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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4. 28. 20:32

어쩌다 보니 우연히 카테고리 없음2022. 4. 28. 20:32

최근 동유럽계 환자들을 치료하는 경우가 이전보다 좀 더 잦은 편이다.

이름이나 액센트를 들으면 아 그 쪽에서 왔구나 알 수 있다. 

요즘은 그 쪽에서 온 환자를 만나면 될 수 있으면 출신국에 관한 질문, 개인질문을 직접적으로 많이 안 하게 된다.

전쟁 반발 직후, 이름이 동유럽계인데 영어가 좀 서툰 환자가 한 명 온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What language do you speak?"라고 물었더니

"I speak Russian," 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Oh, sorry. I don't speak Russian, but I will try my best to explain.." 이라고 웃어넘기면서 treatment plan 을 설명하고 치료한 적이 있다.

또 다른 환자 한 명은 왜인지 -- 자신의 액센트를 숨기려고 했었을까, 말을 많이 안 하려고 노력하는 눈치가 보여서 많이 안스러웠다.

 

워낙 다양한 나라와 문화의 출신들이 모여 살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Covid 19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도 중국계 coworker 들이나 환자들을 그 전과 똑같이 대하려고 노력했고, 민감한 대화는 피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한 번은, 미국의 적국으로 분류되는 중동 한 나라 출신 이민자 치과의사가, 내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먼저 연락해와서 도움을 준 적도 있다. 

미국과 외교적 우호관계에 있지 않은 이민자들은 이 곳을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

어떨 때는, 이곳이 전쟁터도 아니고 내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medical doctor 도 아니지만, 적군도 치료한다는 의료윤리는 어떤걸까, 생각을 좀 stretch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지난 주말에는 우연챦게 Anton Chekhov 의 단편소설을 읽었고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들었다. 

일부러 러시아 문학과 음악을 찾아 접하려 한것도 아닌데.. 

알게 모르게 세계가 얼마나 연결되어있나, 우리가 러시아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영향을 받고 있나 알 수 있다. 

이번 주 초 출근하며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를 듣는데 역시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을 계속 들려준다.

담담히 작곡가와 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진행자에게서 현 세계정세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는듯 했다.

 

모두를 위해서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한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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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가까이 2022.05.20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2022. 4. 7. 21:50

드라마에서 와 닿은 구절 카테고리 없음2022. 4. 7. 21:50

로마서 등을 공부하곘다고 했는데 진도가 엄청 느리다.
게다가 최근 TV 드라마들에 distract 되기도 했다.
일하고 지쳐서 들어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방전상태의 머리로. 로마서의 웅장한 구원관 (justification) commentary 한 문단 공부하는것보다는 드라마를 보는게 훨씬 쉬웠으니까.
그런데 최근 논란이 된 결말의 드라마 <스물 ㄷ 섯 스물 ㅎ나> 를 다 보고는 무척이나 허탈해졌다.
만화처럼 시작된 전반부와 달리, 이토록 현실적이고 절절한 엔딩이라니.
무척 열받았다, "내가 이 드라마에 빠져서 로마서를 안 읽다니!"
(그 드라마 엔딩에 대해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으나, 지금은 그 그대로의 엔딩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들을 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세계관, 가치관, 각기 다른 성격들과 인생들을 엿볼 수 있는 장점이 있긴 하다.
위의 드라마에서 인상깊은 인용구 하나는 건졌다. 드라마의 exegesis 와 hermeneutics 와 관계없이 '와 닿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재난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과정 속에서 깊은 고민과 트라우마를 겪는 남주인공에게 여주인공은 "지금 네가 느끼고 있는 모든 게 네가 성장하는 과정일 거야 힘내"라고 위로한다.
남주인공의 답: 성장... 난 이딴 감정을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
그 답을 들은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자신들의 관계가 이전과 같지 않다고 서운해했지만, 중년 시청자 입장에서는 무릎을 치게 되는 답이다.
세계와 이웃이 고통받는 가운데, 자신의 성장에 집중하며 힘을 얻는다 는 것은 어불성설이긴 하다.

기독교에서도 '성화'가 '개인의 성장/성숙'으로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그라나 '성화'라는 것은 남주인공이 느꼈던 것처럼 이웃의 고난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만 성장/성숙하는것에 집중하지 않는것이다.
남주인공처럼 나에게 집중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시선에서 세상과 이웃을 바라보는 태도가 아주 필수적인 요소이다.


드라마에서 와 닿는 구절로 인해서 시작된 짧은 생각을 후딱딱 마치고, 느릿느릿 진행되는 로마서 공부로 돌아가야겠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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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가까이 2022.04.13 2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에서도 로마서 해석의 실마리를 발견하시는군요 ㄷㄷㄷ

2022. 3. 24. 23:15

헉.. 카테고리 없음2022. 3. 24. 23:15


어디선가 이걸 보고 잠시 헉 했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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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2022.03.28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pleasing2jc 2022.03.28 2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전 위 방법으로 따지자면 3.1 운동 끝나고 문화통치 초기 쯤이죠. 그래도 어린 세대가 볼 때는 다 그게 그거죠 ㅋㅋ

      참, 저번에 책읽고 잊어버린다는 것에 폭풍공감하셨는데요, 전 제가 최근 입덕해서 귀여워라하는 김태리 배우님도 비슷하다는 유툽 영상보곤, 그 증상이 꼭 나이탓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ㅎㅎ

    • 더가까이 2022.03.28 2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나이탓이라구요!!! 젊었을때는 기억력 이렇지 않았어요!!!!!
      (but 이것 마저도 불분명한 기억 😜 )

    • pleasing2jc 2022.03.28 2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