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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6. 00:38

귀차니즘 카테고리 없음2024. 11. 6. 00:38

1.   대학교 1 학년 초기, 한 classmate 가  "귀찮아," 라는 표현을 쓰는 걸 듣고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뭐가 귀찮다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클라스를 한대거나 학업에 도움되는 activity 를 귀찮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전처음으로 귀찮다라는 표현을 들은 것도 아닐텐데 왜 그리 놀랐을까?  학업 포함 많은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서 나름 '명문대'에 들어온 신입생이, 의욕에 넘쳐 앞날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그런 표현을 써서 그랬을 수도 있다.또 다른 하나는 내가 한국에서부터 배워왔던 공부철학이 최선 그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라서 그렇기도 하다. 스스로를 이겨야 하는 극기훈련, 잠을 줄여서 공부한다, 엉덩이가 짛무르도록 공부한다, 주말 & 휴일도 없이 일해야한다는 공부철학에 휩싸여 있었는데, "귀찮다"라니...


2.  그 후 세월이 흘러, 또 한 번 비슷한 형태의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사람을 귀찮아하는 듯한 태도에서다. 여러 명이 모인 모임에서 대화 중 어떤 이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 다른 한 사람이 그 사람의 얘기 듣는게 귀찮다고 표시하는 걸 들었을때다. 꽤 '신앙' 좋다고 여김받는 사람이 그런 태도를 보여서 충격의 정도가 더 컸는지 모르겠다.  또한, 그 때까지는 누군가가 '사람'을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기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서로를 귀찮아 할 정도의 선을 넘지않는 이들이 주위에 더 많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의 내면의 귀찮음을 남에게 표현하지 않는 이들이 주위에 더 많았던 듯 싶다. 그래서일까? 그 사람의 귀찮아함에 일종의 '쎄함'을 느꼈다.

 
3. 돌아보면 그런 종류의 '쎄함'을 꽤 유명한 목회자들에게서 느껴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설교 중에, 여성을 대상화하는 부적절한 발언을 한대거나, 설교를 듣는 이들을 향해 "수준이 낮다," "머리 나쁘다,"라고 발언을 하던 이들 등.  쎄했다. 그런데 그들은 엉망인 삶을 이미 살고 있었고, 나중에 그 삶이 탄로가 나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엉망인 삶을 살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새어나오는 듯 하다. 

4. 1 번의 그 classmate 는 대학시절, 주위 야망에 찬 동급생들처럼 별나게 화이팅 넘치는 학창생활을 보내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더 잘 맞는 길을 택하면서 지혜로운 대학생활을 보냈던 듯 싶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5.  2 번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신앙인이었으니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다뤄주셨을까? 

6.  열심을 다 하며 살아오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해야 할 것들은 더 많아지는데, 귀찮은 것들도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밥챙겨먹는것, 쇼핑, 청소, 헤어컷 받으러 가기, 등등. 지금은 두어달에 한 번 하는 머리염색도 앞으로 더더욱 자주 해야 하리라. 오늘도 흰머리 몇 올이 더 도드라져 보여서 두건을 쓰고 일할것인가? 염색을 할 것인가 고민 중이다. 그냥 뽑아버릴까? 귀찮다. 

7. 하지만 사람을 귀찮아해서는 안되리라. 2 번의 사람에게서 받은 큰 충격이 반면교사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내 시간이 중요하고 내향적 사람이기에 혼자 있는 시간을 안식일 지키듯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건 내 한계라고 생각하지, 타인을 탓하며 사람을 귀찮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8.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꺠닫는 건 세상에는 정말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들, 여러 조건과 상관없이 참 진실하고 실속있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학벌/교육정도, 지식, 신앙공동체 내에서의 직책, socioecomic status,  나이와 상관없이 그러하다.  어느 사람이나, 모양과 정도의 차이는 있는지 몰라도 image of God 를 지니고 있다. 

9.  모든 사람을 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맘과 지혜를 허락해주시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할 때는 그것이 내 한계라는 걸 알 수 있는 겸손함을 허락해주시고, 오해없이 표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기도한다.  또한 "쎄한"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고, 지혜롭게 대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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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4. 03:14

Procrastination 습관 고치기 카테고리 없음2024. 11. 4. 03:14

한국 고딩시절 미국에 와서 고쳐야 했던 고약한 습관 중 하나가 벼락공부였다.  Last minute 에 시험공부/과제를 하는 것. 

국민학교 시절부터 그랬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하셨던 아버지께서, 어린 나와 동생에게 "숙제 다 하고 놀아라," 말씀하시는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열심히 놀았다. 어머니께서는 우리의 어린시절부터, "공부해라," 라는 말씀은 귀에 박히도록 많이 하셨으나, 과제나 준비물을 체크하지는 않으셨다.  어머니께서 우리 어린시절에 문제집 숙제를 내 주시거나 영어를 가르쳐주시긴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께서 성문종합영어를 가르쳐주셨다. 그건 (의사였던) 외할아버지께서 어머니와 우리 외삼촌께 영어를 가르쳐주신 전통을 따른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숙제를 대신 해 주신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중-고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학원이나 과외선생님들은 찾아주셨으나, 공부계획같은것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으셨다. 초딩시절, 문제집 숙제를 안 해서 혼난 일도 부지기수다. 옆집  강ㅇ이 는, 자기 어머니 문제집 숙제하면서 답안지에서 "생략"까지 베껴서 무지 혼났다던데, 우리는 "생략"까지 베낀 적은 없다. 

국민학교 입학 후 얼마 안되어서 색칠공부 숙제가 있었는데 안 하고 있다가 그 날 아침 정말 엉맘으로 해서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보였다. 칠도 안 하고, 크레파스 선 몇 개 그어 갔었다. 그 때, 당황하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또렷이 기억난다, "넌 얼굴도 이쁜 애가 색칠은 왜 이렇게 했니?" 그러고 크게 혼내거나 그러시진 않으셨다. 30-40 대의 여자 선생님이였다. 색칠이라고 한 게 너무 황당해서 그러지 않으셨을까? 또  갓 입학한 1 학년을 벌 줄 수 없어서 최대한 좋게 표현하시지 않으셨나싶다. 

중.고딩시절에는 잠을 적게 자고 밤을 새며 공부/일하는 걸 glorify 하는 그 시대의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낮동안 시간이 좀 날 때도 "나중에 잠 좀 덜 자고 공부하면 되지," "나중에 시험 전에 며칠 밤샘하고 공부하면 되지," 라는 식으로 핑계를 대었다.  고등학교 시절, 한번은 암기과목 공부를 미루고 미루다가, 시험 전 1-2 시간 전에 교과서만 쭉 한번 읽고 가서 시험을 본 적도 있었다. 망했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점수가 잘 나와서 놀랐다. 참고로 난 photographic memory 도 없고 천재형도 전혀 아니다. 암기도 잘 못 하는 편이다. Problem solving 에 더 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방법이 통하는 객관식 시험의 현실이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편이긴 했다.) 그래서 그 바람직하지 못한 공부방법은 더 고질화되었다. 그러한 방법이 통하는구나 생각했었다. 

꾸준히 공부하는 시간도 꽤 많긴 헀었다. 그럴 경우에는 성적이 훨씬 더 좋았다. Last minute 으로 미루는 경향은 시험공부나 과제가 어렵게 느껴지거나 재미없거나 할 경우에 더 컸다. 

대학시절,  미루는 습관으로 인한 수많은 고난, 흠.. 벼락공부의 bad consequence 로 인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습관을 고치는 건 쉽지 않았다.  대학교 학년이 낮을 때는 어느 정도 last minute 에  시험공부하고 과제를 하는게 통했으나, 학년이 올라갈 수록 과목이 복잡화되면서 그건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다. 아직도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악몽을 꾸곤 한다. 

시험을 잘 보는 능력보다도 더 중요한 실력은, 쳬계적으로 계획을 잘 짜서 deadline 에 맞춰서 과제의 완성품을 내어놓는 거라는 걸 뼈져리게 깨달았다.  벼락공부해서 반짝 시험 잘 본 후에, 그 공부한 지식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오랜시간 반복해서 공부한 지식도 나중에 쉽게 잊어버리는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서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 시간 들여서 복잡한 문제를 쳬계적으로 풀어내는 능력 등은 몸에 평생 남는 습관이 되어버린다. 

개인적으로 벼락공부의 악성버릇을 고친 기간은, 대학원 시절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을 하며 치대 준비공부를 하면서였다. 아침에 학교에서 QT 하고, 대학원 일을 한 후, 져녁에 집안일하고 아이를 재우고 30 분 정도 운동도 하고 2 시간 반 공부하고 12 시에 자는  a couple of years 이였다. 시간이 날 때,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처리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는 시간이 없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일을 절대 미룰 수 없었다. 그 시절에는 그 생활 자체가 감사하고 좋았다.  몸과 맘이 바쁘고 여러모로 쪼달리고 힘들던 시절이긴 헀지만, 그래도 그런 기간이 있었음을 감사한다.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신앙에서도 벼락공부나 last minute 은  통하지 않는 거 같다. 아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last minute 이 있는데, 인간의 성장면에서는 벼락공부나 last minute 이 없는 거 같다. 오히려 오랜 광야 시간 등을 통한 꾸준한 훈련의 면이 크다. 야곱의 타향생활, 요셉의 이집트생활, 모세나 다윗의 광야생활, 예수님의 목수생활과 광야 등등.  

신앙의 여정 면에서는 어떤 훈련들에 촛점을 맞춰야 할까?  이미 주어진 신앙과 삶의 과제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순종하는 걸로 시작해야 할지 아닐까 싶다.  기도와 말씀, 이웃사랑, 집안일이나 직장일을 성실히 잘 해는 것, 건강한 식습관이나 운동,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들 성실히 관리하고 사용하기, 사역,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길 기도하기, 나의 죄성과 싸우기 등 모두 포함되는 것이리라. 또 독서 등을 통한 바른 지식을 부지런히 쌓아가고 실천하는 것 등도 중요하다.  미루지 말자. 당장 순종하자.
 

 

---- 빨리 다 끝내고 싶지만 생각만큼 진도가 잘 안 나가는 "Reading Genesis" 를 읽다가 위 그림을 어디선가 보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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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1. 09:59

pain of discipline 카테고리 없음2024. 11. 1. 09:59

어디선가 마주친 인용문.
뭐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곘지만, 인용문은 So true.
경험 상, pain of regret 가 pain of discipline 보다 훨씬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regret 라기보다 resentment (bitterness) 일 경우 무척 toxic 하다.   
pain of regret 라는 정서적 면 뿐만 아니라,
discipline 하지 못해서 생기는  신체적 & 실제적 damage 와 고통도 크다. 
pain of discipline 은 paiful 하지만 무척 joyous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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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