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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전 글에서 "지금은 안 그러지만 이전에는 응급환자가 있으면 전화를 받고 급하게 가야 하는 적도 있었다.  꼭 무슨 슬기로운 -- 생활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말이다," 라고 썼었다.

그 후, 지난 2 주 연속 금요일 오후 끝무렵에 전화를 받고 급하게 환자들을 보러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었다. 한 오피스에서 일이 끝나고 다른 오피스로 운전해서 가야 했었다. 

그 상황을 겪으며 드라마 <낭만ㄷ터 김ㅅ부> 속의  돌ㄷ병원의 징크스가 내게도 임하는구나 싶었다.

드라마 속 그 병원에는 "오늘 환자가 별로 없네요," 라는 류의 말을 하는 순간, 많은 응급환자들이 실려오는 징크스가 있다.

 

이제는 암 말도 하지 말아야겠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4. 3. 1. 06:35

on being a healthcare provider 카테고리 없음2024. 3. 1. 06:35

작년 어머니와 나눈 대화
동생이 교과서 챕터를 썼다는 (first author) 소식을 전해온 후다.  사진은 그 챕터에 나오는 그림. 동생이 하는 수술 중의 하나다. 
어머니: 00 (동생 이름) 이는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수술을 잘 하는 지 모르겠다.
: 원래 00 이가 어릴 때부터 호러영화도 좋아하고 손재주도 좋았잖아요?
어머니: 집안에 외과의사는 없는데... (외할아버지, 이모부, 고모들/고모부들, 사촌들 등 의사/치과의사는 있는데 외과의사는 내 동생 하나다.)
: 나도 (치아) 수술을 가끔 하지만 수술이 재미있더라구요. 
어머니: 너네 어릴 때는, 네가 외과의사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00 이가 외과의사가 되었네. 네가 어린 시절, 내가  손가락을 다쳐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 나이도 어리던 네가 얼마나 침착하게 잘 대처하던지... (어머니께서 시키시는대로 붕대를 감고 응급조처를 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 아... 아마도 그럴 수 있었던 건, 그 때 이미 의사의 꿈을 품고 있었었기 때문일거에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이 생각하시기로는  동생은 할아버지를 따라서 법조계에 가면 좋지 않을까 하셨고, 나는 외할아버지와 고모들의 영향으로 의사를 하지 않을까 추측하셨었다. 나도 장래희망에는 항상 의사라고 썼었다. 교회에서 배운대로 사랑을 실천하기에는 의사가 좋을 듯 했다.  슈바이처나 나이팅게일, 리빙스턴같은 이들의 위인전의 영향도 받았다.

중고등학교 때는 외과의사가 되어서 수술실에만 살아야겠다 생각했었다. 그 때 그런 생각을 가졌던 이유는 중고등학생의 눈으로 보는 어른의 세계, 특히 한국어른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힘들어보였다 -- 복잡다난한 인간관계가 특히 그러해 보였다. 그래서 일과 공부에만 집중하는 삶만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듯 싶다.  세상을 피해서 수술실에서 수술만 하면서 살자 그랬던 듯. (드라마 낭만 닥터 김 ㅅ 부의 라이프 스타일이 내가 바라던 딱 그거다.)

동생은 미국에 와서 자연스럽게 이과를 전공했고 치대에 가고, 아주 오랜 구강외과 트레이닝을  받은 후 외과의사가 되었다. 동생이 이 직업에 더 어울리는게 동생은 더 사람들에게 공감을 잘 해주고 손재주도 좋다. 
 

대학까지도 내 꿈은 항상 한결같았었다. 미국에 와서도 당연히 의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대학 3 학년 시절 Lordship 의 예수님을 믿게 된 후,  "(어린시절부터 붙잡고 살아온) 의사가 되는 꿈을 하나님 앞에 바친다"라는 결심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바치듯 했었다. 교회에서 무슨 설교를 듣고 나서였다. 겁도 없이 그런 결심을 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돌려주셨듯 내게도 의사의 꿈을 돌려주시지 않으실까하는 약삭빠른 계산도 섞이지 않았나 내심 고민하기도 했다. 그 후 교회생활을 지나치게  열심히 했고, depression 에도 걸렸었고, 여러모로 어려움이 닥쳐와서  성적이 확 떨어졌었다. 그래서 실제로 의대를 포기해야 했었다. - 함부로 그런 결심&헌신하는게 절대 아니다.  의대포기 뿐 아니라  진로 자체가 어떻게 될지 전혀 불확실하게 되었었다. 한 때는 미국 시골에 가서 숨어 살아야 하나 심각히 고민했다. 

그 후 이끄시는대로 좌충우돌하면서 살았다. Engineering 에 종사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일도 잘 안 풀렸고 적성에도 안 맞았다. 또 내 아이디어를 훔쳐서 프로젝트를 하는 post-doc 이나 내가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다른 석사과정 학생에게 주려던 지도교수님 등을 겪었다. 그 분야 선배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거였다. 만약 그런 일들을 겪지 않고 일이 잘 풀렸다면 engineering 을 했을텐데... 결국 여러 사건들을 계기로 healthcare 를 다시 고려하게 되었고 치대에 apply 했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내가 만약 싱글이었다면 의대에 apply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의대 수련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치대를 다니면서도 밤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한국에서부터 오셔서 도와주신 어머니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 부모님 뿐만 아니라 아이와 아이아빠도 수고가 많았었다. 

사람을 보살피는 일이라면 왜 간호사는 아니고 치과의사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졌는데, nursing 을 하기에는 내 이공계 백그라운드가 지나치게 강해서라는 답을 스스로에게 했었다. 또 nurse 의 lifestyle (night-shift 등등의) factor 도 있었다. 

치대를 가기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하나님꼐 기도하는 긴 기간이 있었다. 어떤 후배가 내 삶의 얘기를 듣더니, "정말 물 흐르는대로 사셨군요," 하던데, 그게 맞는 말이다. 지금도 그러하고..

어린 시절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진 것은, 외과의사같은 본격적 수술은 아니지만 microscope 밑에서 환자치료를 하고, 수술도 가끔 하고, emergency 환자들도 치료한다. 지금은 안 그러지만 이전에는 응급환자가 있으면 전화를 받고 급하게 가야 하는 적도 있었다. 꼭 무슨 슬기로운 -- 생활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직업이 아니라, 치아의 생명이 오가는 직업이라 넘 다행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막중감... 그걸 감당해 내었을 거 같지 않다. 암전문수술을 하는 동생은 암환자를 10 분만 보고 나와도 맘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그에 반해 나는 환자를 보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다. 왜냐하면 치료를 하면 대부분의 치통은 괜찮아지고 대부분의 치아는 살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가끔 (다른 병을 가진) 중환자들이 치아 치료를 받으러 오면 ... 치아치료는 하지만, 그 다른 병이 너무 안타깝고... 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기억하며 기도하는 이들이 몇 된다... 

점심도 못 먹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차트를 다 쓰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점심으로 싸 갔던 프로틴바나 고구마를 우걱우걱 먹으면서, 우리의 일상이 학생시절과 달라진게 뭐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만족한다.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인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아이아빠가 가져온 회사음식을 식탁 위에  펼쳐놓고 저녁으로 먹으면서, 아이아빠에게 우리는 여전히 학생처럼 살고 있다고 그랬다. 식탁도 학생시절부터 20 년 넘게 쓴 식탁이다. 아아이빠 왈,  최근 세일해서 10 불하는 바지 세 걔를 샀는데, 우리가 학생일 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는 거다.  그래.. 학생시절처럼  잔고가 얼마 안 남은 은행 통장 & 크레딧 카드 빚 땜에 걱정하고 기도하며 '돈'에 쪼달리는 삶은 이제 안 사니까 그게 크게 다른 점이다. 매일 회사음식과 고구마/프로틴바, 슈퍼에서 사 온 음식 등으로 간단히 먹으며 살지만, 주말에 한 번정도는 외식도 하고 일년에 한 두 번씩은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고 여행도 가니까.... 아이아빠도 최근 비용이 좀 많이 드는 일이 있었는데 (마땅히 그래야 했던), 그렇게 해도 그 전에 비해서는 큰 영향을 받지 않으니 학생일 때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아이아빠 회사에서는 밥도 공짜로 준다! 학생시절에는 밀카드 밥값을 내야 했는데~  치과의사/의사들의 임금이 비교적 높고 안정적인 것도 수련이 많이 필요한 전문직이라서 그렇겠지만, 그러한 것이 환자들의 well-being 에 더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물질적 reward 가 직업에의 만족도에 도움이 안된다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요즈음 (한국에서도 그러하지만) 미국 의대/치대 들어가는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healthcare 도 자본주의 사상에 지배되고 있는데, 내가 왜 healthcare 의 일을 하고 있는가? 마치 시대의 trend 를 쫓아가듯 진로를 바꿔가면서 택한 길인데, (사실은 멀리 돌아서 온 길이지만) 어떻게 다르게 살아야 하는가? 진정한 healthcare provider 로서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하고 기도해야 하는걸 느낀다.

특히나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니 더더욱 생각할 것들이 많다. 그 일은 누가 옳고 그른지 잘 모르겠다. 다른 방법으로 그 일을 풀어갈 수도 있을텐데....


어쨌든간에, 환자들을 대하는 맘과 태도, 사람들을 대하는 맘, life style, 돈을 벌고 쓰는 방법 등등등 그 모든 게 다 달라야 한다. 어렵다...  이 시대에 healthcare provider 로서 제대로 살려면 더 맘을 단단히 먹고 struggle 하고 기도해야 하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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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2. 27. 15:23

수행의 journey 카테고리 없음2024. 2. 27. 15:23

https://www.youtube.com/watch?v=QfLDObpaV7g&ab_channel=AANasseh 에서 퍼옴

 

치과의사들의 journey 를 다룬 유튭 영상에서 퍼온 이미지다.

치대를 바로 졸업하면 competence 의 level 인데, proficiency, excellence 의 수준을 지나 wisdom 에 다다르게 되는 journey.

치과 아닌 다른 clinician 이나 다른 직종 에게도 어느 정도 적용되는 것 아닐까?

분야에 따라 x axis 의 시간 value 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위 그래프에서의 2 만 시간은 40 hours/week 씩 50 week/year 를 일하면 10 년, 3 만 시간은 15 년이다. 

wisdom 의 경지는 leading our community 혹은 returning to our community 등등을 포함하는 수준.

학교들 원서를 쓸 때, 모두 다 community 에 기여하는 이가 되고 싶다고들 하는데, (나 스스로 포함)

그게 그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진정한 '나'의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serve 하는 이들의 삶에 기여하는 것, community 에 기여하는 것이 교육과 수련을 받은 이들이 당연히 할 일이 아닌지. 

계속되어야 하는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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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