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약간의 두드러기 반응을 느끼는 두 가지 단어가 있는데 그건 "사역"과 "공동체"이다. 항상 그런 두드러기 반응을 가지는 건 아니긴 하지만서도... 사역과 공동체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데 왜 그럴까?
내가 그런 (내면적) 반응을 가지게 된 이유를 점검해보면
첫째,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된 곳이 공동체와 사역을 무척이나 중요시하던 교회/모임이었다. 공동체와 사역에의 헌신과 희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곳이었다. 평신도들도 그러했다. 그곳의 헌신과 희생에 버금가는 이들을 지금까지 본 적이 별로 없다. 그곳에서 나도 자연스레 그것들에 큰 가치를 두게 되었지만... to make a long story short, 그 교회/모임의 한계와 과오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가지고 그곳을 떠났고, 그 휴유증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나만 그러했던 건 아니다. 그곳을 떠난 많은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심한 휴유증을 겪었었다. 지난 세월동안 그 교회/모임에 많은 사건이 있었고, 그 사이에 규모가 더 커진 그 모임의 문제는 더 심해진 듯 하다.
나는 그 곳을 떠난 이후에도 한동안 공동체와 사역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들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했었다. 지나치게 열심이었던 교회생활. 그러나 돌아보면 그 때만큼 내가 망가져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극단에 치우친 공동체/사역 중심주의가 삶의 다른 영역에 악영향을 주었고, 공동체/사역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우월감과 정죄, 즉 교만이 심했었다. 진정한 성숙/성장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런 개인적 경험으로 인해서, 교회 &신앙공동체/사역에 지나치게 치중된 신앙을 지양하게 된 듯 하다.
둘째, 모든 것에의 해답이 공동체에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 이전에 어떤 삶의 문제 나눔에도, "기도해봐" 하는 쉬운 답을 들으면 맥이 빠지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기도" 대신 "공동체"가 더 해답이 되는 걸 많이 본다. 아마도 공동체가 필요한 시대적 이유도 있어서도 있겠지만.. 흠...
셋째, 신앙을 잘 가지고 있다면 모든 기독교인들은 다 사역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가정, 직장, 교회, 친구들 모임, 사회ㅡ 심지어는 애완동물과 자연만물에 대해서도. 그런데, 교회나 기독교 단체 내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만 사역의 의미를 한정하고, 그 일을 하는 "사역자"를 다른 기독교인들과 구별된 이들로 보는 사고방식이 느껴질 때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건 전문 사역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전문성은 인정하지만, 전문 사역자임을 어떤 위계질서 속에서 우위에 두려는 사고방식은 거부한다.
넷째, 이건 미국보다도 한국의 유튜브 설교를 들을 때 가지게 되는 느낌인데, 공동체를 강조하는 목사님들의 agenda 가 느껴질 때다. 일부 목사님들은 교인들이 교회를 우선적으로 하고 서로간에 불화도 없고, 조화롭게 모든 사역이 잘 흘러가야 자신들의 삶이 편해지고 나아지는 것도 있지 않을까?
위의 느낌들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내 내면의 문제로 인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사역은 중요하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공동체와 사역만을 중요시하는 건 경계해야 할 듯 하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진정한 뜻을 가리는 우상이 되어서는 안되겠지. 과거 "성전"과 "율법"처럼....
요즘 같은 시대에, 골방&공동체&광장에 대해서 많이 생각케 된다. 골방, 공동체, 광장 외에 또 다른 어떤 category 가 있는지 잘모르겠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전문가의 설명이 궁금하다.
어쨌거나 골방과 광장 없이 공동체만을 중시하는 형태의 신앙의 부작용이 위와 같을테고. 골방만 있는 신앙의 부작용이나 광장만 있는 부작용 등등,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형태의 신앙의 부작용이 다분하리라. 이 시대에 어떤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하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