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

« 2024/4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2022. 2. 7. 15:45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카테고리 없음2022. 2. 7. 15:45

보스턴에 살던 시절, 하ㅂ드 스퀘어 근처의 아파트 (off-campus housing) 에 산 적이 있다.
하ㅂ드 스퀘어를 지나칠 때면,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정신없이 주워먹고 있는 참새들의 자유로움을 한없이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 때 밥을 굶어야 해서 배가 고픈 시절은 절대로 아니었다. 배가 고프긴 커녕 오히려 다이어트에 신경 쓰던 시절이고, 아파트에 가면 날 돌봐주시러 오신 어머니께서 맛있는 집밥을 해 주시던 시절인데도 맘편하게 학업에 집중할 수 없이, 미래에의 불안감에 몸과 마음이 마비된듯 했었다.
교회생활로 인해 깨진 밸런스로 학업의 위기를 겪은 인생의 첫 좌절 후라서 더 그래했는지도 모르겠다.

https://www.tripadvisor.com/Attraction_Review-g60890-d102693-Reviews-Harvard_Square-Cambridge_Massachusetts.html 에서 퍼옴


마태복음 6: 25- 34 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으나 염려는 멈출 수가 없었다. 미래에의 걱정과 부담감에 짛눌러서... 정말 심각했다.
그 당시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하나님나라와 의는, 소위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는 것 뿐이었다. 부모님께서 반대 하시는데도 교회생활을 지나치게 열심히 했다. 어느 순간 부모님께서 경제적 support을 끊으신 적도 있다. 나름 고심해서 결론낸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했는데, 먹고 마시는 길도 막힌 웃픈 상황을 마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미련하게 믿음생활을 하면서도 그게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도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더하시리라는 '그 모든 것' 아니 좀 더 많은 것에의 욕심이 없다고 할 수 없는 모순을 살았다.
.
.
긴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길 위의 참새를 부러워하기는 커녕, 참새들에게 신경도 잘 안 쓴다.
앞 글의 팔자좋은 소나 개도 안 부럽다. 그들의 삶이 심심하진 않을까 한다. 차라리 자신의 의지로 (본능을 따라) 자유롭게 일하는 비버가 좋다. - 마태복음 6:25-34 에 비버를 끼어넣을 수는 없을까?
미래에의 불확실성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라는 건 알고 있으나, 대학 시절처럼 미래에의 걱정과 염려로 몸과 마음이 마비될 정도는 아니다.
만약 "이 모든 것" 이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라면, 그 문제가 이전보다는 더 충족된 지금 읽는 마태복음 6:25-34 말씀은 더 비장해야 하는것 아닌가 한다.
이전에는 인간 본성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더해지는 것들"에의 어느정도의 사심이 섞여있었다면
현재 이 passage 를 읽을 때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에 온전히 집중해야 할텐데...
지금 이 stage 에서 구하길 원하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뭘까? 잘 모르겠다.
지난 시간들, 인생의 고비마다 홍해를 건너는 모세와 여리고성 포함 가나안 땅 전투를 치루는 여호수아, 이스라엘백성들을 떠올리며 열심히 기도하곤 했었다.
지금은 그 시절보다 더 간절한 맘으로, 홍해를 건너고 여리고성을 돌듯 또 아이성 전투 아간같은 욕심은 철저히 경계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구하며 그가 원하시는 그의 나라와 그의 뚯이 무언인가 정말 하나님의 답을 구해야 하는 때인듯 하다.
어린 시절처럼 제한되고 모순된 세계관/신앙관에서 성급히 결론지어진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이 아닌 , 진정으로 그가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매일매일 절실히 구하며 살고 싶다.





: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