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

« 2024/4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산상수훈에 관한 책을 검색하다 다음책을 발견하고 조금씩 읽는 중이다.  산상수훈에 대한 commentary 류가 전혀 아니고, 산상수훈에 대한 혹은 그에 관련된 유명한 이들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머리를 쓰는 '공부'할 필요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기도 하지만, 저자들의 깊은 묵상을 따라가려면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게 된다. 

 
그 중에서 Henri Nouwen 의 다음 글. 예수님 그 분에 대한 목마름. 그 목마름이 조금 해갈되는듯한 글이다. 산상수훈의 팔복은 결국 예수님, 그리고 그런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에 대한 거였구나... 깊게 꺠닫는다. 
THE WHOLE MESSAGE of the gospel is this: become like Jesus. We have his self-portrait. When we keep that in front of our eyes, we will soon learn what it means to follow Jesus and become like him. 
Jesus, the Blessed One, is poor. The poverty of Jesus is much more than an economic or social poverty. Jesus is poor because he freely chose powerlessness over power, vulnerability over defensiveness, dependency over self-sufficiency. As the great “Song of Christ” so beautifully expresses: “[He] did not count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But he emptied himself … becoming as human beings are” (Phil. 2:6–7). This is the poverty of spirit that Jesus chose to live. Jesus calls us who are blessed as he is to live our lives with that same poverty.
Jesus, the Blessed One, is gentle. Even though he speaks with great fervor and biting criticism against all forms of hypocrisy and is not afraid to attack deception, vanity, manipulation, and oppression, his heart is a gentle heart. He won’t break the crushed reed or snuff the faltering wick. He responds to people’s suffering, heals their wounds, and offers courage to the fainthearted.… Jesus, the Blessed One, mourns. Jesus mourns when his friend Lazarus dies; he mourns when he overlooks the city of Jerusalem, soon to be destroyed. Jesus mourns over all losses and devastations that fill the human heart with pain. He grieves with those who grieve and sheds tears with those who cry. The violence, greed, lust, and so many other evils that have distorted the face of the earth and its people cause the Beloved Son of God to mourn. We too must mourn if we hope to experience God’s consolation. Jesus, the Blessed Son of God, hungers and thirsts for uprightness. He abhors injustice. He resists those who try to gather wealth and influence by oppression and exploitation. His whole being yearns for people to treat one another as brothers and sisters, sons and daughters of the same God. With fervor he proclaims that the way to the kingdom is not saying many prayers or offering many sacrifices but in feeding the hungry, clothing the naked, and visiting the sick and the prisoners. He longs for a just world. He wants us to live with the same hunger and thirst. Jesus, the Blessed Child of God, is merciful. Showing mercy is different from having pity. Pity connotes distance, even looking down upon. When a beggar asks for money and you give him something out of pity, you are not showing mercy. Mercy comes from a compassionate heart; it comes from a desire to be an equal. Jesus didn’t want to look down on us. He wanted to become one of us and feel deeply with us.… Jesus, the Beloved of God, has a pure heart. Having a pure heart means willing one thing. Jesus wanted only to do the will of his heavenly Father. Whatever Jesus did or said, he did and said it as the obedient Son of God: “What I say is what the Father has taught me; he who sent me is with me and has not left me to myself, for I always do what pleases him” (John 8:28–29). There are no divisions in Jesus’ heart, no double motives or secret intentions. In Jesus there is complete inner unity because of his complete unity with God. Becoming like Jesus is growing into purity of heart. That purity is what gave Jesus and will give us true spiritual vision. Jesus, the Blessed Child of the Father, is a peacemaker. His peace doesn’t mean only absence of war. It is not simply harmony or equilibrium. His peace is the fullness of well-being, gratuitously given by God. Jesus says, “Peace I leave to you, my own peace I give you, a peace which the world cannot give, this is my gift to you” (John 14:27). Peace is shalom – well-being of mind, heart, and body, individually and communally. It can exist in the midst of a war-torn world, even in the midst of unresolved problems and increasing human conflicts. Jesus made that peace by giving his life for his brothers and sisters. This is no easy peace, but it is everlasting and it comes from God. Are we willing to give our lives in the service of peace? Jesus, the favorite Child of God, is persecuted. He who is poor, gentle, mourning; he who hungers and thirsts for uprightness; is merciful, pure of heart, and a peacemaker is not welcome in this world. The Blessed One of God is a threat to the established order and a source of constant irritation to those who consider themselves the rulers of this world. Without accusing anyone he is considered an accuser, without condemning anyone he makes people feel guilty and ashamed, without his judging anyone those who see him feel judged. In their eyes, he cannot be tolerated and needs to be destroyed, because letting him be seems like a confession of guilt. When we want to become like Jesus, we cannot expect always to be liked and admired. We have to be prepared to be rejected. ♦


Arnold, Eberhard; Bonhoeffer, Dietrich; Teresa, Mother; King, Martin Luther Jr.; Lewis, C.S.; Berry, Wendell; Day, Dorothy; Tolstoy, Leo; Wright, N. T.; Rohr, Richard; L’Engle, Madeleine; Merton, Thomas. Following the Call (p. 8). Plough Publishing House. Kindle Edition.


 

:
Posted by pleasing2jc
2023. 5. 15. 02:49

연ㅈ아 카테고리 없음2023. 5. 15. 02:49

얼마 전 흥행에 성공했던 k drama 의 악역 이름이 연ㅈ이였다. 그 후로 한국 SNS 의 comment 에 #연ㅈ아 를 붙이는게 유행했던 듯 싶다. SNS 를 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신문기사 제목에도 나와서 알았다. 

긴세월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드라마 1 부를 보면서 기억났었다.  중 2 때 날 왕따시키려고 했던 아이의 이름이 연ㅈ 이었다는걸 (성은 달랐다).  그 기억이 나서 웃음이 나왔다. 나도 속으로 중얼거려봤다, "연ㅈ아, 잘 살고 있니?" 
난,  중햑교 때 강북에서 강남으로 전학을 갔었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게 쉽지 않았는데 강남의 그 학교는 강북과는 달리 clique 의 성향이 더 강했다. 그래도 중 2 때, 어찌어찌 나 포함 5 명이 친하게 되었었다. 공부 상중하권이 골고루 섞인 조합의 친구들이었는데, 학교를 중심으로 나만 집이 반대방향이었다. 생활수준은 다들 비슷했다. 나는 학교 중심 서쪽편의 H1 아파트고, 다른 친구들은 학교 중심 동쪽편의 H2 아파트였다.  집방향이 같아서 하교를 같이 하던 4 명이 더 가까워졌고, 그 중 한 명, 연ㅈ이가 나를 따돌리자고 했었단다. 
나머지 친구들은 대놓고 반대는 못하고, 그 아이의 선동을 따르는 듯 하면서 뒤에서는 나랑 놀러도 가고 그랬었다. 그러니 나도 잘 눈치를 못챘었다. 아니, 어떤 기류를 느끼긴 했지만 애써 무시했었다.  공부가 더 중요했고, 학교 외의 삶이 있으니까.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나머지 친구들이 연ㅈ 이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내게 실토했다, "연ㅈ 이가 널 따돌리려고 헀었다"라고.  그 이유가 "아마도 네가 공부를 잘 하기 때문"이라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연ㅈ 이가 날 시기해서 그랬다고. 연ㅈ이가, 나를 제외한 네 명 중에선 성적이 제일 좋긴 했었다. 얼마 후,  그 중 한 아이의 주도로 우리는  연ㅈ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싸웠다.'   물론 나는 앞에 나서지 못했는데, 그 사건을 initinate 한 친구는 연ㅈ 이를 무섭게 혼냈다. 
그 후, 연ㅈ 이는 꼬리를 내리고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중 2,3  남은 기간 그 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졸업 후,  그 연ㅈ 이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갔었는데, 그 아이는 내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나름 잘 나가서, 반장도 하고 전교학생회 활동도 하고 그러는데 그 친구는 무슨 반이었는지 뭘 했는지 잘 모르곘다. 같은 반은 아니었다. 그 이이가 가끔 눈에 띄면 그런가보다 했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날 피해다닌거 같진 않고 내가 그 아이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그렇다. 
나머지 친구들하고는 대학교 때 한국방문할 때도 만나곤 했는데 지금은 소식도 잘 못 듣는다. 만약 내게 정의로운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도 지금까지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연ㅈ아, 나 지금 되게 신나,"하면서 복수극을 꾸미고 있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위의 k drama 를 보면서, 정의로운 내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모든 친구들이 (연ㅈ이도 포함)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연ㅈ이가 비뚤어지지는 않았겠지? 제발 중 2 때의 사건을 계기로 바뀌었기를 바란다. 

학교나 사회 속에서의 학폭이나 왕따 사건들이,  모두 내 이야기나 위의 k drama 의 결말같으면 좋겠으나, 현실은 전혀 안 그러하니 안타깝다. 그 드라마에서 보면 학폭의 가해자, 연ㅈ 이도  문제이지만 그걸 방관하거나 동조하는 이들도  문제다.   단순히 학교에서만 그러한 것도 아니다. 이웃에게, 또 사회, 심지어는 가정과 교회에서도 일어나는 수많은 불의...  그리고 그로 인한 몸과 마음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들...  기도한다. 그러한 것들을 봤을 때 방관하고 동조하지 말고 도움이  되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 의 길이 아닐까? 

:
Posted by pleasing2jc
2023. 5. 13. 01:51

담배 냄새 카테고리 없음2023. 5. 13. 01:51

담배 냄새를 정말 싫어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포함 주위분들 중에 담배를 피우는 이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택시나 고속버스 등을 타면 꼭 멀미를 해서 한의원에 갔던 기억도 난다. 돌아보면 그 때 택시나 고속버스에서 났던 담배냄새에 불쾌했던 기억이 지금도 나니, 담배 냄새 탓도 컸던 듯 싶다. 
얼마 전 이웃 중에 한 명이 자기 차고에 숨어서 담배를 폈는데, 그 냄새가 우리 화징실까지 올라와서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거의 3-4 주 계속된 behavior. 내가 쉬는 날 지켜보니, 하루종일 약 2 시간에 한번씩 오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거 아닌가. 떄로는 새벽 2-3 시에도, 혹은 5 시에도. 그 사람은 work from home 을 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처음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싶었는데 맑은 날도 그렇다. HOA 에 연락해 보니 우리 시를 포함 캘리포니아에서는 콘도 타운하우스 residential area 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된단다. HOA 에서 그 집에 여러번 이메일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계속 담배냄새가 났다. 
우리 이웃들은 대부분 다 꺠끗하고 조용한 편이고 규칙을 잘 지켜서 이곳에 사는 거의 10 년동안 불평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러니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할까 하고 아이아빠에게 말하니, "담배냄새인거 같기도 하고.." 긴기민가한다. 그러면서 "이사를 가든지..." 강건너 불 보듯한 태도다. 


 머리 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노이로제에 걸리는 거 같았다. 한국 아파트 층간 소음 때문에 분쟁이 많다던데 비슷한 상황인가 싶고.  
 그 이웃에게  직접 얘기하면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이사를 정말 갈까?
소송을 할까? - 그러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기타등등
하루는 거의 이런 생각까지 했다. "에효.. 얼마나 삶이 힘들면 담배를 숨어서 피울까? 불쌍한 영혼이다. 그냥 참아주자."
그러나 곰곰 따져보니, 담배냄새가 불쾌한 것도 불쾌한 것이지만, secondhand smoke 의 해는 어떡할 것이며, 담배냄새가 집에 배이는 건 또 어떡하며, 불이 날 가능성도 있는거 아닌가? 
옆집 이웃 -- 이 곳에 오래 거주하신 백인 할머니꼐 여쭤보니, 어떻게 담배를 피울 수 있냐며 regulation 을 어기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  yucky"하다고.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셨다. 
나와 (아이아빠가) 그 이웃에게 전화 메시지와 문자를 남겨도 답이 없다. 그리고 그 behavior 는 계속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다 끝내고 나가려는데, 그 이웃이 차고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차고문을 두드렸다. 직접 얘기하려고. 만약 그 이웃이 나오면 최대한 nice 하게 얘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안 나온다.   
그 날 이후로 담배냄새가 끊겼다....... 마치 마녀의 저주에 걸려있던 세상에서 해방된 느낌이다.
감사하다.  담배냄새로 인해 physically 힘들기도 헀지만 정신적으로 더 많이 힘들었었다. 
 (세상에 남아있는 저주들이 그 담배냄새처럼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 후, 최근 담배냄새가 많이 나는 환자분이 왔었다. 담배를 피우는 환자는 드문데, 이 분은 골초인듯 했다. 그래도 성격 좋으신 환자이긴 했다. 하지만 치료하는 내내 nauseous 하고 머리도 아프고 가슴이 조여오는 거 같고... 많이 힘들었다.  어린 시절 차멀미날 때 딱 그 증상이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 불쾌한 느낌이 남아있다.  그. 냄새가 코에 맴돈다.
이제 N95 마스크를 안 쓰고 보통 마스크 두 겹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N95 를 챙겨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담배는 정말 백해무익이다.
온갖 암과 질병이 생기는데 contribute 하기도 하고, 잇몸 상태나 치료 후 치유과정을 봐도 smoker 는 확 차이가 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여러모로 해를 끼치고... 에효..

: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