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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11. 08:55

피아노 이모 카테고리 없음2019. 11. 11. 08:55

나에겐 이모가 여러분 계신다. 그 중 둘째 이모가 이틀전 돌아가셨다.

이모에 대해서 몇 자 써야, 가슴에  얹힌 이 뭔가가 좀 사라질 듯 하다. 

둘쩨이모는, 막내딸이신 우리 어머니와는 나이차가 15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둘째 이모는 신체에 장애가 있었다.

다른 자매들은 그 세대기준으로 키가 작지 않은 편인데,  둘쨰 이모는 척추의 문제로  체구가 많이 작았다.  이 사진 당시 초딩 3 학년이던 나랑 키가 비슷할 정도.  (사진의 중앙이 이모)


어린 시절에 놀림을 받았을 수도 있고 평생 움츠려 사실 수도 있었을텐데, 이모는 전혀 그러지 않으셨다.

몸이 약한 이모위해서 외할아버지께서 서울에 장만해 주신 집에 평생 사시면서, 전공인 음악을 살려 평생 피아노 선생님을 하셨다.

그래서 나와 내동생은 이모를 "피아노 이모"라고 불렀다.

이모 댁에 가면 피아노는 당연히 있었으며, 베토벤 얼굴 그림이 걸있었고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흔한 그림), 각종 악보와 LP 판 등이 많았다. 그리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온 학생들을 위해서인지, 위인전 한 세트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모댁을 방문할 때마다, 그 위인전 중에서 헬렌켈러만 집중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에디슨이나 퀴리부인 링컨 같은 분들의 위인전도 있었을텐데...

아마도 몸의 장애를 이겨내고 살아가시는 이모에게서 헬렌켈러같은 모습을 봐서인지...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에도 내가 왜 이렇게 헬렌켈러만 읽지? 스스로도 의아해했었다. (국민학생이었는데)



리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이모가  젊은 시절 이쁘기도 했고 활달해서, 남자분들과 데이트도 많이 하셨다고

그러시다 신체건강하시고 성격좋고 성실하셨던  이모부를 만나 결혼하셨다. 

80-90 년대, 두 분은 강남 한복판에서 음악 학원을 하셨다. 이모부께서는 학원 밴 (봉고차)를 운전하시는 등의 일을 하셨다. 



나와 동생도 이모의 학원에 다녔었다. 나는 바이올린을 배웠고 동생은 피아노를 배웠다.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던 원장실은 어른들의 아지트 비슷했다. 원장실 소파에 이모들과  (대학생이던) 사촌언니오빠들이 모여앉아 수다도 떨고 배달음식도 시켜먹던 기억이 난다. 중딩이었던 우리는 레슨을 받아야했고.

이모가 학생들 레슨을 시키는 모습도 기억난다.  당신보다 덩지가 더 큰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시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박자를 맞추시던..

이모는 항상 에너지 넘치셨고  명랑하셨고, 삶에의 애착과 열정이 대단하셨다.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낙관적 사람 중 하나이시다.


이모부가 돌아가신 후, 이모는 다른 지역으로 학원을 옮기셔서,  최근 1-2 년 전까지도 운영하셨다. 

몸이 안 좋아진 후, 집에 계시면서도 동네사람 피아노 레슨을 하기도 하셨다고.

이모께서는 피아노 선생님, 혹은 학원 원장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사셨고 몸의 장애를 극복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일찍 은퇴 안 하시고 80 대 중반까지도 일하셨는지.. 잘 모르겠다...


돌아가시기 전 몇 달은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서 많이 고생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돌아가실 때는 주무시듯 편안히 가셨다고 한다.


내가 대학교 여름방학 때 한국에 나가서 이모학원에 찾아간 적이 있다.  

이모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근처 백화점에 나를 데리고 가서 옷을 사 주셨다. 정작 이모 당신께서는 자신감이 넘치시는데, 나는 속으로 "이 분이 우리 이모라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해. 내가 이모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이모와 사람들에게 보여야 해"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 피아노 이모는 실제로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분이시다. 

이런 내 맘이 이제는 하나님 곁에 계신 이모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맘에서 이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편히 쉬세요,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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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