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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113

  1. 2019.09.05 Stewardship of privilege? - 2
  2. 2019.09.04 Stewardship of privilege?
  3. 2019.08.26 life together 에서
  4. 2019.08.21 wrestling in prayer
  5. 2019.08.15 Paul: A biography by NT wright
  6. 2019.07.17 useful~
  7. 2019.07.13 속성 욥기
  8. 2019.07.02 약속의 앞자락, 약속의 끝자락
  9. 2019.07.01 hi angel
  10. 2019.06.24 transparency and integrity
2019.09.05 21:19

Stewardship of privilege? - 2 분류없음2019.09.05 21:19

아래와 같은 글을 어제 쓰고 오늘 아침 QT 본문을 봤는데, 본의아니게 계속해서 stewardship of privilege 시리즈다.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그들을 discipline 하시는 걸 예고하시는  아모스 3:1-15 말씀이다. 

본문 설명의 마지막 문단을 옮겨오면. 

Israel is judged for failing to meet the responsibilities of her election. This is a sobering thought for God’s people today, who have been chosen to be his “holy nation” to declare his saving acts to the world. His choice of us carries with it responsibility. We are chosen not simply for the privilege of knowing God, the joy of forgiveness and the certainty of eternal life, but also—and inextricably—to serve God’s purpose of bringing salvation to his beloved world.


더 이상 geneology 에 따른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 백성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권이 있다. 그와 동시에 책임도 있다는 얘기인데..


그 특권과 책임...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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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11:21

Stewardship of privilege? 분류없음2019.09.04 11:21

1. 특권이 없는 세상은 없다.

요즘 한국에서는,  특권행사의 과정이 타당한가, 불법성은 없는가 그것이 쟁점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반대를 위한 정치싸움, 여론몰이인지 잘 모르겠고. 한국 정치에 대해서 opinion 도 없고 opinion 을 표할 수 있는 (법적) 자격도 없다.  다만 그 땅에  다방면의 정의가 이뤄졌음 좋겠다. 

일반 국민 정서와 그 반응을 한국 소식들을 보면 계층,계급, 수저 등으로 불균형이 너무나도 큰가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인종, 배경, 경제적 정치적 파워, 젠더, 그리고 meritocracy. - 밑의 만화에서 볼 수 있듯이. 얼마전 미국판 스카이캐슬 사건도 그렇고. ㅌ 옹 가족들이나 부ㅅ 패밀리 등등 미국의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 (그야말로 스카이캐슬) 는 있다. 미국에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경향이 큰 거 같다. 한국에서는 몇 다리만 건너면 (혈연, 지연, 학연) 다 연결되는 경향이 크지만, 땅덩어리 크고 다원화된 미국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볼 때도, 혈연, 지연, 학연이나 배경 등이 한 사람의 성장이나 진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작은 예를 들면 일부 명문대들 원서를 쓸 때 그 학교 출신 가족을 쓰는 항목이 있다고 오래전부터 들어왔다다른 모든 조건이 같을 때 가족 동문이 있으면 더 advantage 을 주는 학교들이 있다. (우리 아이는 그런 학교들에 하나도 apply 안 하고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early action 으로 들어가버렸다. 가족친척 아무도 다닌 적 없는 새로운 지역의 새로운 학교로. ) 

2.  Privilege is never the problem: it's the stewardship of privilege that's the issue.  

                 -- 이 근처 꽤 큰 multiethnic 교회의 한 흑인 목사님이 쓴 책에서 옮겼다. <Insider Outsider> by Bryan Lorittis.   그 분은 흑인이기에 백인 사이에서는 minority - outsider 이(였)지만 자신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시기에 흑인 기독교계에서는 자신의 last name 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특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특권을 가지셨는데 , 저자의 (저자 포함 그를 믿는이들의) good 을 위해서 그 특권을 "leverage" 하셨다는 신앙고백을 한다. (책 자체는 띄엄띄엄 읽고 있는데 자신의 경험을 나눈 책이다.)


3.  Stewardship of privilege...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수님의 example, 신앙선배들의 삶, 개인적 reflection,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4. 요즘  천천히 읽고 있는 Rowan williams 의 Christ on Trial 에서 그런 점을 좀 다룬다. 어렵다. 휙 읽는다고 깨달아지는 것이 아닌 삶 속에서 묵상하고 습득해 나갸야 하는 거 같다. 그에 관한 다른 책들도 찾아 보려 한다. 

5. 그런데 한국에서는 특권계층에 속한다 하더라도, 미국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오거나 하면 그 모든 특권들과 동떨어지는 위치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유학생들 이민자들이 그런 '서러운' 시간들을 보냈고 보내고 있다. 특권계층이라고 할 수 없고, 한국에서의 혈연, 지연, 학연도 아무런 소용 없이 개개인의 재량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나갸야 하는.

6. 한편 미국 내 meritocracy 에 의해서 동양계는 새로운 엘리트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경향도 있다.  

7. 그런 상황 속에서 stewardship of privilege 라고 할 때, 내가 특권계층의 섬김과 이해를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지, 아니면 특권계층으로서 섬겨야 하는지 복잡하고 묘하고 재미있는 위치에 놓여있게 된다. 어떻게 묵상해야 하는지??? 위의 Brian Loritts 목사님이 그러하셨듯 백인들 사이에서는 outsider 일 수 있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insider 일 수도 있고. 한국계 이민자들 같은 경우, 한국에 가면 특권계층이 될 수도 있는 - 아니면 반대로 한국에서 insider 가 전혀 아닐 수 있는... 

8. Rowan Williams 가 얘기하는 insider outsider 의 개념은 그런 인간적 기준의 그것들을 초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거기서 발견한대는데... 인간들 모두에게 내재된 poverty 와 exclusion 이 있다는.  즉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뜻이리라. 

9. 아..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표어가 "Everyone's welcome, Nobody's perfect. Anything's possible" 인데 nobody's perfect 라는게 그런 의미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교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니는데 미국의 (백인 전통적) 특권계층도 많은 듯 하다. 그 교회 목사님은 우리 내의 다뤄야 하는 죄의 문제만 해도 많기에 (중독 등의 문제들 등등) 그것만 다뤄도 앞으로 몇 십 년이 걸릴 거라 설교한다.  

10. 그건 그렇고 -- 어디에 position 하는것도 multi-dimensional 작업이고,  stewardship of privilege 도 전혀 단순치 않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임이 틀림없다.   

11. 하나님의 시각, 차원, 좌표로 스스로를 또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눈이 필요하다. 




https://www.rnz.co.nz/news/the-wireless/373065/the-pencilsword-on-a-plate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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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6 21:31

life together 에서 분류없음2019.08.26 21:31


최근 인상깊게 들은 강의의 결말 부분에 인용된 본훼퍼.   첫문장만 인용되었었다. Life Together 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책장에서 책을 찾아서 뒤적거리기보다 인터넷 서치를 해 보니 그 단락을 옮겨놓은 페이지가 있어서 잘라왔다. 

그 강의에서 나눠진 강사의 경험, 그리고 insight 와  성경해석 등도 아주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건 여기 지금 적을 필요는 없고...

 

그 강의가 논한 영역에 제한되지 않은 더 큰 의미의 그리스도적 사귐을 돌아볼 때도 위의 인용구가 참 relevant 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 사도바울이나 많은 사도들도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공동체와 교회에의 비전을 가진 이였고, 그를 나누고 실천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이였음이 틀림없다.   그들의 비전과 위의 인용구 속의 "그리스도적 사귐을 파괴하는" 사람의 꿈은 뭐가 다를까 심사숙고해 봐야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Life together 을 나중에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우선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고.)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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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1 19:30

wrestling in prayer 분류없음2019.08.21 19:30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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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5 18:52

Paul: A biography by NT wright 분류없음2019.08.15 18:52

사도바울의 전기를 올해 초에 읽다 말았는데, 남은 챕터를 최근 다 읽었다.  

킨들로 읽었는데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후반의 많은 부분이 연대기 및 인덱스라는 걸 발견하고 진작 다 읽을 걸 했다


후반에는 사도바울의 theology 등을 요약한다.

그동안 NT wright 이 다른 책에서도 많이 이야기해온 사도바울의 신학 (그 방대한 내용) 을 아주 짧게 요약했다. 

하나님께서 왕되신 나라, 예수님의 주권 아래 새로운 백성, 공동체, 가족이 되는 new humanity 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비전이고 그의 언약이라는 내용.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 가 되는 new humanity 라는데.... 

요즘 혼란한 국제 정세 - 나라와 나라 사이에 분열과 분쟁이 생기는 것등을 보면서 그것들이 크리스챤과 교회 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크리스챤과 교회들은 어떤 상태인지,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지금 이시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모르겠다.

기독교적 시각이 아닌 다른 컨텍스트이긴 하지만 하나됨이 얘기되어졌다가는, 금방 발사체가 발사되어지는 그런 시대다.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정치/외교 잘 모르고 헤드라인만 읽는 편이라)


NT wright 은 사도바울에게서 가장 괄목할만한 점으로 그의 "prayer life" 을 꼽는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임하기를 기도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도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구해야하는지..

혼란스럽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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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7 19:53

useful~ 분류없음2019.07.17 19:53



the Bible Project 의 위와 같은 유튜브 클립들 잼있다 (뒤늦게 발견). 도움도 많이 되고. useful 자료들이 정말 많구나. 


요즘은 쉬고 있지만 교회 소그룹 모임에 나갈 떄 보니까,

교재에 관한 비디오 시리즈를 함께 보고 discussion 하는 형태를 많이 취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방법도 이해가 된다.

예습도 제대로 안 해가는 상태에서 엉뚱한 discussion 을 하고 엉뚱한 결론을  낼 가능성도 있는데

검증된 자료들을 보면서 foundation 을 확실히 하고 그 위에서 discussion 을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듯 하다.


위의 Bible Project 에 관한 리뷰들 (나중에 읽어보자 - 지금은 일단 올리고). 

 

https://au.thegospelcoalition.org/article/review-bible-project-brilliant-flawed/

https://www.christianitytoday.com/ct/2019/april/bible-project-tim-mackie-jon-collins-scripture.html


어쨌거나 각종 책들의 개요 등을 대충 짚어보고 지나가는데는 도움이 되는 channel 일듯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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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3 10:18

속성 욥기 분류없음2019.07.13 10:18

7/1 부터 오늘까지 Encounter with God 로 욥기 QT 를 시작했다.

워낙 긴 책 중 몇 챕터만 뽑아놓은 QT 였고 휙 읽고 말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이전에 욥기를 읽을 때는 항상 내 상황이 안 좋았기에 욥에게 감정이입해서 읽었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1998 년 여름 즈음인가 욥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QT 했었다. 무척 어려운 책이었다. 그 당시 내릴 수 있던 결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자였다. 그걸 실천하는 것도 어렵다. 그 QT 이후 지난 20 년을 돌아보니 나의 좌충우돌 속에서도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본다.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기도한다. 

5 년 전  슬픔/그리움/황망함/상실감/분주함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후, 한국집으로 돌아가 현실을 마주하며 정원을 거닐다 갓 태어나서 눈도 못 뜨는 야생 아기새를 봤다. 욥기 마지막 부분의 하나님이 떠올려졌다. 

 

이번에는 좀 더 객관적으로 읽었다고 해야 하나? 정말 어려운 책이라는 걸 다시 발견한다.

속성으로 읽어서는 안되는 책. 


가볍게 읽었지만 그래도 새롭게 다가오는 몇가지를 기록한다 


(1) 41 장에 붙은 Encounter with God 제목처럼 The Supreme Otherness

욥기의 마지막 부분은 가장 인간다운 (인간스런) 인간모습의 욥과 가장 '신'다운 모습의 하나님의 Encounter 인 듯 하다. 


(2) 흔히들 욥기를 예수님 십자가 사건의 shadow라고 한다. 그렇다면 십자가 위의 예수님 안에서  가장 인간같은 모습의 인간과 가장 '신'다운 모습의 하나님 사이의 벽이 허물어져서 '하나'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 분이 예수님이시다. 


(3) 욥기 41 장 마지막 부분: 하나님께서 욥을 회복시켜 주시며 다시 일곱 아들들과 세 딸을 주셨다는데, 일곱 아들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데, 세 딸의 이름은 써놓았다..    그리고 딸들에게도 아들과 같이 inheritance 을 주었다고 명시한다. 왜 굳이 그걸 써놓았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시대에는 드문 일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 딸들이 너무 아름다운 여인들이었기에, 저자도 흑심을 품었기에 그 딸들의 이름을 써 놓았는지도 모르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  그저 그 전에는 간과했던 부분이다


(4) 욥기를 쓴 저자가 누군가 불분명하대는데, Psalm 88 을 쓴 이가 저자라는 설도 있다고. 그게 사실이건 말건 시편 88 편도 함께 읽어봐야겠다.


(5) 이건 번외: 어쩌다 보니 욥기 QT 하는 기간에 아모스서를 함께 읽었다. 욥과 같은 의인의 고난도 있긴 하겠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하나님을 잘못 예배하고 있던) 죄를 저지르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연단으로서의 고난도 있다는 것. . 욥에게 엉뚱한 말을 하던 욥의 세 친구같은 이들도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따끔한 말을 해 주던 선지자들도 있다. 시대와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분별력이 필요하다


(6) 욥기의 happily every after 같은 결말은 참 유혹적이다... 기복신앙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그보다는 하나님께 촛점을 맞춰야 한다. 약 4000 년 전 족장시대가 아니라, 21 세기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회복은 뭘까? 



이번 주말에는 욥기와 아모스를 좀 더 깊이 들여다 봐야겠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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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08:04

약속의 앞자락, 약속의 끝자락 분류없음2019.07.02 08:04

옛 일기장을 뒤적거리다 저 밑의 저런 엔트리를 봤다. 2006 년 5 월. 이 때는 치대 1 학년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다. 이런 QT 를 했는지 학교 소그룹 모임에서 뭘 나눴는지도 잊고 있었다. 

이 때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QT 하며 히브리서를 떠올리지 않았나보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이삭과 이스마엘 두 명에 한정되지 않았다는걸, 불과 2 년 전에야 QT 하면서 발견했다.  

현재의 QT 도 글들도 그렇게 오점이 많고 불완전하지만, 부족한대로 그냥 QT 하고 그냥 써내려간다. 배움의 과정이고 긴 여정이니까... 내가 어디 가서 가르치거나 주장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설교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인 차원의 끄적거림이니.


하나님 나라의 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지금은 약속의 앞자락이 아니라 약속의 끝자락이라고 볼 수 있겠지. 하나님의 약속 자체셨던 예수님께서 오셔서 희미하던 것들의 뚜렷해졌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already 이뤄진 시대. 

하지만 여전히 Not Yet 의 realm 안에서 그 약속을 모든 영역에서 이뤄주시길 기도하고 있고, (혹은  세세한 영역의 약속들이 뭔가 여전히 파악하고 있고...)  언젠가는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는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이다 - 그리 해 주시길 기도한다.  히브리서 11:39-40 처럼  믿음의 조상, 신약시대 사람들... 또 우리 세대 모두, 전 세대를 꿰뚫는 역사를 토해서,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들을  완성해나가시는 하나님의 약속. 

39 These were all commended for their faith, yet none of them received what had been promised, 40 since God had planned something better for us so that only together with us would they be made perfect. (Hebrews 11:39-40)




2006 년 5 월 ========================================

아브라함에 대해서 QT 중이다. 지구 상위의 먼지와도 많고, 하늘의 별과도 많은 자손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 이삭도 아주 나이 들어서야 얻고...그가 이 생에서 본 자손은 이삭 한 명 이었던 같다. (이스마엘도 있지만 예외로 치고)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져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여러모로 정말 많다...
 
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란것... 어쩌면 이 생에서 그 약속이 이뤄지는 걸 내가 볼 수 있는 만큼은,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내 후대에도 계속해서 하나님께선 그 약속을 이뤄나가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어찌보면 좀 아쉬운 일이다. 이 생에서 그 약속들이 이뤄지는 걸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나는 거 사실이다.
 
흠.. 다시 한 번 촛점을 하나님의 purpose 에 맞추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뤄나가시는 큰 그림 속에서
난 그저 그림을 이루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것. 학교 소그룹 모임에서 얘기되어졌듯, 내가 주연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께서 주인공이시고  난 그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내지 소품이라는 것...
나에게 주어진 role 을 잘 소화해 내는 것이  내겐 가장 큰 기쁨이 된다는것. 
 
미국 첨 올 때 했던 기도들, Christian 이 첨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들, 그 후의 삶 속에서 하나님꼐서 약속해 주신 것들... 몇 가지 예를 들면, 보스톤의 부흥, 언젠가 내가 다니고 있던 교회들의 회복 등등과
내 개인적인 차원의 소망들
 
지금 그저 그 약속들의 가느다란 앞자락들을 보고 있는거 같다. 아브라함이 이삭 한 명이 태어나길 기다렸듯이,
혹은 이삭 한 명을 바라봤듯이...
 
하지만 그 가느다란 앞자락의 끝에는  하나님께서 완성하시는 엄청난 약속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생에서 그것들을 다 못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느다란 앞자락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기뼈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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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1 00:09

hi angel 분류없음2019.07.01 00:09

저녁 아이와 함께 gym에 갔다

내가 먼저 운동을 끝내고 밖의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아이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까불며 놀던 5-6 세 두형제의 인형이 내 무릎을 때렸다.  같이 있던 엄마가 내게 "sorry" 를 연발하며 아이들을 혼낸다.  동양인이 아닌 유색인종이다. ㅌ 옹이 경계하는 종류의..  그 엄마의 영어도 서툴다.

나도 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인형이 퍽 날아와 방해가 되었길래 조금 언잖았지만 그냥 괜찮다고 하고 책에 다시 집중했다. 옆에서 다시 떠들고 노는 애들이 시끄럽다는 생각 등등이 몰려온다.  

그런데 문득...
이 아이들이 다른 인종이었어도 내가 이렇게 차갑게 반응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어떤 동양인들은 아이 자존감(?) 살린다고 (기 안죽인다고) 이런 경우에 사과도 안 하고 너무나도 당당한 경우도 봤다. 그럴 경우 나는 더 차갑게 대하거나 인형에 맞아서 아프다고 오버를 했겠지만. 
엄마는 내게 몇 번이나 미안하고 아이들을 타이르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미안해졌다
책에서 눈을 떼고, 인형을 들고 있는 아이에게 인형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영어를 전혀 못 한다
그 엄마가 알아들었는지 자기나라말로 뭐라고 뭐라고 통역해도 큰 눈으로 멀뚱멀뚱 답이 없다 그 엄마가 대신 "angel" 이라고 답한다.
아이와 인형을 쳐다보며 웃으며 " hi angel" 했더니
..

그 후로 약 10 분동안, 그 아이는 내 주위를 몇 바퀴 뱅뱅 돌며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날 쳐다보며 손을 흔든다. 기분이 무척 좋은가보다. 천진난만 그 자체. 나도 아이엄마도 미소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집에 와서도...

그 아이와 그 가족이 계속 떠오른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이 땅에 거주하는 이들일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지금도 어딘가에서 traumatic experience 을 겪고 있을 많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잠도 못자고 지켜본  ㅌ 옹의 깜짝쇼 탓에 다음 선거 때 그를 찍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기도한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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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4 23:06

transparency and integrity 분류없음2019.06.24 23:06

셀모임, 오이코스, 구역에배, 성경공부모임, 목장, 등등 다양한 명칭의 소그룹 모임에 참여했는데,

대학시절 모임에서는 개인의 얘기든 기도제목이든 나눌 때, transparency 가 중요하다고 배웠었다.

아니면 서로 가면을 쓴 상태에서 피상적인 얘기만을 나눌 뿐이고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런 요지.

그래서 대학생 시절 다니던 교회 두 군데 소그룹 내에서 솔직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30 -40 대  리더분들의 집중 케어를 받거나 성경적 "rebuke" 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transparency 에 중점을 맞출 경우 God centered 이지 못하고 problem-centered 나눔으로 끌날 수 있거나,

self-absorbedness or self-centeredness 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있다. 

또한 성숙하지 못한 그룹에서는 confidentiality 가 지켜지지 않고 진정한 중보기도가 있기전에 

gossip 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생각의 흐름 속에 검색을 해 보다가, transparency 에 구별되는 integrity 라는 덕목이 있다는 걸 발견.


5 reasons for church small groups to replace “transparency” with “integrity” 에서 퍼 온 transparency 와 integrity 의 차이.


“Transparency” says we’re all supposed to pull out our sins for others to examine. If you don’t think you have any, you need to dig deeper, because of course you know your heart is a deep dark well of sin (even your heart that has been redeemed and made new by the shed blood and resurrection power of Christ). So it’s important to keep digging until you find it, because basically we’re all sinning every moment of every day in thought, word, and deed. As CJ Mahaney said (discussed in detail here), he wanted to live “close to the doctrine of sin.” The focus of transparency is on sin.

“Integrity,” on the other hand, focuses more on our new life in Jesus Christ. It says that it’s possible to live as the same person at all times. This doesn’t mean you won’t sin. It doesn’t mean there won’t be times you need to confess and repent. But it assumes that if you’re truly born again and made new, you love Jesus and want to follow Him with your whole heart, your whole self.

위 글 결론부분처럼 transparency 만으로는 integrity 에 이르지 못하지만, transparency 가 integrity 에 이르는 첫 스텝 중 하나이기도 하다.

It is important that we are people of integrity. One of the first steps toward getting there is transparency, that we are real with ourselves and others about our shortcomings. For integrity to grow from there it is going to take more than a complacent acknowledgment of problems. We have to let that knowledge and experience refine our lives into a more holy existence. That can only be done in partnership with God and a community of faith.


그렇군..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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