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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309

  1. 2023.03.30 2023 spring break
  2. 2023.03.28 소설의 주인공
  3. 2023.03.26 마태복음 단상.
  4. 2023.03.24 다양한 경험
  5. 2023.03.13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6. 2023.02.27 사순절 시작
  7. 2023.02.16 나 홀로 집에
  8. 2023.01.31 좌표
  9. 2023.01.28 Business 2
  10. 2023.01.14 2023 년?
2023. 3. 30. 00:51

2023 spring break 카테고리 없음2023. 3. 30. 00:51

2023 "spring break" with a friend
수십년만에,  가족이 아닌 친구와 오랜만에 여행을 갔었다 .
비  쏟아지는 bay area 오늘같은 날 더 그리워지는 시간.

--- 출근, 비 억수로 내리는 주차장 차 안에서 practice 문 열 사람이 오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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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3. 3. 28. 14:30

소설의 주인공 카테고리 없음2023. 3. 28. 14:30

마흔이 되는 즈음에 긴 소설을 하나 썼었다. publish 한 건 아니고 습작으로.
대학 시절에 writing 을 부전공할 때 언젠가 소설 한 번 써 봐야지 했던 wish list 중 하나를 해 본거다.
소설을 쓸 만큼 글재주가 좋은 편도 아니고 creative 하지도 않기에 나름 도전해본거다
 
소설을 통해서 40 년 동안의 삶을 정리해 보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work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소설에 주요 등장인물 세 명이 등장하는데,  10 년이 지나 돌아보니, 그 세명은 다 나의 분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Background 등  소소한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래저래 따져보니 세 명 다 나의 분신이었다.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다.
-- 어쨌든간에 그 소설에서 내린 결론은 나름 지난 10 년을 살아온 일종의 guideline 이 되었다. 
 
아직 50 은 치열하게 살아야 할 때인듯 하고.
60-70 이 되면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써 볼까? 함께 써 볼까? 
돌아보면 우리의 삶이 '드라마'가 따로 없고 '소설'이 따로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써나가도 될 듯 하다. 
잘 살아야겠다. 
그 때의 진짜 주인공은  하나님이셨음 좋겠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3. 3. 26. 15:03

마태복음 단상. 카테고리 없음2023. 3. 26. 15:03

1.    Matthew 6:1-4  Be careful not to practice your righteousness in front of others to be seen by them. If you do, you will have no reward from your Father in heaven.  2 “So when you give to the needy, do not announce it with trumpets, as the hypocrites do in the synagogues and on the streets, to be honored by others. Truly I tell you, they have received their reward in full. 3 But when you give to the needy,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hand is doing, 4 so that your giving may be in secret. Then your Father, who sees what is done in secret, will reward you.

어린시절부터 아주 중요한 virtue 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이다.  어린시절부터, 어른들이 자신의 선행이나 사역같은걸 말하고 다니고 자랑하는 걸 별로 안 좋아헀다. 목사님들도 그렇고 장로님/집사님들도 그렇고. 교회모임에서 '울면서' 기도했다는 또래 어린 학생들의 으쓱거리는 나눔도 그야말로 '으쓱'으로 보였다. 심지어는 어머니께서 교회봉사하신 얘기를 친구분과 share 하시는걸 듣고도, "어머니께서 왜 그걸 친구분하고 share 하실까? 왜 자랑하실까?.."보다 좀 더 심한 어조로 비판하는 글을 내 일기장에 썼다가 들켜서 어머니께 엄청 혼났었다.  어머니는 감동을 단순히 나누셨을뿐일텐데.... 그 당시 내가 중2, 그 무섭다는 대한민국의 중2 이긴 했었다.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동생과 나의 '어두운' 과거를 나누는 시간이 오면, 나의 그 에피소드를 얘기하신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그 당시 어머니께서도 속이 많이 상하셨을거다. 

그런 종류의 '날카로운' 면은 여전히 세상에 대해서, 사람들에 대해서, 주위에 대해서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다. 참 많은 말들을 참고 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그러했듯,  여전히 지금도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나 삶/존재 자체의 변화보다는, 자신의 '행위나 눈물을 더 우상화'하는 이들을 참 안 좋아한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 또한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참으며 많은 말들을 참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   Matthew 7:1-2. Do not judge, or you too will be judged. 2 For in the same way you judge others, you will be judged, and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to you.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to you 라는 것이 타인에 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그리 할 수 있다.  많은 경우, 다른사람을 비판할 때 갖다대는 잣대를 스스로에게도 갖다대기에 스스로의 언행의 폭이 좁아지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다른 사람에게 쓴 measure 를 스스로에게 들이대면서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다른 이들의 '외식'에 엄격하기에 혹시라도 내가 잘 한 일이 있더라도 share 안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어머니와 어른들께 그랬듯이, 우리 아이와  젊은 세대도 날 다 보고 있을텐데 하면서 조심하게 된다.  물론 인간이기에 blind spot 도 있고 자기정당화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 인정한다.  (외식하지 않기 위함도 있으나, 그보다 더 큰 것은 타인을 의식안하고,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에의 소중함도 있다. ) 

 

3.  위와 같이  내가 행한 일을 share 안 하는 편이지만,  다음은 올해의 결심이고  바람이기에 쓴다.

마태복음 6:21 은 올해 초에 실현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말씀 중의 하나이다.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Matthew 6:21

5+ 년 전에, 다니던 교회의 tithe challenge 에 참여했다. 물론 아무하고도 share 하지 않고 혼자만.

그 tithe challenge 라는 것이 굳이 10 % 가 훨씬 넘는 '십일조'를 하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고, 이전에 하던 헌금보다는 많은 정도의 '십일조'를 하라는 거였다. 헌금을 3% 정도해 왔다면 5 % 해보라거나 그런 식이다. 그 교회에서 캠페인하기를,  그만큼 더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시라며, 만약 tithe challenge 에 참여했는데도 수입이 늘지 않으면 그 교회에서 '십일조'를 환불해주겠다는 거다. 기복신앙같아 들리지만, 그 교회에서는 건강한 신학으로 잘 설명했었다.  

 나도 이전보다 헌금을 늘렸었다. 교회에 헌금하지도 않았고 다른 기관들에 헌금했다. 그러니 수입이 늘지 않아도 환불받을 생각같은 건 전혀 없었다. 헌금을 늘린 결과가 10% 미만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뭐 그렇다. 아주 많이 늘리지는 않았다. 그 교회 교인 어떤 사람은 50%, 90% 십일조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 교회 목사님이 그랬었다.  굳이 수입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전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헌금에 대해서 했던 결심이 있고ㅡ  신앙 공동체/교회에서는 내가 하는 일이 그다지 없으니 그렇게라도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었다.  그런데 아이아빠가 자신의 헌금비율을 좀 줄여서 우리 가정 총 헌금은 비율상 아주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사실 우리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니 소비를 할 때도 조심하고 기도하면서 결정해야지... 

나눔의 criteria 도 세웠다. 지리적인 면이나 다른 면에서 여러모로 비교적 가까운 이웃과는 나누지 않는다. 지인의 단체에게도 하지 않는다. 제 3 세계의 정말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고 전문구호단체를 통해서 나눈다. 그런 이유는 나눔도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느꼈기에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toxic charity 가 될 수도 있고, 엉뚱한 데 쓰여질 수도 있으니까. 나눔이 신형 아이폰이나 랩탑 같은 걸 사는데 쓰이는 걸 봤다.  또 상대방에게 생색내거나 상대방의 존엄성을 해하거나, 상대방이 내 노고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섭섭해지는 '시험'받는 것도 방지하기 위해서다.  

수입이 이전보다 좀 늘긴 늘었으나 그것도 은혜겠지만, 그것보다는 광야같은 척박한 세상에서 그렇게라도 하나님의 큰 세상에 참여한다는게 내게는 살아갈 수 있은 힘을 줘 왔다. 내 노동의 수고를 세계 곳곳의 이웃들과 적게나마 나누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작은 일부분이 된다는 감사함. 그렇게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 

헌금을 할 때,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가에도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데,  여러 뉴스레터와 모임들이 있으나, 하루하루의 삶이 바빠서 잘 읽지도 않고 참여도 안하게된다. 헌금하는 걸 한군데에 몰빵할 경우, 연락이 오는 빈도수가 많아지고 만나자고 하기에 될 수 있으면 여기저기 조금씩 헌금하기도 한다.  여유시간이 날 때 관심을 가지고 기도도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헌금이 될 수 있지 않을지 모르겠다.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걸까? 부자들의 체면치례 헌금보다는 전심으로 헌금하는 과부의 동전 두 닢을 훨씬 더 소중히 여기시는 예수님이신데... 언젠가부터 내 heart 가 헌금에 들어가 있지 않다. 

혹시 내 treasure 는 물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무심결에 하나, 그건 아닌것도 같다. 인간인 이상 물질에의 관심은 평생 싸워야 할 욕망이니까. 물론 물질보다 더 소중하고 우선되는 treasure 가 많기도 하다.

그래도 올해는 좀 더 세계 곳곳의 이웃들에게도 더 관심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맘의 여유가 더 생기길 기도한다.  이런 저런 이메일 뉴스페이퍼도 읽고 보내주는 동영상도 좀 잘 보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또한, 내 관심과 기도와 상관없이 세계곳곳에서 그의 일을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러한 하나님의 큰 picture 안에 작은 구성원으로 참여할 떄 경험하는 큰 은혜. 그리고  훨씬 더 큰 일을 하고 계신 하나님과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이웃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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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3. 3. 24. 02:43

다양한 경험 카테고리 없음2023. 3. 24. 02:43

여러 군데의 치과에서 일한다.
owner 와 employee, 일하는 치과의사들의 cultural background 도 각각 다르고, 환자들의 demographic 도 다양하고, 각 치과의 system 도 다르다. 오피스 셋업, 치과 기계들이나 microscopes 도 다양하다.   그래서 덜 지루하다.
스케줄링을 하거나 환자들의 전화나 이메일에 답하거나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acedemic enviroment 나 engineering 세계와는 전혀 달리, 이메일을 잘 안 쓰고 문자/전화 답장이 늦는 치과들도 있다.  실리콘 밸리 culture 에 어울리게 문자/이메일에 금방금방 답하는 치과들도 있다. 심지어는 밤늦게도 이메일 답장하는 곳이 있다 (20 대 젊은 employee 들이 있는 곳이 그러하다).  그래서  밤에는 이메일도 안 한다.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그런 치과들이 일하기에는 훨씬 수월하다. 환자들도 더 좋아한다. 아무래도 실리콘 밸리 문화가 그러하니. 
좀 outdated 된 시스템을 가지고 있더라도 또 다른 종류의 장점이 있고, updated and efficient 시스템이 있더라도 또 다른 단점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불만 안 가지고, 그들의 수고에 감사하려 한다. 일처리가 늦고 철저하지 않으면,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나지만, 속으로는 도를 닦으면서 기간을 두고 독촉하기도 하고 내가 일을 채우기도 하며 산다.  일처리가 늦어지고 있는데, 예상 처리기간이 어느 정도라고 연락도 없이 마냥 기다리게 하는 거 너무 싫어한다. 
그런 시스템이나 문화의 고착화는 각각의 치과들끼리의 교류도 별로 없고, 한가지 스타일로 일하는데 오랜기간 익숙해져서  그런듯도 하다. 
치과가 좀 크다고 해도 웬만한 회사에 비하면 small business 이니까. 아니 큰 회사나 병원, 학교들도 그러할까? 
학부를 다닌 대학원의 우리 전공과에서 그 학교 학부생은 같은 학교 대학원에 못 오게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 학교 저 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연구환경을 경험하라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치과와 직업도 그러하고, 학문도 그러하고, 또 교회, 신앙공동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한 군데에서만 같은 스타일로 꾸준히 머무는 것도 좋겠지만 다른 환경과 다른 사람들도 경험해 보고, 여러 방법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도 해 보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더 큰 하나님을 경험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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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3. 3. 13. 13:40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카테고리 없음2023. 3. 13. 13:40

오늘 열린 오스카에서 영화  Everythis everywhere all at once 가  7 개의 상을 받았나보다. 
BEST PICTURE
ACTRESS IN A SUPPORTING ROLE (Jamie Lee Curtis)
ACTOR IN A SUPPORTING ROLE (Ke Huy Quan)
ORIGINAL SCREENPLAY
ACTRESS IN A LEADING ROLE (Michelle Yeoh)
DIRECTOR
FILM EDITING
 
양자경 (Michelle Yeoh)이  동양인으로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최초로 받은 역사적 날이다. 인디아나 존스의 아역배우였던 Ke Juy Quan 이 헐리우드에 동양인 배우로서 설 기회가 없어서, 긴 세월 동안 무술 담당 스태프로 일하다가 38 년만에 배우로 복귀. 수상을 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Jamie Lee Curtis 가 완전히 망가져서 나왔는데, 그녀의 첫 오스카를 받았다.  워낙 유명한 배우이기에 오스카를 이미 받은 적이 있었다고 생각헀는데 아니었나보다. 
나는 이 영화와  Dr Strange 2 를 비슷한 시기에 봤다. 아이의 추천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볼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영화보는 눈이 까다로워서 여러 이유로 Dr Strange 2 는 물론이고 avatar2 와 Black Panther2 도 안 봤는데, 이 영화는 보고 "너무너무 좋았다"고 평했었다.  정말 독특한 영화였다. 여러모로 틀을 꺤 영화라고 해야 하나. 보면서 "양자경이나 Jamie Lee Curtis 가 이런 실험적 영화에 왜 출연했을까,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일까" 하는 생각했었다.   Dr Strange 2 도 multiverse 를 다루는데, 그 영화는 헐리우드 전형적 superhero 영화라는 것 외에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위 영화는 superhero 가 전혀 아닌 지극히 평범한 한 여성의 multiverse 에서의 삶을 다른 영화라 관객들의 상상력과 공감을 살 수 있었을 듯도 하다. 
영화를 잘 모르기에 이 영화가 왜 많은 상을 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미국 영화계에서  새로운 얼굴들과 다양하고 독특한 것들을 honor 하는것이 자리잡혀가는가 싶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3. 2. 27. 15:54

사순절 시작 카테고리 없음2023. 2. 27. 15:54

jury duty 로 지난 수요일에는 court 에 리포트했어야 해서 2 시간 걸려 check in 을 했는데, juror 가 되지 못하고 release 되었다. 앞으로 18 개월동안은 jury duty 통지 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그래서 덕분에 쉬게 된 시간들을 '안식'하고 '씨름'하면서 지냈다. 그래도 그 결과는 나름 spiritual marker 가 될 듯 해서 이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대충 정리

  • banh-mi, 햄버거, 수제비, 돈까스, 오븐구이 k chicken
  • 운동
  • CE course: Responsibilities and Requirements for prescribing controlled substance (Schedule II opioid drugs): 2 년에 한 번 해야 하는 continuing education course. 
  • Promises in the Dark: Walking with Those in Need without losing heart by Eric McLaughlin (Ch 6 까지) - 아프라카에서의 의료선교생활에 대해서 썼는데 그 삶이 전혀 쉽지 않아 쉽게 빨리빠리 읽을 수가 없다. 계속 읽을 예정
  •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by NT wright -- 읽다가 포기. 수많은 저자들과 책들을 인용한 학술적인 책인데 내가 이걸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관뒀다.  
  • 그 대신 같은 저자가 쓴 짧은 책 The Original Jesus: The Life and Vision of a Revolutionary 를 2 시간 정도 만에 읽어버림.
  • Broken Signposts by NT Wright: ch 1 까지 읽음
  • Reading While Black by Esan McCaulley -  Ch 2 만 읽음. 저자의 문체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 진도가 더디기도 하지만,  동양여성인 내게는 전혀 새로운 흑인 남성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는 걸 소화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계속 읽을 예정
  • 성경책: Revelation. 요즘 devotional 본문이기도 함. 
  • 사순절 묵상집: A Way other than our own by walter Brueggermann -- 아주 좋다. 아이가 읽어주는 걸 듣는데 훨씬 더 좋다. 
  • 세상을 뒤집는 기독교 by 브라이언 월쉬 - Ch 3 그리스도인의 애통,Ch 4 역사의 종말에 선 그리스도인의 소망 을 읽었다. Ch 1&2  도 천천히 읽어야지
  • 브라이언 월쉬가 인용한 콕번이라는 사람의 노래가사 "기적을 기다리며" 를 옮긴다.  그 시에 노래하는 소망은, 적진의 한가운데 있는 밭을 구입하는 예레미야의 소망과 "공명하는 잘 단련된 소망"이란다.  그것이 내게도 공명하는 바가 크다.  

땡볕에서 일하는 그들을 보라/ 웃음거리가 된 성자들과 낙오자들 /일하면서 밤이 오기를 기다리네/그리고 기적을 기다린다네
바깥 어느곳에 서늘한 곳이 있다네/평화와 균형이 다스리는 곳/신비로운 보석과 같은 미래를 위해 일하며/기적을 기다린다네
당신은 손바닥을 비빈다/창살 위에서/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당신은 당당하게 일어나/강한 사람인 척 한다/그렇게 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
눈물을 흘려온 사람들처럼/죽어 없어진 사람들처럼/우리 안에 있는 천사를 자유롭게 해주려 애쓰며/그들이 기적을 기다리는 동안에
1 달러를 벌기 위해 분투하고/10 센트를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과거에서 벗어나 현상을 유지하려 애쓴다/그런데 어째서 역사는 그처럼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당신은 기적을 기다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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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3. 2. 16. 15:07

나 홀로 집에 카테고리 없음2023. 2. 16. 15:07

얼마 전  아이아빠가 다양한 occasion 으로 인해 집을 며칠 비웠었다. 정말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을 가졌다. 

첫 며칠은 일하러 다니고 집에서도 각종 일하느라 바쁘게 지냈는데,

토요일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몸과 마음의 피로가 몰려와서 몸이 마비된듯했다. 

주일 날 아침 10 시까지 침대에 누워서 각종 설교도 듣고, 동갑친구에게 추천받은 <오십에 읽는 논어> 도 읽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날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겨우겨우 힘을 내서 일어나서 집안일도 좀 하고, 운동도 하러 다녀오고, 시장도 봐오고, 아이아빠가 주일저녁에 오니 닭볶음탕을 대충 만들기는 했다 (맛은 별로 없었다).

요즘 교회에는 따로 나가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고 첫 15 + 년 이상동안 평균교인에 비해서 교회출석/활동을 몇 배 더  했기에 앞으로 몇 년은 더 쉬어도 된다고 큰소리 치고 있는데, 사실 여기에 나열하지 못하는 이유들은 다른데 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끝장을 보고 싶다는 오기도 있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교만인 거 안다.  몸과 마음이 지치면 주일 아침 10 시까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약한 존재이니까.  교회를 열심히 다닐 때는  세상 속에서의 '일상'이 아주 엉망이었다. 일상 속에서의 예배를 배워나가고 있다.  신명기 6:5-9 처럼 어떤 방식으로라도 매순간 말씀을 가까이 하거나 기도하지 않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위에 얘기한 그 일요일, 극도의 피로감은 며칠간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아서였을까? overspritiaulize 할 수는 없지. 그동안의 physical tireness 가 몰려오기도 한 거겠지. 

그 다음 월요일, 일하러 갔는데 누가 그런다, "어제 비가 정말 많이 왔지?"  그런데 날씨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 거다. 분명 밖에 나가서 운전도 했었는데... 곰곰 기억해 보니 토요일 저녁부터 비가 쏟아지듯 오긴 했었구나.  너무 피곤한데 정신없이 다녀서 날씨에 신경도 못 쓴거다.   

화/수요일 남편은 다시 출장. 하나님의 도우심인지, 일이 바쁘지 않아서 '안식'에 집중하려 했는데, '안식'보다는 '영적 몸부림' 혹은 '하나님과의 씨름/레슬링'에 가까웠다. 여러모로 하나님께 뗴쓰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어떤 설교유툽에서 추천된 책 <Dark clouds, Deep mercy: discovering the Grace of Lament> 를 소리내서 읽다가 엉엉 울고 (흠.... 잘 안 우는데).  예례미야 애가의 폐허처럼 지진 피해를 당한 이웃들을 떠올리며 그랬어야 했는데, 그거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던 듯 싶다. 일종의 자기연민이 아니었을까? 회개한다.  혼자 집에서 오랜만에 집에서 소리내어서 기도하다가 고린도후서 4-5 장이 떠올라서 그 본문에 대한 설교 두 편을 연달아 들었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와 나이듦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그 후, 약 2 주가 지났는데, 몸이 계속  말썽이었다. 매운 음식을 먹은 후 소화불량을 겪고 난 후 최근 며칠 몸살증상이 있어서 진통제투혼 중이다. 진통제 먹으며 일하고 집에서는 골골 거리고. 그래도 오늘은 훨씬 나아졌다. 

<Dark Clouds, Deep Mercy: Discoerying the Grace of Lament> 는 다시 차분히 읽고 있다.  얼마 전 예례미야 애가 3.22-23 을 가사로 한 찬양의 배경을 새로이 깨닫고 진한 여운을 받으며 종종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책에서 다시 그 배경과 하나님의 소망, 믿음에 대해서 읽으니 좋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계 곳곳의 '폐허'들을 떠올리며 기도한다. 

다음 주는 jury duty 가 있어서  stand by 여야 하는데, court 에 안 갈 수도 있으니 좀 쉬어가는 시간이 될 듯 하다. jury duty 통보를 받았을 때 불만이었는데, 이제는 지금 이 시점에  jury duty 가 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court 에 안 가게 된다면 그 기간이 '안식'이 될지 '씨름'이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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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3. 1. 31. 13:16

좌표 카테고리 없음2023. 1. 31. 13:16

2015 년에도 하나님의 좌표와 세상의 좌표에 대해서 썼었는데 여전히 같은 고민 중이다.

https://mnrji.tistory.com/360

이런 고민은 어느 크리스찬이나 비슷하게 하겠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 접한 건 대학교 때 예수님을 믿고 시작한 일대일 교재 Survival Kit 의 한 쇼핑몰 예화에서였다.  한 쇼핑몰이 있는데, 거기에 도둑이 들어서 진열된 상품들의 가격표를 뒤죽박죽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원래 비싼 물건에 싼 가격표가 붙이기도 하고 싼 물건에 비싼 가격표를 붙여놓았다. 세상이 딱 그러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도둑'이 들어서 모든 걸 뒤죽박죽 바꿔놓았다는 얘기다. 그 당시 survival kit 에서 그 도둑은 Sin 이라 했다. 하나님이 아닌 "I" 가 중심이 된 sin. 

그 후 NT wright 등등이 그 페러다임을 좀 바꾸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주인되어야 하는 세상에서 다른 것들이 주인노롯한다는 건 맞다. 

한 사람의 가치와 인생을 evaluate 하는 기준도 그렇게 뒤죽박죽되었다.    

권력과 재력은 어디나 중요한 잣대인듯 하고, 

한국에서는 학벌과 주거지역을 참 많이 따진다고 한다. 외모도 유독 더 따지는거 같고, 1 인당 명품소비가 세계 1 위라니 명품 착용도 상당히 중요한가보다.  조선시대에는 가문 (양반, 벼슬, 명문가)이 무척이나 중요했겠지. 

미국 보스턴에서는 단연코 academic achievement 가 중요했다. 지금도 당연히 그러하겠지. 

실리콘 밸리는 academic achivement 보다는,  대학 중퇴자라 하더라도  혁신적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현하는 entrepreneurship 이 최고였던 시대를 막 보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듯한데  그래도 그 innovation 의 정신은 쭉 이어가면 좋겠다.)

하여튼 그렇게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다양한데,  스스로를 바라보는데도 시대와 세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천명을 코 앞에 두고 만감이 교차하는데,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생각해보는데도, 위의 기준들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는 이 정도 achieve 했으니까 괜찮고 저 부분에서는 아직 이만큼 모자른 거 같고...  옛날에 왜 이리 '뻘짓'을 많이 했지? 그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더 할걸 하는 반성 등등등...

머리로는 아주 잘 안다.  위와 같은 기준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점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이라는 걸. 

아래 도표처럼 가장 중심된 하나님의 좌표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봐야하는데, 뒤죽박죽된 좌표 속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는 거다.  뒤죽박죽 좌표의 value 들인 권력, 재력 기타등등을 절대가치로 착각하면서.  

 

대충 그려본 그림

하나님의 기준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주되신 좌표의 values 는 무엇인가?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the fruit of the Spirit (love, joy, peace, pateince, kindness, generosity, faithfulness, gentleness, self-control), justice and beauty,  holiness 등등등

하나님의 좌표를 더 선명하게 가슴과 존재에 새기고, 허락된 시간동안 하나님의 가치들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한다.  

그리고 어떡하면 세상 속에서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가치의 좌표가 더 선명해지도록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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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3. 1. 28. 16:09

Business 2 카테고리 없음2023. 1. 28. 16:09

작년에 single person 회사를 설립해서, CEO 도 하는 동시에 회사의 유일한 직원도 되어서 로빈스 크루소 비슷한 회사경영을 하고 있다.
1 년이 지나서 첫 회사 세금보고를 하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Payroll 에는 Gusto 라는 인터넷 서비스를 쓰고 있고, 그 외에 google spreadsheets 을 이용하고 있다. 1 년에 한번 하는 세금보고만 CPA 분께 맡기기로 헀다. 1 년 내내 CPA 서비스를 받거나 bookeeping software 를 쓰는것에 비해서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첫 해에는 work flow 를 익히고 structure 을 잡는게 목표였다. 밑 사진은 income 과 expense 등을 keep track 하기 위한 spreadsheets. 올해부터는 이 많은 spreadsheet 을 간소화하려고 한다.



며칠전부터, 운동하면서 드라마 <미생>을 보기 시작했다. 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한 주인공에게 맡겨진 첫 임무는 수많은 파일을 폴더에 정리하는 일이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며 바둑을 하면서, 유년시절부터 각종 바둑대회의 경기 기록을 컴퓨터 파일에 분류해서 독학하던 주인공. 그 주인공이 그런다, "그떄 바둑 파일 정리하던게 이렇게 쓸모가 있군." 내 기분이 살짝 그렇다. 공대 대학원 과정 중 지겹게 익혔던 excel spreadsheet and data presentation 기술이 이렇게 쓰이다니. 치과 일에는 쓸만한 일이 없는 기술들이 세금보고 할 때 유용하다.
숫자와 계산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 존재 속 내재된 number 을 향한 갈증이 해갈되는 거 같기도 하다. Engeering 에서 mass balance 하듯이, balance 를 맞추다가 작년 10 월에 미처 입급하지 못했던 check 하나를 발견해서 뒤늦게 입금하기도 했다. 옷장 깊은 곳 옷 주머니에 숨겨뒀던 지폐를 발견한 기분이다.
지금 이런 작업을 하는것이, 또 다른 '미생'처럼 인생의 다음단계에 도움이 되기도 할까? 글쎼다. Business 면에서의 내 한계는 single person 회사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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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3. 1. 14. 12:52

2023 년? 카테고리 없음2023. 1. 14. 12:52

2023 년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이나 새해결심같은 거 별로 없다.
거창한 제목으로 시작해도 그게 일년안에 다 이루어지는 것들이 아닌 듯 해서일까?
2019 년 정도 즈음에는 humanity, historical Jesus 배우기 등등에 focus 하려했는데, 그게 어찌 일년만에 배워지는 것인가? 그래도 Bay Area community 의 일원으로 적응해가면서 이 땅에 두 발 단단히 디디고 (grounded?)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거 같긴 하다.
2020 년에는 부흥에 관한 책을 읽은 후 삶의 breakthrough 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는데, 팬데믹이 터졌다. 에효.
2021 년에는 "2020 년 전으로의 회귀가 아닌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헀다. 그건 개인 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소망이기도 했는데.. 흠.
2022 년은 compassionate prayerful life 를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거 또한 온전히 실천했다고 볼 수도 없고, 일년만 그렇게 살아야 하는것도 아니고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거 아닌가?
2023 년에는 무슨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나?
독서 등을 통해서 접한 몇가지 말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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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