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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14. 05:18

사역과 공동체 카테고리 없음2025. 2. 14. 05:18

개인적으로 약간의 두드러기 반응을 느끼는 두 가지 단어가 있는데 그건 "사역"과 "공동체"이다.  항상 그런 두드러기 반응을 가지는 건 아니긴 하지만서도... 사역과 공동체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데 왜 그럴까?  


내가 그런 (내면적) 반응을 가지게 된 이유를 점검해보면
첫째,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된 곳이 공동체와 사역을 무척이나 중요시하던 교회/모임이었다. 공동체와 사역에의 헌신과 희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곳이었다. 평신도들도 그러했다. 그곳의 헌신과 희생에 버금가는 이들을 지금까지 본 적이 별로 없다.  그곳에서 나도 자연스레 그것들에 큰 가치를 두게 되었지만... to make a long story short, 그 교회/모임의 한계와 과오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가지고 그곳을 떠났고, 그 휴유증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나만 그러했던 건 아니다. 그곳을 떠난 많은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심한 휴유증을 겪었었다. 지난 세월동안 그 교회/모임에  많은 사건이 있었고,  그 사이에 규모가 더 커진  그 모임의 문제는 더 심해진 듯 하다. 

나는 그 곳을 떠난 이후에도 한동안 공동체와 사역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들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했었다. 지나치게 열심이었던 교회생활.   그러나 돌아보면 그 때만큼 내가 망가져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극단에 치우친 공동체/사역 중심주의가 삶의 다른 영역에 악영향을 주었고, 공동체/사역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우월감과 정죄, 즉 교만이 심했었다.  진정한 성숙/성장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런 개인적 경험으로 인해서, 교회 &신앙공동체/사역에 지나치게 치중된 신앙을 지양하게 된 듯 하다.   


둘째, 모든 것에의 해답이 공동체에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 이전에 어떤 삶의 문제 나눔에도, "기도해봐" 하는 쉬운 답을 들으면 맥이 빠지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기도" 대신 "공동체"가 더 해답이 되는 걸 많이 본다. 아마도 공동체가 필요한 시대적 이유도 있어서도 있겠지만.. 흠...   


셋째, 신앙을 잘 가지고 있다면 모든 기독교인들은 다 사역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가정, 직장, 교회, 친구들 모임, 사회ㅡ 심지어는 애완동물과 자연만물에 대해서도.  그런데, 교회나 기독교 단체 내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만 사역의 의미를 한정하고,  그 일을 하는 "사역자"를 다른 기독교인들과 구별된 이들로 보는 사고방식이 느껴질 때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건 전문 사역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전문성은 인정하지만, 전문 사역자임을 어떤 위계질서 속에서 우위에 두려는  사고방식은 거부한다. 


넷째, 이건 미국보다도 한국의 유튜브 설교를 들을 때 가지게 되는 느낌인데, 공동체를 강조하는 목사님들의 agenda 가 느껴질 때다. 일부 목사님들은 교인들이 교회를 우선적으로 하고 서로간에 불화도 없고, 조화롭게 모든 사역이 잘 흘러가야 자신들의 삶이 편해지고 나아지는 것도 있지 않을까?

위의 느낌들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내 내면의 문제로 인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사역은 중요하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공동체와 사역만을 중요시하는 건 경계해야 할 듯 하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진정한 뜻을 가리는  우상이 되어서는 안되겠지. 과거 "성전"과 "율법"처럼....  


요즘 같은 시대에, 골방&공동체&광장에 대해서 많이 생각케 된다.  골방, 공동체, 광장 외에 또 다른 어떤 category 가 있는지 잘모르겠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전문가의 설명이 궁금하다.

어쨌거나 골방과 광장 없이 공동체만을 중시하는 형태의 신앙의 부작용이 위와 같을테고.  골방만 있는 신앙의 부작용이나 광장만 있는 부작용 등등,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형태의 신앙의 부작용이 다분하리라. 이 시대에 어떤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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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5. 2. 3. 16:03

아주 보통의 하루 카테고리 없음2025. 2. 3. 16:03

요즈음 같은 시대에 일상을 무사히 살아갈 수 있는 거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적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거 자체가 기적인 듯 하다.홍해를 가르고, 온갖 질병을 고치고, 오병이어와 온갖 기적을 행하신 것도 결국 '일상'의 회복을 위한 것이 아

mnrji.tistory.com

최근 인터넷에서 한국의 2025 트렌드 키워드가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아보하라고 하는 걸 봤다. 

그 키워드가 나온 배경은 화려하고 특별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는 소확행 SNS 중심 문화에 지쳐서라고 한다. 

화려하고 특별한 것들을 구하지 않더라도, 여러모로 사건사고가 많고 시끄럽고 혼란스런 세상이다.

그저 평범하고 평온한 하루를 바라는 맘.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것을 바라는 시대인가보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5. 2. 3. 02:33

글씨 카테고리 없음2025. 2. 3. 02:33

손으로 글자를 쓰는 일이 별로 없기에, 손글씨가 나날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천재는 악필이라는 말이 있다던데, 글자체로만 보면 천재이고 아래 그림처럼 wide doctor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 성경 필사하는 걸 새해 결심했었다. 

 

미리 해본 2024 작심삼일

2024 년에는 어떤 새해 결심/목표를 세워볼까 고심하다가, concrete 하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있음 좋을 듯 해서 성경필사를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성경읽기보다는, 신앙서적 독서나 인터넷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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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마다 해서 누가복음 일부, 이사야서 일부, 그리고 시편 42 편부터 124 편 (오늘 것) 필사했다. 눈으로만 읽으면 대충 훅 읽고 말텐데 필사하면 머리에 더 각인이 잘 되긴 한다. 시편, 잠언, 전도서 종류가 필사에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2025 년 부터는 사자성어를 조금씩 공부하려고 한다. 어린 시절 서예를 몇 년간 배우기도 했고 한국에서 고등학교 2 년을 다녔기에 초중급(?) 수준의 사자성어를 어느정도 알고 있다. 한자를 더 배우고 싶어서도 있지만, 글씨 쓰는 연습을 하고 싶어서도 그러기로 했다. 서예의 획을 긋는 정성이 내 직업활동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우선은 연필 (샤프) 로 연습하고 있다. 요즘 초등학생이 공부하는 사자성어 100 개 학습지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프린트했다.  아래의 문일지십이나 개과천선은 뜻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다. 그러나 한자로 쓰려니, 문일지십은 쓰기 쉬웠는데, 두번쨰 사자성어 개과천선은 좀 어렵다. 적어도 "wide doctor" 의 글씨체는 아니다. 

나중에 이러다가 문방사구를 구입해서 서예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용이 새겨져 있는 벼루가 너무 가지고 싶어서, 나의 할아버지께서 내게 용벼루를 주시는 꿈까지 꾸기도 했었다. 조선시대에 성장한 것도 아닌데.... 하기야 그 떄는 basic을 배우는 컴퓨터 학원, 서예학원, 주산속셈 학원 등등을 동시에 다녔었지.   세월이 흘러 어느 새, 스마트폰과 AI 등등의 시대가 되었네. 과학만화에서 보던 미래다. 

 AI (인공지능) 의 시대에 손으로 글쓰는 연습이나 하고 있어서야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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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