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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을 몇 편을 대충 쭉 읽다가 102 편에 주의가 집중되었다.
안그래도 최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있기도 했었고,
지난 주 전력질주를 좀 했더니 몸/마음이 지쳐서 시편저자에 감정이입도 했나보다. (시편저자의 고난과 고통에 비교 될 바 없는 '피로함'일 뿐이다)
또 24 절의 "mid-point of my life" 라는 말도 눈에 띄었다.
'마음에 와 닿은"대로 따라가는 그닥 바람직하지 않은 성경읽기라고 할 수 있으나...

인터넷의 시편 102 편에 대한 강의를 찾아 들으니 개인기도와 공동체 기도가 섞여있는 시편이라고 한다.
한 개인의 고통에서 시작된 개인의 기도를 공동체의 기도로 승화했다고. 이 시편 안의 공동체라 함은 이스라엘 백성.

지금, 이 시편 저자처럼 기도할 공동체가 있다면 지구 공동체가 떠오른다.
질병, 지진, A 국 사태, 허리케인, 산불, 가뭄, 지진, climate change warning -- 지인 중에는 A 국에 가족이 있는 이도 있고, 또 다른 지인은 가족이 위독해서 중미의 자기나라로 급히 갔고. 동생의 지인은 허리케인을 피해 동생집으로 피난을 왔다고. 모두 다 위해서 기도를 안 할 수가 없다.
산불&가뭄은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계속되고 있는 재난이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 (진보와 생산성, 물질, 폭력, 부패, 테러 등등)이 우상화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로 인해 힘없고 약한 이들이 고난을 겪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But) 시편저자의 v12-22 v25-v27 하나님의 왕되심, 하나님의 일하심을 되새기며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주뜻의 이루어짐을 위해 기도해야 겠지

안 그래도 요즘 운전하며 "the blessing" 을 계속 들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맘이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다. 얘기를 나눈 몇몇 이들도 "우리는 괜찮은데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은 어떡해요?" 하며 어떤 위기감을 느끼는듯하다.
시편기자도 마찬가지였구나.
v28. The children of your servants shall live secure; their offspring shall be established in your presence.

21 세기에 "mid-point of my life" 를 보내며 수천년전 시편기자의 기도에 동참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으신 하나님이시다. Verse 27 에도 나와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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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