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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7 18:27

하루의 단상들 분류없음2019.08.27 18:27


1.    오늘 일끝나고 마사지를 받았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사지를 받는다. 

지난 주일, 오랜만에 토요일에 일하고 어꺠 통증이 있어서 남편에게 '살짝' 두드려 주길 부탁했는데, 

남편이 힘조절을 못해 두드리는데, 작용-반작용에 따라 내 허리근육이 뭉쳤다. 

쏟아지는 주먹의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 몸에 힘을 주다보니 생긴 일. 

어젯밤에는 얼음찜질과 열찜질을 해서 좀 나아졌고,  오늘 마사지를 받고 나니 훨씬 더 풀렸다, 

남편의 두드림을 직접 받은 부분의 속근육에는 멍이 들었나보다. 누를 떄마다 아프다. 

남편은 내가 captain marvel, 슈퍼 히로, 아니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슈퍼 우먼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다. 

전혀 아니다. 

아니면 자기가 무슨 슈퍼 히로인줄 아나보다.

그것도 전혀 아니다.

6 개월 안에 캡틴 아메리카의 몸을 만든다면 남편의 차를 바꿔줄 의향이 있다 




(아.. 차를 바꿔줄 내 능력이 되는가 마는가는 둘째 치고. 남편이 무척 검소하다는 알기 떄문에 하는 얘기다. 또 차 리스 기간이 꽤 남았다. 6 개월 안에 몸을 바꾸고 남은 리스 기간 2 년?간 그 몸을 유지하는 건 무척 힘들지 )


그건 그렇고 나는 통증 없는 몸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 어제 밤에는 잠자리에 누우며 눈물이 찔끔 나면서 기도가 절로 나왔다.. 나 스스로를 위해서 기도한지는 진짜 오래 되었는데, 이렇게 스스로를 위한 기도를 하다니. 


2. 나의 통증이 남의 통증을 relieve 한다...

남의 아픈 이를 치료 하다보면 내 몸은 지치고 아파온다. (다른 종류의 힘을 얻기도 하지만 그건 딴 얘기고).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아파오도록 일을 할 때, 상대편의 더 심한 통증은 relieve 된다는 것.. 


3. 같은 원리로 안마사들을 볼 때 안스럽다. 나는 그들에게 내 몸을 맡기는데, 체격도 크지 않은 여인들이 애써서 안마를 하는 걸 보면 안스럽다. 그래서 팁을 많이 주려고 한다. 

오늘도 그렇게 안마를 받고 나니, 그들의 수고로 인해 내 허리근육은 많이 풀렸다. Anna 에게 고맙다. 

 

4.  그건 그렇고. 마사지를 받으며  밑에 인용한 그리스도적 사귐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봤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돌아가셨다 (부활하시긴 하셨지만)

본훼퍼는 감옥에서 돌아가셨다. 

1 세기 교회를 위해서 몸바쳐 일하던 사도바울과 베드로 등 대부분의 사도들은 순교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꿈을 싫어한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꿈이었을 인종평등의 꿈을 꾸었던 "I have a dream" 의 마르틴 루터 킹 쥬니어 목사님은 암살당했다.

그리스도적 사귐을  위해서는 죽어야 하는가? 


인간의 꿈으로 뭔가를 억지로 이루려 하면 그리스도적 사귐이 파괴되고,

진정한 그리스도적 사귐을 이루려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위의 예수님과 사도들, '위인들'처럼 실제로 죽지는 않더라도, 그리스도적 사귐을 위해선  분명 '죽어야'하는 부분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뭐 이런 결론에 이른 사고단계의 흐름을 스스로 accept 하지 못하지만, 마사지 받으면서 잠결에 한 구멍투성이 생각이기에 용서해준다.  

그런데 결론은 말이 된다. 


그게 예수님, 사도바울과 사도들의 비전과 그리스도적 사귐 파괴를 유래하는 꿈의 근본적 차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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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6 21:31

life together 에서 분류없음2019.08.26 21:31


최근 인상깊게 들은 강의의 결말 부분에 인용된 본훼퍼.   첫문장만 인용되었었다. Life Together 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책장에서 책을 찾아서 뒤적거리기보다 인터넷 서치를 해 보니 그 단락을 옮겨놓은 페이지가 있어서 잘라왔다. 

그 강의에서 나눠진 강사의 경험, 그리고 insight 와  성경해석 등도 아주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건 여기 지금 적을 필요는 없고...

 

그 강의가 논한 영역에 제한되지 않은 더 큰 의미의 그리스도적 사귐을 돌아볼 때도 위의 인용구가 참 relevant 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 사도바울이나 많은 사도들도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공동체와 교회에의 비전을 가진 이였고, 그를 나누고 실천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이였음이 틀림없다.   그들의 비전과 위의 인용구 속의 "그리스도적 사귐을 파괴하는" 사람의 꿈은 뭐가 다를까 심사숙고해 봐야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Life together 을 나중에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우선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고.)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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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1 19:30

wrestling in prayer 분류없음2019.08.21 19:30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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