아픔이나 슬픔을 예술화하는 건 지극히 조심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사업적, 상업적인 성격이 짙다면 훨씬 더더욱 그러하다.


한 여배우가, 역사 속 아픔을 겪은 여인들의 얘기를 노출이 심한 사진집으로 제작했다가 호된 비난을 받고 활동을 멈춘 적이 있다.

ㅅㅇㅎ 사건을 유가족도 접촉하지 않고 영화로 만들었다가 혹평을 받은 이들도 있다. .

참혹한 아픔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로 불러서 온갖 비판을 받다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울면서 기자회견해야 했던 가수도 있다.

주인공이 불치병으로 죽는 스토리를 미화한 영화나 드라마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겪은 이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 

그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면 더더욱 그러할 거다.


슬픈이나 아픔을 겪은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의 앞에 그것을 내놓고 싶지 않아서 침묵하는 기간을 거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슬픔/아픔을 섣불리 끄집어내어 예술화하거나 상업화하려한다면

본인에게 위로가 되기는 커녕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클 것이다.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Posted by pleasing2jc
2018.06.05 08:11

accepting one another 분류없음2018.06.05 08:11

오늘 encounter with god 본문이 로마서 15 장이다.

포커스는 accepting one another. 

이런 말을 대할 때 참 난감해진다.

지금 다니는 교회는 잘 모르겠지만,

교회나 공동체라는 곳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간간히 독특한 사람들이 섞여있기도 하다.

지금 감옥에 있는 ㅊ ㅅ ㅅ 같은 사람도 교회에서 기도제목을 내며 열심히 출석한거 같고

각종 이슈로 신문을 오르내리는 많은 목사들,

사기꾼도 있고...

갑질하는 이들도 있을 거고

분쟁을 일으키는 이들도 있고

사교생활로 그냥 놀러오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비지니스를 위해서 교회다니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accepting one another   하면 그런 이들이 먼저 떠 오르면서. '성경말씀이 참 이상적인 statement 다. 사도바울 시대 교회는 달랐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사도바울 시대의 교회도 있겠지만 예수님이 상을 뒤집어 엎어야 했던 성전도 있으니... 하... 모르겠다. 출근 전 5 분 만에 쓴다. 

어쨌거나 오늘 말씀 주제는, 큰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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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다시 5 분동안 reflection.

본문에 대한 해설을 비교적 찬찬히 읽어보니, 유태인과 이방인의 다름에서 비롯된 division 의 배경이 있다고. 그런 상황 속에서  accept one another 이라면 좀 더 이해가 된다.

본문의 해설 끝에 아침의 의문에 답이 있구나. 

This does not, of course, mean that in Christ every kind of behavior can be tolerated. The church is called to holy living as well as to unity. It is not that anything goes but rather that anybody may come. When they come, they are to be welcomed, but this very welcome is in itself a powerful means by which everyone who does come can cast off “the deeds of darkness and put on the armor of light” (Rom. 13:12).

또 초대교회는 문화나 신학의 충돌 등이 있었어도, 비교적 더 순수했겠지.. 흠.








Posted by pleasing2jc
2018.06.01 00:26

라마단 분류없음2018.06.01 00:26

라마단 도중이다 (내가 아니라 이슬람교에서).  6 월 14 일에 끝난단다. 

자주 보는 지인  두 명이 라마단을 매년 지킨다.

올해 그들이 금식을 시작하는 날,  "나도 라마단에 대응하는 기도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아주 살짝 스쳤는데,

두 번 생각해 보니 말도 안된다.


라마단을 하는 지인들은 무척 좋은 이들이다. 아주 상식적이고 예의바르고 무척 fair 하고 부지런하고 professional 하고 friendly 하다.  그들에게서 배우는 점도 많다. 

일부 기독교인들보다도 낫다.

이런 기사를 찾아  읽어본다. 이슬람교 지인이 몇 있다는 것 외에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는 별로 없는 편이기에 찾아보니 나온 기사.

기사에 나온 Volf 의 <Allah> 라는 킨들책을 2014 년에 다운로드해 놓고 다 안 읽었구나. 읽어야겠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신이 하나인가 아닌가는 내가 아니라 전공 학자들도 머리 빠지게 연구해도 결론을 낼 수 없는 영역이니

뭐라고 결론내리는 건 미뤄두고.

내가 기억하고 실천할 것은

(1) 기독교의 적은 다른 종교가 아니라는 것.  

(2) 라마단 기간에 나 또한 기도를 조금이나마 더 열심히 한다면 (금식은 못하더라도) 정의, 평화, 사랑, 화목 등등을 위해서 기도하자. 예를 들면 이사야 58: 6-11 에 나온 거처럼 ( <Following Christ in a consumer society> 에 인용된 부분이 6-11 절. 근데 58 장 전체가 applicable 하네)


Isaiah 58:6-11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Is not this the kind of fasting I have chosen:
to loose the chains of injustice
    and untie the cords of the yoke,
to set the oppressed free
    and break every yoke?
Is it not to share your food with the hungry
    and to provide the poor wanderer with shelter
when you see the naked, to clothe them,
    and not to turn away from your own flesh and blood?
Then your light will break forth like the dawn,
    and your healing will quickly appear;
then your righteousness[a] will go before you,
    and the glory of the Lord will be your rear guard.
Then you will call, and the Lord will answer;
    you will cry for help, and he will say: Here am I.

“If you do away with the yoke of oppression,
    with the pointing finger and malicious talk,
10 and if you spend yourselves in behalf of the hungry
    and satisfy the needs of the oppressed,
then your light will rise in the darkness,
    and your night will become like the noonday.
11 The Lord will guide you always;
    he will satisfy your needs in a sun-scorched land
    and will strengthen your frame.
You will be like a well-watered garden,
    like a spring whose waters never 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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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8.05.25 23:59

... 분류없음2018.05.25 23:59

모처럼 long weekend 에 쉰다.

토요일에 일을 못 가기에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왔다.

그런데 오늘 따라, 내일 여전히 일하러 가야 하는 이들이 맘에 걸린다.

금요일 밤이면 "(토요일에 어차피 나올 거) 우리 그냥 오피스에서 camp out 하자" 며 함께 투덜거렸는데..


직업상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엔지니어도 있고, 회사원 또 회사 중역인 사람들도 가끔 있고, 의사도 있고 하지만,

또 근로자도 많다. 테슬라 같은 공장 등에서 일하는 이들도 있고 - 


많은 이들이 주말에도 일하고 (6-7 days/ week) 새벽 4-5 시부터 나가서 일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 지역 높은 housing price 때문에 시골로 이사가서  매일 긴 거리를 통근하기도  한다.

이 지역에 오랫동안 렌트로 살아왔는데, 

집값상승으로 인해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친척나 친구의 집에 들어가서 함꼐 사는 이들도 있고.

그들은 (세계에서 몰려온 연봉 높은) 엔지니어들을 그 문제의 주범으로 여긴다.

사실 엔지니어들은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는데.. (이 지역 높은 housing price/living expense 등등)


지금 열심히 일하는 것.... 아침일찍이나 저녁 늦게까지, 때로는 쉴틈도 없이 또 토요일에 일하는 것이, 

아주 솔직히는 나의 필요에 의한 것인데,

나의 일이 많은 이들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음을 최근 더 실감하고 있다.  


지금 열심히 일하는 시간이 그들과 solidarity 를 하는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참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들을 항상 기억하며   더 즐겁게 열심히 일하고 더 절제하고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또 그들에게 감사하고...


하지만 이번 long weekend 는 가족과 함께 잘 쉬어야겠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다시 뛰어보자. 






Posted by pleasing2jc
2018.05.17 06:57

읽고 싶은 책, 쓰고 싶은 글 분류없음2018.05.17 06:57

읽고 싶은 책

읽고는 싶은데 요즘 시간도 없고 성향도 그렇게 되어서 못 읽고 있는 소설들이 많다.

그 중 하나는 Flannery O'Connor 의 책이다. 대표적 short story 몇 개는 읽었다.

팀 켈러 등의 설교에도 자주 등장하고 또 Prophetic Imagination 책 서문에도 등장한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읽어야하는데 모르겠다.

또  얼마 전 타계했다는 Tom Wolfe 의 Bonfire of the vanities 도 읽고 싶은데 시간이 날지. 

대학생 때 욕심이 나서 구입해 둔 James Joyce 의 소설, Kafka 등등의 소설 등도 다 읽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소설을 읽기는 커녕 영화나 드라마도 잘 못 보는 성향이 되었다는 거다 - 적어도 현재는.


쓰고 싶은 글

 오래 전 Flannery O'Connor 책을 읽고 끄적거렸던  글이 떠올랐었는데,

fiction 으로 습작해 보았음 좋겠다던 생각했었다. 또 다시 읽어본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시간이 많아지면 습작해 볼까? 원래의 나는 소설 습작형 인간이 전혀 아니다. 대학교 때 writing 을 minor 한것도 내가 가장 못하는 걸 영어로 한번 해보자 하는 도전정신에서 했을 뿐이다. 그러니 습작을 언제 또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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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도 아픔이 있고 힘듦이 있어도 그런 것이 없는듯 행동한다.

그렇다고 그런 행동이 따뜻함과 사랑이 넘치는 진정한 밝음이 아닌,

뿌리깊은 자기연민 위에 덧붙어진 가벼운 농담이 어우러진 피상성의 연속이다.

그리고 때론 상대편에게도 그런 것을 요구한다.


상대편이 최상의 컨디션일 때는 다가온다.

그러나 상대편이 힘들고 아플 때는 멀리 떨어져서 

최상의 컨디션을 홀로 회복하길 기다린다.


혼자서 버둥버둥 해결해야 하는 것이  반복되고 나면,

그들에게 똑같이 무관심해진다. 맞다, 똑같이 무관심이다.


들에겐,

그들만의 눈물은 진정한 눈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 되어버린다.


다른 사람의 부는 졸부의 것이 되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성공은 다른 조건들 때문에 이루어진 성공이 되어버리고 운이 따랐을 뿐이다.


다른 사람의 수나 잘못은, 그가 머리 나쁜 이니까 그런거고.

나의 실수나 잘못에는 온갖 변명이 다 붙는다.


나의 아픔은 참아픔이나,

다른 사람의 아픔은 진짜가 아니다.


그들은 세상의 중심이다.

그들 안에서도 서로가 중심이 되어 관심을 차지하려고 암투를 벌인다.

그들 안의 다른 이가 주인공이 되려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관심을 자기에게로 끌려는 어린아이가 되어 떼쓴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을 하나하나 주인공 만들어주면서 은근히 자신의 세력을 즐기는 숨어있는  주인공 또한 있다.

그러나 자신들이 스스로 내세운 주인공임을, 

또 그 구성원 사이에서도 자신 각자 모두가  주인공임을 모른체,

쓴 맘을 가지고 각자 홀로 아파하는 바보들이다.



그런 세상과 자아에 갇혀있으면 답답하다.

그들, 우물 안 개구리 말고 더 넓은 세상에 나가고 싶다.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져도 좋으니 더 넒은 세계에서 숨쉬고 싶다.  (2012)


Addendum: 그 곳을 벗어나면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고 큰 세계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 (2018)


Posted by pleasing2jc
2018.05.14 22:02

this week 분류없음2018.05.14 22:02

학벌, 직장, 연봉, 

achievement and performance

집 - 동네, 방은 몇 개, 화장실은 몇 개, 집크기는? 인테리어

자녀교육

자기개발

인맥

부동산

투자 

은퇴계획

여행 - 비행기  좌석 & 호텔 status etc.

백화점 VIP status

레스토랑 

스포츠 레저

취미

옷, 명품가방, 명품 신발, (다행히 이 지역 사람들은 패션에 많이 신경 안쓴다. )

최신 전자기기 

fitness.

피부관리와 시술 (주변에 정말 많이들 받는다)

가문의 영광

등등등


위와 같은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중심이 된  그런 일생을 살고 싶지 않다.

이렇게 리스트만 보니 어쩐지 속물스럽고 헛되다. 

물론 일도, 의식주도, 자녀교육도 여가생활 등등도 다 중요하긴 하다. 무조건 그것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위와 같은 것들을 추구하는데만 소진 혹은 탕진되는 경우를 말한다. 

뭔가 인스타그램스러운 삶

그래... 그렇게 추구하며 사는 삶의 목표는 누군가? ㅌㄹㅍ 일가? 성경 속의 솔로몬? 


위와 같은 것들만  나눠지는 대화에 쓰는 시간도 아까울 때가 많다. 그런 대화에 참여하느니 차라리 자거나 운동하거나 공부하는게 낫지. 혹이라도 그런 대화에 잠시라도 참여할 경우, 그 후 맘이 정말 많이 힘들다. 왜 그럴까 하는 질문부터, 그 영향받지 않고 스스로를 바로잡기 위한 치열한 struggle까지.   

   

 prophetic imagination 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까지 다 읽어보도록 하자.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