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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119

  1. 2019.12.01 God, Neighbor, Empire
  2. 2019.11.27 Thanksgiving
  3. 2019.11.21 ㄷ백꽃 필 무렵
  4. 2019.11.10 피아노 이모
  5. 2019.11.08 영화 기ㅅ충
  6. 2019.11.03 일기와 기록과 기도
  7. 2019.09.05 Stewardship of privilege? - 2
  8. 2019.09.04 Stewardship of privilege?
  9. 2019.08.26 life together 에서
  10. 2019.08.21 wrestling in prayer
2019. 12. 1. 10:53

God, Neighbor, Empire 카테고리 없음2019. 12. 1. 10:53

  부 교양서적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책이 아니다.

  풀러신학교에서의 강의 시리즈를 묶은 만큼 공부하듯 읽어야 효과적인 책이다. 

  아주 좋은 책이다. 챕터 구성을 왜 그렇게 했을까 의문을 가졌는데, 책을 다 읽고나서 preface 와 introduction 을 읽으며 이해되었다.      

   풀러신학교에서 이 강의 시리즈를 준비한 목적은 "we discerned that church leaders need opportunities to reflect on the integration of the justice, grace, and law in the mission of God..." 라고.

  책 전체가 형광펜, 및 볼펜 밑줄 동그라미 투성이가 되었다. 아직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은 개념과 연결고리 등이 있어서 반복해서 읽을 듯하다. 

  실천의 문제는 무겁기만 하다...

 책을 읽다가 아이아빠에게 물었다, "저자는 이렇게 살고 있을까요? 부담감 팍팍 주는 책을 썼는데...  (이렇게 무거운 과제만 던져주는 거 아닐까? --저자 본인은 책 가득한 방에서 연구만 하는 거 아닐까?..)"

 그랬더니 아이아빠 답, "훌륭한 분이야," 

 흠... 어떤 분인가 찾아봐야겠다 


   인터넷의 요약 및 리뷰는 여기 있다 

   http://readingreligion.org/books/god-neighbor-empire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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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27. 10:36

Thanksgiving 카테고리 없음2019. 11. 27. 10:36


어린 시절 한국에 있을 때 교회의 추수감사절 예배는, 추수를 celebrate 하는 추석행사로 여겨졌다. 쌀가마니와 송편이 연상되는.


미국에 와서, 또 해가 거듭될 수록 썡스기빙의 본래 의미를 조금씩 더 발견하고 있다.

'추수'감사절보다는 Thanksgiving 의 명칭이 더 어울린다.

 어딘가 보니 모세가 Thanksging 을 "invent" 했다는데..

광야를 헤매서 가나안 땅으로 가던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과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미국까지 온 필그림의 여정이 비슷해서 그렇단다..


그러니 정착해서 사는 농경민들의 추석과 필그림의 thanksgiving 은 그 성격이 좀 다르다,


얼마전     QT 본문이었던 민수기의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에서의 불평불만은 엄청나서 하나님의 분노를 살 정도인데,

 그에  대비되는 모세의 광야에서의 thanksgiving 이라.


그 thanksgiving 의 의미를 더 깊이 되새기는 기간이 되었음 좋겠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 이주한 이로서,

영적 이집트를 떠나 광야생활 혹은 포로생활을 하는 동시에 이미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이로서. 


그렇지만  퍽퍽하고 양이 넘 많은 터기를 매년 썡스기빙마다 챙겨먹는 전통까지 따라하기는 싫다.


그림은 여기서 https://www.dailyartmagazine.com/8-paintings-for-thanksgiving-that-will-warm-your-heart/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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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21. 19:36

ㄷ백꽃 필 무렵 카테고리 없음2019. 11. 21. 19:36


지막 본 드라마는 미드 실리콘 밸리였고 (시즌 6 는 나중에 몰아서 보려 한다),

한국 드라마는 최근 3-4 년간 잘 안 보고 있었다.

ㅅ카이 캐슬도  몇 편만 보고 마지막 회는 신문기사에 난 걸 읽었고,

화제작이라는 다른 드라마들도 신문사이트에 뜨면 클릭해 보고 내용을 파악하는 정도.


그러다 우연히 만난 멋진 드라마.

netflix 에 뜨길래 클릭해 봤다. 첫장면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유튜브건 netflix 건 뭐건 켜 놓고 화면은 안 보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이 드라마는 한 장면 한 장면 놓치기가 싫어서 자리에 앉아서 (혹은 운동하면서) 집중해서 봤다.

두고두고 다시 볼 만한 명작 드라마다.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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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10. 15:55

피아노 이모 카테고리 없음2019. 11. 10. 15:55

나에겐 이모가 여러분 계신다. 그 중 둘째 이모가 이틀전 돌아가셨다.

이모에 대해서 몇 자 써야, 가슴에  얹힌 이 뭔가가 좀 사라질 듯 하다. 

둘쩨이모는, 막내딸이신 우리 어머니와는 나이차가 15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둘째 이모는 신체에 장애가 있었다.

다른 자매들은 그 세대기준으로 키가 작지 않은 편인데,  둘쨰 이모는 척추의 문제로  체구가 많이 작았다.  이 사진 당시 초딩 3 학년이던 나랑 키가 비슷할 정도.  (사진의 중앙이 이모)


어린 시절에 놀림을 받았을 수도 있고 평생 움츠려 사실 수도 있었을텐데, 이모는 전혀 그러지 않으셨다.

몸이 약한 이모위해서 외할아버지께서 서울에 장만해 주신 집에 평생 사시면서, 전공인 음악을 살려 평생 피아노 선생님을 하셨다.

그래서 나와 내동생은 이모를 "피아노 이모"라고 불렀다.

이모 댁에 가면 피아노는 당연히 있었으며, 베토벤 얼굴 그림이 걸있었고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흔한 그림), 각종 악보와 LP 판 등이 많았다. 그리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온 학생들을 위해서인지, 위인전 한 세트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모댁을 방문할 때마다, 그 위인전 중에서 헬렌켈러만 집중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에디슨이나 퀴리부인 링컨 같은 분들의 위인전도 있었을텐데...

아마도 몸의 장애를 이겨내고 살아가시는 이모에게서 헬렌켈러같은 모습을 봐서인지...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에도 내가 왜 이렇게 헬렌켈러만 읽지? 스스로도 의아해했었다. (국민학생이었는데)



리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이모가  젊은 시절 이쁘기도 했고 활달해서, 남자분들과 데이트도 많이 하셨다고

그러시다 신체건강하시고 성격좋고 성실하셨던  이모부를 만나 결혼하셨다. 

80-90 년대, 두 분은 강남 한복판에서 음악 학원을 하셨다. 이모부께서는 학원 밴 (봉고차)를 운전하시는 등의 일을 하셨다. 



나와 동생도 이모의 학원에 다녔었다. 나는 바이올린을 배웠고 동생은 피아노를 배웠다.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던 원장실은 어른들의 아지트 비슷했다. 원장실 소파에 이모들과  (대학생이던) 사촌언니오빠들이 모여앉아 수다도 떨고 배달음식도 시켜먹던 기억이 난다. 중딩이었던 우리는 레슨을 받아야했고.

이모가 학생들 레슨을 시키는 모습도 기억난다.  당신보다 덩지가 더 큰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시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박자를 맞추시던..

이모는 항상 에너지 넘치셨고  명랑하셨고, 삶에의 애착과 열정이 대단하셨다.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낙관적 사람 중 하나이시다.


이모부가 돌아가신 후, 이모는 다른 지역으로 학원을 옮기셔서,  최근 1-2 년 전까지도 운영하셨다. 

몸이 안 좋아진 후, 집에 계시면서도 동네사람 피아노 레슨을 하기도 하셨다고.

이모께서는 피아노 선생님, 혹은 학원 원장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사셨고 몸의 장애를 극복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일찍 은퇴 안 하시고 80 대 중반까지도 일하셨는지.. 잘 모르겠다...


돌아가시기 전 몇 달은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서 많이 고생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돌아가실 때는 주무시듯 편안히 가셨다고 한다.


내가 대학교 여름방학 때 한국에 나가서 이모학원에 찾아간 적이 있다.  

이모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근처 백화점에 나를 데리고 가서 옷을 사 주셨다. 정작 이모 당신께서는 자신감이 넘치시는데, 나는 속으로 "이 분이 우리 이모라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해. 내가 이모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이모와 사람들에게 보여야 해"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 피아노 이모는 실제로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분이시다. 

이런 내 맘이 이제는 하나님 곁에 계신 이모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맘에서 이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편히 쉬세요, 이모....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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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8. 21:35

영화 기ㅅ충 카테고리 없음2019. 11. 8. 21:35

큰 영화제 최고영예상 수상 소식을 접한 이후 계속 궁금하긴 했지만, 트레일러만 보고 스포일러를 안 봤었다.

막상 이곳 극장에서 개봉하고 난 후에는 이 영화를 볼까 말까 한참 망설였었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부정적 감정 (슬픔, 불쾌함, 공포 등등)의 aftertaste 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렇게 망설이며 맘의 준비를 충분히 하고 봐서인지, 영화를 본 후 부정적 감정에 휩싸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그 영화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케 된다. 


화 스토리 전개방식은 the lottery 나 the overcoat 같은 류의 단편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과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부각시켜 꽉 짜인 스토리로 풀어내는 비극.

(기 ㅅ 충은 블랙 코미디이긴 하다)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빈부격차, 계층 갈등을 다뤘다.

아무래도 빈부격차가 현세대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이기에 이 영화는 공감을 얻었고 각광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예술적 요소들도 무척 훌륭할테고)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이 영화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인정하되, 가난한 자와 부자를 나누는 시각에 함몰되지 말자는 거다. 만약 Critical mind 이 약하던 더 어린 시절에  이 영화를 봤다면, 이 세상 사람들을 양분하고 경계하는 시각이  더 강화되었을거같다. 


영화를 영화의 메시지에만 집중해서 감상해서는 안된다는 건 알지만... (교훈을 얻으려만 해서는 안되지만)

기 ㅅ 충에서 그려진 문제에의 해답을 굳이 다른 영화에서 찾고자 한다면,  Green Book, Roma,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마지막 장면)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인류 공통의 근원적 문제는 실재하고, 사람들은 각각 결핍과 아픔을 가지고 살지만,  부족한 가운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고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symbiosis 의 관계.  

물질적으로 풍요한 이들은 정신적 결핍이 있을 수 있고 , 인종과 학력/능력 등등 인간을 나누는 잣대는 여럿이기에 이 계층과 저 계층, 상반된 계층에 동시에 속할 수 있고, 주인이건 가정부이건  똑같은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런 인류가 서로를 끌어안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를 환대하는 모습.


현실적으로 단순치 않고 쉽지 않은 지향점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거역한 기ㅅ충같은 인간들에게 못박혀 돌아가신 왕께서 부활하심으로 몸소 약속하신 소망과도 일치한다.

그렇기에 기 ㅅ 충 영화에서의 생일 파티같은 세상을 한탄만 하며 살기보다는,

왕의 테이블에서 모든 계층과 종류의 사람들이 뒤섞인 성대한 파티를 꿈꾸며, 또 그것을 작게나마 실천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남을 살리는 건 물론이고) 자신이 숨쉬고 살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즉 redemption 이 없는 스토리보다는 redemption 이 있는 스토리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고,

그 redemption 의 스토리는 약속된 진리다.


영화로 시작된 train of thought 을 일단 이렇게 마무리한다.

영화 ㄱ ㅅ 충이 영화적 재미도 좋았고 완성도와 집중도도 높긴 했다. roma 나 Green book,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보다는 스토리 짜임새, 재미, 영상미, characters 등은 훨씬 더 뺴어났다. 내 개인적 감상으론.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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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 21:57

일기와 기록과 기도 카테고리 없음2019. 11. 3. 21:57

싸이월드가 닫혔다가 다시 열린 틈을 타서 싸이월드의 옛기록을 조금씩 저장하고 있다.  아이의 유년 시절이 기록되어있기에 싸이월드가 닫혔다는 뉴스에 잠시 패닉했었다. 다행히 싸이월드가 다시 열려서 단순노동 저장을 조금씩 하고 있다. 

싸이월드를 하던 기간, QT 일지 및 사적 일기는 다른 사이트 에 비공개로 썼었는데, 몇 년 전 그 사이트가 문을 닫아서 그 당시 일기가  소실되었다. 

어머니께서 한때 활발히 블로그 활동을 하셨었는데 그 사이트도 몇 년 전 문을 닫아서 사진 및 글을 다운로드하는걸 도와드린 적도있다.

그런일들이 반복해서 생기니, 인터넷 상 기록에 신뢰가 안간다 (social network의 기능과는 별개로).

얼구ㄹ책이건, 지금 이 사이트 건, 아니면 에버노ㅌ건 언젠가는 (먼훗날이겠지만) 문을 닫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백업을 했다. 


싸이월드 entry 들 (댓글포함) 은 단순노동으로 하나하나 저장하다 보니 시간소비가 많긴 하지만, 잊었던 에피소드나 기도일기 등을  다시 보며 당시의 염원과 기도, 또 치열함을  엿본다.  그런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의 의미를 재발견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어떤 방식이라도 일기를 쓰고 기록하면 도움이 되는데..  요즘의 기록이라는게 일기보다는, To Do List 와 calendar (스케줄) 관리가 더 많다. 혹은 일기를 어딘가에 쓰더라도 묵상은 없고, 뭘하고 누굴 만났나 등의 단순 나열일 때가 많고. 

한편 기도제목 리스트는 쏟아진다. 신문기사들을 보면 쏟아지는 기도제목들, 가족과 이웃들을 위한 기도들......... 기타 등등등.

지금은 그저 기도해야 할 때인가? 한다.  confidentiality 을 지켜야 하는 기도제목들이 많으니 모두 다  에버노ㅌ에 쓰기로 한다. 

또한 내기록보다는 하나님의 기록 - 말씀을 되새기자.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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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5. 21:19

Stewardship of privilege? - 2 카테고리 없음2019. 9. 5. 21:19

아래와 같은 글을 어제 쓰고 오늘 아침 QT 본문을 봤는데, 본의아니게 계속해서 stewardship of privilege 시리즈다.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그들을 discipline 하시는 걸 예고하시는  아모스 3:1-15 말씀이다. 

본문 설명의 마지막 문단을 옮겨오면. 

Israel is judged for failing to meet the responsibilities of her election. This is a sobering thought for God’s people today, who have been chosen to be his “holy nation” to declare his saving acts to the world. His choice of us carries with it responsibility. We are chosen not simply for the privilege of knowing God, the joy of forgiveness and the certainty of eternal life, but also—and inextricably—to serve God’s purpose of bringing salvation to his beloved world.


더 이상 geneology 에 따른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 백성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권이 있다. 그와 동시에 책임도 있다는 얘기인데..


그 특권과 책임...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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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4. 11:21

Stewardship of privilege? 카테고리 없음2019. 9. 4. 11:21

1. 특권이 없는 세상은 없다.

요즘 한국에서는,  특권행사의 과정이 타당한가, 불법성은 없는가 그것이 쟁점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반대를 위한 정치싸움, 여론몰이인지 잘 모르겠고. 한국 정치에 대해서 opinion 도 없고 opinion 을 표할 수 있는 (법적) 자격도 없다.  다만 그 땅에  다방면의 정의가 이뤄졌음 좋겠다. 

일반 국민 정서와 그 반응을 한국 소식들을 보면 계층,계급, 수저 등으로 불균형이 너무나도 큰가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인종, 배경, 경제적 정치적 파워, 젠더, 그리고 meritocracy. - 밑의 만화에서 볼 수 있듯이. 얼마전 미국판 스카이캐슬 사건도 그렇고. ㅌ 옹 가족들이나 부ㅅ 패밀리 등등 미국의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 (그야말로 스카이캐슬) 는 있다. 미국에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경향이 큰 거 같다. 한국에서는 몇 다리만 건너면 (혈연, 지연, 학연) 다 연결되는 경향이 크지만, 땅덩어리 크고 다원화된 미국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볼 때도, 혈연, 지연, 학연이나 배경 등이 한 사람의 성장이나 진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작은 예를 들면 일부 명문대들 원서를 쓸 때 그 학교 출신 가족을 쓰는 항목이 있다고 오래전부터 들어왔다다른 모든 조건이 같을 때 가족 동문이 있으면 더 advantage 을 주는 학교들이 있다. (우리 아이는 그런 학교들에 하나도 apply 안 하고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early action 으로 들어가버렸다. 가족친척 아무도 다닌 적 없는 새로운 지역의 새로운 학교로. ) 

2.  Privilege is never the problem: it's the stewardship of privilege that's the issue.  

                 -- 이 근처 꽤 큰 multiethnic 교회의 한 흑인 목사님이 쓴 책에서 옮겼다. <Insider Outsider> by Bryan Lorittis.   그 분은 흑인이기에 백인 사이에서는 minority - outsider 이(였)지만 자신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시기에 흑인 기독교계에서는 자신의 last name 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특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특권을 가지셨는데 , 저자의 (저자 포함 그를 믿는이들의) good 을 위해서 그 특권을 "leverage" 하셨다는 신앙고백을 한다. (책 자체는 띄엄띄엄 읽고 있는데 자신의 경험을 나눈 책이다.)


3.  Stewardship of privilege...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수님의 example, 신앙선배들의 삶, 개인적 reflection,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4. 요즘  천천히 읽고 있는 Rowan williams 의 Christ on Trial 에서 그런 점을 좀 다룬다. 어렵다. 휙 읽는다고 깨달아지는 것이 아닌 삶 속에서 묵상하고 습득해 나갸야 하는 거 같다. 그에 관한 다른 책들도 찾아 보려 한다. 

5. 그런데 한국에서는 특권계층에 속한다 하더라도, 미국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오거나 하면 그 모든 특권들과 동떨어지는 위치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유학생들 이민자들이 그런 '서러운' 시간들을 보냈고 보내고 있다. 특권계층이라고 할 수 없고, 한국에서의 혈연, 지연, 학연도 아무런 소용 없이 개개인의 재량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나갸야 하는.

6. 한편 미국 내 meritocracy 에 의해서 동양계는 새로운 엘리트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경향도 있다.  

7. 그런 상황 속에서 stewardship of privilege 라고 할 때, 내가 특권계층의 섬김과 이해를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지, 아니면 특권계층으로서 섬겨야 하는지 복잡하고 묘하고 재미있는 위치에 놓여있게 된다. 어떻게 묵상해야 하는지??? 위의 Brian Loritts 목사님이 그러하셨듯 백인들 사이에서는 outsider 일 수 있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insider 일 수도 있고. 한국계 이민자들 같은 경우, 한국에 가면 특권계층이 될 수도 있는 - 아니면 반대로 한국에서 insider 가 전혀 아닐 수 있는... 

8. Rowan Williams 가 얘기하는 insider outsider 의 개념은 그런 인간적 기준의 그것들을 초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거기서 발견한대는데... 인간들 모두에게 내재된 poverty 와 exclusion 이 있다는.  즉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뜻이리라. 

9. 아..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표어가 "Everyone's welcome, Nobody's perfect. Anything's possible" 인데 nobody's perfect 라는게 그런 의미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교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니는데 미국의 (백인 전통적) 특권계층도 많은 듯 하다. 그 교회 목사님은 우리 내의 다뤄야 하는 죄의 문제만 해도 많기에 (중독 등의 문제들 등등) 그것만 다뤄도 앞으로 몇 십 년이 걸릴 거라 설교한다.  

10. 그건 그렇고 -- 어디에 position 하는것도 multi-dimensional 작업이고,  stewardship of privilege 도 전혀 단순치 않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임이 틀림없다.   

11. 하나님의 시각, 차원, 좌표로 스스로를 또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눈이 필요하다. 




https://www.rnz.co.nz/news/the-wireless/373065/the-pencilsword-on-a-plate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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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26. 21:31

life together 에서 카테고리 없음2019. 8. 26. 21:31


최근 인상깊게 들은 강의의 결말 부분에 인용된 본훼퍼.   첫문장만 인용되었었다. Life Together 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책장에서 책을 찾아서 뒤적거리기보다 인터넷 서치를 해 보니 그 단락을 옮겨놓은 페이지가 있어서 잘라왔다. 

그 강의에서 나눠진 강사의 경험, 그리고 insight 와  성경해석 등도 아주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건 여기 지금 적을 필요는 없고...

 

그 강의가 논한 영역에 제한되지 않은 더 큰 의미의 그리스도적 사귐을 돌아볼 때도 위의 인용구가 참 relevant 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 사도바울이나 많은 사도들도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공동체와 교회에의 비전을 가진 이였고, 그를 나누고 실천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이였음이 틀림없다.   그들의 비전과 위의 인용구 속의 "그리스도적 사귐을 파괴하는" 사람의 꿈은 뭐가 다를까 심사숙고해 봐야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Life together 을 나중에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우선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고.)


Posted by pleasing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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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21. 19:30

wrestling in prayer 카테고리 없음2019. 8. 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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