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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309

  1. 2023.01.05 Storm
  2. 2023.01.01 business
  3. 2022.12.30 2022 Christmas eve eve
  4. 2022.12.13 기다리는 영화
  5. 2022.12.10 축구공처럼 패스 - 심판에게로.
  6. 2022.12.09 thanksgiving 2
  7. 2022.12.08 예례미야애가 2
  8. 2022.11.21 자녀를 위한 기도 2
  9. 2022.11.18 요즘 보는 드라마 2
  10. 2022.11.09 흥얼거리는 찬양 2
2023. 1. 5. 13:34

Storm 카테고리 없음2023. 1. 5. 13:34

USA today 에서 퍼옴

 

'Rivers in the sky': Graphics show atmospheric river soaking California's Bay Area

Atmospheric rivers, the largest transport mechanisms of freshwater on Earth, could cause northern California flooding.

www.usatoday.com

Bay Area 로 이사온후 이런 정도의 storm 은 처음인듯하다.

날씨 때문에 오늘 환자도 별로 없었고, 그나마 온 환자 두 명 중 한 명은 날씨 때문에 걱정을 많이 헀다. 아침에는 바람만 좀 심하게 부는 편이었는데, 오는 길의 신호등들이 꺼져 있었다고. 정전이 벌써 있었나보다.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일하다가, 저녁에  gym 에 잠시 갔는데 1 월 2 일에는 북적북적하던 gym 이 이틀만에 거의 텅 비었다. 날씨가 작심삼일의 좋은 변명이 될 수 있겠다 (사실 평소에는 일년내내 저녁시간 북적거리기는 한다). 길에는 차도 별로 없고 순찰을 도는 경찰차가 한 대 보였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엘니뇨 라니나에 관한 설명이 흘러나온다. 잠시 들른 마켓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마켓 주차장 한 쪽에 물이 가득 고여서 차로 지나가는데 마치 보트를 타고 지나가듯 양쪽으로 물살이 높이 일었다. 물이 약 20 cm 정도 고여있는듯 했다. 지난 주말 Freeway 에 홍수가 나서 101, 280 가 다 막혔었다던데, 이번에는 어떨지...  앞으로 계속 비가 많이 온다는데, 큰 피해가 없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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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3. 1. 1. 05:38

business 카테고리 없음2023. 1. 1. 05:38

작년 말 기록을 보니 작년 말에는 business entity 를 전환하느라 바빴었다.

시험공부하듯 리서치와 필기정리를 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가 excel sheet 에 계산하느라 정신없었다.

Business entity 를 전환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은행계좌와 크레딧 카드도 만들었는데 한가지 질문이 생겼었다.

은행의 promotion 으로 300 불의 reward 를 받았는데 그걸 개인구좌로 옮길 수 있느냐 하는거다. 그냥 옮길 수 있는가 아니면 세금을 내야 하는가의 질문.  제대로 기록을 하지 않고 세금을 내지 않으면 single person 회사라도 횡령아닌가? 등등의 질문.

그래서 그냥 남겨두고 그에 대해잊고 있다가 거의 1 년이 지나서 지금 서치를 해보니 business credit card rewards 에 대해서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단다. 이걸 personal use 로 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데, search 를 해 보니 가능은 하지만 그다지 추천은 안 하나보다 

https://www.bankrate.com/finance/credit-cards/are-business-credit-card-rewards-taxable/

 

Are Business Credit Card Rewards Taxable? | Bankrate

Business credit card rewards aren’t considered income, making them non-taxable. However, there can still be tax implications depending on how you use them.

www.bankrate.com

 

그래서 300 불은 그냥 business account 에 남겨둬야겠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아주 큰 돈도 전혀 아니고 고작 300 불이지만, 원칙에 맞게 해야지. 하나님의 virtue 가 삶의 구석구석까지 이뤄지기를 기도한다.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속담도 믿는다. 다른 말로 하면 아주 작은 죄라도 반복되면 그에 대해서 insensitive 해져서 큰 죄 앞에서도 대담해질 수 있다. 같은 직종에 있는 일부 사람들이 business credit card 를 써서 개인 물건들을 구입한다거나, 지인들과의 외식을 business meal 로 둔갑시킨대거나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한다. 그래서 같은 직종의 선량한 사람들 또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나도 그런 의심을 받아서 무척 불쾌한 적이 있다. 우리 직종이 그런 오해를 사곤 하기에, 이런 면에서 훨씬  원리원칙대로 더 철저히 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든, 어떤 오해를 하건말건 mind my own business - 바르게 하면서 살기에도 바쁜 세상이긴 하다.  또한 이런 business 면에 더 집중하게 되는게 싫어서 지금의 practice model 을 고수하게 된다. patient care 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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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2. 12. 30. 14:58

2022 Christmas eve eve 카테고리 없음2022. 12. 30. 14:58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과 별자리, 은하수를 원없이 보고 왔다.  감탄사를 계속 날리면서.

산위에서는 선명하게 보이던 별들이, 우리가 산을 내려오자마자 흐릿해져서 괜스레 슬퍼졌다.

앞으로 또 당분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바라보는 여유없이 살아가겠지.

별을 향한 감탄도 슬픔도 옅어지겠지만 별들에 퐁당 빠져있던 저 순간은 기억하리라. 

그와 더불어 기억해야지.

별을 바라본 시간도 멋지지만, 이 땅의 사람들과 씨름하며 사랑하며 지내는 일상도 무척 신나는 하루하루라는 것을.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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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2. 12. 13. 11:14

기다리는 영화 카테고리 없음2022. 12. 13. 11:14

영화 <영웅> 이 미국에서도 개봉되면 좋겠다. 예고편만 봐도 감동적이다.
언젠가 방문했던 서울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그 분의 삶과 세계관을 들여다 본 적이 있어서 더 관심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래사진 속 안중근 의사님의 눈빛이 너무 슬퍼서 발걸음이 쉽사리 옮겨지지 않았다. 30 세를 갓 넘은 나이의 안중근 의사님이다.
(사진들은 기념관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돌아가시기 전 아내와 신부님께 남긴 편지들. 편지에 쓴 거처럼, 지금은 모두 다 함께 주님 곁에 모여 계시곘지.
영화를 볼 수 있을 떄까지, 안중근 의사님에 관해 올해 나온 소설을 읽어야겠다.


다음은 안중근 의사님을 칭송한 쑨원의 글


사족: https://mnrji.tistory.com/1125 예레미야애가 구절을 바탕으로 한 찬양도 안중근 의사님 뮤지컬 영화 OST 비슷한 분위기여야 어울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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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2. 12. 10. 03:33

축구공처럼 패스 - 심판에게로. 카테고리 없음2022. 12. 10. 03:33

일정 기간동안, 어떤 관계 속에서 무척 힘들어한 적이 있다. 그 관계에서의 어떤 사건들이 떠오르면 머리가 멍해지는 등 PTSD 의 증상을 겪기도 했었다 - flashback 이라고 볼 수 있을지. 악몽을 꾸기도 헀었고.
이제 관계도 멀어지고 시간도 지나서 그런 사건들에의 기억이 떠오르는 빈도수는 적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random 하게 떠오르는 안 좋은 기억들이 있다.
어제는 아침부터 그 사람이 한 이런 말들이 떠올라서 기분이 안 좋았다. 우리 부모님이 경상도 출신이시라는 걸 아주 잘 아는 사람이 한 말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교양이 없는데 교육으로 그걸 커버한다,"
"영화 <친구>에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보는 내내 머리가 아팠다,"
혹은 내가 학생일 때 우리 어머니께서 오셔서 아이를 돌봐주시곤 했는데 아이가 어머니의 경상도 말투 배울까봐 염려가 된다는 등
미국의 일터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법적 제재/소송까지 고려할 수 있는 말들이다.

어머니께서는 대학교부터 서울에 계셨는데 아직 경상도 말투를 가지고 계시다. 그런 이유는 그 시대에는 말투를 고칠 필요도 크게 못 느끼셨을 거고, 어머니 성격 상, 일부러 서울말을 하는 걸 꾸민 행동으로 (조금 가식적인 것으로) 여기셔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를 공주 스타일 사모님으로 여기기도 한다.
나도 우리 어머니께서 키우셨는데 나는 경상도 억양을 흉내도 못 낸다. 가끔 TV 에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충청도 사투리를 헷갈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경상도 억양을 가지면 어떤가? 심지어는 90 년대 서울 사투리도 있고 (유툽),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 어투를 못마땅해하기도 하고, 미국을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고유의 accent 를 가지고도 잘 살아가고 있고, 영국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이 american accent 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 모든 게 상대적인 거 아닌가?
그 말을 들을 당시 내가 많이 어릴 때라서 위와 같이 반박하지 못했었다.

교양은 말을 매끄럽게 하고 우아하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람으로 존중하는것이라고 여긴다.
위의 사람이, 어떤 사람들에게 "우리 바쁘니까 식사는 다음에 하시죠," 한 후 그 사람들이 자리를 뜬 후에 "당신들이랑 식사를 하느니 oo 를 하지,"하는 야박한 말을 하는 것을 본 것도 내게는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순박해보이기만 하던 상대방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다니... 그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는듯 했다 (socio-economic status 면에서).
차라리 상대방들에게 대놓고 mean 하게 대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앞에서는 살랑살랑 좋은 말만 하고 뒤에서는 돌변하는 정체를 지켜 본 거 자체가 충격이었다 - 그 당시 내 나이가 어렸기에 더 그러했겠지. 그리고 그 사람이 나름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여기는듯했고 교회에서 활발히 활동도 하는 사람이었기에 더 충격이 컸다. 그냥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면 그저 그러려니 했으리라
하여튼 그런 류의 기억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기분이 나빠지고 때로는 그것이 현재의 내 삶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 현재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나또한 당연히 ) 그런 빈틈이있다는 걸 안다. 그라나 내가 받은 '상처'들은 상처이니까  그것들을 무시하고 있을 수만 없다. 지금까지는 그런 기억들을 억누르고 잊을 생각만 했는데, 그 나쁜 기억들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그런 기억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 축구공을 차듯 하나님께 패스하는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지혜로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까. 심판에게로 공을 패스하는 희한한 경기의 모습이군.
한편 위의 그 사람도 지금쯤은 변화하지 않았을까? 기도한다.

Merriam-Webster 에서도 gaslighting 이 올해의 단어로 지정이 되고, 여러모로 심리학이나 정신건강에 대한 awareness 가 커지고 있는 시대다.
어제는 무슨 기독교 강의에서 "나를 나답게 대하지 않고 함부러 대하는 사람들은 멀리 하라,"라기에 깜짝 놀랐다. 이전에는 용서하고 화해하고 공동체의 조화를 위해서 인내하라 그런 종류의 메시지가 많았던 거 같은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좀 더 전문적인 강의와 설교들이 더 나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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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2. 12. 9. 15:08

thanksgiving 카테고리 없음2022. 12. 9. 15:08

지난 추수감사절은 무척 low key 로 보낸 며칠이었다.
방향 candle 만들기, cooking, 독서, 운동, 청소 등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low key 로 지내는게 얼마만인지, 이런게 '안식'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안한 며칠을 지냈다. 그 시간 자체가 참 감사했다.
며칠이 끝나고 또 다시 시작된 일상은 정글이다. 본질에 집중하고 싶으나 번잡한 사사로운 것들에 신경쓰고 감정을 소모해야 할 때가 많다. 요즘 신경쓰이는 일이 좀 있어서 오늘은 몸이 지끈지끈 아플 정도였다. 퇴근 후 누워있다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밥도 먹고 운동도 다녀오고 online 세미나도 듣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감사함을 회복하려 한다.
추수감사절날, 한 환자로부터 감사 메시지를 받았다. 환자가 좋은 사람이라, 좀 오버스러운 메시지이긴 한데, 그래도 내가 지향하는 바들이 reflect 되어있어서 많이 감사했다.

레지던시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지 딱 10 년이 되었다. 그런데 일을 많이 하는 편이라 condensed version 의 15 년 이상 경력이라고 스스로 여긴다. 연륜이 조금 쌓였다고, 가족들앞에서 "지금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렸는데!"라고 큰소리 치기도 하는데, 환자의 메시지를 받고는 오히려 고개를 숙이게 된다. 앞으로 더 겸손한 맘으로 기도하며 정진해야겠다.

동생은 근무병원인 암센터에서 무슨 상을 받았나보다.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교통 때문에 늦은 환자를 기다려주고 여전히 친절하게 대했다니. 자신의 수술속도가 다른 의사들보다도 2 배 더 빠르다고 우리에게 자랑하더니, 약속시간에 몇 시간 늦은 환자에게 친절하기까지.. 찍어보낸 사진 옆에 십자가를 둔 거 보니, 신앙에서 나온 환자 섬김인가보다. 강적이군. 동생에게서 또 한 수 배운다. 일 부분에서 동생이 나보다 선배이긴 하다. 동생이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내 치대선배가 동생 밑에서 구강외과 레지던시를 했을 정도니까.


미국와서 고등학교&대학시절, 또 그 후 우리가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어떤 일들을 겪었나 알기에, 그 시간 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감사하게 된다.
또한 여전히 쉽지 않은, 한순간 한순간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일상이지만 예수님 닮아갈 수 있도록 화이팅한다. 아이아빠와 아이를 위한 기도와 화이팅도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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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2. 12. 8. 15:47

예례미야애가 카테고리 없음2022. 12. 8. 15:47



이번 주 초, 위 찬양을 흥얼거리며 전체가사가 기억 안 나서 검색하다 새로이 발견한 사실. 위 가사가 예레미야 애가 3:22-23 이라는 것. 예레미야 애가를 많이 읽었는데도 위 노래가 예례미야 애가인지 잘 몰랐었다. 위 노래를 부를 때는 그저 "feel good" 찬양정도로 여기며 불렀으리라. 그래서인지 위의 가사가 예례미야 애가 구절이라는것이 살짝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거 엄청난 노래었구나..

예레미야 애가의 배경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폐허가 된 이스라엘 성이다. 묘사된 모습은 정말 처참하다.
3 장에서는 저자 자신이 겪고 있는 극도의 고통을 나열한다.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고 뼈를 꺽으시고, 흑암에 묻어버리시고, 화살로 심장을 꿰뚫고 모든 백성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시고.... 희망(소망)이 사라지는 순간.
그런 극심한 고통의 climax 에서의 대반전이 위의 노래다.
저자는 우렁차게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하나님에의 믿음과 기다림, 회개와 회복, 소망을 얘기한다. 아마도 외쳤겠지.
엄청난 반전이다. 물론 성경에 이러한 종류의 반전은 많지만 예례미야 애가의 반전은 멸망한 이스라엘 성의 처참한 폐허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것이기에 더 dramatic 하다.
저자(예레미야)의 엄청난 믿음의 눈과 의지, 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사랑, 인자, 자비, 신실(성실)하심을 바라본다.
위 찬양을 부른지 수십년이 지난 후 비로소  이해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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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2. 11. 21. 15:41

자녀를 위한 기도 카테고리 없음2022. 11. 21. 15:41

맥아더 장군이 아들을 위해서 했던 기도를 읽었다. 

 

오 주여, 제 아이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소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알 만큼 강하고, 두려울 때 두려워하는 자신에 맞설 만큼 용감하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꿋꿋하며, 승리를 얻었을 때 겸손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생각할 때에 고집하지 않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초석이 됨을 아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기도하나니, 그를 쉽고 편안한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과 도전이 주는 시련과 자극을 받게 하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도 담대히 맞서며, 실패하는 이들에게 동정심을 가지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마음이 깨끗하고, 목표를 높이 세우며, 남을 다스리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또 웃는 법을 배우되, 우는 법을 잊지 말게 하소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되, 과거를 잊지 말게 하소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게 하신 다음에,  기도하나니, 넉넉한 유머감각을 더 주소서.
그리하여 늘 진지함을 잃지 아니하면서도 지나치게 심각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그에게 겸손함을 주시어,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비되는 저, 스스로에게 “내가 인생을 헛되이 살지는 않았구나” 라고 감히 속삭일 수 있게 하소서.

 

어린 시절 한 번 쯤 읽었던 거 같은데 그 때는 당연히 관심이 없었을테고, 요번에 읽으며 "아니 이런 멋진 기도문이라니," 했다.

나도 당장 이 기도문 실천에 들어가야겠군 하다가 "그럼 맥아더 장군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검색해 보니, 맥아더 장군의 아들은 전쟁영웅 아버지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는데, 그게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름도 바꾸고 잠적해 버렸단다. 뉴욕 여기저기에 살았다는 설도 있다는데 자세한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나보다. 

맥아더 장군 집안이 명문 군인 가문이라는데, 맥아더 장군은 아들도 군인이 되길 바랬다고 한다. 위의 기도문을 쓰고 그렇게 기도할 때도 아들을 향한 그런 꿈을 품고 있지 않았을지?

맥아더 장군 아들이 어떻게 되었나를 발견하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은, "기도 응답을 못 받았구나. 기도 응답도 못받았는데 저 기도가 왜 그리 유명하지?" 였다.

그러나 기도문을 다시 찬찬히 읽으며 보니, 맥아더 장군의 아들이 굳이 장군이나  큰 업적을 세우는 인물이 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기도문 속의 인물처럼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문 속에서도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다 하지 않는가?  맥아더 장군이 품었을지도 모르는 몇 대째 장군집안의 꿈은 안 이루어졌겠지만 말이다.

부모의 자녀를 향한 꿈과 욕심이 자녀의 것보다 더 우선되기도 하는 시대이고, 한 드라마 영향인지 어쩐지 "몇 대 째 의사 집안"이 유행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어떤 꿈을 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소명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을 위한 것이라면 설사 그 꿈이 이뤄지더라도 하나님의 역사 속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 맘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나? 

하나님께서 00 를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사랑하시니, 하나님께서  00 와 함께 하여주시고 00 를 하나님 뜻대로 인도하소서.  00 가 기쁜 맘으로 주께 순종하고 주를 따를 수 있게 하소서.

그리 해야 하나? 

 

PS: 기도문을 영어로 다시 읽어보니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다라는 건 약간 오역이다. 참된 위대함은 simple 하다 (소박하다/단순하다/간결하다) 이지,  소박한게 위대하다는 뜻은 아니다. 

Give him humility, so that he may always remember the simplicity of true greatness, the open mind of true wisdom, and the weakness of true strength. 

영어로 읽으니 "build me a son"이라는 문구가 반복된다. 그와 더불어 마지막 문장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 을 두고 볼 때 처음과 시작이 다 자신이 중심이 된, 결국 아버지 자신을 위한 기도로 여겨질 수도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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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2. 11. 18. 15:59

요즘 보는 드라마 카테고리 없음2022. 11. 18. 15:59

왕위 계승을 둘러싼 음모나 권력 싸움, 당파싸움을 다룬 역사 드라마들을 안 좋아하는 편이다.

좁은 궁 안에서 눈을 부라리며  음모를 꾸미는 (혹은 주인공들은 작전을 세우는) 장면을 보면 짜증이 난다. 한정된 파이 (pie) 를 그렇게 피튀기며 싸워서 수호하거나 뺐을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파이를  찾는 모험정신을 발휘하면 좋을텐데  왜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저 좁은 공간에서 저급한 다툼만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과 불만에서 비롯된 짜증이다. 지금까지 그런 류의 역사 드라마는 거의 안 봤다.  

옆 포스터의 드라마도 초반에 또 그런 류의 드라마가 아닐까 했다.  ㅅㅋㅇ 캐슬 류의 교육열 넘치는 어머니들의 치마바람 요소까지 가미된, 성공을 위해서 무한경쟁하는 이야기를  조선시대로 배경만 옮긴 거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었다.  

그런데 회를 넘기면서 그것만이 아니라는 걸  보게 된다. 세자 혹은 왕이 되지 못하면 죽음을 당하는 처참한 현실.  아들들과 며느리/손자의 목숨보존과 안녕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중전.   권력을 잡기 위함만이 아닌, 가족을 위한 사랑이 그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 최근 몇몇 (신문기사로 접했던) 자극적 드라마와는 구별된다.  

아직 진행형이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봤을 때,  중전을 통해서 또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후궁들과 왕자들도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자유케' 되고, 어그러졌던 관계들을 회복하게 된다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이가 세자가 되지 않을지? 덕스러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그 엔딩에 다다르는 스릴 넘치는 과정이 궁금해서 드라마를 계속 볼 듯 하다. 

드라마는 그러할 듯 한데 현대의 현실은 어떤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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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2. 11. 9. 16:34

흥얼거리는 찬양 카테고리 없음2022. 11. 9. 16:34


요즈음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는 찬양들이다.
최근, 모세에 관한 책인 Charles Swindoll 의 <Moses: A man of selfless dedication> 를 읽고 보스턴에서 다니던 G 교회의 모세 시리즈 설교를 유툽으로 들어서일까? 이집트 궁정 생활 후 총 80 년을 광야에서 지낸 모세 때문인지 <광야를 지나며> 를 흥얼거린다.
모세도 광야에서 찬양가사와 같은 생각들을 했을까?

찰스 스윈돌의 책에서 광야에 대한 내용을 옮긴다.

God has a school, too. Did you know that? And there isn’t anything usual about it. It doesn’t have dormitories, a science lab, or a football field. It isn’t listed in any catalog, magazine, or website. The high school counselor may know nothing about it. Yet it is one of the most profound institutions of learning you could ever attend. I know. I’m an alum. I’ve been there . . . more than once... As a father who loves his kids, I can’t say I’m excited about any of my children spending time in that school. On the other hand, life being what it is, I know they most likely will. Since I have experienced the voice and presence of the Lord God in that place, I can’t help longing for each of my sons and daughters to know Him as I have known Him, to hear His voice as I have heard His voice... I am referring to God’s school in the desert, ... I speak of that arid, often barren campus in which God places His children to prepare them for a particular task in life. There’s nothing glamorous, colorful, or attractive about this particular desert. It was never designed to be. It’s not Palm Desert or Sedona, believe me. In fact, it’s probably more like the Sahara or the Serengeti. It’s a place of desolation: craggy rocks, trackless sand, life-sapping heat. Some people spend a few weeks in that wilderness. Others, many months. Moses walked those barren lands for forty years. That’s f-o-r-t-y years; you read it correctly.

Swindoll, Charles R.. Great Lives: Moses (Great Lives Series) (p. 72). Thomas Nelson. Kindle Edition.


It may help you to know that the Hebrew word for “desert” is midbaar. It’s from the word dahbaar, meaning “to speak.” Let me draw from that root term and suggest that the desert is the place where God speaks, where He communicates some of His most important messages to us. Apart from that desert experience, you and I might live out our lives without ever hearing or knowing what the God of the universe desires to tell us.

Swindoll, Charles R.. Great Lives: Moses (Great Lives Series) (p. 73). Thomas Nelson. Kindle Edition.


밑의 노래는 오늘 저녁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던 찬양. 이사야서 12 장 2-3 절의 가사를 다시 찾아보니 정말 좋다.
정말 오래전 찬양. 중학교 1 학년 때인가 교회 수련회 가서 철야기도를 할 때 학생들 모두가 눈물 흘리며 불렀었다. 나 또한 눈물을 흘리면서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진짜 은혜일까? 내가 흘리는 눈물이 분위기에 휩쓸려 흘리는 눈물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각자 개인기도를 하는 시간에는 몇 시간동안 혼자 엎드려서 무언가를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했었는데 내용은 잘 기억 안 난다. 그래도 수련회 후 기도응답도 받고 했던듯 싶다. 그 수련회 몇 달 후, 난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전학을 갔어야했다. 나름 (nomad) 광야의 시간을 35 년도 더 넘게 지내고 지금 뒤돌아보니 중학교 때 흘렸던 그 눈물은 가사의 의미도 잘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려 흘렸던 것 맞았던 듯 싶다. 그래도 지금은 그 가사의 의미를 좀 더 안다고 스스로 여기긴 하는데, 또 세월이 흐른 후 돌아보면 어떨지..


이사야 12장 2-3절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Isaiah 12:2-3 (NIV)

Surely God is my salvation; I will trust and not be afraid. The Lord, the Lord himself, is my strength and my defense; he has become my salvation. With joy you will draw water from the wells of 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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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