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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2. 13:10

정의와 신뢰와 기도 카테고리 없음2016. 10. 22. 13:10

The Locust Effect (by Gary Haugen)   책 앞쪽에 보면 human trafficking 등이 공공연히 이뤄지는 나라들의 정의가 얼마나 타락해 있는가 이야기한다. 그런 나라들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맘이 너무 많이 힘들어진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게 힘들어 진도가 무척 느리게 나가고 있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하는 법의 보호가 부재된 곳에서 일어나는 불의하고 잔인한 일들... 가슴이 찢어지는 일들이다. 


물론 미국이나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일어났던 S 모 명문대의 수영선수 성범죄 사건을 둘러싼 논란 등등.


하지만 문 밖을 나서기만 해도, 아니 집에 있어도 맘 놓고 살 수 없는 불의가 공공연히 이뤄지는 끔찍한 나라들이 있다. 그리고 공권력조차도 그 불의를 덮어버리는 악이 되어버리는 그런 나라들 (The Locust Effect 에 나온 나라들..)


그런 곳에 산다면 당연히 타인과 국가기관/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또 적개감, 혐오, cynicism (냉소) 등이 몸에 밴 일부 사람들도 있을테고. 


그런데, 만약 그렇게 불의한 곳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았기에 타인과 국가 등을 신뢰 못 하는 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나라에 옮겨 놓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옮겨진 이들이 곧바로 타인과 국가를 신뢰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잘 모르지만 몸에 배어있는 불신의 자세를 곧바로 버리긴 어려울 거다. 


한 사회의 가해자의 몸에 밴 악함은 큰 문제다. 

예를 들면, 힘없는 자를 착취하고 권리를 남용하면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조금의 죄책감도 못 느끼고 심지어 그것이 나라와 사회를 위하는 등의 선한 목적 때문이었다고 굳게 믿는등의...

그와 더불어 불의한 사회에서 산 피해자들의 몸에 밴 습성도 풀어나가야 하는 큰 과제이고 치유되어야 하는 상처다.


약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려도 

여전히 서로 불신하고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못 누리고 겁쟁이처럼 항상 경계하며 살지도 모른다. 적개감, 혐오, 냉소 등의 자세도 쉽게 버리기 힘들 거고. "상처"가 치유되고 기억이 "성화"되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혼란한 "세계 곳곳" - .지금 무너진 세상 속에서 무너진 관계들의 양상이 "세계 곳곳"에 사는 많은 이들의 몸에 밸까봐 염려가 된다.

(최근 "그곳"에서 온 몇몇을 접하며 든 생각이다. 그리고 이 시대와 이 땅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 스스로를 포함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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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framework를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구도로 옮겨보자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Already 의 하나님 나라) 그 나라의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1) 외부적 요인:  Already 이지만  not yet 의 하나님 나라. 아직 이 세상에 그 세력을 발휘하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있기 때문이고 --- 이 세상의 한계와 악함으로 인해 자유와 권리를 못 누림. 

(2) 내면적 요인: Already but not yet 상황에서도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권리와 자유가 있음에도, old self/life/world 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불신하고 (믿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유도 있을 듯 하다. 믿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제한하는.... 물론 new life 의 의무 또한  있겠지만 그 의무란  (예수님에의 전인격적 ) 믿음과 신뢰 성격이 크다.


결론은, 뭐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2000 년 전이나, 50 년 전 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혼란한 세상에도 불구하고,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 세상의 습성을 버리고 그를 신뢰하며  하나님 나라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며 사랑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한다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그의 아들딸 답게 살아가는 것.  


믿음과 신뢰의 문제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가?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보고 그 안에 속해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그의 사랑을 알고 신뢰하고 있는가?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습성/가치/삶의 방식의 차이를 알고  하나님 나라의 것들의 비교할 수 없는 우월함을 믿는가?  그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렇게 살고 있는가? 온전히 이뤄질 그의 나라의 소망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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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cust effect 에 나온 거 같이 터무니 없는 불의가 행해지는 곳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가 임하길 기도한다.

그 기도 또한 그를 믿고 신뢰하는 자녀의 자유와 권리이며 의무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이들 (몇 달 전 살해된 채 발견되었던 케냐 변호사 같은 이들) 을 위해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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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들은 보통, 세상/자신에게 실망하거나 discourage 된 조금 힘빠지는 하루를 보내고, 참된 좌표 안에 속한 스스로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encourage  하기 위한 외침의 기도와도 같다. 또한 무엇이 중요한가 다시 확인하는 기도. 시선을 세상과 나에게서 돌려 그와 그의 나라를 바라보기 위한 기도. 내가 겪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세계 곳곳의 이웃들과 연대하는 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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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6. 10. 2. 00:21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카테고리 없음2016. 10. 2. 00:21

누군가가 내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본다면 금방 대답하기가 어렵다. 


꼭 먹어야 한다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을 수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정해져있다기보다 새롭고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가끔 crave 하는 음식 중에 갈비, 라면, 떡볶이, 각종 디저트 등을 포함한 고탄수화물/고지방 음식들이 있지만,

건강에 안 좋을 수 있기에 가능한 피하려 한다는 정도로 대답할 수 있을까?  


아... 물론 음식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며 사는 편도 아니다. 날이 갈수록 하루 세끼 꼭 먹는게 귀챦아지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힘이 빠지고 신경질/짜증이 늘기에 먹을 때가 더 많고... 

새로운 레스토랑을 try 해보는것도 맛있는 음식을 맛보려 가는것보다는 경험의 차원에서 간다.

(에니어그램으로 따지면 장형은 확실히 아니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음식은 딱 꼽기 곤란하지만, 

싫어하는 음식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속빈 강정 & 빛좋은 개살구


흠.. 그런데 그것도 그것들 자체를 음식 혹은 과일로서 싫어한다기보다 

그것이 상징하는 것들이 싫기 떄문이라고 볼 수 있지... 허영, 허세, 겉멋,  속은 부실하면서 번쩍번쩍한 외관, 허례허식..


나이가 들어가면서,

(음식에의) 식탐이 강해지기보다는 -- (신진대사도 느려지는데)

속이 꽉찬 것들을 알아보는 눈을 더 가질 수 있음 좋겠고 그렇게 영글어갈 수 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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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6. 9. 22. 11:56

화양연화를 통한 단상과 습작 카테고리 없음2016. 9. 22. 11:56


바쁜 한 주를 매듭짓고 방전되어서 몸을 조금도 움직이는게 싫었던 지난 토요일 오후. 한국어와 영어의 세계에의 권태를 느끼던 차, 다른 언어로 표현되는 정서와 사고는 어떨까 싶어,  한 기사에서 21 세기 best movies 중 하나로 뽑힌  <화양연화>를  찾아봤다. 중국어든 광동어든 전혀 모르기에 영어 자막의 도움을 빌려서 봤고 한국어로 감상문을 쓰고 있으니 언어영역에서의 완전한 일탈은 아니.

왕가위 감독,  양조위&장만옥 주연. 2000 (2001?) 년도 영화. 16 년전이니 "옛날" 영화다.  그 당시 20 대 중후반에 이 영화를 봤다면 중간에 꺼버렸을 것이다. 40 대 중반이 된 지금도 공감할 수 없을 뿐더러, 억지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두 주인공의 애정구도가 낯선 것이라서 따라가기 힘들었다. 소위 플라토닉 러브고는 하지만 불륜이다. 종교적 시각에서 이 영화를 평가하며, "죄" 같은 단어로 무식하게 매도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종교/도덕과는 상관없이 에로스적 사랑을 허상이라 여기기에 감정이입이 안된다. 그런데 왜 공감도 되지 않는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데 시간을 할애하며 주저리 주저리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볼만한 영화였네 하면서 지나가면 될텐데, 영화 한 편 본 경험을 왜 이리 분석하고 있는지?  통찰이나 배움을 준 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스토리라인과 상관없이 영화예술의 힘을 새삼 느꼈다고 해야하나? 소심한 사람들의 허락되지 않은 청승맞은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내었다는 것. 그런 이웃들이 옆집에 있었다면 추하다고 느꼈을텐데, 주인공들의 (양조위보다는 장만옥의) 빼어난 외모와 연기, 영상미, 배경음악으로 인해서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애틋해야 할 연애감정에는 설득이 안되었지만,  영화 전반에 스며들어있는 상실감, 외로움, 갈망 등이 부각되어 보였다. 그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거나 되새김질하는건  21 세가 Bay Area 에선 보기 어려운 일이다. 이곳은 entrepreneurship, 첨단기술, 효율, 생산성, 스피드 등등이 키워드인 곳이니까. 그런데도 이리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건, 그것들을 아름답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화끈한 결론도 없이 답답한 이야기를 심미안적, 감각적으 그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밑의) 유튜브 편집 영상이나 음악도 다시 찾게 만든다[각주:1].  

영화의 인상적 장면들을 그림 감상하듯 되돌려보다보니, 문득 ㄱㅎ 님의 문장이 생각난다. 빼어난 문장력으로 유명한 그 분의 책을 두 권 가지고 있긴 한데 아직 안 읽었다. 아니, 못 읽었다. 그의 문장 열 개도 채 안 읽은 사람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거 자체가 황송한 일이지만, 그저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문장은  도무지 머리에 입력이 안된다.  책의 첫문장을 가지고 몇 분 동안 낑낑거리다가 포기했다.  그 분은 그 문장을 쓰시느라 하루 온종일을 보내셨을지도 모르지만... 잡초 하나하나까지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느끼는 그 정서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문장 하나와 씨름하다 지쳐 떨어져서, 무례한 감상평을 쏟아내는 내면의 소리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스스로의 메마른 정서를 탓했다. 그런데... 그의 문장을 칭송하는 다른 책에  인용된 "된장과 인간은 치정관계에 있다," 를 읽고는 심히 당황했다. 된장은 (우리에게 친숙한) 된장일 뿐이지 치정관계는 또 뭐란 말인가? 고정관념을 와장창 깨버린 상상력과 표현력에 큰 점수를 드리지만, 그 문장을 극찬까진 못하겠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언젠가 책을 소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한 출연진이  ㄱㅎ 작가와 유사한 문장에 대해서 공감안된다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걸 보고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안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영화 <화양연화>의 표현력 깊은 인상을 받고 보니, 그렇게 문장에 집중하는 마인드세트도 대충 이해가 될 듯은 하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렇지만서도 문장과 표현력보다는 알맹이?- 서사와 세계관 철학[각주:2] 을 더 중요시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글을 쓰는데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썼다. Bullet point 몇 개로 끝날 감상평을 이리 길게 쓴 건위에 나열한 색다른 세계를 미숙하게나마 체험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탓도 있다.  주제와 상관없이 짜임새있는 글을 써 보는건 뜨개질이나 모형조립을 하는것처럼 그 작업자체만으로도 성취감을 주고 기분전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글이나 예술의 세계는 간접경험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을 듯 하다. 낯선 것들을 경험케 해주는 예술작품과 예술가분들은 정말 많이 appreciate 한다. 하지만  어떤 일탈을 하고 싶어질때면, 예술작품을 즐기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 이 시기에는  dental spanish/chinese 공부 등을 더 이상 루지 말고 시작하는게  더 좋을 듯 싶다[각주:3].  할 일 많다. 지금은  내가  속해 있는 현재 나의 세계에 충실한 것이 [각주:4] 가장 건강하다는 걸 알아야 하는 불혹+ 다 ---  런 불혹 사십대 의 중 2 병 걸린 듯한 글을 초딩 그림일기적 다짐으로 마무리한다. 




  1. 흠 그런데 유튜브 영상을 오늘 다시 보니 답답하다.... 헉... [본문으로]
  2. 소설가 황석영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본문으로]
  3. 마침, 스페니쉬를 하는 한 분이 내게 dental spanish 를 가르쳐주시곘다고 하시기도 했다. [본문으로]
  4. 예술을 한다면 예술에 충실했을테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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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