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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에 해당되는 글 10

  1. 2024.11.27 Thanksgiving 2024 2
  2. 2024.11.26 십자가
  3. 2024.11.23 추억의 장소들
  4. 2024.11.18 나한테 잘하세요.
  5. 2024.11.14 경쟁상대
  6. 2024.11.12 Reading Genesis 2
  7. 2024.11.07 King of all the nations.
  8. 2024.11.06 귀차니즘 8
  9. 2024.11.04 Procrastination 습관 고치기 2
  10. 2024.11.01 pain of discipline
2024. 11. 27. 23:08

Thanksgiving 2024 카테고리 없음2024. 11. 27. 23:08

내일은 Thanksgiving 이다. 오늘은 일하는 수요일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할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holiday 가 있는 것도 의미있다 

어제 11 시쯤 잠이 들었는데, 새벽 4 시 반에 깨서 이러고 있다. 요즘 보통 6 시에 일어난다.  그에 비하면 일찍 꺤거라, 더 자 보려고 했지만 잠이 안 와서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어제 일이 늦게 끝나서 운동을 안 해서 잠을 잘 못 자는 듯 하다. 5 시간 반 수면이라니... 오늘 하루가 좀 피곤하겠군. 그래도 내일 쉬는 날이니 다행이다.
 

주말이면 12 시간 정도도 꺠지 않고 자는 아이를 보면서, 난 "It is not fair," 그런다. 나도 한떄는 그럴 수 있었는데... 

잠이 많아서 고민이던 10-20 대가 떠오른다. 아침에 일어나는게 힘들었고 알람을 2-3 게 맞춰놓아도 소용이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다가 중간에 한번씩 꺠는거는 루틴이 되어버렸다. 6 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벌써 일어나있다.

잠을 덜 자야 좋았던 10-20 대에는 잠이 많았고, 잠을 더 자도 되는 중년 이후에는 잠이 적어지니 참 unfair 한 인생이다. 
요즘은, 하루종일 일을 열심히 하고 (집안일이건, 직업일이건) 운동을 해야 잠이 잘 온다. 또 그래야 중간에 한번 꺠더라도 6-7 시간 이상을 잘 수 있다. 
연구결과에 따라 많은이들이  중년의 호르몬 변화 등 떄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중년은 청년기에 비해서 에너지가 더 넘쳐서 그런것 아닐까? 더 열심히 활동하고 운동해야 정상적 수면이라도 가능하니까.  궤변일지라도 이리 생각한다.  노년이 되면 얼마나 더 활동하고 운동해야 잘 잘 수 있을까?  무슨 국가대표운동선수처럼 일하고 운동해야 하는 거 아닐까? 흠..... 그럴 수 있을까? 
unfair 하다고 생각하려다가, 나이들어감을, 또 에너지 넘침(?)을 감사하기로 했다. 
(그 외에 진짜 감사한 것들은 따로 감사기도) 

:
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26. 14:55

십자가 카테고리 없음2024. 11. 26. 14:55

언젠가 아이아빠가 그런다. 집에 십자가가 별로 없다고,
무엇이라고??? 내가 보기에는, 십자가가 집 구석구석마다 너무 많아서, "만약 우리집에 드라큘라(뱀파이어)가 들어오면 절대 살아나가지 못하겠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아이에게도 그렇게 말하곤 했었는데 말이다.  십지어는 아이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토끼 인형도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은 지 오래되었다. 
어떻게 그게 안 보였을까?  십자가들이 너무 각양각색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십자가를 더 많이 소유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우리가 구입한 십자가는 하나 뿐이다.  우리 어머니께서 주신 것들이 여러개고, 또 아시는 분께서 주신 것이 있다. 

예수님께서 목박혀 있는 모양의 십자가는 우리가족이 한국에 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 옆에는 작은 예수님 머리상이 놓여있는데, 그것도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것. 수십년된 것들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보던 것들.

집에 십자가가 많지만.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눈에 띄일 때, 또 청소할 때 먼지를 떨면서 손에 쥘 때  가슴이 찡하긴 하다. 
 
우리들의 존재에 깊이 새겨진 십자가가 중요한거지. 또 십자가 위에서 주께서 겪어내시며 이뤄내신 것들이 엄청난거지...

 

:
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23. 17:08

추억의 장소들 카테고리 없음2024. 11. 23. 17:08

컴퓨터 앨범을 훑어가다 눈에 띈 사진들.
우리 조부모님께서 사시던 집 앞에 십여년 전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주택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상업용 건물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1 년 이곳에 살기도 했고 유년기에는 더  자주 방문했었고, 마당에서 노는 걸 많이 즐겼기에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지금도 집안 구조가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1 층 왼쪽의 안방, 거실, 거실 저쪽편의 작은 방, 거실 왼쪽편 뒤쪽에 있던 다이닝룸과 부엌, 부엌옆쪽에 붙어있던 다용도실과 가정부 아주머니방, 2 층의 증조할아버지방, 고모들 방 등등.. 

 
원래 집이 아래사진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고모 한 분과 동생 .

 
꽃도 있고, 마당에 잔디밭과 나무도 있었다. 진도개 두 마리도 있었는데, 둘 다 이름이 메리였다. 메리 1 , 메리 2 도 아니고 그냥 둘 다 메리였다.  할머니께서는 장미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노란색 핑크색 장미 등이 기억난다.  그런데 지금은 마당도 사라지고 꽃도 나무도 없고, 콩크리트 바닥의 주차장이 되었다. 아니, 위 사진도 십 여년 전이니,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일주일 전 동생이 보스턴에 일 떄문에 갔다면서, 사진을 찍어보내왔다. 아래 사진을 보내곤, 어딘줄 알겠냐고 묻는다. 당연히 보자마자 알아봤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기숙사 건물들이다.  동생 왈, 보스턴이 많이 바뀌었다고, 자신도 보스턴에 추억이 많은데, 여기 오래 산 누나는 더 추억이 많겠다고... 당연히 추억이 많지. 좋은 추억도 많고 괴로웠던 기억도 많고..  안 가본지가 몇 년 되었는데,  다시 가고 싶어도  틈이 잘 안난다.

 
동생이 보스턴에 간 며칠 후, 아이아빠가 또 보스턴 출장을 다녀왔다. 두 팀의 일정이 겹치진 않았다.  아이아빠는, 우리 아이가 유년시절을 보낸 집 앞을 잠시 들렀었다고 한다. 그곳도 많이 변했다고... 아이가 눈썰매 타던 작은 언덕은 너무 작은 언덕이었고, 눈 오던 날이면 눈이 잔뜩 쌓여서 삽질하기 바빴던 주차장은 없어졌다고... 
사진앨범을 보다가, 또 가족들의 출장 덕분에 이전 추억들을 잠시 떠올려본다.  세월이 빠르다. 보스턴에 살면서 이 티스토리라는 공간에 미주알 고주알 일상을 기록하던 게 어제같은데, 지금은 그 당시를 추억하고 있으니.
그러고 보니, 한국, 보스턴, 캘리포니아에 산 햇수가 대략 비슷하다. 앞으로는 캘리포니아에 산 햇수가 더 많아지겠군. 진정한 Californian 이 되는건가?  이곳에서도 추억을 더  만들어나가야겠지... 

:
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18. 04:24

나한테 잘하세요. 카테고리 없음2024. 11. 18. 04:24

시편 119 편을 읽다가 빵 터졌다. 

Psalms 119:17-20 NIV

Be good to your servant while I live, that I may obey your word. Open my eyes that I may see wonderful things in your law. I am a stranger on earth; do not hide your commands from me. My soul is consumed with longing for your laws at all times.

17 절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결국 "나한테 잘하세요," 아닌가?   
그래서 그냥 찾아봤다. 히브리어를 번역하면 "Deal bountifully with your servant,"라고. 

 

 

"Let's make a deal" (Psalm 119:17) · David T. Lamb

Deal bountifully with your servant, so that I may live and observe your word (Psalm 119:17 NRSV). In this verse, Psalm 119 moves into the Gimel section, where each of the eight verses begins with the Hebrew letter Gimel.  The phrase here "Deal bo

davidtlamb.com

 

하나님하고 deal 하는 거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시편 119 편에 계속,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하나님의 도움을  당당히 요청하는 기도톤에 대해서 다시 생각케 된다. 

  • Open my eyes
  • Remove from me their scorn and contempt,
  • Cause me to understand the way of your precepts,
  • strengthen me according to your word
  • Keep me from deceitful ways;
  • be gracious to me and teach me your law.
  •  Teach me, Lord, the way of your decrees,
  • Give me understanding
  • Direct me in the path of your commands

etc.

:
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14. 15:17

경쟁상대 카테고리 없음2024. 11. 14. 15:17

최근 요리 tv 쇼의 한 요리사가 떠오르는 인용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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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12. 15:04

Reading Genesis 카테고리 없음2024. 11. 12. 15:04

Marylynne Roboinson 의 Reading Genesis 를 드디어 다 읽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24 Reading List 에 들어가 있길래, 읽었다. 오바마는 이 책 저자의 소설 <Gilead> 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그 소설은 퓰리쳐 상을 수상했었음. 

약 두 달을 붙잡고 있었다. 킨들로 읽으며 "아직 오십 몇 프로밖에 못 있었네," 하면서 속도를 붙이려 하는 순간 책이 끝나버렸다. 나머지 반은 창세기의 킹제임스 버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허탈함.

책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창세기 비평 등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게는 안 그럴 수도 있으리라. 창세기를 문학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야 하나? 

 

 

몇 가지 포인트

1. The Bible is a theodicy, a meditation on the problem of evil. This being true, it must take account of things as they are. It must acknowledge in a meaningful way the darkest aspects of the reality we experience, and it must reconcile them with the goodness of God and of Being itself against which this darkness stands out so sharply. This is to say that the Bible is a work of theology, not simply a primary text upon which theology is based.
Robinson, Marilynne. Reading Genesis (p. 3). Farrar, Straus and Giroux. Kindle Edition. 

I have dwelt on this sequence of stories, one after another, exploring the ways in which the faithfulness of God is manifest in the world of fallen humankind.
Robinson, Marilynne. Reading Genesis (p. 196). Farrar, Straus and Giroux. Kindle Edition. 

 

2. 바벨론 등 주변국의 신화와 이스라엘의 창세기를 비교. 하나님과 바벨론 신들의 '성품'의 차이, 신화와 창세기에서 인간의 역할의 차이 등을 논함. 기억나는대로 대충 쓰자면,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자비의 하나님이시고, 바벨론 신들은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고 소모품처럼 여기는데, 하나님꼐서는 인간을 스토리의 중심에 두신다는 식의 설명

 

3. birth order 에 대해 얘기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정확한 내용은 잊어버림..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얘기했겠지. (Bible Project 에도 First-born 에 대해서 다룬 podcast 가 여러 에피소드 있긴 하다) 

그 대목을 읽으며 tangent 로 딴 생각 한 거만 기억남: 에서와 야곱에서 , first-born 이 아닌 야곱이 선택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되었다. First-born 에서의 자손들은 이방국이 되고. 그런데 신약으로 가면 그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에 대해서 first-born 이 된다. 그런데 예수님 또한 하나님의 first-born 이시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이스라엘이시니까. 성경 속에서 뒤죽박죽된 birth order 라고 볼 수 있다.  first born 이건 아니건 모두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 햔재진행형인 그 쪽  전쟁이 떠올랐다. 책에서도 retaliate 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창세기의 하나님을 여러 번 논한다. 

 

4.  가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아벨 (Abel) 이라는 이름의 뜻은 "emptiness" or "vanity" or "something transitory" 란다. 

저자의 말: The story was always about Cain. The sacrifices were of no real importance.  Robinson, Marilynne. Reading Genesis (p. 58). Farrar, Straus and Giroux. Kindle Edition. 

결국 인간 모두는 가인의 후예?  그렇지... 아벨은 아마도 예수님의 foreshadow 였을 수도 있고, 가인은 에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인간의 foreshadow? 하나님꼐서는 가인을 벌하지 않으시고 보호하셨다 라는 걸 주목한다. 

 

5. 성경은 역사를 romanticize 하지 않는다. 

It should be said, first of all, that the Hebrew Bible does not romanticize the history of the people who create it, to whom it is addressed, and who have preserved it faithfully over millennia. It is as if America had told itself the truth about the Cherokee removal or England had confessed to the horrors of slavery in the West Indies. History is so much a matter of distortion and omission that dealing in truth feels like a breach of etiquette. However, if a people truly believed that it interacted with God the Creator, it might find every aspect of its history too significant to conceal. In this case, circumcision, the sign of the covenant given to Abraham, which identified the covenant people and was the means by which others could be brought into the community, is viciously and cynically abused. Yet God does not treat the covenant as violated. Jacob and his sons remain under His protection. In this sense, the story is another approach to defining the covenant. It is secure in that God is faithful to His intentions despite appalling human crime, even sacrilege.

Robinson, Marilynne. Reading Genesis (pp. 170-171). Farrar, Straus and Giroux. Kindle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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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7. 15:54

King of all the nations. 카테고리 없음2024. 11. 7. 15:54

 
선거 이후, 캐나다로 이민가는 법 검색이 폭증했단다. 
한국계가 아닌, 아이 친구 부모님은 유럽의 어떤 작은 나라로 이민가자고 했단다. 이미 은퇴한 이들이고 그정도의 경제적 여유도 있고, 부모 중 한 명이 유럽 출신이기도 하다. 
나도 가족에게 "뉴질랜드로 가자," "한국으로 갈까?" "영국은 어때" 히며 비현실적인 발언들을 던지고 있다.
 
미국에 온지 삼십년이 넘었다.
한국은 내가 살던 한국이 더 이상 아니다. 이젠 많이 낯선 곳이다. 
미국도 더 이상 옛날의 미국이 아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올 때는, 어린 나이였지만 나름 이상과 자유, 꿈을 찾아 온다고 생각했던 듯 싶다. American dream? 
아이 말에 의하면, 역사 속 제국들이 평균 250 년동안 survive 했다고. 인터넷에 보니 그렇다는 정보가 있다.  
미국은 제국이라고 볼 수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거의 250 년이 다 되어가는 건 맞다. 
미국이 '그 미국'이 아니다. '그 미국'이 아닌지 오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 미국'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하나님 나라,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 King of all the nations 이신 예수님을 더 강렬하고 생생하게 마주하는 시간인지 모르겠다. 
전혀 그리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 진정한 왕을 예배하며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IOtxq_v_gU0&ab_channel=WorshipTogether (지금 인터넷에서 찾은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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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6. 00:38

귀차니즘 카테고리 없음2024. 11. 6. 00:38

1.   대학교 1 학년 초기, 한 classmate 가  "귀찮아," 라는 표현을 쓰는 걸 듣고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뭐가 귀찮다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클라스를 한대거나 학업에 도움되는 activity 를 귀찮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전처음으로 귀찮다라는 표현을 들은 것도 아닐텐데 왜 그리 놀랐을까?  학업 포함 많은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서 나름 '명문대'에 들어온 신입생이, 의욕에 넘쳐 앞날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그런 표현을 써서 그랬을 수도 있다.또 다른 하나는 내가 한국에서부터 배워왔던 공부철학이 최선 그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라서 그렇기도 하다. 스스로를 이겨야 하는 극기훈련, 잠을 줄여서 공부한다, 엉덩이가 짛무르도록 공부한다, 주말 & 휴일도 없이 일해야한다는 공부철학에 휩싸여 있었는데, "귀찮다"라니...


2.  그 후 세월이 흘러, 또 한 번 비슷한 형태의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사람을 귀찮아하는 듯한 태도에서다. 여러 명이 모인 모임에서 대화 중 어떤 이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 다른 한 사람이 그 사람의 얘기 듣는게 귀찮다고 표시하는 걸 들었을때다. 꽤 '신앙' 좋다고 여김받는 사람이 그런 태도를 보여서 충격의 정도가 더 컸는지 모르겠다.  또한, 그 때까지는 누군가가 '사람'을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기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서로를 귀찮아 할 정도의 선을 넘지않는 이들이 주위에 더 많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의 내면의 귀찮음을 남에게 표현하지 않는 이들이 주위에 더 많았던 듯 싶다. 그래서일까? 그 사람의 귀찮아함에 일종의 '쎄함'을 느꼈다.

 
3. 돌아보면 그런 종류의 '쎄함'을 꽤 유명한 목회자들에게서 느껴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설교 중에, 여성을 대상화하는 부적절한 발언을 한대거나, 설교를 듣는 이들을 향해 "수준이 낮다," "머리 나쁘다,"라고 발언을 하던 이들 등.  쎄했다. 그런데 그들은 엉망인 삶을 이미 살고 있었고, 나중에 그 삶이 탄로가 나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엉망인 삶을 살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새어나오는 듯 하다. 

4. 1 번의 그 classmate 는 대학시절, 주위 야망에 찬 동급생들처럼 별나게 화이팅 넘치는 학창생활을 보내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더 잘 맞는 길을 택하면서 지혜로운 대학생활을 보냈던 듯 싶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5.  2 번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신앙인이었으니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다뤄주셨을까? 

6.  열심을 다 하며 살아오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해야 할 것들은 더 많아지는데, 귀찮은 것들도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밥챙겨먹는것, 쇼핑, 청소, 헤어컷 받으러 가기, 등등. 지금은 두어달에 한 번 하는 머리염색도 앞으로 더더욱 자주 해야 하리라. 오늘도 흰머리 몇 올이 더 도드라져 보여서 두건을 쓰고 일할것인가? 염색을 할 것인가 고민 중이다. 그냥 뽑아버릴까? 귀찮다. 

7. 하지만 사람을 귀찮아해서는 안되리라. 2 번의 사람에게서 받은 큰 충격이 반면교사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내 시간이 중요하고 내향적 사람이기에 혼자 있는 시간을 안식일 지키듯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건 내 한계라고 생각하지, 타인을 탓하며 사람을 귀찮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8.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꺠닫는 건 세상에는 정말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들, 여러 조건과 상관없이 참 진실하고 실속있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학벌/교육정도, 지식, 신앙공동체 내에서의 직책, socioecomic status,  나이와 상관없이 그러하다.  어느 사람이나, 모양과 정도의 차이는 있는지 몰라도 image of God 를 지니고 있다. 

9.  모든 사람을 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맘과 지혜를 허락해주시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할 때는 그것이 내 한계라는 걸 알 수 있는 겸손함을 허락해주시고, 오해없이 표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기도한다.  또한 "쎄한"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고, 지혜롭게 대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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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4. 03:14

Procrastination 습관 고치기 카테고리 없음2024. 11. 4. 03:14

한국 고딩시절 미국에 와서 고쳐야 했던 고약한 습관 중 하나가 벼락공부였다.  Last minute 에 시험공부/과제를 하는 것. 

국민학교 시절부터 그랬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하셨던 아버지께서, 어린 나와 동생에게 "숙제 다 하고 놀아라," 말씀하시는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열심히 놀았다. 어머니께서는 우리의 어린시절부터, "공부해라," 라는 말씀은 귀에 박히도록 많이 하셨으나, 과제나 준비물을 체크하지는 않으셨다.  어머니께서 우리 어린시절에 문제집 숙제를 내 주시거나 영어를 가르쳐주시긴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께서 성문종합영어를 가르쳐주셨다. 그건 (의사였던) 외할아버지께서 어머니와 우리 외삼촌께 영어를 가르쳐주신 전통을 따른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숙제를 대신 해 주신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중-고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학원이나 과외선생님들은 찾아주셨으나, 공부계획같은것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으셨다. 초딩시절, 문제집 숙제를 안 해서 혼난 일도 부지기수다. 옆집  강ㅇ이 는, 자기 어머니 문제집 숙제하면서 답안지에서 "생략"까지 베껴서 무지 혼났다던데, 우리는 "생략"까지 베낀 적은 없다. 

국민학교 입학 후 얼마 안되어서 색칠공부 숙제가 있었는데 안 하고 있다가 그 날 아침 정말 엉맘으로 해서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보였다. 칠도 안 하고, 크레파스 선 몇 개 그어 갔었다. 그 때, 당황하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또렷이 기억난다, "넌 얼굴도 이쁜 애가 색칠은 왜 이렇게 했니?" 그러고 크게 혼내거나 그러시진 않으셨다. 30-40 대의 여자 선생님이였다. 색칠이라고 한 게 너무 황당해서 그러지 않으셨을까? 또  갓 입학한 1 학년을 벌 줄 수 없어서 최대한 좋게 표현하시지 않으셨나싶다. 

중.고딩시절에는 잠을 적게 자고 밤을 새며 공부/일하는 걸 glorify 하는 그 시대의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낮동안 시간이 좀 날 때도 "나중에 잠 좀 덜 자고 공부하면 되지," "나중에 시험 전에 며칠 밤샘하고 공부하면 되지," 라는 식으로 핑계를 대었다.  고등학교 시절, 한번은 암기과목 공부를 미루고 미루다가, 시험 전 1-2 시간 전에 교과서만 쭉 한번 읽고 가서 시험을 본 적도 있었다. 망했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점수가 잘 나와서 놀랐다. 참고로 난 photographic memory 도 없고 천재형도 전혀 아니다. 암기도 잘 못 하는 편이다. Problem solving 에 더 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방법이 통하는 객관식 시험의 현실이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편이긴 했다.) 그래서 그 바람직하지 못한 공부방법은 더 고질화되었다. 그러한 방법이 통하는구나 생각했었다. 

꾸준히 공부하는 시간도 꽤 많긴 헀었다. 그럴 경우에는 성적이 훨씬 더 좋았다. Last minute 으로 미루는 경향은 시험공부나 과제가 어렵게 느껴지거나 재미없거나 할 경우에 더 컸다. 

대학시절,  미루는 습관으로 인한 수많은 고난, 흠.. 벼락공부의 bad consequence 로 인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습관을 고치는 건 쉽지 않았다.  대학교 학년이 낮을 때는 어느 정도 last minute 에  시험공부하고 과제를 하는게 통했으나, 학년이 올라갈 수록 과목이 복잡화되면서 그건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다. 아직도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악몽을 꾸곤 한다. 

시험을 잘 보는 능력보다도 더 중요한 실력은, 쳬계적으로 계획을 잘 짜서 deadline 에 맞춰서 과제의 완성품을 내어놓는 거라는 걸 뼈져리게 깨달았다.  벼락공부해서 반짝 시험 잘 본 후에, 그 공부한 지식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오랜시간 반복해서 공부한 지식도 나중에 쉽게 잊어버리는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서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 시간 들여서 복잡한 문제를 쳬계적으로 풀어내는 능력 등은 몸에 평생 남는 습관이 되어버린다. 

개인적으로 벼락공부의 악성버릇을 고친 기간은, 대학원 시절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을 하며 치대 준비공부를 하면서였다. 아침에 학교에서 QT 하고, 대학원 일을 한 후, 져녁에 집안일하고 아이를 재우고 30 분 정도 운동도 하고 2 시간 반 공부하고 12 시에 자는  a couple of years 이였다. 시간이 날 때,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처리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는 시간이 없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일을 절대 미룰 수 없었다. 그 시절에는 그 생활 자체가 감사하고 좋았다.  몸과 맘이 바쁘고 여러모로 쪼달리고 힘들던 시절이긴 헀지만, 그래도 그런 기간이 있었음을 감사한다.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신앙에서도 벼락공부나 last minute 은  통하지 않는 거 같다. 아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last minute 이 있는데, 인간의 성장면에서는 벼락공부나 last minute 이 없는 거 같다. 오히려 오랜 광야 시간 등을 통한 꾸준한 훈련의 면이 크다. 야곱의 타향생활, 요셉의 이집트생활, 모세나 다윗의 광야생활, 예수님의 목수생활과 광야 등등.  

신앙의 여정 면에서는 어떤 훈련들에 촛점을 맞춰야 할까?  이미 주어진 신앙과 삶의 과제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순종하는 걸로 시작해야 할지 아닐까 싶다.  기도와 말씀, 이웃사랑, 집안일이나 직장일을 성실히 잘 해는 것, 건강한 식습관이나 운동,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들 성실히 관리하고 사용하기, 사역,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길 기도하기, 나의 죄성과 싸우기 등 모두 포함되는 것이리라. 또 독서 등을 통한 바른 지식을 부지런히 쌓아가고 실천하는 것 등도 중요하다.  미루지 말자. 당장 순종하자.
 

 

---- 빨리 다 끝내고 싶지만 생각만큼 진도가 잘 안 나가는 "Reading Genesis" 를 읽다가 위 그림을 어디선가 보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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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4. 11. 1. 09:59

pain of discipline 카테고리 없음2024. 11. 1. 09:59

어디선가 마주친 인용문.
뭐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곘지만, 인용문은 So true.
경험 상, pain of regret 가 pain of discipline 보다 훨씬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regret 라기보다 resentment (bitterness) 일 경우 무척 toxic 하다.   
pain of regret 라는 정서적 면 뿐만 아니라,
discipline 하지 못해서 생기는  신체적 & 실제적 damage 와 고통도 크다. 
pain of discipline 은 paiful 하지만 무척 joyous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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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