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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358

  1. 2024.11.14 경쟁상대
  2. 2024.11.12 Reading Genesis 2
  3. 2024.11.07 King of all the nations.
  4. 2024.11.06 귀차니즘 8
  5. 2024.11.04 Procrastination 습관 고치기 2
  6. 2024.11.01 pain of discipline
  7. 2024.10.25 스토리가 고프다. 2
  8. 2024.10.22 revival 4
  9. 2024.10.08 성경의 저자들이 현대를 기록한다면? 1
  10. 2024.10.03 석달 (세달, three months) 의 비밀?
2024. 11. 14. 15:17

경쟁상대 카테고리 없음2024. 11. 14. 15:17

최근 요리 tv 쇼의 한 요리사가 떠오르는 인용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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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12. 15:04

Reading Genesis 카테고리 없음2024. 11. 12. 15:04

Marylynne Roboinson 의 Reading Genesis 를 드디어 다 읽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24 Reading List 에 들어가 있길래, 읽었다. 오바마는 이 책 저자의 소설 <Gilead> 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그 소설은 퓰리쳐 상을 수상했었음. 

약 두 달을 붙잡고 있었다. 킨들로 읽으며 "아직 오십 몇 프로밖에 못 있었네," 하면서 속도를 붙이려 하는 순간 책이 끝나버렸다. 나머지 반은 창세기의 킹제임스 버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허탈함.

책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창세기 비평 등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게는 안 그럴 수도 있으리라. 창세기를 문학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야 하나? 

 

 

몇 가지 포인트

1. The Bible is a theodicy, a meditation on the problem of evil. This being true, it must take account of things as they are. It must acknowledge in a meaningful way the darkest aspects of the reality we experience, and it must reconcile them with the goodness of God and of Being itself against which this darkness stands out so sharply. This is to say that the Bible is a work of theology, not simply a primary text upon which theology is based.
Robinson, Marilynne. Reading Genesis (p. 3). Farrar, Straus and Giroux. Kindle Edition. 

I have dwelt on this sequence of stories, one after another, exploring the ways in which the faithfulness of God is manifest in the world of fallen humankind.
Robinson, Marilynne. Reading Genesis (p. 196). Farrar, Straus and Giroux. Kindle Edition. 

 

2. 바벨론 등 주변국의 신화와 이스라엘의 창세기를 비교. 하나님과 바벨론 신들의 '성품'의 차이, 신화와 창세기에서 인간의 역할의 차이 등을 논함. 기억나는대로 대충 쓰자면,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자비의 하나님이시고, 바벨론 신들은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고 소모품처럼 여기는데, 하나님꼐서는 인간을 스토리의 중심에 두신다는 식의 설명

 

3. birth order 에 대해 얘기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정확한 내용은 잊어버림..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얘기했겠지. (Bible Project 에도 First-born 에 대해서 다룬 podcast 가 여러 에피소드 있긴 하다) 

그 대목을 읽으며 tangent 로 딴 생각 한 거만 기억남: 에서와 야곱에서 , first-born 이 아닌 야곱이 선택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되었다. First-born 에서의 자손들은 이방국이 되고. 그런데 신약으로 가면 그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에 대해서 first-born 이 된다. 그런데 예수님 또한 하나님의 first-born 이시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이스라엘이시니까. 성경 속에서 뒤죽박죽된 birth order 라고 볼 수 있다.  first born 이건 아니건 모두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 햔재진행형인 그 쪽  전쟁이 떠올랐다. 책에서도 retaliate 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창세기의 하나님을 여러 번 논한다. 

 

4.  가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아벨 (Abel) 이라는 이름의 뜻은 "emptiness" or "vanity" or "something transitory" 란다. 

저자의 말: The story was always about Cain. The sacrifices were of no real importance.  Robinson, Marilynne. Reading Genesis (p. 58). Farrar, Straus and Giroux. Kindle Edition. 

결국 인간 모두는 가인의 후예?  그렇지... 아벨은 아마도 예수님의 foreshadow 였을 수도 있고, 가인은 에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인간의 foreshadow? 하나님꼐서는 가인을 벌하지 않으시고 보호하셨다 라는 걸 주목한다. 

 

5. 성경은 역사를 romanticize 하지 않는다. 

It should be said, first of all, that the Hebrew Bible does not romanticize the history of the people who create it, to whom it is addressed, and who have preserved it faithfully over millennia. It is as if America had told itself the truth about the Cherokee removal or England had confessed to the horrors of slavery in the West Indies. History is so much a matter of distortion and omission that dealing in truth feels like a breach of etiquette. However, if a people truly believed that it interacted with God the Creator, it might find every aspect of its history too significant to conceal. In this case, circumcision, the sign of the covenant given to Abraham, which identified the covenant people and was the means by which others could be brought into the community, is viciously and cynically abused. Yet God does not treat the covenant as violated. Jacob and his sons remain under His protection. In this sense, the story is another approach to defining the covenant. It is secure in that God is faithful to His intentions despite appalling human crime, even sacrilege.

Robinson, Marilynne. Reading Genesis (pp. 170-171). Farrar, Straus and Giroux. Kindle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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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7. 15:54

King of all the nations. 카테고리 없음2024. 11. 7. 15:54

 
선거 이후, 캐나다로 이민가는 법 검색이 폭증했단다. 
한국계가 아닌, 아이 친구 부모님은 유럽의 어떤 작은 나라로 이민가자고 했단다. 이미 은퇴한 이들이고 그정도의 경제적 여유도 있고, 부모 중 한 명이 유럽 출신이기도 하다. 
나도 가족에게 "뉴질랜드로 가자," "한국으로 갈까?" "영국은 어때" 히며 비현실적인 발언들을 던지고 있다.
 
미국에 온지 삼십년이 넘었다.
한국은 내가 살던 한국이 더 이상 아니다. 이젠 많이 낯선 곳이다. 
미국도 더 이상 옛날의 미국이 아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올 때는, 어린 나이였지만 나름 이상과 자유, 꿈을 찾아 온다고 생각했던 듯 싶다. American dream? 
아이 말에 의하면, 역사 속 제국들이 평균 250 년동안 survive 했다고. 인터넷에 보니 그렇다는 정보가 있다.  
미국은 제국이라고 볼 수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거의 250 년이 다 되어가는 건 맞다. 
미국이 '그 미국'이 아니다. '그 미국'이 아닌지 오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 미국'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하나님 나라,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 King of all the nations 이신 예수님을 더 강렬하고 생생하게 마주하는 시간인지 모르겠다. 
전혀 그리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 진정한 왕을 예배하며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IOtxq_v_gU0&ab_channel=WorshipTogether (지금 인터넷에서 찾은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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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6. 00:38

귀차니즘 카테고리 없음2024. 11. 6. 00:38

1.   대학교 1 학년 초기, 한 classmate 가  "귀찮아," 라는 표현을 쓰는 걸 듣고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뭐가 귀찮다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클라스를 한대거나 학업에 도움되는 activity 를 귀찮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전처음으로 귀찮다라는 표현을 들은 것도 아닐텐데 왜 그리 놀랐을까?  학업 포함 많은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서 나름 '명문대'에 들어온 신입생이, 의욕에 넘쳐 앞날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그런 표현을 써서 그랬을 수도 있다.또 다른 하나는 내가 한국에서부터 배워왔던 공부철학이 최선 그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라서 그렇기도 하다. 스스로를 이겨야 하는 극기훈련, 잠을 줄여서 공부한다, 엉덩이가 짛무르도록 공부한다, 주말 & 휴일도 없이 일해야한다는 공부철학에 휩싸여 있었는데, "귀찮다"라니...


2.  그 후 세월이 흘러, 또 한 번 비슷한 형태의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사람을 귀찮아하는 듯한 태도에서다. 여러 명이 모인 모임에서 대화 중 어떤 이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 다른 한 사람이 그 사람의 얘기 듣는게 귀찮다고 표시하는 걸 들었을때다. 꽤 '신앙' 좋다고 여김받는 사람이 그런 태도를 보여서 충격의 정도가 더 컸는지 모르겠다.  또한, 그 때까지는 누군가가 '사람'을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기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서로를 귀찮아 할 정도의 선을 넘지않는 이들이 주위에 더 많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의 내면의 귀찮음을 남에게 표현하지 않는 이들이 주위에 더 많았던 듯 싶다. 그래서일까? 그 사람의 귀찮아함에 일종의 '쎄함'을 느꼈다.

 
3. 돌아보면 그런 종류의 '쎄함'을 꽤 유명한 목회자들에게서 느껴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설교 중에, 여성을 대상화하는 부적절한 발언을 한대거나, 설교를 듣는 이들을 향해 "수준이 낮다," "머리 나쁘다,"라고 발언을 하던 이들 등.  쎄했다. 그런데 그들은 엉망인 삶을 이미 살고 있었고, 나중에 그 삶이 탄로가 나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엉망인 삶을 살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새어나오는 듯 하다. 

4. 1 번의 그 classmate 는 대학시절, 주위 야망에 찬 동급생들처럼 별나게 화이팅 넘치는 학창생활을 보내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더 잘 맞는 길을 택하면서 지혜로운 대학생활을 보냈던 듯 싶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5.  2 번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신앙인이었으니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다뤄주셨을까? 

6.  열심을 다 하며 살아오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해야 할 것들은 더 많아지는데, 귀찮은 것들도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밥챙겨먹는것, 쇼핑, 청소, 헤어컷 받으러 가기, 등등. 지금은 두어달에 한 번 하는 머리염색도 앞으로 더더욱 자주 해야 하리라. 오늘도 흰머리 몇 올이 더 도드라져 보여서 두건을 쓰고 일할것인가? 염색을 할 것인가 고민 중이다. 그냥 뽑아버릴까? 귀찮다. 

7. 하지만 사람을 귀찮아해서는 안되리라. 2 번의 사람에게서 받은 큰 충격이 반면교사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내 시간이 중요하고 내향적 사람이기에 혼자 있는 시간을 안식일 지키듯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건 내 한계라고 생각하지, 타인을 탓하며 사람을 귀찮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8.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꺠닫는 건 세상에는 정말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들, 여러 조건과 상관없이 참 진실하고 실속있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학벌/교육정도, 지식, 신앙공동체 내에서의 직책, socioecomic status,  나이와 상관없이 그러하다.  어느 사람이나, 모양과 정도의 차이는 있는지 몰라도 image of God 를 지니고 있다. 

9.  모든 사람을 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맘과 지혜를 허락해주시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할 때는 그것이 내 한계라는 걸 알 수 있는 겸손함을 허락해주시고, 오해없이 표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기도한다.  또한 "쎄한"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고, 지혜롭게 대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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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4. 03:14

Procrastination 습관 고치기 카테고리 없음2024. 11. 4. 03:14

한국 고딩시절 미국에 와서 고쳐야 했던 고약한 습관 중 하나가 벼락공부였다.  Last minute 에 시험공부/과제를 하는 것. 

국민학교 시절부터 그랬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하셨던 아버지께서, 어린 나와 동생에게 "숙제 다 하고 놀아라," 말씀하시는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열심히 놀았다. 어머니께서는 우리의 어린시절부터, "공부해라," 라는 말씀은 귀에 박히도록 많이 하셨으나, 과제나 준비물을 체크하지는 않으셨다.  어머니께서 우리 어린시절에 문제집 숙제를 내 주시거나 영어를 가르쳐주시긴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께서 성문종합영어를 가르쳐주셨다. 그건 (의사였던) 외할아버지께서 어머니와 우리 외삼촌께 영어를 가르쳐주신 전통을 따른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숙제를 대신 해 주신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중-고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학원이나 과외선생님들은 찾아주셨으나, 공부계획같은것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으셨다. 초딩시절, 문제집 숙제를 안 해서 혼난 일도 부지기수다. 옆집  강ㅇ이 는, 자기 어머니 문제집 숙제하면서 답안지에서 "생략"까지 베껴서 무지 혼났다던데, 우리는 "생략"까지 베낀 적은 없다. 

국민학교 입학 후 얼마 안되어서 색칠공부 숙제가 있었는데 안 하고 있다가 그 날 아침 정말 엉맘으로 해서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보였다. 칠도 안 하고, 크레파스 선 몇 개 그어 갔었다. 그 때, 당황하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또렷이 기억난다, "넌 얼굴도 이쁜 애가 색칠은 왜 이렇게 했니?" 그러고 크게 혼내거나 그러시진 않으셨다. 30-40 대의 여자 선생님이였다. 색칠이라고 한 게 너무 황당해서 그러지 않으셨을까? 또  갓 입학한 1 학년을 벌 줄 수 없어서 최대한 좋게 표현하시지 않으셨나싶다. 

중.고딩시절에는 잠을 적게 자고 밤을 새며 공부/일하는 걸 glorify 하는 그 시대의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낮동안 시간이 좀 날 때도 "나중에 잠 좀 덜 자고 공부하면 되지," "나중에 시험 전에 며칠 밤샘하고 공부하면 되지," 라는 식으로 핑계를 대었다.  고등학교 시절, 한번은 암기과목 공부를 미루고 미루다가, 시험 전 1-2 시간 전에 교과서만 쭉 한번 읽고 가서 시험을 본 적도 있었다. 망했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점수가 잘 나와서 놀랐다. 참고로 난 photographic memory 도 없고 천재형도 전혀 아니다. 암기도 잘 못 하는 편이다. Problem solving 에 더 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방법이 통하는 객관식 시험의 현실이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편이긴 했다.) 그래서 그 바람직하지 못한 공부방법은 더 고질화되었다. 그러한 방법이 통하는구나 생각했었다. 

꾸준히 공부하는 시간도 꽤 많긴 헀었다. 그럴 경우에는 성적이 훨씬 더 좋았다. Last minute 으로 미루는 경향은 시험공부나 과제가 어렵게 느껴지거나 재미없거나 할 경우에 더 컸다. 

대학시절,  미루는 습관으로 인한 수많은 고난, 흠.. 벼락공부의 bad consequence 로 인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습관을 고치는 건 쉽지 않았다.  대학교 학년이 낮을 때는 어느 정도 last minute 에  시험공부하고 과제를 하는게 통했으나, 학년이 올라갈 수록 과목이 복잡화되면서 그건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다. 아직도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악몽을 꾸곤 한다. 

시험을 잘 보는 능력보다도 더 중요한 실력은, 쳬계적으로 계획을 잘 짜서 deadline 에 맞춰서 과제의 완성품을 내어놓는 거라는 걸 뼈져리게 깨달았다.  벼락공부해서 반짝 시험 잘 본 후에, 그 공부한 지식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오랜시간 반복해서 공부한 지식도 나중에 쉽게 잊어버리는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서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 시간 들여서 복잡한 문제를 쳬계적으로 풀어내는 능력 등은 몸에 평생 남는 습관이 되어버린다. 

개인적으로 벼락공부의 악성버릇을 고친 기간은, 대학원 시절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을 하며 치대 준비공부를 하면서였다. 아침에 학교에서 QT 하고, 대학원 일을 한 후, 져녁에 집안일하고 아이를 재우고 30 분 정도 운동도 하고 2 시간 반 공부하고 12 시에 자는  a couple of years 이였다. 시간이 날 때,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처리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는 시간이 없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일을 절대 미룰 수 없었다. 그 시절에는 그 생활 자체가 감사하고 좋았다.  몸과 맘이 바쁘고 여러모로 쪼달리고 힘들던 시절이긴 헀지만, 그래도 그런 기간이 있었음을 감사한다.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신앙에서도 벼락공부나 last minute 은  통하지 않는 거 같다. 아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last minute 이 있는데, 인간의 성장면에서는 벼락공부나 last minute 이 없는 거 같다. 오히려 오랜 광야 시간 등을 통한 꾸준한 훈련의 면이 크다. 야곱의 타향생활, 요셉의 이집트생활, 모세나 다윗의 광야생활, 예수님의 목수생활과 광야 등등.  

신앙의 여정 면에서는 어떤 훈련들에 촛점을 맞춰야 할까?  이미 주어진 신앙과 삶의 과제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순종하는 걸로 시작해야 할지 아닐까 싶다.  기도와 말씀, 이웃사랑, 집안일이나 직장일을 성실히 잘 해는 것, 건강한 식습관이나 운동,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들 성실히 관리하고 사용하기, 사역,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길 기도하기, 나의 죄성과 싸우기 등 모두 포함되는 것이리라. 또 독서 등을 통한 바른 지식을 부지런히 쌓아가고 실천하는 것 등도 중요하다.  미루지 말자. 당장 순종하자.
 

 

---- 빨리 다 끝내고 싶지만 생각만큼 진도가 잘 안 나가는 "Reading Genesis" 를 읽다가 위 그림을 어디선가 보고 쓴 글. 

:
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1. 09:59

pain of discipline 카테고리 없음2024. 11. 1. 09:59

어디선가 마주친 인용문.
뭐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곘지만, 인용문은 So true.
경험 상, pain of regret 가 pain of discipline 보다 훨씬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regret 라기보다 resentment (bitterness) 일 경우 무척 toxic 하다.   
pain of regret 라는 정서적 면 뿐만 아니라,
discipline 하지 못해서 생기는  신체적 & 실제적 damage 와 고통도 크다. 
pain of discipline 은 paiful 하지만 무척 joyous 하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4. 10. 25. 02:34

스토리가 고프다. 카테고리 없음2024. 10. 25. 02:34


한국의 작가가 소설로 큰 상을 받았고,
최근 인기를 끈 요리쇼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그 쇼에서 감동을 줬던 요리사가 영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책의 저자라는 것도 특이사항이다.

그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테크놀로지나 medicine 에서도.

지난 7 월 대형집회에 갔던 큰 이유 중 하나도 주제에 ' 더 스토리' 라는 워딩이 들어가서였다.  사실 '하나님 나라' 라는 문구는 하도 밤낮으로 들어서  옛날의 '은혜' 와 같이 되어버린 점이 없지 않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그런데 스토리라는 앞제목이 붙으니,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가보다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곳에서의 설교들이 요리쇼의 요리들처럼  잘 구성되었던 든 싶다.

지금까지 NT wright 식의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살짝 다른 접근방식의 스토리텔링을 들어서 좋았다.

폐회예배의 설교는 스토리텔링면과 성경을 꿰뚫는 시각에서 예술이었다. 심혈을 기울여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한 요리사의 요리와 비슷한 점이 아주 많은  설교 였다. 시간이 모자라서 그 전문을 다 듣지 못하는게 어무나도 아쉬웠다.

그 집회 이후, 거의 4 달이 다 되어간다.
모두가 어떻게 그 스토리를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

최근 본 한 영상 쇼츠에  "잘 되는 가정은 아버지가 성품이 아주 좋으시거나 아버지가 없으세요 (개그 포인트). 보통 아버지가 권위적이어서 그래요... 그런데 요즘은 어머니들이 권위적이에요," 하는 걸 봤다. 정확한 인용문은 아니지만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어머니들이 권위적이라... 한국의 요즘 세대는 더 그러한지 모르겠다. 특히 자녀교육 면에서 그런 듯 하다.  나는 어떠한가 돌아본다.

지금까지의 내 시각은  한국의 가정에서 어머니들이 권위적이라기보다는 스토리텔러의 역활을 해 왔다는 거였다.  한 가족 내에서의 narrator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또한 이전 한국 교회의 많은 경우, 설교와 공식적 narrative 와는 별개로, 실제의 공동체 삶을 narrate 하는 이들은 주로 여성 어른분일 경우가 많았던 듯 싶다. 교회 생활을 가장 활발히 하는 그룹이니...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분들의 narrative 가  더 정확한 걸로 드러나는 경우도 꽤 자주 봐왔다.  그런 면에서 '공식적'  스토리가 아닌, '비공식적' 실제의  스토리도 중요하다.  

아버지이건 어머니건 간에,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진실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듯. 우리의 하나님 나라 스토리도 그렇게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로 이어져 온 거니까.
자신의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과 관심사나 자신의 기도를 살펴보면 자신이 지금 가장 중요시하는 스토리가 드러난다. 즉 내가 어느 narrative 에 속해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가끔은 가족 공동체이건 교회나 국가 공동체이건 잘 치장된 공식적 스토리만 나누고 드러내려 하는 걸 본다. 그 구성원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직 간접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그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런 태도가 얼마나 건강한가 잘 모르겠다.
다음과 같은 글을 어디서 본 적도 있다. 잘 꾸며진 자신들의 이야기만 들으려 하는 이들의 공동체는 나르시시스트적 공동체라고. 만약 그 안에서 사실을 말하는 이가 있으면 그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 사람을 scapegoat 로 만들어버린다고.  그 주제를 다룬 문학작품도 여럿 존재한다.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진짜 스토리다. 창세기, 다윗과 다윗의 가족, 이스라엘의 역사 포함 성경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또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최근 큰 상을 받은 분의 소설들도 역사와 개인의 고통을 깊이 다뤘다고 들었다. 그 분이 큰 상을 받으심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위로받고 치유받는 분들이 계시리라 믿는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 나라의 스토리가 고프다.
인터넷에 범람하는 더 상처로 가는 narrative 나 잘 치장된 선전용 narrative 가 아닌, 참된 치유와 회복으로 가는 narrative.


:
Posted by pleasing2jc
2024. 10. 22. 10:35

revival 카테고리 없음2024. 10. 22. 10:35

마르틴 로이드 존스 책 Revival 에 나오는 내용들. 

책은 오래전에 읽었지만, 기억이 흐릿해서 인터넷에 누군가가 quote 를 해 놓은 것들을 옮겨놓았다. 

 A revival is not the Church deciding to do something and doing it. It is something that is done to the Church, something that happens to the Church. (Pg. 99)

A revival, by definition, is the mighty act of God and it is a sovereign act of God. (Pg. 112)

We must cease to think of the Church as a gathering of institutions and organizations, and we must get back this notion that we are the people of God. And that it is for his name’s sake, and because his name is upon us, we must plead for the Church. Yes, and for her glory and her honor, because she is His. (Pg. 193)

And throughout the story of the Church, throughout the centuries, He has been doing the same thing. The Church has been dying, she has seemed to be finished. Suddenly, He appears, and His enemies are scattered and the Church is revived. That is what is meant by revival: times of refreshing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That is what revival means: that the Church has another glimpse of the vision. The Church sees Him, and, seeing Him, can smile, and laugh, at all her enemies. Revival is always His work. (Pg. 274)

위의 아이디어들이 너무 옛 것인가?
실리콘 밸리에서 꿈꾸는 부훙이 무척이나 실리콘 밸리답다는 생각이 든다.

좀 혼란스럽다. 

:
Posted by pleasing2jc

성경의 저자들이 요즘 세계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기록한다면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최근 encounter with god 에서 열왕기 상, 하 을 보고 있다. 엘리야의 시대를 거쳐서 엘리사의 시대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앗시리리아와 아람의 시대. 

그 시대에 대해서 쓴 거처럼 지금에 대해서 쓴다면 뭐라고 쓸까?  

오늘날의 엘리야와 엘리사는 누구이고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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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0. 3. 14:08

석달 (세달, three months) 의 비밀? 카테고리 없음2024. 10. 3. 14:08

앞글에 쓴 post nasal drip 으로 인한 기침이 시작된지 약 3 달이 지났는데 갑자기 기침을 안 하기 시작했다.

지난 주만 해도 저녁이 되면 기침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약 세 달이 지나니 기침이 그쳤다. 

 

코에 이물감이 여전히 좀 있긴 하지만, 기침은 안한다. 

항상 그렇다. post nasal drip 으로 인한 기침은 딱 세달 간다. 

계절의 변화로 인한 것도 아니다. 1 월, 3 월, 7 월, 11 월 등 각 계절에 onset 이 있어도 약 3 달동안 기침을 하고 그친다. 

석달 동안 코와 sinus 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궁금하다.  

그동안 기침사탕, nasal wash, nasal spray 등 무수히 썼지만 그것들이 증상을 조금 완화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기침을 멈춘건 같진 않다.  

다음에 또 이런 기침을 하게 되면 ENT 의사를 만나서 검사를 받아봐야겠다.

 

지금은 또 아이가 기침을 하고 있는데, 아이의 기침은 후비루에 의한 게 아니라 기관지 (airway) 에서 나오는 것.

아이 기침은 이사하느라 먼지를 많이 들이마시면서 시작되었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세가족이 기침을 잘 하는 경향이 있어서,  마스크를 항상 하고 다녀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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