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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3. 16:00

2018: 숨 카테고리 없음2018. 1. 3. 16:00



한숨 이라는 노래 (이하이의 노래이지만 위 유튜브는 이하이와 정승환의 듀엣)

k pop 을 모아둔 내 playlist 의 가장 첫 노래이다  

일부러 그렇게 해 놓은 것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cell phone 에서 그렇게 자동지정되었나보다.


자주 듣지는 않지만 어쩌다가 그 playlist 를 들을 때 처음으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힘든 이들이 많은가 보다, 이 노래가 그들에게 정말 힘이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 한국노래니까, 한국에서 직장생활하며 힘든 이들, 아르바이트 하는 젊은이들, 삶의 어려움으로 고달픈 이들 등을 떠올렸었다.

이 노래를 만든 이는 나이가 좀 많은 이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7 년 연말, 새로운 세금 정책에 대한 뉴스로 시끌시끌한 가운데 바쁘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새벽 핸드폰에 뜬 뉴스.

TV 에서 딱 한 번 본 것 외에는 잘 모르는 이였지만 참 안타까웠다. 

치열하게 살던 재능많은 아이돌, 아니 아티스트라는 화려함 속에 감춰진 한 젊은이의 아픔과 고통. 

그가 그런 아픔 속에 위와 같은 곡을 썼다는 것.... R.I.P...

 

괜스레 우울해지고 슬퍼져서, 온갖 복잡한 생각에 2017 년을 마무리했다.

바쁘게 일하면서 또 집에서도 각종일들을 처리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내면으론 끙끙거렸다.

그와 더불어 지인들의 아픔.. 친척이 돌아가셔서 눈물을 흘리는 지인, 가족을 잃은 이의 소식...

다시금 삶에 대해서, 영원에 대해서 생각케 되고, 또 이 모든 것의 주인되신 이에게 무릎 꿇고 고개 조아리게 된다


2018 년, 모두가 건강하고 평안하게 맘껏 숨쉬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우리에게 숨 불어넣어주신 그 분의 숨을 한껏 쉬는,

또 한숨쉬는 (또는 기침하는)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안아주시는 그 분을 더 깊이 만날 수 있길. 


스타나 유명인, 명사, 타고난 리더, 영웅 등처럼 인정/주목받고 영향력 행사하고 많은 것을 성취하는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저 온전한 한 사람으로 건강하고 평안하게 그 분과 함께 또 함께 숨쉴 수 있다면 감사한 것이 아닐지...

(숨만 쉬며 게으르게 있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온전한' 한 '사람'과 '숨' 등 의 깊은 의미를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문자 그대로 숨만 쉬면 된다고  오역을 할까봐 clarify 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17. 11. 17. 14:12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카테고리 없음2017. 11. 17. 14:12


영화 Hidden Figures 에 나오는 court scene

이 시대 버지니아주는 여전히 segregated state 이였다고. (노예해방 아주 훨씬 후이지만)

한 흑인여성이 NASA 의 engineer 가 되고 싶어서 법정에 나가  All White school 의 클래스를 듣고 싶다고 하는 장면이다.


이 court scene 이 실화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저 scene 속의 judge 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겠는가?


그 누군가가 그녀에게, 

악법도 법이라며 segregation 의 법을 지켜야 한다며, 그녀에게 NASA 의 엔지니어가 되는 꿈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NASA 의 엔지니어가 되는건 이기적 자기실현의 꿈이라며, 그녀를 정죄한다면?


Out of all the cases you are gonna hear today, which one is gonna matter 100 years from now?

Which one is gonna make you the first?


:
Posted by pleasing2jc
2017. 11. 14. 15:34

그런데 카테고리 없음2017. 11. 14. 15:34

그렇게 21 세기를 살아가는 흑인에게, 

조리한 언행을 하는 백인들을  감내하고 견디라며

노예 해방 이전 흑인노예들의 신앙을 종용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어떤 논리라고 볼 수 있을까?


A birth of a Nation 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투쟁하다 비참하게 죽어간 이들도 있고. 무모한 싸움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찌 하랴.

톰아저씨의 오두막에서처럼 노예주인들의 학대를 받으며 죽어간 톰아저씨같은 이들도 숱하게 많다. 

그렇게 살아간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롭다고 볼 수 있을까?

시대에 전혀 걸맞지 않다.


safe 하지 못한 환경을 피하는 것이 더 지혜로울 수도 있다.

직원을 학대하는 상사가 있는 직장을 고치지 못한다면, 더 나은 환경의 직장을 찾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경우가 있듯이. 

(항상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편협하고 왜곡된 좌표 안에서 그것을 감내하는 것보다는 

당분가 피해서 더 나은 환경 - 더 safe 한 곳으로 갈 수 있다면 가서,

편협하고 왜곡된 좌표더 지혜롭고 과감히 고쳐나갈 수 있는 자질을 키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방법들 중에 한 방법일 수 있다.

 방법을 택한다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어떤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침뱉은 이들 사이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했는데,

실제로 얼굴에 침을 맞은 이에게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traumatic experience 들을 겪으면 치유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선 뚜렷한 미션을 가지셨고 새 세상과 새 사랑을 시작하신다는 부활에의 믿음 하에 그런 십자가를 실천하신거다.

예수님께서 그냥 마냥 순하고 착하게 사역하신 건 아니다. (e.g.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시기도 하시는 등)

강자에게 희생만 당하는 약자로서 그렇게 침뱉는 이들 사이에 들어가는 건 어리석을 수도 있다. 

doormat 가 되는 것과

강단있게 중심이 뚜렷하게 선 이 (다른 말로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이)가 낮아져서 온유하게 섬기는 것은

명확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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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