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

« 2019/12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2019/12'에 해당되는 글 4

  1. 2019.12.29 Christmas
  2. 2019.12.24 Christ - the sole Mediator in All relationships
  3. 2019.12.23 칠천 인
  4. 2019.12.01 God, Neighbor, Empire
2019. 12. 29. 10:45

Christmas 카테고리 없음2019. 12. 29. 10:45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크리스마스 날 아침 salvation army meal delivery service 에 참여하기로 했다. 

원래 봉사활동 한 것은 public 하게 드러내는 거  꺼리지만, 기도를 계속하는 의미에서 써 본다. 


올해, 가족 모두 일, 출장, 학업, activity 등으로 바빴기에 holiday 에는 low key 휴식 모드로 지내려 했지만 크리스마스는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나는 연말에 열일모드이긴 한다)


크리스마스에 그런 봉사의 기회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인터넷 검색해서] sign up 했다.

아이와 아이아빠도  참여하겠다고 해서 모두 다 함꼐 할 수 있었다.  

아이는 salvation army 의 policy 중에 동의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대학생다운 의견표시를 하긴 했지만, 막상 meal delivery 을 할 때는 열심을 다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갔어야 했는데 모두 다 잘 일어나서 다녀왔다.

도시의 홈리스 문제들이, 사람들과 차가 드문 크리스마스 아침 더 도드라져 보였다.

샌프란시코 거리의 텐트촌과 카트들. 담요를 덮고 거리에 누워있는 사람들. 

홈리스 서비스 센터에는 아침부터 줄이 길었다. 그 센터에서 서브하는 크리스마스 식사를 아침부터 서서 기다리는 줄이었다.


 salvation army  본부는 자원봉사자들로 붐볐다. 크리스마스 옷과 모자를 맞춰입은 그룹들, 이벤트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이들 등...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다니 놀랐다. 중국계 사람들, 인도계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서도 신기했다. 단체로 온 이들도 있고, 어떤 인도계 사람은 혼자 온 이도 있었다. 


우리 clients 는 홈리스는 아니고 아파트/호텔이라 이름붙여진 곳에 사는 이들이었다.

salvation army 오리엔테이션에서 얘기하기로는ㅡ 우리의 "clinent" 들이 오늘 contact 하는 사람이 우리 뿐일수 있다고 했다.  


그 짧은 만남. 한 끼의 식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심하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이브 밤,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산타 옷을 입고 아파트 촌을 돌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선물을 "배달"했다.

선생님들의 산타 옷은 조잡했고 (수면바지같은 천 수염을 붙이고), 선물이라곤 사탕 &과자 한 봉지였다. 

20 대 초반 선생님들이었을텐데, 초딩 어린 맘에도 그들이 참 애쓰신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신나하시는 선생님들의 크리스마스 기쁨의 spirit 하고 미소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우리의 meal delivery 가 clients 에게 그런 순간일 수 있을까? 

아니, 모두에겐 그렇지 않았다.

일부의 사람들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환대했다. 어떤 이는 "i don't want it" 하면서 거부했고, 몇몇 이들은 집에 없는지 문도 안 열어줬다.자다가 나온 이들도 있었다.   우리를 기다린 듯 깨끗한 옷을 입고 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미소로 맞이하는 몇 명도 있었고. 


리의 clients 을 대할 때 그들 한 사람 한사람의 dignity 을 fully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는지, 속으로 깊은 반성을 해야 하는 moments 도 몇 번 있었다. 갈 길이 멀다.

그래도  말구유의 아기 예수님께 귀한 선물을 하던 동방박사의 심정을 상상해 보려 했다. 


우리가 배달한 음식이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그래도  그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크리스마스의 작은 선물이 되길, 그들에게 몸과 마음의 영양이 되길 기도했다.

그들의 얼굴을 떠 올리며 기도한다. 


우리도 이렇게 박스를 들고 다녔다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Jesus] stands between us and God, and for that very reason he stands between us and all other men and things. He is the Mediator, not only between God and man, but between man and man, between man and reality. Since the whole world was created through him and unto him (John 1:3; 1st Cor. 8:6; Heb. 1:2), he is the sole Mediator in the world...

The call of Jesus teaches us that our relation to the world has been built on an illusion. All the time we thought we had enjoyed a direct relation with men and things. This is what had hindered us from faith and obedience. Now we learn that in the most intimate relationships of life, in our kinship with father and mother, bothers and sisters, in married love, and in our duty to the community, direct relationships are impossible. Since the coming of Christ, his followers have no more immediate realities of their own, not in their family relationships nor in the ties with their nation nor in the relationships formed in the process of living. Between father and son, husband and wife, the individual and the nation, stands Christ the Mediator, whether they are able to recognize him or not. We cannot establish direct contact outside ourselves except through him, through his word, and through our following of him. To think otherwise is to deceive ourselves.

But since we are bound to abhor any deception which hides the truth from our sight, we must of necessity repudiate any direct relationship with the things of this world--and that for the sake of Christ. Wherever a group, be it large or small, prevents us from standing alone before Christ, wherever such a group raises a claim of immediacy it must be hated for the sake of Christ. For every immediacy, whether we realize it or not, means hatred of Christ, and this is especially true where such relationships claim the sanctions of Christian principles.,,

There is no way from one person to another. However loving and sympathetic we try to be, however sound our psychology, however frank and open our behavior, we cannot penetrate the incognito of the other man, for there are no direct relationships, not even between soul and soul. Christ stands between us, and we can only get into touch with our neighbors through him. That is why intercession is the most promising way to reach our neighbors, and corporate prayer, offered in the name of Christ, the purest form of fellowship.”


― 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Discipleship and the individual 챕터 에서)


<God, Neighbor, Empire> 책에서 설명된 관계성 (relationality) 의 하나님과, 드라마 <ㄷ백꽃 필 무렵> 에 나오는 마을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떠 올리게 된 본훼퍼의 글. 


예수님께서 모든 관계의 mediator 가 되신다는 것.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과 reality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모든 관계의 mediator 가 되신다는 건, 예수님께서 모든 것의 중심, 즉 주인이자 왕이시라는 사실과 통한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mediator 가 되지 않는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한 배를 탄 한 운명 공동체이거나, 아주 친밀한 공동체일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신앙 공동체는 아닐 수도 있다. 

--- <God, Neighbor, Empire> 책에서는 이웃이 된다는 것에는 친밀감보다는 같은 운명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관계성의 하나님 안에서" 라는 조건을 내포하고 있는 거겠지. 

<ㄷ백꽃 필 무렵> 의 마을의 예를 들자면, 서로의 집에 뚝배기(?) 가 몇 개인지 서로 아는 친밀감의 공동체보다는, 남자 주인공 어린 시절, 이웃 아주머니들이 다 함께 그를 키운 거나 다름없다는 운명 공동체가 더 이웃다운 걸까?

물론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예수님께서 mediator 가 되신 관계 속에서 그래야 하는 거겠지.


 

어쩄거나,

하나님의 공동체 밖에서 한 개인이 홀로 생존하거나 성장/성숙할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않은 개개인들이 모인 공동체는 생존하거나 성숙/성장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위 본훼퍼 글의 마지막 부분 - Christ stands between us, and we can only get into touch with our neighbors through him. That is why intercession is the most promising way to reach our neighbors, and corporate prayer, offered in the name of Christ, the purest form of fellowship. 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 12. 23. 21:02

칠천 인 카테고리 없음2019. 12. 23. 21:02


어지고 어두워 보이는 세상 속에서, 전혀 기대치 못한 곳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접할 때 놀란다.

오늘, A 국 출신의 지인이 자신의 교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감동이었다. 

A 국은 난민이 많이 나오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그 지인은 난민은 아니고 오래 전에 이민온 케이스

기독교가 주된 종교가 전혀 아닌 나라인데, 그 지인은 자신이 크리스챤이라고 자랑스럽게 나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다니는 교회에 대한 얘기를 해 주는데, 콘서트 등을 해서 선교모금을 하고 그 모금으로 다양한 일들을 (A 국을 위해서도)  하고 있는데, 헌금 사용 등을 모든 교인과 transparent 하게 나눈다고.   수도(물) 와 전기 등을 공급해 주는 사업 등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 교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노인들도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선교지에 보내기 위한 선물들을 함께 포장한다는 얘기등. 



전혀 예상치 못한 나라출신사람들의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의 교회라서 더 감동이었다.

passionate 하게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두운 밤을 밝히는 작은 크리스마스 불빛을 본 느낌이다. 


그 교회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위와 같은 다양한 모임과 예배가 있다. 

(next "new membership service" 가 2016 이란다. 교회 홈피는 잘 업뎃 안 하는 교회군 :) )


혼자 남았다고 생각하며 우울해 하는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칠천 인을 남기리니" 하신 그 시절 하나님처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서 여전히 그의 일을 꿋꿋이 하시고 계신 하나님.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 12. 1. 10:53

God, Neighbor, Empire 카테고리 없음2019. 12. 1. 10:53

  부 교양서적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책이 아니다.

  풀러신학교에서의 강의 시리즈를 묶은 만큼 공부하듯 읽어야 효과적인 책이다. 

  아주 좋은 책이다. 챕터 구성을 왜 그렇게 했을까 의문을 가졌는데, 책을 다 읽고나서 preface 와 introduction 을 읽으며 이해되었다.      

   풀러신학교에서 이 강의 시리즈를 준비한 목적은 "we discerned that church leaders need opportunities to reflect on the integration of the justice, grace, and law in the mission of God..." 라고.

  책 전체가 형광펜, 및 볼펜 밑줄 동그라미 투성이가 되었다. 아직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은 개념과 연결고리 등이 있어서 반복해서 읽을 듯하다. 

  실천의 문제는 무겁기만 하다...

 책을 읽다가 아이아빠에게 물었다, "저자는 이렇게 살고 있을까요? 부담감 팍팍 주는 책을 썼는데...  (이렇게 무거운 과제만 던져주는 거 아닐까? --저자 본인은 책 가득한 방에서 연구만 하는 거 아닐까?..)"

 그랬더니 아이아빠 답, "훌륭한 분이야," 

 흠... 어떤 분인가 찾아봐야겠다 


   인터넷의 요약 및 리뷰는 여기 있다 

   http://readingreligion.org/books/god-neighbor-empire



Posted by pleasing2jc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