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3

« 2019/3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  
2017.10.05 19:11

기억 분류없음2017.10.05 19:11


       의 외할머니께서는 어리실 때 어머니를 여의셨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시고 새 장가를 가서 바쁜(?) 아버지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거의 고아처럼 지내셨다고  한다.

       그 대신 옆집 아주머니께서, 나의 외할머니를 딸처럼 보살펴주셨는데,

       그 아주머니께서 크리스챤이셨다고.

       그 아주머니 덕분에 외할머니께서도 하나님을 믿게 되셨고 

       평생 헌신된 삶을 사셨다. 


       외할머니는 그 당시 여성들이 많이 그러했듯 고등교육을 못 받으셨는데, 

       하나님 잘 믿어서 의사 남편 만나서 잘 사셨다고,

       나의 이모님들은 농담하신다. 

       (그 당시 일제시대에,  양반이라는 이유로 외할아버지와 맺어지셨다고.) 

    

 범신론자에 가까우셨다는 외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외할머니께서는 혼자서 혹은 자녀분들과 함께 교회에 다니셨고... 

내가 보기엔 외할아버지께서 외할머니같은 분 만나셔서 무지 복 많이 받으신 거다. (아마도 외할아버지께서도 그렇게 인정하고 계실거다)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셨던 외할아버지 덕분에  자녀들은 다들 음악을 좋아하시고 음악을 전공하신 분도 몇 되시는데,

외갓댁에 가면 이모님들의 피아노 반주에 따라서 옹기종기 모두 둘러서서 함께 찬양을 하던 기억이 난다.   

노래를 잘 하는 자녀분들에 비하면 외할머니는 음치셨지만, 그래도 그 순수한 목소리와 표정이 기억난다.

외할머니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 는 말씀을 잘 하셨다는데, [각주:1] 무척 온유하고 온화하신 분이셨다. 

속은 안 그러면서 온유한 척 하거나 온유하려고 애써 노력하는게 아니라, 내면이 정말 온유하고 온화한 분이셨다. 

순진하고 어린이같은 면이 많으셨던.... 이모님들 표현에 따르면 '바보'같은 면이 있으셨던.

외할머니께서는 아마도 그런 온유함을 예수님의 온유함으로 여기셨는지도 모르겠다 -- 

(사실  그 시대 여성들은 그런 것을 미덕으로 여겼을 듯도 싶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외할머니께서는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것들로, 선산 시골에 아주 작은 교회를 지으셨다. 30 년 전 일. 


그 교회가 '부흥'했으면, 스토리가 멋질텐데, 안타깝게도 30 년이 넘도록 교회 사정은 어렵단다. 교인도 적고, 담임 목사님들도 많이 바뀌었고.  워낙 시골이기도 하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자녀들이 힘을 모아 교회를 support 해 왔었는데, 시골 동네 사람이 헌금을 사기친 일도 있댄다.  

또  한 담임 목사 사모님 중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헌금을 강요하던 황당한 이도 있었다 하고.  

외할머니의 존함? 성함? 이 들어간 기념비를 세우자는, 이전 담임 목사님의 제안을, 그 자녀분들이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 했다고.


몇 년 전 그 교회에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외할머니의 흔적은 조금도 있지 않고, 평범한 시골 교회인 그 교회. 

우리가 어렸을 때 쓰던 피아노가 거기 놓여 있어서 반갑긴 했다.  

그 지방 도시 대학생들이 수련회를 와서 교회 건물을 고치는 (선교) 봉사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 지역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아'처럼 자라셔서, '과부'가 가진 것을 바치셔서 교회를 지으신 외할머니의 신앙.

온유하고 잔잔한 동시에 다소 모험적이기도 하셨던 신앙... 

(물론 기복적인 면도 있었을 거고  빈틈도 많으셨겠지만)

그와 더불어, 옆집 어린 아이를 딸처럼 보살펴주셨다는, 얼굴도 이름도 모를 이웃 아주머니의 신앙 


문득 그녀들의 신앙이 기억나고 궁금해지는 계절이다. 


  1. 아, 물론 그 성경구절을 기복신앙적으로 받아들이셨을 수도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pleasing2jc
2017.09.16 11:01

random thoughts on feminism 분류없음2017.09.16 11:01

(1) 지난 주 받은 이메일들 중 두 개의 제목

 -  Women in Tech: Sustaining a Successful Career (지금 technology 에 종사하고 있지 않기에 해당사항은 없지만)

 - What the World Needs Now is Women : SheLeads 라는 컨퍼런스에 관한 이메일

그리고 한국의 한 기독교 단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페미니즘 강좌 (온라인으로 들으려고 간구 중.) 등등.

9 월 15 일자 타임 매거진 커버 <Firsts: Women who are changing the world>

여러면에서 여성지위 향상의 과도기에 있는듯 하다. 

많이 배우고 많이 고민해야 할 때인가 보다.  


(2) Asian female 로서 다인종 미국을 살아가면서, white male 에 비해서 minority 이긴 하지만, Asian female 이기에 가질 수 있는 advantage 도 많이 느끼고 있다.  

미국 사회 속에서는 대체적으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정치계에 입문할 것도 아니고, corporate world 나 academia 에서 아주 출세할 것을 꿈꾸는 것도 아니기에도 그렇지만. (만약 아주 '출세'하려고 맘 먹었다면 유리천장을 만났을 지도 모른다.)  

일을 하다보면 stereotypical asian female 보다는 stereotypical white male 처럼 행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stereotypical asian female 의 장점을 활용해야 할 경우도 있다. Stereotypical white male 처럼 일하다가, 전형적 의미의 '여성적' 모임에 가거나 하면 모드전환이 빨리 안되어서 혼자 당황하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3) 전투적 페미니스트의 urge 를 느낄 떄는 수구꼴통[각주:1][각주:2][각주:3]유교문화[각주:4] 나 극보수적 기독교 환경 등을 마주칠 떄이다. 

전통/종교의 이유로 그들이 define 하는 여성이라는 틀에 가둬버리고 그런 여성의 여성성이나 역할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무척 답답하다. 에를 들면 사회 속에서 재능을 잘 발휘하고 있고 학벌도 좋고 연봉도 많은 여성이건, 가족을 위해서 휴일도 없이 매일매일 24 시간 희생봉사하고 있는 전업주부건, 모든 여성의 역할을  그 공동체 속 전통적 여성상에만 한정시키는 보수적 교회 분위기 등.  


(4) 아이를 임신했을 때  Martin Luther King Jr. 의 <I have a dream> 연설을 태교처럼 읽곤 했다. 그걸 읽으면서 인종평등에서가 아니라, 남녀평등의 영역에서 그 연설을 적용했었다. 아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한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

(소싯적 누구나 그렇듯) 어린 시절 공부를 잘 해서,  전통적 옛 문화 속 장남에게 주어졌을 기대와 지원을 받으며 컸고, 남녀공학 학교를 계속 다니면서도 여성으로서의 불평등같은 건 크게 의식 못했는데 왜 그런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을까?  성인이 된 후 접한 제도적 문화 탓이 아닐지 모르겠다.


 (5) 파워를 동등하게 배분받는 페미니즘이라가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등한 위치에서 사랑하고 serve 하기 위한 페미니즘이어야 하겠지. 그런데 여성들은 처음부터 동등한 위치에서 시작해서 '낮아지며' 섬기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낮은 위치에 place 되어서 섬기기를 강요받는 경향이 크다. 그런 잘못된 고정관념과 구습이 우선 바로잡아져야 할 듯. 


(6)  아이가 페미니즘의 기반이 잘 다져진 환경과 사회 속에서 맘껏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한다.  

(7) 딸들이 (또 아들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내하시고 노력하시고 선견지명을 가지셨던  할머니, 어머니 세대는 위대하다 

(8) O 목사님이 몇 년 전 한 설교. Is Christianity Unfair to Women



  1. 정치적 수구꼴통의 아니라 수구꼴통의 사전적 의미에 따라서. [본문으로]
  2. 수구: 보통 정치적인 측면에서 많이 활용되나 정치적인 것 외에도 경제·문화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구질서를 옹호하는 것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본문으로]
  3. 꼴통: 머리가 나쁜 사람 [본문으로]
  4. 유교문화의 좋은 점도 많으나 안 좋은 점을 고수할 경우 [본문으로]
Posted by pleasing2jc
2017.09.11 12:20

individualism and collectivism 분류없음2017.09.11 12:20


팀켈러 목사님이 한 강의에서 이런 얘길 했다. 대충 기억나는대로 써보자면:

한 문화에 속한 이들이 타문화권의 문화를 함부러 평가하고 정죄하면 안된다. 예를 들면 collectivism 이 강한 한국교회의 교인들이 individualism 이 강한 서구 교회를 평가하며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할 수 없다[각주:1]. (그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Specifically, 한국 교회를 딱 집어서 예를 드는게 흥미로웠다. 아마도 한국인 교인 중 서구 교회/기독교의 개인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는지...

(어쨌거니 한 문화를 반성하는 목소리는 그 문화 공동체 안에서 나와야 한다는 게 그 목사님의 결론이었다. - 개인주의의 부작용도 물론 아주 많다)

교회를 집합주의 vs 개인주의 양축의 스펙트럼에서 구분한다면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집합주의가 강하다
이마도 전통적으로 끈끈한 친족 공동체, 강한 위계질서의 나라 공동체와, 독재시대와 조직사회 (학교,군대, 직장) 를 거쳐와서인지?

<교회 언니 '여성'을 얘기하다>책에 보면 한국문화에서는, 개인의 올바른 주체성, 객체성이 확립되기 전에 집단 공동체를 우선으로 하는 걸 먼저 배우기에 여러 부작용이 있음을 논한다. 그것이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

공동체를 강조하는 걸 많이 접한다.
공동체 중요하다. 성경에서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의 몸이라 한다. 예수님의 몸 -- 아주 중요하지.
그 예수님의 몸에서 손, 발 등 모든 구성원이 소중하다고 한다.

예수님의 몸의 공동체란 집합주의도 아니고 개인주의도 아닌 신비로운 새로운 개념이다.

그런데 공동체를 강조하는 경향이 너무 강해서 그 주장을 하는 태도가 집합주의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전체주의적이기도 하고.

그 때 집합주의적, 전체주의적이 진정한 의미의 집합 전체주의적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 자기 주장 강하고 목소리 크고 때론 힘센 이들의 주장이 전체를 컨트롤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로 많은 경우 그 힘 센 이들의 이기적 자기중심적 이익을 위해서 전체 공동체가 이용된다. 진정한 공동체도 아니고 집합주의도 아니고 아주 잘못된 모습의 개인주의라 할 수 있다. 소수의 이기주의. 그 소수가 예수님처럼 공동체 구성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거나, 그 예수님 앞에 철저히 복종하는 지도자가 아닌 이상.

예수님이 머리되신 예수님의 몸인 공동체.
그 안에서 각각의 구성원인 소중한 지체.
또한 각 지체를 royal priesthood 로 부르신 예수님의 '민주적' 혁명 (톰 라이트의 표현)[각주:2]

공동체만이 모든 것의 해답이 아니다.
공동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집합주의적 전체주의적인 주장은 아닌지.
공동체를 강조하는 배면에, 공동체 전체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 통제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려는 소수의 숨겨진 (스스로도 의식못하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1. 이게 그 강의의 주요 토픽은 아니었음. 주요 토픽의 여러 갈래 토론 중 나온 짧은 comment [본문으로]
  2. 어떤 강의에선가 예수님께서 "democratized the Vocation" 했다는 표현을 씀. [본문으로]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