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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30. 03:13

boy and man (girl and woman) 카테고리 없음2020. 7. 30. 03:13

1990 년대 후반 같은 교회 (캠브리지, MA) 에 계시던  C 장로님을 약 10 년 후 다른 곳에서 만나 뵌 적이 있다. 아이아빠는 이미 캘리포니아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와 아이는 보스턴에 있던 시절이고 우리는 미국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C 장로님은 여전히 한인교회에 다니고 계셨다.

반갑게 대화를 나누며, 과거 교회생활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억을 나누던 중, 내가 불쑥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 때는 (청년시절의) 우리가 제일 잘 난 줄 알았죠 호호호."  

C 장로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선뜻 수긍을 하셨다. "젊을 때는 다 그렇지."  ("아니지, 그 때 청년부 정말 대단했지," " 그런 열정의 믿음 아무나 가질 수 있는거 아니지," 뭐 그런식의 말씀이 아니라)

한참 청년부가 뜨겁고 새벽기도가 활발하던 시절, 교회 전체 분위기를 청년부가 이끌어가고 있다고 청년들은 말했었다. 그리고 장로님들 집사님들 어른들도 청년부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그 후 10 년이 지나고 C 장로님과 10 년 전을 돌아보면서, 10 년 전 서툴고 어설펐던 것들이 더 기억났는지 모르겠다.


C 장로님과 회포를 나눈 후, 또 10 년 이라는 세월이 더 흐른 지금이다.  1990년대 후반 같은 청년부에 있던 분들과 작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지금 우리가 그 당시 모 권사님보다 더 나이 먹었어. 이제 청년들이 우리를 보면 그 당시 우리들이 모 권사님 보던 느낌일거야, " 하면서 허허 웃었다.  


15 년 전쯤인가, 어떤 수양회에 간 적이 있다. 아이들 보는 일을 도왔는데, 나이 든 집사님들, 권사님들이 오셔서 도와주셨다. 그런데 어떤 교회 리더인 듯한 한 젊은 자매분이 자신의 서너살 되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집사님들 권사님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자매는 큰소리로 "저는  어떠어떠할 때 아이와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등등등 ... 해요," 하면서 마치 연세 든 집사 권사님들 앞에서 가르치듯 얘기를 이어나갔다. 연세 든 권사님과 집사님은 답도 없이 조용히 그 자매분의 얘기를 듣고 계셨다.  많은 일을 겪으셨을  분들의 시선에서 '살아봐라.. 그게 그렇게 쉬운가...' 하는 속마음이 느껴지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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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대부분은 청년때보다 이론적으로 더 많은 걸 깨우친다

청년 시절 굳건히 붙잡고 외치던 신념들(신앙?)도 헛점 투성이였다는 걸 꺠닫기도 하다.  그 열정과 순수가 그립기는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지금 청년들의 신앙이나 신념이 이전의 것들처럼 헛점 투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럼 꼰대..)

이론이 전부 다가 아님을, 그 이론이 존재로 integrate 되어지고 삶에서 실천되어지는 것은 그 이론들이 깨우쳐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에너지 (activation energy?)가 드는  도전이라는 걸 배운다. 말처럼 쉽지 않은 것임을....


CS Lewis 에 관한 영화 <Shadowlands> 초반에서 CS Lewis 는 "Pain is  God's megaphone to rouse a deaf world" 이라고 힘찬 목소리로 설교한다. 그런데 영화 후반, 온갖 고통과 슬픔을 다 겪고 난 후, 한 바탕 통곡을 하고 힘이 다 빠진 CS Lewis 는 "Why love if losing hurts so much? I have no answers any more. Only the life I have lived. Twice in that life I’ve been given the choice: as a boy and as a man. The boy chose safety, the man chooses suffering. The pain now is part of the happiness then. That’s the deal." 라고 한다. 


영화 속 영어를 다 알아듣지도 못하던 시절에도, 그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그 문장을 일기장에 써 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인용문은 CS Lewis 가 실제로 한 말은 아니었던 거 같다. 세월이 지나고 영화를 다시 보니 영화는 CS Lewis 에게 한정되지 않은, 모든 인간이 거치는 성장통을 통한 성장스토리라고 볼 수도 있다.  Boy 와 man 이라고 했지만 girl and woman 도 포함하는. 

(CS Lewis 의 <The problem of Pain> 이 1941 년 출판되었고 <Grief observed> 가 1960 년 출판되긴 했다.... <Grief Observed> 를 읽으면 <The Problem of Pain> 을 썼던 이성적/논리적 CS Lewis 는 어디있는가 싶긴 하다)


하나님 앞에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걸 surrender 하는 과정, 나의 힘이 빠지고 나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과정이다. 성경 속의 많은 인물들이 그러했듯...   

예를 들면 야곱이 하나님(천사)와의 씨름 후 정강이 뼈가 부러져서 절룩거리게 된 후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되었고 등등...


지금 이 시간 2020 년이 하나님을 믿는 많은 이들에게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싶지만... 이 기도 자체가 두려울 정도로 '성장통'은 너무나도 아픈 것이기에  쉽게 기도할 수조차 없다. 


그저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와 함께 하여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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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