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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355

  1. 2018.11.03 Like Proustian Moment
  2. 2018.10.16 Now and Not yet But God
  3. 2018.09.23 성경적 Grit
  4. 2018.09.17 The Gold Child Syndrom
  5. 2018.09.04 숙제하듯 영화보기
  6. 2018.09.02 9/1 아침
  7. 2018.08.31 옆집 개
  8. 2018.08.30 Asian American movie -
  9. 2018.08.16 할아버지 일기에서
  10. 2018.07.15 random thoughts: to bypass ? or to conquer? the cycle?
2018. 11. 3. 13:49

Like Proustian Moment 카테고리 없음2018. 11. 3. 13:49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 매학기 초에 새 교과서를 받을 때는 괜히 설레였다.

crisp 한 새하얀 페이지들을 넘길 때 나는 경쾌한 소리와 손에 닿는 느낌. 

그리고 새 종이의 향기. 새로이 배울 내용들과 각종 그림과 사진들...


초기의 설렘은 학기가 진행되면서 피곤함과 지겨움으로 변화되는 경향이 크긴 했다.

까만 글자에는 각종 색깔펜과 형광펜으로 줄이 쳐지고 깨알같은 노트들이 빈틈을 매꾸고 

종이는 너덜너덜해져서 페이지를 넘기더라도 상쾌한 소리는 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새학기, 새 교과서를 받을 때는 좋았다.

지난 세월 동안 온갖 분야의 교과서들을 수도 없이 사고 공부해야 헀지만 한국 학창시절의 그런 설레임을 가진 적은 없었다.

아마도 이전 한국에서처럼 교과서만을 질기게 붙들고 공부하지 않고 다른 자료들을 더 많이 봐야했고,

또  교과서가 '진리'처럼 느껴지지도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새교과서에의 설레임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을 발견했다. 

바로 그건  3 개월에 한 번씩 날아오는 QT 책이다. 인터넷으로 봐도 되지만 책으로 주문해서 받았는데 3 개월에 한번씩 새교과서 받는 기분이다.

꽤 두꺼운 새하얀 페이지들에 선명한 까만글자, 그리고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컬러사진들... 새교과서 비슷한 향기도 연하게 난다.

QT 교재를 통해서 Proustian Moment 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QT 혹은 말씀 묵상 하는 거 자체는  매너리즘에  빠진 경향이 없지 않지만, QT 교재책을 통해서 가지게 되는 새교과서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경말씀을 읽게 된다.

급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 고등학교 시절 미국 올 때,  내 헌 교과서를 한 친구가 사갔었다. (실제로 팔았는지 아니면 그냥 줬는지는 기억 안난다) 내 책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 교과서만 볼 수 있게 꺠알같이 정리를 잘 해 놓긴 했었다. 


어린 시절  그 열심처럼, 아니 더 큰 열심으로  참진리를 공부할 수 있음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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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8. 10. 16. 14:18

Now and Not yet But God 카테고리 없음2018. 10. 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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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8. 9. 23. 12:32

성경적 Grit 카테고리 없음2018. 9. 23. 12:32

Angela Duckworth 의 몇 년 전 책 Grit in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 에서 얘기한 grit 의 정의:

Perseverance and passion for long-term goals

(그녀의 연구결과에 동의하고 말고는 또 다른 얘기이고.)


성경을 읽다보니 위의 정의에 부합하는 성경적 grit 에 관한 구절이 있다.  


히브리서 12:1-3 

 1. Therefore, since we are surrounded by such a great cloud of witnesses, let us throw off everything that hinders and the sin that so easily entangles. And let us run with perseverance the race marked out for us, fixing our eyes on Jesus, the pioneer and perfecter of faith. For the joy set before him he endured the cross,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Consider him who endured such opposition from sinners, so that you will not grow weary and lose heart.

Long term goal 을 넘어서서 eternal goal,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는 perseverance and  passion.

성경적 true grit.

===========================

이렇게 여기까지 쓰고 분명히 이 토픽에 대해서 사람들이 쓴 글이 있을거라고 여겨져서 찾아보니 역시 많다.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John Piper 의 2014 년 blog entry True Grit 이 있네. 


:
Posted by pleasing2jc
2018. 9. 17. 08:26

The Gold Child Syndrom 카테고리 없음2018. 9. 17. 08:26

밑의  영상이 추천에 떠서 호기심에 봤다. (The School of Life 을 subscribe 해서 그런 듯)

Golden child syndrome: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 해주기보다, 비현실적으로 과도하게 너는 특별하다는 칭찬만 해 줄 경우 생기는 부작용을 얘기한다.



일리가 있다. 

이전에는 자존감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칭찬을 더 많이 해주고 상을 많이 주는 교육법이 학교나 양육법으로 유행한 적도 있는 거 같은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Quick search 를 해 보니, 자기애성 성향이 강한 가족 안에서는  부모의 편애에 따라 어떤 아이는 golden child 가 되고 또 다른 아이는 scapegoat 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굳이 자기애성 성향이 강한 가족들이 아닌 모든 가족 안에서도 충분히 그러할 수 있는 거 같다. (아이가 하나라서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이상화'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이상화'하고 싶은 욕망에서 나오는 거 같다. 


또 성경에도 그런 예는 많다. 당장 생각나는 이들은 부모의 편애를 각각 받은 에서와 야곱, 야곱의 편애를 받은 요셉 등

결국 그들은 부모들로부터 떨어져 광야에서 생활하며 성장해 나간다.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하나님의 쓰임을 받으며.

런데 아이들이 모두 다 야곱처럼 12 지파 조상이 될 필요도 요셉처럼 애굽의 총리가 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이전 어머니 세대들은  자녀들이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 이가 되게 해 달라고 많이들 기도하셨을텐데...

옛날 한국의 한 대형 교회 목사 어머니도 새벽마다 그 아들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기도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선교사업을 비롯해서 큰 일들은 많이 하신 거 같은데, 다른 문제가 많아서 신문지상을 오르내렸다. 

글쎄..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Matthew 20:17-28 의 예수님의 답을 염두에 둬야 하겠지. 

살아계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육적인 부모보다도 아이들을 더 사랑하신다는 것도. 


하나님께는  Golden Child 가 없으리라... (독생자 예수님 말고 인간 중에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golden child 에게 집중하지 않으시고  길잃은 어린 양을 찾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의 비유에서처럼


흠 한 설교에서 단편소설 the lottery 예화를 들며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scapegoat 가 되었다고 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God's Golden child became a scapegoat to bring redemption to his (human) brothers and sisters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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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8. 9. 4. 09:19

숙제하듯 영화보기 카테고리 없음2018. 9. 4. 09:19

왕가위 감독이 2018 년 H 대 졸업식 명예 박사를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한두달 전 (무료로) 배달받고는 관심없이 책상위에 올려둔 잡지를 뒤늦게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기사.


안 그래도 몇 년 전 화양연화를 보고 그 영상미 에 잠시 혹한 기억이 있어, 잠시 여유가 있는 틈을 타서 그의 영화 몇 편을 몰아서 봤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영상미 등등을 미쟝센이라고 한단다.


Chungking Express: 중경삼림 (1994 년) 

2046 (2004? 년)

The Grandmaster: 일부종사 -송혜교도 나온다. 


대단한 미장센의 영화들이라도 한꺼번에 보니 밀린 숙제하는 기분이었다. 

시각적 청각적 '감각'에 푹 빠져 헥헥거리며 아둥바둥 헤엄쳐서 수영장 끝까지 겨우 간 느낌.

중경삼림과 2046 은 특히 더 그랬다. (일부종사는 좀 예외)

내가 공감하지 못하나, 이 세상 어딘가에 충분히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을법한 이들의 이야기라는 것 -- 예술을 통한 간접경험의 시간,

세 영화 모두 화제작이었다는 기사도 많이 읽었었고 사운드 트랙도 여기저기서 들었었는데 이제야 catch up 했다.

왕가위 감독의 다른 작품들은 또 몇 년 후에야 보게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H 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잡지 기사에서 그에 대한 소개를 옮긴다. 영화계의 거장이긴 한가보다. 

Wong Kar Wai. The creator of visually vibrant, character-driven films from Chungking Express to In the Mood for Love to the Grandmaster. Doctor of Arts: A cosmopolitan grandmaster of kinetic flair, whose tales of tears and ashes, foresaken spouse and fallen angels, transfix the senses, transcend conventions, and evolve dark shades of longing and love.


PS: 이런 이들에게 예수님 믿으세요. 그럼 당신이 그리고 구하는 longing 이 해결되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 주신답니다. 하면서 (진리이긴 하지만 수사학적인 면에서) 단답형 원론적 예술파괴적 전도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예술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음. 아니면 복음 안에서의 예술 등 은 어떤 것인가 생각의 가지를 뻗게 되지만 내가  지금 큰관심가져야  할 문제는 아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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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8. 9. 2. 01:19

9/1 아침 카테고리 없음2018. 9. 2. 01:19

존 ㅁ케인의 장례식 오바마의 eulogy 를 들으면서 장례식 미디어 커버리지를 대충 훑어보고 드는 질문.

만약 지금 ㅌ럼프가 대통령이 아니었고 ㅋ린턴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지금 이 정도로 그 분의 삶과 가치를 찬사했을까?


미국의 이상적 가치가 변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열려지는 그 분의 장례식이,

비교적 바람직했던 전통적 이상과 가치을 어떻게 해서라도 기억하고 붙잡고 되살려보려는 몸부림으로 느껴진다.

그의 딸이 "America was always great," 라 했다 하고, 오바마의 eulogy 도 그렇고.

이 시간 ㅌ럼프는 자신의 골프장에 있단다. 


떄마침 아침 일찍 깨서  <the Silk Roads: A New History of the World>[각주:1] 를 첫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그리스, 로마, 중국, 페르시아, 쿠샨 등등의 제국 역사를 짧게 쭉 훑는다.

그들의 흥망성쇠를 다시 돌아보며,  ㅁ케인의 장례식 현장중계를 들으며... 

앞으로 미국과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런 가운데 평화롭기만 한 실리콘 밸리 아침 (오늘 새벽 옆집개도 안 짖었다). 

 자다 깬 모습으로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고 있는 소시민의 관심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막강한 영향력의 정치가나 실리콘 밸리 CEO 도 전혀 아니고.  모처럼의 long weekend 이기도 한데.


그래도 이 시대에 깨어있는 것이 (민주주의가 소중하게 생각해 온) 시민의 책임일지.

(친미도 반미도 아니고 미국에 대해서 아주 특별한 sentiment 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나와 우리가 살아왔고 살고 있고 어쨌거나 이 지역 local community 에 속해 있으니 가지는 권리와 의무/책임 등이 있으니. )





  1. 책이 너무 두꺼워서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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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8. 8. 31. 20:26

옆집 개 카테고리 없음2018. 8. 31. 20:26

옆집에 개가 새로 들어왔는지 어떤지, 이틀 새벽동안 연속으로 30 분 이상씩 짖는다.

그 소리에 깼다.


어제 새벽에는 멈추기를 기다리다가, 혹시 주인이 어떻게 되어서 개가 짖나 싶어서...

옷입고 그 집 앞에 가서 문도 두드리고 벨도 눌렀는데, 개는 계단 위아래를 오가며 문 앞까지 와서 짖는데 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며칠 전 남겨진 듯한 전단지도 문 앞에 떨어져 있고...

이건 개를 두고 주인이 휴가를 갔거나 아니면 주인이 쓰러져 있거나 한거라는 생각에.

911 을 불러야 하나 어떡해야 하나 집에 와서 남편을 깨워서 의논하는데, 개짖는 소리가 멈췄다.

아마 주인이 미안해서 나오지는 못하고 개짖는 소리를 멈추게 했나보다 싶었다.


오늘 새벽, 또 왕왕 소리에 깼다. 꽤 큰 개인가보다. 

이건 주인이 잘못되어서 짖는게 아닌게 확실해서, 좀 더 편한 맘으로 또 그 집에 가서  주의를 줘야겠다 했는데

옷을 입고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주인이 깼나보다. 아니면 다른 이웃이 가서 주의를 줬는지.

아침에 그 집에 부탁해야겠다. 새벽마다 짖지 못하게 해 달라고.

그래도 다행이다. 주인이 어떻게 되거나 한게 아니라서. 


아이가 대학 가고 개입양에 대한 관심이 약 2% 정도 있었는데, 그  관심마저 말끔히 사라졌다.

개들이 귀엽고 사랑스럽긴 한데, 위와 같은 현실적 이슈들을 deal with 할 여유가 없다... 

우리 하이디도 저녁에 조금씩 짖은 적도 있었는데  이웃들에게 bother 가 되지 않았었나 모르겠다.

창문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고 한번에 1-2 분씩 짖었다. 그러면 못 짖게 달래곤 했었다. 창문 그림자를 못 보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웃 누구도 뭐라고 한 적이 없다. 착한 이웃들이다. 하이디 짖는 소리는 좀 작아서 안 들렸을 수도 있고. 


일하러 가려면 다시 자야 하는데 아직도 귀가 아프고 머리가 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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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8. 8. 30. 13:19

Asian American movie - 카테고리 없음2018. 8. 30. 13:19


 

영화 <Crazy Rich Asians> 이 흥행 1 위를 달리고 있다길래 호기심에 봤다.

Joy Luck Club 이후 25 년 만에 나온 all asian casting 을 한 major studio 영화라고.


내가 대학생일 때 친구들이랑, Harvard Sq. LOEWS theatre 에 가서 Joy Luck Club 을 봤는데,

25 년 후 아이가 대학생이 되니 all asian casting 영화가 나오다니. 한 세대에 하나씩 나오는 류의 영화라...

올해는 Black Panther 와 더불어 Crazy rich asians 등이 주목받은 뜻깊은 해인듯. 

앞으로는 이런 영화들이 더 많이 나오리라 기대된다. 문화 영화계에 진출한 동양인들이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많기도 하니까 (African american 은 물론이고).


Joy Luck club 도 그랬던 거 같고, 이번 Crazy Rich Asians 도 그렇고 세대간 문화&가치 충돌과 조화 등이 주요 이야기. 

Crazy Rich Asians 영화는   재미로 보면 되는 영화. 더 어린 세대들이 좋아할 듯 하다. 


Memory

인터넷 어딘가에서 퍼옴



2012 년에 문을 닫았다는 Harvard Sq movie theatre.  

이 극장에서 본 영화가 꽤 되는데...

왼쪽 코너를 돌면 있던 the Body Shop 도 closed 되었다고 하고..

 심지어는 Harvard Sq 중심의 상징과도 비슷했던  Au Bon Pain 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캠브리지/보스턴도 많이 변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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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8. 8. 16. 15:37

할아버지 일기에서 카테고리 없음2018. 8. 16. 15:37

할아버지께서 평생 쓰신 일기를 가족들만 볼 수 있게 책으로 펴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는데, 작은 아버지께서 일을 이어받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전통적 대가족의 가장 - 가부장셨다.  조선시대로 치면 '과거급제'해서 '관직'에 오른 가부장. 

할아버지의 professional life 는  아주 활발하셨다. 

또한 집에서는 아버지를 (나의 증조아버지를) 모시고 칠남매를 훌륭하게 양육하셨고.

제사를 많이 지냈는데 어머니 말씀으로는 일년에 열 몇 번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stereotypical 가부장의 모습과는 달리 많이 온화한 분이셨다고. 오히려 할머니께서 강인하셨다.

할아버지 일기에 보면 부지런한 할머니를 많이 칭찬하셨고 자녀들을 향한 애정을 살갑게 표현하셨다.  

가사에도 참여하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할머니께서도 할아버지 고시 공부하실 때 가족생계를 책임지시기 위해서 일하셨고, 평생을 근검절약하시며 올곧게 사셨다.

'사모님으로'  누리고 살 수 있는 여건이 넘치도록 되셨는데. 서울부터 김포까지 오가시며 쌀농사를 지으시기도 하셨다.  (그 때부터 주말 농장의 개념을 가지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슈퍼우먼이셨던 듯.


할머니께서 새벽부터 식모와 농사일하시러 나가시면, 할아버지께서 출근 전 아침준비를 하셔서 증조할아버지와 드시기도 하셨다고.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는 근면성실이 몸에 배이셨던 거 같다. 그 일이 집안일이건 바깥일이건 가리지 않으시고. 할아버지께서 쓰신 일기 중 "노동의 신성함"이란 말을 쓰셨다 ("향학의 열정"이라는 말씀과 함께).  아마도 윗세대분 많은 분들이 그러하시지 않으실까.


약 누군가가 남자가 바깥일을 하기 때문에 집안일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하면 우리 할아버지같은 분도 계셨다 하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여자 또한 professionally 활발하기 때문에 가사에 신경 아예 안 써도 된다해도 또한 우리 할아버지 같은 분도 계셨다 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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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일은 (가사건 바깥일이건) 동등한 것이다. 일에 따라서 intensity-wise, 집중력, 노력, 끈기, 전문성 등등이 더 요구되고 말고의 차이는 있다. 그런데 내가 여러가지 일을 해 본 바로는 집안일도 바깥일 못지 않게 intense 한 경우도 있다.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그렇지만 육아, 양육을 함께 할 때는 당연히 그렇다. 

바깥일은 나눠할 수 없지만 가사일은 서로 채워주며 균형을 잡는게 좋겠다.

한 사람의 바깥일이 무척 바쁘고 다른 한 사람이 덜 바쁠 때는, 덜 바쁜 사람이 집안일을 좀 더 하는게 옳고

아이가 여러명이라서 육아만 하는 것도 힘들 경우에는 가사는 잘 나눠서 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등등.


==========================

그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근면성실한 모습을 되돌아보며, 현재에 만족하며 조금 나태해지려는 스스로를 반성한다. 

이제는 집안일의 필요가 많이 줄어서 그에 대한 부담은 적지만, 수요가 커지고 있는 다른 일의 면에 있어서 그렇다. 

=========================

그분들께서 물려주신 것 (내외적 resource)를 소중히 여기며 사용하며, 그 분들 세대에서 일구신 것들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 이뤄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또 생각해 본다. 흠..

:
Posted by pleasing2jc


1.    이스라엘 백성의 the cycle of sin 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단다. 인터넷 서치하면 쉽게 나오는 이미지다. 

 

2.    이 근처 교회의 오 목사님은 (교인들은 그를 존/쟌 이라고 부른다.)  한 설교에서 이 싸이클을 이렇게 정리했다.

(다이어그램을 그리기 싫어서 그냥 다음과 같이 쓴다)

(A)     Self-sufficiency -> idolatry -> judgment -> suffering -> cry for help -> deliverance -> (다시 돌아가서) Self- sufficency -> idolatry ->...

그 설교는 위 싸이클보다는 데보라와 그 당시 사건에 관한 거였다.

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cry  하시면서 eternal judgment 와 suffering 을 감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인류를 또 세상을 deliver 하시는 work 를 시작하셨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삶은 위의 싸이클을 어느 정도 따라가기도 하는 거 같다. 공동체나 세계의 싸이클도 그렇고.

4.    그를 믿는 이들에게는 Judgment 라기보다는 discipline 이라고 봐야하겠다 (hebrews  12:4-12)



5.     NT Wright 은 위와 비슷한 구약의 storyline 을 다른 perspective 로 바라보며, 스라엘의 고난과 vindication 을 통한 전세계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plan 으로 본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 -> 이스라엘의 exile -> Suffering of Israel -> vindication of Israel/Return of Israel/renewal of covenant etc. -> blessing to the world via Israel


6.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실패했고 True Israel 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 등을 겪으심으로써 전세계를 구원하셨다는 게 NT wright 의 perspective 다.



7. 이래저래 저 위의 싸이클을 벗어나는 최후 승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건데, Already but Not Yet 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오늘날도 끊임없이 개인의 삶에서 공동체에서 반복되는 싸이클인 거 같다.

8.  그냥 갑자기 떠오르는: 알버트 슈바이쳐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역사의 수레바퀴에 몸을 던진 예수님. 그 예수님은 결국 그 수레바퀴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수레바퀴의 방향을 바꾸는데는 성공헀다는.

9.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는 알버트 슈바이쳐의 시각은 반쪽짜리이긴 하다.

10.  개인들이나 공동체들은 스스로의 죄로 인해서 위의 싸이클을 반복하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discipline  받고 예수님 십자가 앞에 다시  회개하고 회복하고 또 반복하고 한다. 물론 그리하면서 소위 성화/성숙의 길을 나아가는 것일수도 있다. 



11. 저 cycle 을 bypass 혹은 초월하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길인데 : (A) 의 싸이클에서 self-sufficiency 와 우상숭배에 다다르기 전에 -- 즉 스스로의 죄와 shortcoming 으로 인한 저 싸이클을 반복하는 것을 멈추고, 이웃의 고통과 울분 등에 동참하는 십자가가 저 싸이클을 전복시키는 한 방법이라고 하면 어떨까. 즉 아래 (B) 처럼 되는거지. 

 (B)   Self-sufficiency -> idolatry -> judgment -> suffering -> cry for help -> deliverance -> Suffering with neighbor and cry with them (go to God/Jesus with them) -> delieverace together ->...


12. 위와 같은 시각은 단순화 또는 reductionism 의 오류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세상의 아픔과 모순, 이웃의 고통을 바라보게 될 때, 또 그 앞에서 너무나도 작고 무력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됨은 사실인거 같다. 

13. 만약 세상의 아픔과 모순, 이웃의 고통 등을 인간의 노력으로 정복해야 할 문제로 볼 때 그것은 인본주의가 되는 거겠지.

14. NT wright 이 얘기하는 거처럼 우리가 Build the Kingdom 하는 것이 아니라 Building for the Kingdom 한다는 거처럼...


15.  예수님을 처음 믿었던 약 25 년 전.... 자선과 구제 (justice mission 등도 포함되는) 등은, 복음적 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인간적 선행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복음전도 말씀공부 공동체 교제 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또 한편으론 이런 얘기도 들었었다: 복음의 능력이 약해지는 시대에는 자선과 구제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그것도 사실이었을수도 있다. 

15. 그러나 최근에는 다른 흐름을 볼 수 있다.  : 사랑, 공의, 정의의 하나님께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을 사랑하시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시기를 바라신다는 걸 성경적으로 설명해내는 책들이나 설교들. 그것을 인간적 사랑이나 약해진 복음으로 보기보다는 더 comprehensive 하게 이해되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 또 복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17. 이래저래 떠오르는 random thoughts - 더 많이 읽고 생각해야 하는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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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