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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355

  1. 2018.03.20 Following Christ in a Consumer Society
  2. 2018.03.06 couldn't stop laughing
  3. 2018.02.20 버려야 할 책들
  4. 2018.02.07 두 영화
  5. 2018.01.12 18 reasons to have hope in 2018
  6. 2018.01.03 2018: 숨
  7. 2017.11.17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8. 2017.11.14 그런데
  9. 2017.11.14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10. 2017.11.13 He Walks Among Us.
2018. 3. 20. 13:27

Following Christ in a Consumer Society 카테고리 없음2018. 3. 20. 13:27

 

        Following Christ in a Consumer Society

        소비주의와 물질주의 등이 만연한 Bay Area 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해당되는 주제.  

        예수님의 복음이 진정으로 존재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서

        전 존재를 변화받은 이들은 어떠한가?

        근검절약이나 금욕적 (겉으로 드러나보이는) 행동/ 생활양식이나   

        어떤 사역을 하고말고의 문제가 아닌듯.

      하나님과 세계와 사람들 또 자신을 대하는 시야와 내면 자체가 변화해야 하는데...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를 보고  그 나라의 임하심을 알고 그 안에 존재해야 하는데..

     가나안과 같은 풍요와 진보의 Bay Area 에서 에스겔서에서와 비슷한 마른뼈의 골짜기를 마주쳤을 때 읽은 책.  

    책에서 직접적 도움을 크게 받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고민하고 struggle 해야 하는 주제임은 틀림없다. 

 

:
Posted by pleasing2jc
2018. 3. 6. 16:08

couldn't stop laughing 카테고리 없음2018. 3. 6. 16:08



화학문제 풀던 단순한 시절이 그리워지네


:
Posted by pleasing2jc
2018. 2. 20. 14:51

버려야 할 책들 카테고리 없음2018. 2. 20. 14:51

버려야 할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책들을 쓴 이들의 숨겨졌던 행적들이 드러나면서.


소설 (몇 년 전 표절로 문제가 된 이가 쓴 책. 아직 창고 책장에 꽂혀있다.)

시집

신앙서적들 


다행히(?)  그 중에 읽은 책은 없다. 

어떤 책은 똑같은 책이 여러권이나 되는데도...

호기심에 구입하거나, 혹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책들.

읽어야지 하면서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모아서 버리는 것도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작업이기에, 그 책들은 창고에서 잊혀질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읽지 않은 책들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감동을 주고 영향을 준 책들이었을 수도 있는데...


버려야 할 책들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

버려야 할 책들이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는 현실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저자들이 그린 예술/신앙세계와 저자들의 삶은 별개의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question  일테고)


:
Posted by pleasing2jc
2018. 2. 7. 15:29

두 영화 카테고리 없음2018. 2. 7. 15:29



최근 본 두 영화. 

1987 은 극장에서 봤다.

Silence 는 집에서 서류 등을 정리하며 띄엄띄엄 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몰입해서 봤다. 


전혀 다른 영화지만 살짝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대의와 믿음을 위해서 싸우다가, 고문(혹은 박해)받는 극한상황까지 도달한 이들이 처한 상반된 결정?운명?

한 영화에서는, 고문받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선교사 신부는 배교하는 행위를 한다. 자신이 배교하지 않으면 죽음당할 일본일들을 살리고자. 그리고 일본에서 신자 아닌 이처럼 살아간다.   그기 '들은 하나님 (예수님)의 Silence'

다른 영화에 그려진 역사 속 젊은 학생은  끝까지 비밀을 지키다가 고문에 너무나도 안타깝게도 소중한 목숨을 잃고 말지만, 그 사건은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글쎄...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배경의  두 영화. 겹치는 부분도 살짝 있는 듯하면서도,  

대의나 믿음이 성취되는가 마는가, 아주 일반적 기준으로 볼때 전혀 반대의 스토리 전개 양상을 띄는듯도 한 두 영화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
Posted by pleasing2jc
2018. 1. 12. 15:46

18 reasons to have hope in 2018 카테고리 없음2018. 1. 12. 15:46

https://www.worldvision.org/christian-faith-news-stories/hope-2018

인터넷을 보다가 발견한 article.


1. Extreme poverty is giving up ground.

2. We are 99 percent of the way to eradicating polio globally.

3. The end of the HIV and AIDS pandemic is in sight.

4. We can solve the global water and sanitation crisis within our lifetimes.

5. Cheru will soon walk minutes instead of miles for water that will no longer make her sick.

7. Men in India are taking a stand against a harmful tradition — child marriage — that has tarnished the worth of girls for centuries.

8. We are working toward a more open, inclusive, and fair world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by 2030.

13. Communities are beginning to recover and rebuild after Hurricanes Harvey, Irma, and Maria.

14. Jennifer Nyirmbe is back in church: Sovereign Lord, thank You for healing Jennifer and more than 50 other women of fistula in Uganda.

15. Children like Constance are experiencing God’s love.

16. The standard for a basic education has changed from simply attending school to ensuring students can read, write, and do basic math.

17. Moms around the world are tapping into their vast potential.

18. As one of the largest Christian humanitarian organizations in the world, World Vision has the infrastructure, experience, and relationships needed to bring about lasting change.


:
Posted by pleasing2jc
2018. 1. 3. 16:00

2018: 숨 카테고리 없음2018. 1. 3. 16:00



한숨 이라는 노래 (이하이의 노래이지만 위 유튜브는 이하이와 정승환의 듀엣)

k pop 을 모아둔 내 playlist 의 가장 첫 노래이다  

일부러 그렇게 해 놓은 것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cell phone 에서 그렇게 자동지정되었나보다.


자주 듣지는 않지만 어쩌다가 그 playlist 를 들을 때 처음으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힘든 이들이 많은가 보다, 이 노래가 그들에게 정말 힘이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 한국노래니까, 한국에서 직장생활하며 힘든 이들, 아르바이트 하는 젊은이들, 삶의 어려움으로 고달픈 이들 등을 떠올렸었다.

이 노래를 만든 이는 나이가 좀 많은 이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7 년 연말, 새로운 세금 정책에 대한 뉴스로 시끌시끌한 가운데 바쁘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새벽 핸드폰에 뜬 뉴스.

TV 에서 딱 한 번 본 것 외에는 잘 모르는 이였지만 참 안타까웠다. 

치열하게 살던 재능많은 아이돌, 아니 아티스트라는 화려함 속에 감춰진 한 젊은이의 아픔과 고통. 

그가 그런 아픔 속에 위와 같은 곡을 썼다는 것.... R.I.P...

 

괜스레 우울해지고 슬퍼져서, 온갖 복잡한 생각에 2017 년을 마무리했다.

바쁘게 일하면서 또 집에서도 각종일들을 처리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내면으론 끙끙거렸다.

그와 더불어 지인들의 아픔.. 친척이 돌아가셔서 눈물을 흘리는 지인, 가족을 잃은 이의 소식...

다시금 삶에 대해서, 영원에 대해서 생각케 되고, 또 이 모든 것의 주인되신 이에게 무릎 꿇고 고개 조아리게 된다


2018 년, 모두가 건강하고 평안하게 맘껏 숨쉬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우리에게 숨 불어넣어주신 그 분의 숨을 한껏 쉬는,

또 한숨쉬는 (또는 기침하는)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안아주시는 그 분을 더 깊이 만날 수 있길. 


스타나 유명인, 명사, 타고난 리더, 영웅 등처럼 인정/주목받고 영향력 행사하고 많은 것을 성취하는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저 온전한 한 사람으로 건강하고 평안하게 그 분과 함께 또 함께 숨쉴 수 있다면 감사한 것이 아닐지...

(숨만 쉬며 게으르게 있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온전한' 한 '사람'과 '숨' 등 의 깊은 의미를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문자 그대로 숨만 쉬면 된다고  오역을 할까봐 clarify 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17. 11. 17. 14:12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카테고리 없음2017. 11. 17. 14:12


영화 Hidden Figures 에 나오는 court scene

이 시대 버지니아주는 여전히 segregated state 이였다고. (노예해방 아주 훨씬 후이지만)

한 흑인여성이 NASA 의 engineer 가 되고 싶어서 법정에 나가  All White school 의 클래스를 듣고 싶다고 하는 장면이다.


이 court scene 이 실화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저 scene 속의 judge 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겠는가?


그 누군가가 그녀에게, 

악법도 법이라며 segregation 의 법을 지켜야 한다며, 그녀에게 NASA 의 엔지니어가 되는 꿈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NASA 의 엔지니어가 되는건 이기적 자기실현의 꿈이라며, 그녀를 정죄한다면?


Out of all the cases you are gonna hear today, which one is gonna matter 100 years from now?

Which one is gonna make you the first?


:
Posted by pleasing2jc
2017. 11. 14. 15:34

그런데 카테고리 없음2017. 11. 14. 15:34

그렇게 21 세기를 살아가는 흑인에게, 

조리한 언행을 하는 백인들을  감내하고 견디라며

노예 해방 이전 흑인노예들의 신앙을 종용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어떤 논리라고 볼 수 있을까?


A birth of a Nation 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투쟁하다 비참하게 죽어간 이들도 있고. 무모한 싸움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찌 하랴.

톰아저씨의 오두막에서처럼 노예주인들의 학대를 받으며 죽어간 톰아저씨같은 이들도 숱하게 많다. 

그렇게 살아간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롭다고 볼 수 있을까?

시대에 전혀 걸맞지 않다.


safe 하지 못한 환경을 피하는 것이 더 지혜로울 수도 있다.

직원을 학대하는 상사가 있는 직장을 고치지 못한다면, 더 나은 환경의 직장을 찾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경우가 있듯이. 

(항상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편협하고 왜곡된 좌표 안에서 그것을 감내하는 것보다는 

당분가 피해서 더 나은 환경 - 더 safe 한 곳으로 갈 수 있다면 가서,

편협하고 왜곡된 좌표더 지혜롭고 과감히 고쳐나갈 수 있는 자질을 키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방법들 중에 한 방법일 수 있다.

 방법을 택한다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어떤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침뱉은 이들 사이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했는데,

실제로 얼굴에 침을 맞은 이에게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traumatic experience 들을 겪으면 치유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선 뚜렷한 미션을 가지셨고 새 세상과 새 사랑을 시작하신다는 부활에의 믿음 하에 그런 십자가를 실천하신거다.

예수님께서 그냥 마냥 순하고 착하게 사역하신 건 아니다. (e.g.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시기도 하시는 등)

강자에게 희생만 당하는 약자로서 그렇게 침뱉는 이들 사이에 들어가는 건 어리석을 수도 있다. 

doormat 가 되는 것과

강단있게 중심이 뚜렷하게 선 이 (다른 말로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이)가 낮아져서 온유하게 섬기는 것은

명확하게 다르다

:
Posted by pleasing2jc
2017. 11. 14. 14:24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카테고리 없음2017. 11. 14. 14:24

노예 해방이 이뤄지기 전 대부분의 흑인들은 노예였다. 

지금은 인종 등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세상이다.

(물론 안 그렇게 믿는 몰상식한 이들도 있고, 현실은 이상에 못 이르더라도...)


이런  21 세기에,  백인들이 옛날 흑인노예들이 하던 궂은 일들을 하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흑인들을 위한 일도 아니고, 자기 자신들을 위한 일이다.

그런 백인들이 속으로 "이 일은 이전에 노예들이 하던 일인데, 몹쓸 노예제도의 관습을 물려줄 수 없으니 내가 이 일을 맡아서 한다,"라고 믿고 있다고 치자.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런 자신의 노력을 흑인들이 안 알아준다고 섭섭해 한다고 치자.  그럴 경우 흑인들이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고마워하는가?

그럴 경우 흑인들이 들에게 고마워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흑인들도 이제는 자유와 평등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고,

그런 일들은 이제 흑인들이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믿는 백인들이 있다면 완전 시대착오적이고 몰상식하다. 


 상황을 조금 바꿔보자.

21 세기에, 가난한 백인이 운영하는 농장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교육도 충분히 받고 재산도 있는 흑인 한 명이 그 농장에서 동역자로 일하게 되었다. 동등한 동역자. 

부유하고 교육수준 높은  집안 출신으로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와서 투자를 하기도 하고, 

열악한 농장환경에서 무척 고생하며  열심히 일해서 농장살림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그 백인 농장주인과 농장 사람들은 아직 인종차별의 사고방식을 온전히 벗어버리지는 못 한 상태라고 치자.

그런 이들은

"너는 흑인이지만, 우리는 너에게 이 농장에서 노예가 해야 할 일을 안 시키고, 우리가 다 맡아서 한다, 하지만  원래 이 일은 흑인인 너의 일이었다," 

하면서 큰 favor 을 베푸는 것처럼 말한다고 하자.


그러할 때, 흑인은 그 농장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들이 자신을 위해서 그런 희생(?) 을 감내한다고 고마워 해야 하나?

그 흑인은 무척 황당해 할 것이다. 

 dramatize 를 조금 더 해서 오바마 부부같은 이였다고 치자. 얼마나 황당해 할 것인가?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 누군가가 그 흑인에게 그 백인들의 좋은 의도를 좀 알아봐달라고 하면서 

그들의 favor 을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은 타당한가? 상식적인가?


인종차별 경우의 예를 들었지만, 다른 area (성차별, 나이차별 등등) 에서도 그런 예는 있을 수 있다..

극복되지 못한 구시대의 사고방식이 만연한 곳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상황 속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실존적 고민이다.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
Posted by pleasing2jc
2017. 11. 13. 10:12

He Walks Among Us. 카테고리 없음2017. 11. 13. 10:12


              멀리서 - (아주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날아온 책.

              밑에 올린 글에의 답같은. 

              한국어도 못하고 여기를 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가 보내줬으니 

              그럴리없고.


              책 속에 나오는 이들은 아주 멀리 있지만, 

              우리 함께 걸아가고 있다. 

             

              단비같은 책.

              글 하나 하나 아껴가며 읽게 될 듯 하다. 

: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