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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303

  1. 2022.01.26 긍휼 compassion
  2. 2022.01.17 2022-2
  3. 2022.01.08 2022
  4. 2021.12.30 롤모델과 실체
  5. 2021.12.27 2021 크리스마스
  6. 2021.12.17 In the last days
  7. 2021.10.19 얍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vs. 신실하신 하나님
  8. 2021.09.28 2011 년의 Psalm 23
  9. 2021.09.26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
  10. 2021.09.23 교회 lab
2022. 1. 26. 17:36

긍휼 compassion 카테고리 없음2022. 1. 26. 17:36

작년 말 '긍휼'에 대해서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관련 서적을 찾아보다가 헨리 나우웬 등이 쓴 책 Compassion 이 한국에서 <긍휼>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있는 걸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긍휼의 국어사전 정의: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
Compassion 의 정의: a strong feeling of sympathy and sadness for the suffering or bad luck of others and a wish to help them
이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긍휼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는 긍휼의 주체가 그 대상보다 더 나은 처지에 있고 그 대상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맘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했다. 예를 들면 부유층에 속하는 이가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볼 때 가지는 마음,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유기견을 볼 때 드는 느낌 그런 종류의 sentiment
영어 compassion 이라는 단어를 대할 때도, 긍휼보다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처지 차이가 좀 덜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제가 대상보다 좀 더 나은 형편이라는 걸 assume 했던 듯 싶다.
그런데 책 에서는

  • compassion 에 대비되는 인간본성을 competition (경쟁) 으로 본다
  • 책에서의 competition 의 개념은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려는 경쟁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 차이를 두려는 모든 움직임을 포함한다. 나를 구별하려는 모든 움직임을 포함한다는 거다.
  • 그런 all-pervasive competition 은, 타인과 solidarity 를 맺는데 장애가 되고 compassion 을 가지는데도 방해가 된다.
  •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비우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과 함께 하셨다. 그것이 "the mystery of God's compassion" 이다. (빌립보서 2:6-9)

성경사전에서는 긍휼을 mercy 라고 번역하는데, 그 어원이 '라함 (racham: 자궁) 이고 '같은 태에서 나온 이들에 대한 감정'이라는 기본적 의미라고.
젖을 빠는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 (사 49:15) ,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가지는 반응 (렘 31:20), 형제가 형제애 대해 기대하는 마음의 상태 (암 1:11) 을 나타내는데 이 단어가 쓰였다.
즉 다른 이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 할 때는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처지에 있다는 구별된 마음에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내가 solidarity 를 이룬 형제자매가족, 즉 하나라는 foundation 에서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라는 말씀이라는 거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아들딸 삼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형제자매라 하시는것도,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위 봉사와 자선, 사역을 하면서 상대편보다 자신이 더 낫고 뛰어나기에 봉사/자선/사역을 한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이미 compassion 이 아니고 competition 의 동기에서 시작되기에 하나님/예수님의 compassion 을 닮지 못한 거라 할 수 있을까?
남을 향해 불쌍하다는 말을 하는 경우, 그 말을 하는 자신의 깊은 내면에 어떤 동기가 있는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알고보면 자신이 불쌍히 여기는 상대편으로 인해, 똑같이 (어떤 경우는 더) 불쌍한 자신이 생존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치열히 싸워야 하는 competition 의 인간본능과 전심으로 배워야 하는 예수님의 compassion.
올해, 위의 책을 한번더 읽으면서 생각해 봐야 할 주제다.


사족) 위 글을 쓰다가 그냥 떠오른 드라마. 불쌍한 인간들에 대한 드라마로 <나의 아저씨> 가 있다. 그 드라마에서는 심지어 드라마 속 악당마저 불쌍한 이였다는 결론이었다. 드라마 속 악당 도준영에게 그의 불륜녀/주인공의 아내 강윤희가 하는 말에서처럼:
너 불쌍해. 대학 때부터 불쌍했어. 가진 거 없는 거 티날까봐 여유있는척 다 가진척 연기하는 거 우리 다 알았어. 너가 잘 풀리기 시작하면서 좀 기뻤어"... "근데 여전히 짠하더라. 여전히 긴장하고. 그래도 나랑 있을 땐 네가 긴장하지 않는 거 같아서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다보지. 난 내가 똑똑한 여잔줄 알았어

vs.
남녀주인공 동훈과 지안의 대화
동훈: 너 나 왜 좋아하는 지 알아? 내가 불쌍해서 그래. 내가 불쌍하니까 너처럼 불쌍한 나 끌어안고 우는거야.
지안: 아저씬 나한테 왜 잘해줬는데요? 똑같은 거 아닌가? 우린 둘 다 자기가 불쌍해요.
서로의 불쌍함을 인정한 인간들의 연대와 극복기(?), 불쌍함을 감추려 했던 악당과 그런 그의 거짓 메시야가 되려고 헀던 이의 말로가 절묘하게 그려진 드라마이기에 그 드라마가 그토록 인기가 많았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ㅡ 인간의 근본적 불쌍함을 인정하는 것을 벗어나, 나만 유난히 불쌍하다고 여기는 self-pity 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게 절대 아니라고 믿는다. 위의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을 구별하려는 competition 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

:
Posted by pleasing2jc
2022. 1. 17. 16:11

2022-2 카테고리 없음2022. 1. 17. 16:11

이 전 글과 같은 고민에서 집에 있던 <Doing God's business: meaning and motivation for the marketplace> by R Paul Stevens 의 책을 읽었다. 2006 년에 출판된 책인데, 우리 집 책장 한 켠에서 외면당하고 있던 책이다. 

굳이 business 를 하지 않더라도 세상 속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 대부분의 고민체계를 잡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위 책이 꽤 오래전 책이라서, 같은 저자의 가장 최근 책을 찾다가 발견한  2021 년 출판된 <Money matters: Faith, Life, and Wealth> 도 읽었는데, 돈의 가치가 절대 neutral 하지 않고 돈은 spiritual 하고 radioactive 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새로웠다.  

위와 같은 주제들은 절대로 사사로이 여겨서는 안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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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2. 1. 8. 15:24

2022 카테고리 없음2022. 1. 8. 15:24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 배면에 어느정도 consistent 한 묵상과 기도의 흐름이 있는 편이었는데
2021 년의 4/4 분기에는 그런 것이 잘 안 '느껴졌다'. 바쁘기도 했고 지극히 secular 해 보이는 사안들에 대해서 공부하느라.
같은 집에 사는 어떤 사람은 Paul and the Gift 라는 지극히 성스러운 주제를 공부하는데,
나는 business/tax entity, 세금 등등에 대해서 시험공부하듯 알아봐야했다. note-taking 을 해가면서.
어린시절부터 business&adminitration, 경제 등등은 전혀 간여하고 싶지 않은 분야였기에 그 흔한 클라스 하나 들은 적 없다.
공대동창들은 그 쪽 클라스 하나쯤은 자연스럽게 듣고, 부전공/전공도 했는데, 나는 그쪽 클라스를 듣는건 전혀 고려도 안했다.
corporate world 나 sales, business world 같은 건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의 work style 을 유지하는 이유도, 치과의 business aspect 는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환자 치료에만 집중하고 싶어서다.
치대에서도 보험이나 finance/accounting 은 안 가르쳐줘서 일을.시작하면서 치과보험에 데해서 배우고 세금 retirement plan 등을 figure out 하는데 큰 에너지를 들여야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싫어하는 걸 뒤늦게 catch up 하려니 무척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단 시작하면 속속들이 알아야 직성이 풀리기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에 집중하느니 "확 다 내려놓고 확 떠나버리면 안될까?" 는 생각을 아주 막연히 하게되었다.
이왕이면 해변 리조트가 좋은 동남아로 확 떠나서 봉사도 하고 좋아하는 책들도 맘껏 읽으면 어떨까 하는 어긋난 동기의 daydreaming 의식의 흐름 속에 해외 의료 선교를 간 분들의 책을 두 권 구입하기도 했다. (아직 읽지는 못했다)
그렇게 확 삐뚤어지려는 날 정신차리게 해 준건 Henri Nouwen 등의 책 <Compassion> .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voluntary displacement 를 해야 하는데, 그게 꼭 확 떠나야 하는 건 아니라고.
Rather, we must begin to identify in our own lives where displacement is already occurring. We may be dreaming of great acts of displacement while failing to notice in the displacements of our own lives the first indications of God' presence..
그리고 <compassion>책 마지막 부분, 남아메리카 오지에서 봉사하시던 한 의사분의 십대 아들이 그 지역 공권력의 injustice 로 인해서 죽음을 당한 이야기는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의사분이 그 책의 삽화를 그렸다고)
여러모로 회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로 2022 년을 맞으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새해의 '영적인' resolution 도 제대로 없고...
그저 내게 주어진 secular 해 보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to do list 를 하나님의 세계관 안에서 어떻게 잘 integrate 하고 잘 결정하고 풀어낼 것인가로 부터 올 한 해를 시작해야 하는지...

:
Posted by pleasing2jc
2021. 12. 30. 11:02

롤모델과 실체 카테고리 없음2021. 12. 30. 11:02

일터의 세계에서 Gandalf 같은 이미지로 비춰지기를 바라는 맘이 아주 조금 있었다.

물론 외모는 아니고 풍기는 아우라 말이다. 

Gandalf 같은 clinician - 능력과 권위가 있어보이고 또 신뢰할수 있어보이지 않나? 

연세지긋하고 백발수염 긴 백인 남자도 아닌, 체구도 크지 않은 중년 동양 여성이 어떻게 Gandalf 와 같은 아우라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재미삼아 MBTI 검사를 해보니 Gandalf 의 INTJ (architect) 가  아니고 Advocate 이란다. 정확히 말하면 INFJ-A

 Lord of the Rings 의 Aragorn 이 INFJ 이라고.   그외에 마더 테레사, Martin Luther King Jr 등등이 있고. 

검사결과 상 Thinking 이 47% 그리고 Feeling 이 53 % 이 나오긴 헀다. 

 INFJ 와 INTJ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을까? 

INFJINTJ 의 설명을 비교해 보면 INFJ 가 지금 직업에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긴 하다. 

공학을 공부하던 대학시절  해 본 MBTI 검사 결과는 T 와 P 가 강했었는데 (TP 와 SJ 결과가 비슷하긴 헀었다)

그간의 훈련과 삶에 의해서 바뀐건지 모르겠다.

하기야 TP 인 아인슈타인, 빌게츠, 제임스 본드, 인디아나 존스같은  clinician 보다는,

마더 테레사, 만델라 비슷한 clincian 이 본인과 이웃들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리라.

이런 저런 personality 에 대해서 읽어보면서 어떤 소양을 더 길러야 하는지 어떤 점을 과감히 개선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하지만 Gandalf 에의 미련을 버릴 수가 없군. 흠. 

 

:
Posted by pleasing2jc
2021. 12. 27. 13:40

2021 크리스마스 카테고리 없음2021. 12. 27. 13:40

크리스마스에 뭐할 거냐고 누가 물으면 "My plan is to do nothing" 이라고 했는데,

폭우와 Christmas light 속에서

multiverse ,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고 지구 멸망을 경험하면서 보냈다. 

아 그리고 달의 발해기지도 띄엄띄엄 구경했구나

 

Omicron, flight cancellation, 폭설 등의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맞이한  약 2025 번째 예수님 생신을 이렇게 보내도 싶나 싶지만, 

Henri M Nouwen 등이 쓴  <Compassion> 과 오늘자 encounter with God 를 읽으며 마무리하고 있다.

2021 년 12 월 27 일 지구 Bay Area 의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서 무장 중이라 해야 하나? 

Spider-man: No Way Home
Don't Look up
The Shack
고요의 바다
Compa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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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1. 12. 17. 15:53

In the last days 카테고리 없음2021. 12. 17. 15:53

기후재난과 질병의 시대인 동시에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재테크와 투자, 각종 대기업들과 억만장자들, 경제지원과 세금의 시대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래도 이나마 이렇게 살고있다는 것에 감사하나,

이 시대에  알아야 하고 신경써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피로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보면 아픔,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신듯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 Encounter with God (1) (2) 을 통해서 읽은 이사야 2 장

약 2700 년 전 이사야가 예언한 last days 속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기야 지금과 같은 시대는, 인간의 역사 속 다른 시대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계속 반복되어왔지. 

제국들의 흥망성쇠, 질병과 재난들, 경제적 흥망성쇠, 제왕들과 정복자들과 귀족들, 포드, 록펠러, 카네기 뭐 그런 사람들...

그런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펼쳐 오셨을 것이다. 이사야서 2 장의 모습처럼.

 

답답한 21 세기 현실 속에서,  2700 년 전 이사야가 declare 했던 그 생생함과 절박함을 느낀다.

 

"Come, let us go up to the mountain of the Lord, to the temple of the God of Jacob.... Come, descendants of Jacob, let us walk in the light of the Lord" 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ISAIAH 2:1–5

The Mountain of the Lord

2 This is what Isaiah son of Amoz saw concerning Judah and Jerusalem:

2 In the last days

the mountain of the Lord’s temple will be established
    as the highest of the mountains;
it will be exalted above the hills,
    and all nations will stream to it.

3 Many peoples will come and say,

“Come, let us go up to the mountain of the Lord,
    to the temple of the God of Jacob.
He will teach us his ways,
    so that we may walk in his paths.”
The law will go out from Zion,
    the word of the Lord from Jerusalem.
4 He will judge between the nations
    and will settle disputes for many peoples.
They wi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will not take up sword against nation,
    nor will they train for war anymore.

5 Come, descendants of Jacob,
    let us walk in the light of the Lord.

 

ISAIAH 2:6–22

The Day of the Lord

6 You, Lord, have abandoned your people,
    the descendants of Jacob.
They are full of superstitions from the East;
    they practice divination like the Philistines
    and embrace pagan customs.
7 Their land is full of silver and gold;
    there is no end to their treasures.
Their land is full of horses;
    there is no end to their chariots.
8 Their land is full of idols;
    they bow down to the work of their hands,
    to what their fingers have made.
9 So people will be brought low
    and everyone humbled—
    do not forgive them.[a]

10 Go into the rocks, hide in the ground
    from the fearful presence of the Lord
    and the splendor of his majesty!
11 The eyes of the arrogant will be humbled
    and human pride brought low;
the Lord alone will be exalted in that day.

12 The Lord Almighty has a day in store
    for all the proud and lofty,
for all that is exalted
    (and they will be humbled),
13 for all the cedars of Lebanon, tall and lofty,
    and all the oaks of Bashan,
14 for all the towering mountains
    and all the high hills,
15 for every lofty tower
    and every fortified wall,
16 for every trading ship[b]
    and every stately vessel.
17 The arrogance of man will be brought low
    and human pride humbled;
the Lord alone will be exalted in that day,
18     and the idols will totally disappear.

19 People will flee to caves in the rocks
    and to holes in the ground
from the fearful presence of the Lord
    and the splendor of his majesty,
    when he rises to shake the earth.
20 In that day people will throw away
    to the moles and bats
their idols of silver and idols of gold,
    which they made to worship.
21 They will flee to caverns in the rocks
    and to the overhanging crags
from the fearful presence of the Lord
    and the splendor of his majesty,
    when he rises to shake the earth.

22 Stop trusting in mere humans,
    who have but a breath in their nostrils.
    Why hold them in esteem?

 

 

 

:
Posted by pleasing2jc

내일 encounter with God 본문인 Genesis 25:1-11, 19-34 을 읽다보니,
에서도 야곱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Lentil soup 한그릇에 birthright 을 파는 어리석은 에서나, 그런 에서를 등쳐먹는 얍삽한 야곱이나 참으로 혐오스런 인간들이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 동생과 경쟁심같은 거 별로 느끼지 않고 비교적 사이좋게 지내서 그런지 모르겠다.
대학시절에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미국에 와서 언어 어려움과 지독한 외로움 속에 학창생활을 하며 서로를 응원했었다. 몇 십 년전 조기유학을 오니, 망망대해에 우리만 남겨진 느낌도 들 때가 많아서, 둘이서 경쟁하고 뭐 그럴 여유도 없이 서로 의지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나이들어서 '부모'의 나이에서 그 구절을 읽으니, 에서와 야곱이 더더욱 한심하기 그지없다.
내가 그 둘의 부모였다면 둘 다 호되게 혼내서 정신차리게 했을 거 같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그런 경쟁을 더 부추기는 리브가는 또 뭐람.
사실 그런 부모들이 세상에 꽤 있는듯도 하다. 서로 경쟁심 강한 형제자매들을 비교하고 manipulate 해서 더 경쟁을 붙이거나 이 사람 저 사람 오가며 편애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들. 이삭과 리브가도 전혀 거룩하지 않고 그저그런 사람이었을뿐이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는 그들의 행태를 보실 때 얼마나 더 한심하셨을까?
약속의 자손이라고 선택했더니 아브라함의 거짓말부터 시작해, 가족들 등쳐먹는 잔머리와 계락, lentil soup 한그릇에 birthright 을 팔아먹는 어리석음이라니.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시고 그들을 연단하셔서 결국 그의 약속을 지켜내신다.

세속적 관점으로 볼 때 좀 특이사항은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삭의 재산을 받은 건 전혀 아니고 (아마도 이삭의 재산은 에서가 받았겠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는 거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약속의 결정체는 결국 예수님이신데... 그 예수님을 통해서 야곱의 혈통이건, 이방민족인건간에 구원을 받고 약속의 자손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아브라함, 야곱 등등과는 피 한 방울 안 섞였을 한국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big picture 란 참 오묘하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라면 야곱과 에서처럼 저렇게 살지 않도록 처절히 struggle 해야겠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온갖 모습들을 많이 본다. 분노와 짜증이 밀려올 때는, 뚜껑 컨트롤을 위한 기도가 무척 필요하다.
하나님의 big picture 안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며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또한 영원한 것들을 구하는 지혜와, 남을 이용하려는 이들을 알아보고 멀리하고, 나 또한 그리하지 않을 분별력도 구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1. 9. 28. 13:09

2011 년의 Psalm 23 카테고리 없음2021. 9. 28. 13:09

옛날 일기를 뒤적거리다가 보니 2011 년 10 월, 시편 23 편을 묵상하며 쓴 글을 발견했다. 이런 일기를 썼나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최근 어떤 언짢은 일로 인해서 맘이 좀 disturbed 되었었는데, 오늘 마주친 옛날 일기를 통해서 지금의 그 일은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다시 맘을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일기 중에 10 년 동안을 기대해 보자 했는데... 어느 새 약 10 년이 지났다.
지난 10 년, '사망의 골짜기'인 날들이 많았지만서도, 함께 해 주신 예수님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 십년 이전의 십년도 그렇고.. 1990년 대 중반 이후부터는 계속 괴로운 골짜기 혹은 광야같긴 했다 -인생이 그런 거겠지 m scott peck 의 책 서두처럼 Life is difficult)


이제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어느정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오늘 한 환자에게서 "you saved my life!" 라는 말을 들었다.
나도 환자에게 고맙다고 했다. (물론 항상 환자치료에서 승승장구만 하는 건 아니다)

사망의 골짜기에 참사랑과 참생명을 흩뿌리는 사람이라...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닌듯도 같지만
그래도 한 발자욱 한 발자욱 성실히 이끌어주시리라 믿는다.
그래,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나와 우리와 함께 계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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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년 10 월 9 일
시편 23 이 드디어 내것으로 다가왔다.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내가 왜 이럴까 할 정도로 우울하고 힘든 이 때다. (중략)
답답하고 힘들고 벽에 부딪힌 느낌,
미래를 향한 불안함, 그러나 그렇게 현상유지하고 돈벌고 생활하고 그것이 이 삶의 목표인가 하는 회의. (중략)
죽고싶다라는 생각도 자주한다.
아침마다 깨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조차 한다.
이런 걸 쓰는거조차 섬찟하지만 그렇다 (중략)
그러나, 내가 사망의 골짜기를 평생 헤매이더라도,
그 골짜기 속에서 예수님의 닮은 사람으로 변화되고 참사랑과 참생명을 사망의 골짜기에 흩뿌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 사망의 골짜기에 머무르겠다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여주신다면 그 사망의 골짜기 괜챦다고...

또 의미있는 일들을 찾고 있지만
그러나 난 아직 그런 준비가 안되어있나보다.
아직도 훈련받아야 한다고... 앞으로 더 깨어지고 새로 태어나고 그래야 하나보다.
앞으로 10 년? 그 과정 속에서 매일매일 어떻게 하나님께 기대고, 또 성실함을 배우고 책임지는 법을 배우고,
현실감각있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커갈지...기대해보자.
(후략)

Psalm 23
A psalm of David.
1 The Lord is my shepherd,(A) I lack nothing.
2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3 he refreshes my soul.
He guides me along the right paths
for his name’s sake.
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5 You prepare a table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6 Surely your goodness and love wi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
Posted by pleasing2jc
2021. 9. 26. 13:45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 카테고리 없음2021. 9. 26. 13:45

 

왼쪽과 오른쪽은 원래 같은 색, 같은 브랜드의 옷이다. 

지난 주 빨래를 개키다가 위 두 티셔츠의 대비가 너무 우스워서 사진을 찍었다. 

 

올해 초 아이아빠 운동복이 오른쪽처럼 낡은 걸 발견하고 (입고 운동하러 가는데 너무 후줄근한거다), 똑같은 걸 찾아서 주문해줬다.

옷을 새로 사줘도 전혀 appreciate 도 안 하고, 옷을 왜 새로 사냐고 내게 화를 낸 적도 있지만서도 그냥 강행했다.  

낡은 옷을 내 맘대로 버리면 잔소리가 심하기에 낡은 옷도 안 버리고 그냥 두었는데, 새 옷을 안 입고 줄기차게 헌 옷만 입는거다. 

그래서 참다참다, 지난 주 빨래한 헌 옷들을 옷장 구석에 숨겨두고 새 옷을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그랬더니, 새 옷을 입고 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이아빠도 나이 탓으로 체형도 바뀌고 옷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해야 할듯해서 옷을 새로 사줘도 안입고 쳐박아만 둔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서 사주는라 나름 엄청 고심해서 사는데,  아이아빠도 자기 맘에 안 드는것도 아닌듯 하다.

싸구려 옷도 아니고 맘에 안들면  리턴해야 하는데 리턴은 안 하고 옷장 속에 쳐박아 둔다. 나도 의욕상실이다.

맨날 입는 옷은 회사에서 준 티셔츠와 낡은 청바지, 낡아서 쭈굴탱이가 된 스니커즈 등등...  

(참  쭈굴탱이 스니커즈가 너무 측은해보여서 실리콘밸리 CEO 들이 신는다는 신발을 검색해 보고 비슷한 스타일로 사줬더니 그건 리턴했다. )

하기야 Bay Area 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다 비슷비슷한 차림이긴 하다. 조금이라도 더 polished 된 차림은 sales person 혹은 쇼핑몰 retail 에 종사하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외국인 관광객처럼 보인다. 

 

그래도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전에 종종 말씀하시길 "멋도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내는게 좋다," 하셨는데...

꾸안꾸를 연구해 봐야겠다.

아니면 콘트라 문둠 실천 차원에서 확 패션니스타로 살아가볼까?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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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1. 9. 23. 14:24

교회 lab 카테고리 없음2021. 9. 23. 14:24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small group 이름을 lab 이라 바꾸고 다양한 주제의 모임을 시작했다.  이름이 lab 이라니 실험적 요소가 다분한가보다. 

성경적 관점에서 gender roles 을 들여다 보는 lab 에 가기로 했다. 이 주제에 관해서 석사논문을 쓴 이가 인도한다.

academic 할 거라니 괜히 더 좋다.  주제에 관한 논의 뿐만이 아니라 성경을 바르게 읽는 exegesis/ hermeneutics 에 대해서도 논할 거라니 기대가 된다.  

왜 이 lab 을 선택했냐고 모두에게 물었다.  답할 때,  '어쩔 수 없이' 오래전  한국 신앙공동체들에서의 여성 vs 남성의 roles 에 대해서 나눠야 했고, 한국의 전통이 어떠한가 나눴다.  한인교회를 더 이상은 안나가고, 한국전통의 일정면과 다양한 마찰을 겪어왔다고 나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gender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미 여기저기서 습득한 것들도 반복되겠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 논문을 쓴 사람이 인도하고, 또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이들이 이 주제에 관해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떠할까 궁금해서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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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