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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2. 11:56

화양연화를 통한 단상과 습작 카테고리 없음2016. 9. 22. 11:56


바쁜 한 주를 매듭짓고 방전되어서 몸을 조금도 움직이는게 싫었던 지난 토요일 오후. 한국어와 영어의 세계에의 권태를 느끼던 차, 다른 언어로 표현되는 정서와 사고는 어떨까 싶어,  한 기사에서 21 세기 best movies 중 하나로 뽑힌  <화양연화>를  찾아봤다. 중국어든 광동어든 전혀 모르기에 영어 자막의 도움을 빌려서 봤고 한국어로 감상문을 쓰고 있으니 언어영역에서의 완전한 일탈은 아니.

왕가위 감독,  양조위&장만옥 주연. 2000 (2001?) 년도 영화. 16 년전이니 "옛날" 영화다.  그 당시 20 대 중후반에 이 영화를 봤다면 중간에 꺼버렸을 것이다. 40 대 중반이 된 지금도 공감할 수 없을 뿐더러, 억지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두 주인공의 애정구도가 낯선 것이라서 따라가기 힘들었다. 소위 플라토닉 러브고는 하지만 불륜이다. 종교적 시각에서 이 영화를 평가하며, "죄" 같은 단어로 무식하게 매도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종교/도덕과는 상관없이 에로스적 사랑을 허상이라 여기기에 감정이입이 안된다. 그런데 왜 공감도 되지 않는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데 시간을 할애하며 주저리 주저리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볼만한 영화였네 하면서 지나가면 될텐데, 영화 한 편 본 경험을 왜 이리 분석하고 있는지?  통찰이나 배움을 준 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스토리라인과 상관없이 영화예술의 힘을 새삼 느꼈다고 해야하나? 소심한 사람들의 허락되지 않은 청승맞은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내었다는 것. 그런 이웃들이 옆집에 있었다면 추하다고 느꼈을텐데, 주인공들의 (양조위보다는 장만옥의) 빼어난 외모와 연기, 영상미, 배경음악으로 인해서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애틋해야 할 연애감정에는 설득이 안되었지만,  영화 전반에 스며들어있는 상실감, 외로움, 갈망 등이 부각되어 보였다. 그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거나 되새김질하는건  21 세가 Bay Area 에선 보기 어려운 일이다. 이곳은 entrepreneurship, 첨단기술, 효율, 생산성, 스피드 등등이 키워드인 곳이니까. 그런데도 이리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건, 그것들을 아름답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화끈한 결론도 없이 답답한 이야기를 심미안적, 감각적으 그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밑의) 유튜브 편집 영상이나 음악도 다시 찾게 만든다[각주:1].  

영화의 인상적 장면들을 그림 감상하듯 되돌려보다보니, 문득 ㄱㅎ 님의 문장이 생각난다. 빼어난 문장력으로 유명한 그 분의 책을 두 권 가지고 있긴 한데 아직 안 읽었다. 아니, 못 읽었다. 그의 문장 열 개도 채 안 읽은 사람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거 자체가 황송한 일이지만, 그저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문장은  도무지 머리에 입력이 안된다.  책의 첫문장을 가지고 몇 분 동안 낑낑거리다가 포기했다.  그 분은 그 문장을 쓰시느라 하루 온종일을 보내셨을지도 모르지만... 잡초 하나하나까지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느끼는 그 정서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문장 하나와 씨름하다 지쳐 떨어져서, 무례한 감상평을 쏟아내는 내면의 소리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스스로의 메마른 정서를 탓했다. 그런데... 그의 문장을 칭송하는 다른 책에  인용된 "된장과 인간은 치정관계에 있다," 를 읽고는 심히 당황했다. 된장은 (우리에게 친숙한) 된장일 뿐이지 치정관계는 또 뭐란 말인가? 고정관념을 와장창 깨버린 상상력과 표현력에 큰 점수를 드리지만, 그 문장을 극찬까진 못하겠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언젠가 책을 소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한 출연진이  ㄱㅎ 작가와 유사한 문장에 대해서 공감안된다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걸 보고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안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영화 <화양연화>의 표현력 깊은 인상을 받고 보니, 그렇게 문장에 집중하는 마인드세트도 대충 이해가 될 듯은 하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렇지만서도 문장과 표현력보다는 알맹이?- 서사와 세계관 철학[각주:2] 을 더 중요시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글을 쓰는데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썼다. Bullet point 몇 개로 끝날 감상평을 이리 길게 쓴 건위에 나열한 색다른 세계를 미숙하게나마 체험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탓도 있다.  주제와 상관없이 짜임새있는 글을 써 보는건 뜨개질이나 모형조립을 하는것처럼 그 작업자체만으로도 성취감을 주고 기분전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글이나 예술의 세계는 간접경험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을 듯 하다. 낯선 것들을 경험케 해주는 예술작품과 예술가분들은 정말 많이 appreciate 한다. 하지만  어떤 일탈을 하고 싶어질때면, 예술작품을 즐기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 이 시기에는  dental spanish/chinese 공부 등을 더 이상 루지 말고 시작하는게  더 좋을 듯 싶다[각주:3].  할 일 많다. 지금은  내가  속해 있는 현재 나의 세계에 충실한 것이 [각주:4] 가장 건강하다는 걸 알아야 하는 불혹+ 다 ---  런 불혹 사십대 의 중 2 병 걸린 듯한 글을 초딩 그림일기적 다짐으로 마무리한다. 




  1. 흠 그런데 유튜브 영상을 오늘 다시 보니 답답하다.... 헉... [본문으로]
  2. 소설가 황석영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본문으로]
  3. 마침, 스페니쉬를 하는 한 분이 내게 dental spanish 를 가르쳐주시곘다고 하시기도 했다. [본문으로]
  4. 예술을 한다면 예술에 충실했을테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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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근 페미니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한국미디어도 미디어지만, 최근 오바마가 feminism 에 대해서 쓴 도 있었다. 오바마의 글은 힐러리를 지지하는 정치적 동기가 배면에 있는걸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오바마가 자신의 딸 둘을 생각하는 맘도 잘 나타나 있다.  패션, 화장품, 이성관계 등에 대한 기사가 대부분인 여성잡지[각주:1]에 미국 대통령의 페미니즘에 관한 글이 실렸다는것도 상징성이 있다. 최근 십대 남 vs 여학생이 보는 미국잡지를 비교한 기사를 봤다. 진로/커리어 등등에 관한 기사가 대부분인 남학생 잡지에 비해서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기사들은 위의 잡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오바마 뿐 아니라 많은 딸 가진 부모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아이가 살아갈 삶과 세상에 대한 바람이 있다.  아이는 몇 년 전부터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한다. 그건 남녀평등/동등을 추구하는 것이지 여성우월/남성혐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뚜렷이 밝힌다.  아이와 가벼운 대화를 하다가 가끔 남성을 깎아내리는(? 특정남성들이 아닌 불특정다수의 남성들) 농담이라도 하면 그건 (페미니스트가 아닌) man-hater 적 발언이라고 한다[각주:2]  Man hater 라는 표현도 아이에게서 배웠다. 그런 순간들이  아이의 perspective 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밖에도 내게 페미니즘을 들여다 볼 동기를 부여한 개인적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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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을 읽고 있는 중. 책을 읽으면서 배우는 건 feminism 이라기 보단 gender debate 이라는 term 이 더 적절하다는 것.

속독하며, Critical reading 보다는 초보자로서 overview 를 하는 것과 배움에 중점을 두고 있음. 


다 읽은 책들:


(1) Neither Complementarian nor Egalitarian: A Kingdom Corrective to the Evangelical Gender Debate by Michelle Lee Barnwell. 신학교수가 쓴 책. complementarian 과 egalitarian 이 있다는 것도 모르던 내게 좋은 입문서가 되었음. 


(2) Jesus Feminist: An Invitation to Revisit the Bible's View of Women by Sarah Bessey. 샛노란색 표지에 비교적 큰 활자를 지닌 얇은 책의 겉모습때문에, 읽기 전부터 괜한 편견을 가졌다. sophomoric 한 책이 아닐까? 그런 편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해서인지 중간중간 그렇게 여겨지는 일부 단락이 있긴 했지만, 무척 유익한 책이었다. 그 중 한 챕터는 마르틴 루터 킹 쥬니어의 "I have a dream" 연설을 떠올리게 할 정도의 호소력을 가졌다. 


위 책들의 결론: egalitarian 이나 complementarian 이라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Unity in Christ 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 다음 말씀처럼:


28 There is neither Jew nor Gentile, neither slave nor free, nor is there male and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Galatians 3:28)



적용에 대해서 크게 다루지 않는다. 특히 Sarah Bessey 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각자의 처한 곳에서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며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고. 


(3)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기독교책이 아님. 20 분 동안 훑어보기만 했다. 일본의 상황이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 




읽고 있거나 읽을 책들.

다음 책들은 적용점을 더 다룰 듯 하다. 두 책 모두 다 egalitarian 시각.


(1) What Paul Really Said About Women: The Apostle's Liberating Views on Equality in Marriage, Leadership, and Love by John T Bristow 

(2) Partners in Christ: A Conservative Case for Egalitarianism by John G Stackhouse Jr. 



(3) Exclusion and Embrace by Miroslov Volf 에도 Gender debate 에 대한 한 chapter 가 있던 걸로 기억된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성경의 controversial 한 구절들을 다루는 것은 어느 한 책에 집중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 저 책에 흩어져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언제 시간 나면 그것들을 노트에 정리하던지 해야겠다. 


짧은 예를 들자면, 

(1) 남성이 가정의 head 라고 했을 때 그 head 의 원어적 의미는 가장/리더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전쟁터에 뛰어드는 군대의 선발(선두?)의 의미가 크다는 것. 

(2) 창세기에 여성을 남성의 helper 로 창조했다는것도 여성만 남성의 helper 라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 helper 라는 것.... 등등. 

helper 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묘사할 때도 사용되는 '강한?' helper 를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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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면에 지닌 남성혐오 및 여성혐오 도 다뤄야 하고, 그와 더불어  인종 & 국적 & 종교 & 나이 & LGBTQ+ &기타 등등 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편견들도 들여다 보고 고쳐야 하고 요즘 이래저래 바쁘다.  일터에서 워낙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1. 잡지 이름 탓(glamour) 인지, 필터를 걸어놓은 우리집 인터넷에선 잡지 페이지가 열리지도 않는다. [본문으로]
  2. LGBTQ+ 등에 대해서도 한번 잘 못 얘기했다가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찍히기도 했다. 진땀빼며 아니라고 설명해야했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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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