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

« 2020/1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124

  1. 2020.01.18 (Empty nest)^2 혹은 2x(Empty nest) syndrome?
  2. 2020.01.01 2020 Royal Priesthood
  3. 2019.12.29 Christmas
  4. 2019.12.24 Christ - the sole Mediator in All relationships
  5. 2019.12.23 칠천 인
  6. 2019.12.01 God, Neighbor, Empire
  7. 2019.11.27 Thanksgiving
  8. 2019.11.21 ㄷ백꽃 필 무렵
  9. 2019.11.10 피아노 이모
  10. 2019.11.08 영화 기ㅅ충

아이가 새 학기를 시작하고 아이 아빠가 출장 중이라 home alone 이다.
두 배 혹은 제곱? 의 빈 둥지 증후군을 겪을 만도 한데, 그럴 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오늘은 일 끝나고 오자마자 쓰러져 잠들었다가 밤늦게  일어났다. 이거 쓰고 다시 자려고 한다. 내일은 일하는 토요일이다.
잠을 잘 자야 하는데 리듬이 꺠지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지난 주일, 아이와 아이아빠가 학교와 아시아로 떠난 날, 나는 교회 다녀와서 이불빨래 세 통과 집청소를 했고, 
주중에는 일, 첫 spanish class, 운동 etc 로 분주했다. 

틈틈히 설교/강의 듣기 + 독서도 하고 있지만, 최근 펭ㅅ에 입덕해서 하루에 한두개씩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래 강의/설교/뉴스 중심의 진지한 ㅇ튜브 contents 을 즐겨 보는 편인데, 펭ㅅ 입덕 후에는 ㅇ 튜브 추천에도 펭ㅅ만 뜬다. 
아이와 아이아빠가 스폰지밥을 즐겨 볼 때도 나는 "그 silly 한 걸 왜 봐?"시큰둥했었는데 말이다. 
동심으로 돌아간 거 같다 해야 하나?  너무 귀엽다. 



주말에는 교회도 가고 모두를 위한 기도도 하고, 읽고 싶은 책들도 읽고, 또 지인이 주최하시는 어떤 이벤트에 가려 한다.



아이가 대학에 간 첫 해에는 일이 너무 (지나치게) 바빠서 빈둥지 증후군 증상이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 바빴기에 아이의 방에 쌓여있는 어린 시절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도 대학 간 첫 해에는 미처 못하고 일년이 지난 후에야 할 수 있었다.

무척 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던 아이가 대학생활을 무척 좋아하는 것에 감사한 맘이 더 컸기에 내 빈둥지 증후군을 크게 의식 못 한 점도 있었다. 

또 작년에는 허리가 무척 아팠기에 허리회복에 집중했어야 했다. 양말을 신을 때나 기침/재채기 할 때도 허리가 아팠는데, 일주일에 서너번씩 마사지를 받으며 계속 일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계속 조심조심하고 있고 가벼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어도 아프지 않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매일매일 기억하며 감사드리고 있다



하여간에 빈둥지를 이겨내는 내 방법은 Don't stay in the empty nest and keep oneself busy. 또 be thankful and prayerful 인가보다.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20. 1. 1. 00:01

2020 Royal Priesthood 카테고리 없음2020. 1. 1. 00:01

2020 년의 내 키워드는 Royal Priesthood 로 정했다.  


밑에 옮긴  1 Peter 2: 9 에 royal priesthood 라는 것만 쏙 뺴놓기에는, verse 전체가 주옥같은 하나님 말씀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올해의  journey 에서 맞닥뜨릴 것들이 단어 하나나 성경 한 구절 한정되지는 않으리라. 

(그 외 소소한 개인적 resolution 들은 몇 있긴 하다. 예를 들면 spanish 배우기 등등)


1 Peter 2:9 English Standard Version (ESV)

But you are a chosen rac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a people for his own possession, that you may proclaim the excellencies of him who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marvelous light.


A new way of being human (<= The Day the Revolution Began 책에서 쓰인 phrase)

The biblical vision of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 "royal priesthood" vocation, is more multidimensional than either of the regular alternatives. To reflect the divine image means standing between heaven and earth, even in the present time, adoring the Creator and bringing his purposes into reality on earth, ahead of the time when God completes the task and makes all things new. The "royal priesthood" is the company of rescued humans who, being part of "earth," worship the God of heaven and are thereby equipped, with the breath of heaven in their renewed lungs, to work for his kingdom on earth. The revolution of the cross sets us free to be in-between people, caught up in the rhythm of worship and mission.  (p363 The Day the Revolution began by NT Wright)



지금까지 들은 설교들

Real Friendship and the Pleading Priest 

왕같은 제사장의 특권 

하나님의 형상과 다스림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 12. 29. 10:45

Christmas 카테고리 없음2019. 12. 29. 10:45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크리스마스 날 아침 salvation army meal delivery service 에 참여하기로 했다. 

원래 봉사활동 한 것은 public 하게 드러내는 거  꺼리지만, 기도를 계속하는 의미에서 써 본다. 


올해, 가족 모두 일, 출장, 학업, activity 등으로 바빴기에 holiday 에는 low key 휴식 모드로 지내려 했지만 크리스마스는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나는 연말에 열일모드이긴 한다)


크리스마스에 그런 봉사의 기회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인터넷 검색해서] sign up 했다.

아이와 아이아빠도  참여하겠다고 해서 모두 다 함꼐 할 수 있었다.  

아이는 salvation army 의 policy 중에 동의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대학생다운 의견표시를 하긴 했지만, 막상 meal delivery 을 할 때는 열심을 다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갔어야 했는데 모두 다 잘 일어나서 다녀왔다.

도시의 홈리스 문제들이, 사람들과 차가 드문 크리스마스 아침 더 도드라져 보였다.

샌프란시코 거리의 텐트촌과 카트들. 담요를 덮고 거리에 누워있는 사람들. 

홈리스 서비스 센터에는 아침부터 줄이 길었다. 그 센터에서 서브하는 크리스마스 식사를 아침부터 서서 기다리는 줄이었다.


 salvation army  본부는 자원봉사자들로 붐볐다. 크리스마스 옷과 모자를 맞춰입은 그룹들, 이벤트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이들 등...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다니 놀랐다. 중국계 사람들, 인도계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서도 신기했다. 단체로 온 이들도 있고, 어떤 인도계 사람은 혼자 온 이도 있었다. 


우리 clients 는 홈리스는 아니고 아파트/호텔이라 이름붙여진 곳에 사는 이들이었다.

salvation army 오리엔테이션에서 얘기하기로는ㅡ 우리의 "clinent" 들이 오늘 contact 하는 사람이 우리 뿐일수 있다고 했다.  


그 짧은 만남. 한 끼의 식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심하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이브 밤,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산타 옷을 입고 아파트 촌을 돌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선물을 "배달"했다.

선생님들의 산타 옷은 조잡했고 (수면바지같은 천 수염을 붙이고), 선물이라곤 사탕 &과자 한 봉지였다. 

20 대 초반 선생님들이었을텐데, 초딩 어린 맘에도 그들이 참 애쓰신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신나하시는 선생님들의 크리스마스 기쁨의 spirit 하고 미소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우리의 meal delivery 가 clients 에게 그런 순간일 수 있을까? 

아니, 모두에겐 그렇지 않았다.

일부의 사람들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환대했다. 어떤 이는 "i don't want it" 하면서 거부했고, 몇몇 이들은 집에 없는지 문도 안 열어줬다.자다가 나온 이들도 있었다.   우리를 기다린 듯 깨끗한 옷을 입고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미소로 맞이하는 몇 명도 있었고. 


리의 clients 을 대할 때 그들 한 사람 한사람의 dignity 을 fully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는지, 속으로 깊은 반성을 해야 하는 moments 도 몇 번 있었다. 갈 길이 멀다.

그래도  말구유의 아기 예수님께 귀한 선물을 하던 동방박사의 심정을 상상해 보려 했다. 


우리가 배달한 음식이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그래도  그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크리스마스의 작은 선물이 되길, 그들에게 몸과 마음의 영양이 되길 기도했다.

그들의 얼굴을 떠 올리며 기도한다. 


우리도 이렇게 박스를 들고 다녔다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Jesus] stands between us and God, and for that very reason he stands between us and all other men and things. He is the Mediator, not only between God and man, but between man and man, between man and reality. Since the whole world was created through him and unto him (John 1:3; 1st Cor. 8:6; Heb. 1:2), he is the sole Mediator in the world...

The call of Jesus teaches us that our relation to the world has been built on an illusion. All the time we thought we had enjoyed a direct relation with men and things. This is what had hindered us from faith and obedience. Now we learn that in the most intimate relationships of life, in our kinship with father and mother, bothers and sisters, in married love, and in our duty to the community, direct relationships are impossible. Since the coming of Christ, his followers have no more immediate realities of their own, not in their family relationships nor in the ties with their nation nor in the relationships formed in the process of living. Between father and son, husband and wife, the individual and the nation, stands Christ the Mediator, whether they are able to recognize him or not. We cannot establish direct contact outside ourselves except through him, through his word, and through our following of him. To think otherwise is to deceive ourselves.

But since we are bound to abhor any deception which hides the truth from our sight, we must of necessity repudiate any direct relationship with the things of this world--and that for the sake of Christ. Wherever a group, be it large or small, prevents us from standing alone before Christ, wherever such a group raises a claim of immediacy it must be hated for the sake of Christ. For every immediacy, whether we realize it or not, means hatred of Christ, and this is especially true where such relationships claim the sanctions of Christian principles.,,

There is no way from one person to another. However loving and sympathetic we try to be, however sound our psychology, however frank and open our behavior, we cannot penetrate the incognito of the other man, for there are no direct relationships, not even between soul and soul. Christ stands between us, and we can only get into touch with our neighbors through him. That is why intercession is the most promising way to reach our neighbors, and corporate prayer, offered in the name of Christ, the purest form of fellowship.”


― 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Discipleship and the individual 챕터 에서)


<God, Neighbor, Empire> 책에서 설명된 관계성 (relationality) 의 하나님과, 드라마 <ㄷ백꽃 필 무렵> 에 나오는 마을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떠 올리게 된 본훼퍼의 글. 


예수님께서 모든 관계의 mediator 가 되신다는 것.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과 reality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모든 관계의 mediator 가 되신다는 건, 예수님께서 모든 것의 중심, 즉 주인이자 왕이시라는 사실과 통한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mediator 가 되지 않는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한 배를 탄 한 운명 공동체이거나, 아주 친밀한 공동체일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신앙 공동체는 아닐 수도 있다. 

--- <God, Neighbor, Empire> 책에서는 이웃이 된다는 것에는 친밀감보다는 같은 운명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관계성의 하나님 안에서" 라는 조건을 내포하고 있는 거겠지. 

<ㄷ백꽃 필 무렵> 의 마을의 예를 들자면, 서로의 집에 뚝배기(?) 가 몇 개인지 서로 아는 친밀감의 공동체보다는, 남자 주인공 어린 시절, 이웃 아주머니들이 다 함께 그를 키운 거나 다름없다는 운명 공동체가 더 이웃다운 걸까?

물론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예수님께서 mediator 가 되신 관계 속에서 그래야 하는 거겠지.


 

어쩄거나,

하나님의 공동체 밖에서 한 개인이 홀로 생존하거나 성장/성숙할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않은 개개인들이 모인 공동체는 생존하거나 성숙/성장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위 본훼퍼 글의 마지막 부분 - Christ stands between us, and we can only get into touch with our neighbors through him. That is why intercession is the most promising way to reach our neighbors, and corporate prayer, offered in the name of Christ, the purest form of fellowship. 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 12. 23. 21:02

칠천 인 카테고리 없음2019. 12. 23. 21:02


어지고 어두워 보이는 세상 속에서, 전혀 기대치 못한 곳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접할 때 놀란다.

오늘, A 국 출신의 지인이 자신의 교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감동이었다. 

A 국은 난민이 많이 나오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그 지인은 난민은 아니고 오래 전에 이민온 케이스

기독교가 주된 종교가 전혀 아닌 나라인데, 그 지인은 자신이 크리스챤이라고 자랑스럽게 나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다니는 교회에 대한 얘기를 해 주는데, 콘서트 등을 해서 선교모금을 하고 그 모금으로 다양한 일들을 (A 국을 위해서도)  하고 있는데, 헌금 사용 등을 모든 교인과 transparent 하게 나눈다고.   수도(물) 와 전기 등을 공급해 주는 사업 등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 교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노인들도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선교지에 보내기 위한 선물들을 함께 포장한다는 얘기등. 



전혀 예상치 못한 나라출신사람들의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의 교회라서 더 감동이었다.

passionate 하게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두운 밤을 밝히는 작은 크리스마스 불빛을 본 느낌이다. 


그 교회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위와 같은 다양한 모임과 예배가 있다. 

(next "new membership service" 가 2016 이란다. 교회 홈피는 잘 업뎃 안 하는 교회군 :) )


혼자 남았다고 생각하며 우울해 하는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칠천 인을 남기리니" 하신 그 시절 하나님처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서 여전히 그의 일을 꿋꿋이 하시고 계신 하나님.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 12. 1. 10:53

God, Neighbor, Empire 카테고리 없음2019. 12. 1. 10:53

  부 교양서적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책이 아니다.

  풀러신학교에서의 강의 시리즈를 묶은 만큼 공부하듯 읽어야 효과적인 책이다. 

  아주 좋은 책이다. 챕터 구성을 왜 그렇게 했을까 의문을 가졌는데, 책을 다 읽고나서 preface 와 introduction 을 읽으며 이해되었다.      

   풀러신학교에서 이 강의 시리즈를 준비한 목적은 "we discerned that church leaders need opportunities to reflect on the integration of the justice, grace, and law in the mission of God..." 라고.

  책 전체가 형광펜, 및 볼펜 밑줄 동그라미 투성이가 되었다. 아직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은 개념과 연결고리 등이 있어서 반복해서 읽을 듯하다. 

  실천의 문제는 무겁기만 하다...

 책을 읽다가 아이아빠에게 물었다, "저자는 이렇게 살고 있을까요? 부담감 팍팍 주는 책을 썼는데...  (이렇게 무거운 과제만 던져주는 거 아닐까? --저자 본인은 책 가득한 방에서 연구만 하는 거 아닐까?..)"

 그랬더니 아이아빠 답, "훌륭한 분이야," 

 흠... 어떤 분인가 찾아봐야겠다 


   인터넷의 요약 및 리뷰는 여기 있다 

   http://readingreligion.org/books/god-neighbor-empire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 11. 27. 10:36

Thanksgiving 카테고리 없음2019. 11. 27. 10:36


어린 시절 한국에 있을 때 교회의 추수감사절 예배는, 추수를 celebrate 하는 추석행사로 여겨졌다. 쌀가마니와 송편이 연상되는.


미국에 와서, 또 해가 거듭될 수록 썡스기빙의 본래 의미를 조금씩 더 발견하고 있다.

'추수'감사절보다는 Thanksgiving 의 명칭이 더 어울린다.

 어딘가 보니 모세가 Thanksging 을 "invent" 했다는데..

광야를 헤매서 가나안 땅으로 가던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과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미국까지 온 필그림의 여정이 비슷해서 그렇단다..


그러니 정착해서 사는 농경민들의 추석과 필그림의 thanksgiving 은 그 성격이 좀 다르다,


얼마전     QT 본문이었던 민수기의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에서의 불평불만은 엄청나서 하나님의 분노를 살 정도인데,

 그에  대비되는 모세의 광야에서의 thanksgiving 이라.


그 thanksgiving 의 의미를 더 깊이 되새기는 기간이 되었음 좋겠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 이주한 이로서,

영적 이집트를 떠나 광야생활 혹은 포로생활을 하는 동시에 이미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이로서. 


그렇지만  퍽퍽하고 양이 넘 많은 터기를 매년 썡스기빙마다 챙겨먹는 전통까지 따라하기는 싫다.


그림은 여기서 https://www.dailyartmagazine.com/8-paintings-for-thanksgiving-that-will-warm-your-heart/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 11. 21. 19:36

ㄷ백꽃 필 무렵 카테고리 없음2019. 11. 21. 19:36


지막 본 드라마는 미드 실리콘 밸리였고 (시즌 6 는 나중에 몰아서 보려 한다),

한국 드라마는 최근 3-4 년간 잘 안 보고 있었다.

ㅅ카이 캐슬도  몇 편만 보고 마지막 회는 신문기사에 난 걸 읽었고,

화제작이라는 다른 드라마들도 신문사이트에 뜨면 클릭해 보고 내용을 파악하는 정도.


그러다 우연히 만난 멋진 드라마.

netflix 에 뜨길래 클릭해 봤다. 첫장면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유튜브건 netflix 건 뭐건 켜 놓고 화면은 안 보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이 드라마는 한 장면 한 장면 놓치기가 싫어서 자리에 앉아서 (혹은 운동하면서) 집중해서 봤다.

두고두고 다시 볼 만한 명작 드라마다.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 11. 10. 15:55

피아노 이모 카테고리 없음2019. 11. 10. 15:55

나에겐 이모가 여러분 계신다. 그 중 둘째 이모가 이틀전 돌아가셨다.

이모에 대해서 몇 자 써야, 가슴에  얹힌 이 뭔가가 좀 사라질 듯 하다. 

둘쩨이모는, 막내딸이신 우리 어머니와는 나이차가 15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둘째 이모는 신체에 장애가 있었다.

다른 자매들은 그 세대기준으로 키가 작지 않은 편인데,  둘쨰 이모는 척추의 문제로  체구가 많이 작았다.  이 사진 당시 초딩 3 학년이던 나랑 키가 비슷할 정도.  (사진의 중앙이 이모)


어린 시절에 놀림을 받았을 수도 있고 평생 움츠려 사실 수도 있었을텐데, 이모는 전혀 그러지 않으셨다.

몸이 약한 이모위해서 외할아버지께서 서울에 장만해 주신 집에 평생 사시면서, 전공인 음악을 살려 평생 피아노 선생님을 하셨다.

그래서 나와 내동생은 이모를 "피아노 이모"라고 불렀다.

이모 댁에 가면 피아노는 당연히 있었으며, 베토벤 얼굴 그림이 걸있었고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흔한 그림), 각종 악보와 LP 판 등이 많았다. 그리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온 학생들을 위해서인지, 위인전 한 세트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모댁을 방문할 때마다, 그 위인전 중에서 헬렌켈러만 집중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에디슨이나 퀴리부인 링컨 같은 분들의 위인전도 있었을텐데...

아마도 몸의 장애를 이겨내고 살아가시는 이모에게서 헬렌켈러같은 모습을 봐서인지...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에도 내가 왜 이렇게 헬렌켈러만 읽지? 스스로도 의아해했었다. (국민학생이었는데)



리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이모가  젊은 시절 이쁘기도 했고 활달해서, 남자분들과 데이트도 많이 하셨다고

그러시다 신체건강하시고 성격좋고 성실하셨던  이모부를 만나 결혼하셨다. 

80-90 년대, 두 분은 강남 한복판에서 음악 학원을 하셨다. 이모부께서는 학원 밴 (봉고차)를 운전하시는 등의 일을 하셨다. 



나와 동생도 이모의 학원에 다녔었다. 나는 바이올린을 배웠고 동생은 피아노를 배웠다.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던 원장실은 어른들의 아지트 비슷했다. 원장실 소파에 이모들과  (대학생이던) 사촌언니오빠들이 모여앉아 수다도 떨고 배달음식도 시켜먹던 기억이 난다. 중딩이었던 우리는 레슨을 받아야했고.

이모가 학생들 레슨을 시키는 모습도 기억난다.  당신보다 덩지가 더 큰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시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박자를 맞추시던..

이모는 항상 에너지 넘치셨고  명랑하셨고, 삶에의 애착과 열정이 대단하셨다.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낙관적 사람 중 하나이시다.


이모부가 돌아가신 후, 이모는 다른 지역으로 학원을 옮기셔서,  최근 1-2 년 전까지도 운영하셨다. 

몸이 안 좋아진 후, 집에 계시면서도 동네사람 피아노 레슨을 하기도 하셨다고.

이모께서는 피아노 선생님, 혹은 학원 원장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사셨고 몸의 장애를 극복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일찍 은퇴 안 하시고 80 대 중반까지도 일하셨는지.. 잘 모르겠다...


돌아가시기 전 몇 달은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서 많이 고생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돌아가실 때는 주무시듯 편안히 가셨다고 한다.


내가 대학교 여름방학 때 한국에 나가서 이모학원에 찾아간 적이 있다.  

이모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근처 백화점에 나를 데리고 가서 옷을 사 주셨다. 정작 이모 당신께서는 자신감이 넘치시는데, 나는 속으로 "이 분이 우리 이모라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해. 내가 이모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이모와 사람들에게 보여야 해"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 피아노 이모는 실제로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분이시다. 

이런 내 맘이 이제는 하나님 곁에 계신 이모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맘에서 이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편히 쉬세요, 이모....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 11. 8. 21:35

영화 기ㅅ충 카테고리 없음2019. 11. 8. 21:35

큰 영화제 최고영예상 수상 소식을 접한 이후 계속 궁금하긴 했지만, 트레일러만 보고 스포일러를 안 봤었다.

막상 이곳 극장에서 개봉하고 난 후에는 이 영화를 볼까 말까 한참 망설였었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부정적 감정 (슬픔, 불쾌함, 공포 등등)의 aftertaste 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렇게 망설이며 맘의 준비를 충분히 하고 봐서인지, 영화를 본 후 부정적 감정에 휩싸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그 영화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케 된다. 


화 스토리 전개방식은 the lottery 나 the overcoat 같은 류의 단편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과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부각시켜 꽉 짜인 스토리로 풀어내는 비극.

(기 ㅅ 충은 블랙 코미디이긴 하다)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빈부격차, 계층 갈등을 다뤘다.

아무래도 빈부격차가 현세대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이기에 이 영화는 공감을 얻었고 각광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예술적 요소들도 무척 훌륭할테고)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이 영화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인정하되, 가난한 자와 부자를 나누는 시각에 함몰되지 말자는 거다. 만약 Critical mind 이 약하던 더 어린 시절에  이 영화를 봤다면, 이 세상 사람들을 양분하고 경계하는 시각이  더 강화되었을거같다. 


영화를 영화의 메시지에만 집중해서 감상해서는 안된다는 건 알지만... (교훈을 얻으려만 해서는 안되지만)

기 ㅅ 충에서 그려진 문제에의 해답을 굳이 다른 영화에서 찾고자 한다면,  Green Book, Roma,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마지막 장면)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인류 공통의 근원적 문제는 실재하고, 사람들은 각각 결핍과 아픔을 가지고 살지만,  부족한 가운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고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symbiosis 의 관계.  

물질적으로 풍요한 이들은 정신적 결핍이 있을 수 있고 , 인종과 학력/능력 등등 인간을 나누는 잣대는 여럿이기에 이 계층과 저 계층, 상반된 계층에 동시에 속할 수 있고, 주인이건 가정부이건  똑같은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런 인류가 서로를 끌어안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를 환대하는 모습.


현실적으로 단순치 않고 쉽지 않은 지향점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거역한 기ㅅ충같은 인간들에게 못박혀 돌아가신 왕께서 부활하심으로 몸소 약속하신 소망과도 일치한다.

그렇기에 기 ㅅ 충 영화에서의 생일 파티같은 세상을 한탄만 하며 살기보다는,

왕의 테이블에서 모든 계층과 종류의 사람들이 뒤섞인 성대한 파티를 꿈꾸며, 또 그것을 작게나마 실천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남을 살리는 건 물론이고) 자신이 숨쉬고 살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즉 redemption 이 없는 스토리보다는 redemption 이 있는 스토리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고,

그 redemption 의 스토리는 약속된 진리다.


영화로 시작된 train of thought 을 일단 이렇게 마무리한다.

영화 ㄱ ㅅ 충이 영화적 재미도 좋았고 완성도와 집중도도 높긴 했다. roma 나 Green book,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보다는 스토리 짜임새, 재미, 영상미, characters 등은 훨씬 더 뺴어났다. 내 개인적 감상으론.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