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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을 보면 가스라이팅 등 심리적인 것들이 많이 다뤄지는 듯 하다. 드라마 주인공들도 소시오패스 싸이코패스 등이 많이 나온다. 

위 방송 프로그램은 보지 않는데. 유튜브에 위 클립 이 떠서 봤다. 

질문은 영어시험을 못 봤을 때 풀이 죽어 앉아있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하는 아이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아이겠냐고 한다. A. 엄마가 속상해 할 까봐 (풀이 죽어있다) B. 아빠에게 혼날까봐 (풀이 죽어있다). 답은 A 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A 가 개스라이팅을 당한 아이라는 건 맞겠지만, 영어시험을 못 봐서 풀이 죽어있는 이유는 위 두가지여서는 다 건강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아와 부모자녀관계가 건강하다면, 아이가 영어시험을 못봐서 풀이 죽는 이유는 그저 자신이 시험을 못 봐서 속상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위 프로그램은 가스라이팅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기에 문제출제 상 객관식 항목을 두개밖에 줄 수 밖에 없었겠지. 

나 또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훈육을 해야 할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를 진심으로  위하는 것인가 고민해왔고, 어떤 순간 위의 같이 "엄마는 속상해,"하려다가, 이건 아이중심적으로 생각하는것이 아니다 꺠닫는 순간이 있어서 그만둔 적이 있다. 나는 내 아이가 나에게 '연민'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나이가 훨씬 많이 들 때까지는, 아이가 safe 한 곳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되었음 좋겠다 (물론 아이가 우선으로 기대야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럼에도 아이는 내가 기억도 못하는, 어린 시절 자신이 상처받았던 일들을 얘기하기도 한다. 나름 조심하고 조심한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렇다. 

그래도 그 후로도 뭐 수많은 잘못을 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아이도 저런 심리학적인 지식이 늘어서 어떻게 건강한 boundary 를  형성할 것인가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것이 manipulation 인가 진정한 사랑과 관심인가 구분하기도 하는듯 하다.  아이는 문과라서 더 그런 것을 잘 알기도 하고, 아이친구들도 그런듯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therapist 한두번 안 본 사람이 없는듯 하다. 미국교회에서 책 <Boundaries: When to Say Yes, How to Say No to Take Control of Your Life> 책으로 설교나 북클럽을 하는것도 봤다. toxic people 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기사들이나 책들도 심심챦게 마주친다. 예를 들면 이런 Forbes 기사나 Harvard business review 잡지 등등.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행동과 말을 하는 내 동기가 무엇인가 상당히 많이 쪼개고 쪼개서 성찰해야 하는 것을 많이 느낀다. 내 행동과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어떤 영향을 끼칠것인가도 고려해야 하고.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한 것인가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하고.

누구나 다 그렇듯, 나도 개스라이팅을 겪었다. 특히나 이런 심리학적 상식이 없던 '옛날' 에는 더더욱. 우리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부모님들은 그러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셨던 시대이고.

그래도 나는 시험을 못 보면 어머니께서 속상해할까봐 풀이 죽지는 않았고 "혼날까봐" 걱정했었고, 혼을 내시는 어머니께 "이건 내 일인데 왜 나한테  속상해 할 틈을 안 주시냐. 엄마가 왜 그러시냐"고 대들기도 했었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는 좀 당황하셨었는데, 지금 잘 기억 못 하실거다.  그런거보면 나는 나의 어머니에게 '연민'은 없었고 사춘기적 반항심이 가득했었다. 죄송할 따름이다. 요즘은 어린 시절 얘기가 나오면,  그 때 혼내줘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린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스라이팅적 대우를 받아 곤란한 적도 있었다. 무척 힘든 일을 막 겪은 내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힘든 일로 인해) 00 를 걱정시키지 마세요."   난 OO 를 걱정시킬 생각도 없었고 00에게  의지하는 편도 아니기에 그런 말이 좀 당황스러웠었다. 오히려 그 말을 한 사람과 그 주변사람들이 OO 를 걱정시키는 경우가 많았기에 좀 황당했었다.  또 어떤 이는 한참 더운 날씨에 자기 집 에어컨을 끄며 "이건 더운 거 아니야." 해서 "더운 거에요" 반박하긴 헀으나, 솔직히 섬찟했다. 그 당시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날 컨트롤하러 드는구나 확 느껴졌었다. 

또 다른 사람은, 잘 지내고 있는 내게 힘들지 않냐며 내 감정과 상황을 구구절절 자기 본위대로 얘기해서 좀 당황한 적도 있다. 나름 공감을 실천하려했던 그 사람의 좋은 의도는 이해하기는 한다.   

그래도 그 정도는 mild 한 케이스이고, 더 정도가 심한 일들도 있어서 무척 피폐해졌던 적이 있다. 

물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적이 많을 것이다. 원래 선을 넘는 조언같은 거 남에게 잘 안하는데 큰 맘먹고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위 영상에 나오는 그런 가스라이팅으로 받아졌을 수도 있는거 같다. 내가 그 사람을 진정으로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그 후로   boundary 와 그와 비슷한 책들, 개스라이팅에 대한 책도 읽었었고 나 스스로도 성찰하기 시작했었다.  

또한 훨씬 더 심한 일들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생각한다.  이단이나 human trafficking, 거짓된 정치체제 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 

정말 심하게 깨어진 세상이다.  인간은 끔찍한 죄인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또 다른 질문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건강한 자아와 관계가 형성된 후에, 위 tv 프로그램 질문 같은 상황에서 "왜 풀이 죽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진정으로 부모님을 위하는 맘으로 "어머니께서도 속상해 하실까봐서요 " 답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 감정중심으로만 생각해서 풀이 죽어 있는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태라고 볼 수 있는.

또 위 tv 프로그램에서 가스라이팅으로 표현된 선 넘는 '오지랖'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남을 진정으로 위하는 말을 할 수도 있는데 그 fine line 을 어떻게 분별할까?  역시 성령님의 도움으로만 가능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까? 말 한마디 뒤에 숨겨진 수없이 많은 기도와 눈물들? 

역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기도하며 스스로를 쪼개고 쪼개고 성찰하며 죄성이 관여하고 있는 건 아니지 그리스도의 사랑인지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바래야 하나보다.  

그러나 스스로를 쪼개고 쪼개고 성찰하고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완전(완벽, 온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살 수도 없고.

십자가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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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