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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5 21:19

Stewardship of privilege? - 2 분류없음2019.09.05 21:19

아래와 같은 글을 어제 쓰고 오늘 아침 QT 본문을 봤는데, 본의아니게 계속해서 stewardship of privilege 시리즈다.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그들을 discipline 하시는 걸 예고하시는  아모스 3:1-15 말씀이다. 

본문 설명의 마지막 문단을 옮겨오면. 

Israel is judged for failing to meet the responsibilities of her election. This is a sobering thought for God’s people today, who have been chosen to be his “holy nation” to declare his saving acts to the world. His choice of us carries with it responsibility. We are chosen not simply for the privilege of knowing God, the joy of forgiveness and the certainty of eternal life, but also—and inextricably—to serve God’s purpose of bringing salvation to his beloved world.


더 이상 geneology 에 따른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 백성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권이 있다. 그와 동시에 책임도 있다는 얘기인데..


그 특권과 책임...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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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11:21

Stewardship of privilege? 분류없음2019.09.04 11:21

1. 특권이 없는 세상은 없다.

요즘 한국에서는,  특권행사의 과정이 타당한가, 불법성은 없는가 그것이 쟁점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반대를 위한 정치싸움, 여론몰이인지 잘 모르겠고. 한국 정치에 대해서 opinion 도 없고 opinion 을 표할 수 있는 (법적) 자격도 없다.  다만 그 땅에  다방면의 정의가 이뤄졌음 좋겠다. 

일반 국민 정서와 그 반응을 한국 소식들을 보면 계층,계급, 수저 등으로 불균형이 너무나도 큰가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인종, 배경, 경제적 정치적 파워, 젠더, 그리고 meritocracy. - 밑의 만화에서 볼 수 있듯이. 얼마전 미국판 스카이캐슬 사건도 그렇고. ㅌ 옹 가족들이나 부ㅅ 패밀리 등등 미국의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 (그야말로 스카이캐슬) 는 있다. 미국에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경향이 큰 거 같다. 한국에서는 몇 다리만 건너면 (혈연, 지연, 학연) 다 연결되는 경향이 크지만, 땅덩어리 크고 다원화된 미국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볼 때도, 혈연, 지연, 학연이나 배경 등이 한 사람의 성장이나 진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작은 예를 들면 일부 명문대들 원서를 쓸 때 그 학교 출신 가족을 쓰는 항목이 있다고 오래전부터 들어왔다다른 모든 조건이 같을 때 가족 동문이 있으면 더 advantage 을 주는 학교들이 있다. (우리 아이는 그런 학교들에 하나도 apply 안 하고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early action 으로 들어가버렸다. 가족친척 아무도 다닌 적 없는 새로운 지역의 새로운 학교로. ) 

2.  Privilege is never the problem: it's the stewardship of privilege that's the issue.  

                 -- 이 근처 꽤 큰 multiethnic 교회의 한 흑인 목사님이 쓴 책에서 옮겼다. <Insider Outsider> by Bryan Lorittis.   그 분은 흑인이기에 백인 사이에서는 minority - outsider 이(였)지만 자신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시기에 흑인 기독교계에서는 자신의 last name 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특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특권을 가지셨는데 , 저자의 (저자 포함 그를 믿는이들의) good 을 위해서 그 특권을 "leverage" 하셨다는 신앙고백을 한다. (책 자체는 띄엄띄엄 읽고 있는데 자신의 경험을 나눈 책이다.)


3.  Stewardship of privilege...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수님의 example, 신앙선배들의 삶, 개인적 reflection,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4. 요즘  천천히 읽고 있는 Rowan williams 의 Christ on Trial 에서 그런 점을 좀 다룬다. 어렵다. 휙 읽는다고 깨달아지는 것이 아닌 삶 속에서 묵상하고 습득해 나갸야 하는 거 같다. 그에 관한 다른 책들도 찾아 보려 한다. 

5. 그런데 한국에서는 특권계층에 속한다 하더라도, 미국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오거나 하면 그 모든 특권들과 동떨어지는 위치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유학생들 이민자들이 그런 '서러운' 시간들을 보냈고 보내고 있다. 특권계층이라고 할 수 없고, 한국에서의 혈연, 지연, 학연도 아무런 소용 없이 개개인의 재량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나갸야 하는.

6. 한편 미국 내 meritocracy 에 의해서 동양계는 새로운 엘리트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경향도 있다.  

7. 그런 상황 속에서 stewardship of privilege 라고 할 때, 내가 특권계층의 섬김과 이해를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지, 아니면 특권계층으로서 섬겨야 하는지 복잡하고 묘하고 재미있는 위치에 놓여있게 된다. 어떻게 묵상해야 하는지??? 위의 Brian Loritts 목사님이 그러하셨듯 백인들 사이에서는 outsider 일 수 있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insider 일 수도 있고. 한국계 이민자들 같은 경우, 한국에 가면 특권계층이 될 수도 있는 - 아니면 반대로 한국에서 insider 가 전혀 아닐 수 있는... 

8. Rowan Williams 가 얘기하는 insider outsider 의 개념은 그런 인간적 기준의 그것들을 초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거기서 발견한대는데... 인간들 모두에게 내재된 poverty 와 exclusion 이 있다는.  즉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뜻이리라. 

9. 아..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표어가 "Everyone's welcome, Nobody's perfect. Anything's possible" 인데 nobody's perfect 라는게 그런 의미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교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니는데 미국의 (백인 전통적) 특권계층도 많은 듯 하다. 그 교회 목사님은 우리 내의 다뤄야 하는 죄의 문제만 해도 많기에 (중독 등의 문제들 등등) 그것만 다뤄도 앞으로 몇 십 년이 걸릴 거라 설교한다.  

10. 그건 그렇고 -- 어디에 position 하는것도 multi-dimensional 작업이고,  stewardship of privilege 도 전혀 단순치 않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임이 틀림없다.   

11. 하나님의 시각, 차원, 좌표로 스스로를 또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눈이 필요하다. 




https://www.rnz.co.nz/news/the-wireless/373065/the-pencilsword-on-a-plate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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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6 21:31

life together 에서 분류없음2019.08.26 21:31


최근 인상깊게 들은 강의의 결말 부분에 인용된 본훼퍼.   첫문장만 인용되었었다. Life Together 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책장에서 책을 찾아서 뒤적거리기보다 인터넷 서치를 해 보니 그 단락을 옮겨놓은 페이지가 있어서 잘라왔다. 

그 강의에서 나눠진 강사의 경험, 그리고 insight 와  성경해석 등도 아주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건 여기 지금 적을 필요는 없고...

 

그 강의가 논한 영역에 제한되지 않은 더 큰 의미의 그리스도적 사귐을 돌아볼 때도 위의 인용구가 참 relevant 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 사도바울이나 많은 사도들도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공동체와 교회에의 비전을 가진 이였고, 그를 나누고 실천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이였음이 틀림없다.   그들의 비전과 위의 인용구 속의 "그리스도적 사귐을 파괴하는" 사람의 꿈은 뭐가 다를까 심사숙고해 봐야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Life together 을 나중에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우선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고.)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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