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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에 해당되는 글 3

  1. 2018.07.14 random thoughts: to bypass ? or to conquer? the cycle?
  2. 2018.07.07 귀감
  3. 2018.07.06 Psalm 48 at 45


1.    이스라엘 백성의 the cycle of sin 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단다. 인터넷 서치하면 쉽게 나오는 이미지다. 

 

2.    이 근처 교회의 오 목사님은 (교인들은 그를 존/쟌 이라고 부른다.)  한 설교에서 이 싸이클을 이렇게 정리했다.

(다이어그램을 그리기 싫어서 그냥 다음과 같이 쓴다)

(A)     Self-sufficiency -> idolatry -> judgment -> suffering -> cry for help -> deliverance -> (다시 돌아가서) Self- sufficency -> idolatry ->...

그 설교는 위 싸이클보다는 데보라와 그 당시 사건에 관한 거였다.

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cry  하시면서 eternal judgment 와 suffering 을 감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인류를 또 세상을 deliver 하시는 work 를 시작하셨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삶은 위의 싸이클을 어느 정도 따라가기도 하는 거 같다. 공동체나 세계의 싸이클도 그렇고.

4.    그를 믿는 이들에게는 Judgment 라기보다는 discipline 이라고 봐야하겠다 (hebrews  12:4-12)



5.     NT Wright 은 위와 비슷한 구약의 storyline 을 다른 perspective 로 바라보며, 스라엘의 고난과 vindication 을 통한 전세계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plan 으로 본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 -> 이스라엘의 exile -> Suffering of Israel -> vindication of Israel/Return of Israel/renewal of covenant etc. -> blessing to the world via Israel


6.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실패했고 True Israel 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 등을 겪으심으로써 전세계를 구원하셨다는 게 NT wright 의 perspective 다.



7. 이래저래 저 위의 싸이클을 벗어나는 최후 승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건데, Already but Not Yet 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오늘날도 끊임없이 개인의 삶에서 공동체에서 반복되는 싸이클인 거 같다.

8.  그냥 갑자기 떠오르는: 알버트 슈바이쳐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역사의 수레바퀴에 몸을 던진 예수님. 그 예수님은 결국 그 수레바퀴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수레바퀴의 방향을 바꾸는데는 성공헀다는.

9.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는 알버트 슈바이쳐의 시각은 반쪽짜리이긴 하다.

10.  개인들이나 공동체들은 스스로의 죄로 인해서 위의 싸이클을 반복하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discipline  받고 예수님 십자가 앞에 다시  회개하고 회복하고 또 반복하고 한다. 물론 그리하면서 소위 성화/성숙의 길을 나아가는 것일수도 있다. 



11. 저 cycle 을 bypass 혹은 초월하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길인데 : (A) 의 싸이클에서 self-sufficiency 와 우상숭배에 다다르기 전에 -- 즉 스스로의 죄와 shortcoming 으로 인한 저 싸이클을 반복하는 것을 멈추고, 이웃의 고통과 울분 등에 동참하는 십자가가 저 싸이클을 전복시키는 한 방법이라고 하면 어떨까. 즉 아래 (B) 처럼 되는거지. 

 (B)   Self-sufficiency -> idolatry -> judgment -> suffering -> cry for help -> deliverance -> Suffering with neighbor and cry with them (go to God/Jesus with them) -> delieverace together ->...


12. 위와 같은 시각은 단순화 또는 reductionism 의 오류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세상의 아픔과 모순, 이웃의 고통을 바라보게 될 때, 또 그 앞에서 너무나도 작고 무력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됨은 사실인거 같다. 

13. 만약 세상의 아픔과 모순, 이웃의 고통 등을 인간의 노력으로 정복해야 할 문제로 볼 때 그것은 인본주의가 되는 거겠지.

14. NT wright 이 얘기하는 거처럼 우리가 Build the Kingdom 하는 것이 아니라 Building for the Kingdom 한다는 거처럼...


15.  예수님을 처음 믿었던 약 25 년 전.... 자선과 구제 (justice mission 등도 포함되는) 등은, 복음적 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인간적 선행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복음전도 말씀공부 공동체 교제 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또 한편으론 이런 얘기도 들었었다: 복음의 능력이 약해지는 시대에는 자선과 구제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그것도 사실이었을수도 있다. 

15. 그러나 최근에는 다른 흐름을 볼 수 있다.  : 사랑, 공의, 정의의 하나님께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을 사랑하시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시기를 바라신다는 걸 성경적으로 설명해내는 책들이나 설교들. 그것을 인간적 사랑이나 약해진 복음으로 보기보다는 더 comprehensive 하게 이해되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 또 복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17. 이래저래 떠오르는 random thoughts - 더 많이 읽고 생각해야 하는 주제. 

Posted by pleasing2jc
2018.07.07 16:03

귀감 분류없음2018.07.07 16:03

잘못된 예를 타산지석으로 그처럼 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예를 바라보며 그렇게 되려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거 같다.

타산지석처럼 되지 않으려 하는 삶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만, (혹은 역으로 타산지석을 닮아가기도 하지만)

귀감이 될만한 이를 쫓아 사는 삶은 더 발전이 클 듯 하니.


저 밑의 타산지석의 라이프 스타일과 사고방식을 쫓지 않는다면

귀감이 될만한 예는 더 나아가 사랑과 섬김 등등을 실천하는 삶이리라.


개인적으로 귀감이 될만한 이는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 시몬느 베이유를 떠올렸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전기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 내용이 떠올라서 - 그녀의 철학의 깊이와 믿는 바실천하려던 노력 - 노동자와 연대함 등. 


이번에는 그녀에 대한 다른 시각의 전기를 읽었다. 심리학자 교수가 쓴 전기. 그녀의 심리를 분석한다. (Simone Weil: A Modern Pilgrimage> 라는 책.  

시몬느 베이유는 전쟁터에서 굶는 병사들과 연대하기 위해서 굶다가 건강상태가 나빠져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결핵환자였는데 굶기까지 해서.  심리학자 저자는 그녀의 그런 실천이 anorexia 의 증상이 아니었을까 질문한다. 시몬느 베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hunger 에 집착했었다고.  또 anorexia 와  narcissism 의 연관관계도 살짝 짚고.

(하기야 배고픈 예술가, 청렴결백 선비 등 -- 배고픔과 가난을 어느정도 glorify 하던 낭만적? 시절이 있기도 헀었지. Kafka 의 A hunger  artist 라는 단편소설도 떠오르네)


시몬느 베이유처럼 자신이 믿는 바를 철저하게 실천하려 했던 이의 심리도 분석하면, 인간의 한계와 약함을 볼 수 있다. 

선행의 동기에도 자기의 (self-righteousness) 와 자기애 (self-love) 의 요소가 뒤섞여있을 수 있으니.


역시 selfless love 의 귀감은 예수이신데..[각주:1]

그 귀감을 따르는 삶이란  갈라디아서 2:20 처럼 내가 그와 함께 죽고 내 안에 그가 사는 것으로 가능할터인데... 참으로 오묘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의 이 구절은 사랑보다는 소위 justification/righteousness - 칭의와 의로움 에 관한 말씀인듯 하지만,  그렇게  의로워져야 새로운 realm 에서의 참사람이 가능핱테니)




  1. 예수님의 selfless love 라는 명제는 믿지만, 솔직히 아주 꽉 짜인 논리 (머리)로는 완전히 이해 못하고 있다 - 공부해야 하는 주제 중 하나. [본문으로]
Posted by pleasing2jc
2018.07.06 10:42

Psalm 48 at 45 분류없음2018.07.06 10:42

Psalm 48[a]

A song. A psalm of the Sons of Korah.

Great is the Lord, and most worthy of praise,
    in the city of our God, his holy mountain.

Beautiful in its loftiness,
    the joy of the whole earth,
like the heights of Zaphon[b] is Mount Zion,
    the city of the Great King.
God is in her citadels;
    he has shown himself to be her fortress.

When the kings joined forces,
    when they advanced together,
they saw her and were astounded;
    they fled in terror.
Trembling seized them there,
    pain like that of a woman in labor.
You destroyed them like ships of Tarshish
    shattered by an east wind.

As we have heard,
    so we have seen
in the city of the Lord Almighty,
    in the city of our God:
God makes her secure
    forever.[c]

Within your temple, O God,
    we meditate on your unfailing love.
10 Like your name, O God,
    your praise reaches to the ends of the earth;
    your right hand is filled with righteousness.
11 Mount Zion rejoices,
    the villages of Judah are glad
    because of your judgments.

12 Walk about Zion, go around her,
    count her towers,
13 consider well her ramparts,
    view her citadels,
that you may tell of them
    to the next generation.

14 For this God is our God for ever and ever;
    he will be our guide even to the end.


at Christ Church Cathedral in Dublin, Ireland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