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

« 2024/4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303

  1. 2022.08.04 "저기야" 의 교훈 4
  2. 2022.08.01 (책) Why Fish Don't Exist: 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 2
  3. 2022.07.29 Long covid 후기 2
  4. 2022.07.23 아이 쫓아가기 2
  5. 2022.07.23 Tadich Grill 3
  6. 2022.07.18 루이지애나 구경 2
  7. 2022.07.01 visionary 라.... 2
  8. 2022.06.21 피아노 2
  9. 2022.06.10 covid 2
  10. 2022.06.02 counter cultural 4
2022. 8. 4. 13:57

"저기야" 의 교훈 카테고리 없음2022. 8. 4. 13:57

자원 봉사하고 있는 곳, 담당 치과의사분이 뭔가 필요한 것이 없냐고 얼마 전 연락하셨다. 그래서 필요한 것 하나를 답했더니, 그 밑 책임자에게 말씀하시길, "(하나가 아니라) 네 개를 오더하라, Dr. 어쩌구가 원하니까, "고 그러셨단다. 그렇게까지 많이는 필요없는데 말이다.
그처럼 자원봉사하는 곳에서 내가 오히려 대접을 받아서 송구스러울 때가 있다. 전에 예상치도 않은 무슨 상을 준 적도 있다. 그 때, 어머니께 그 말씀을 드렸더니 "네가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 가 있어서 그런 거지 아무나한테 안 그런다," 그러신다. 어머니께서 언젠가 어느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하셨던 경험을 나눠주셨다. 교회/단체에서 함께 자원봉사한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가서 잠시 일을 도우셨다. 어머니께서 영어도 잘 하셔서 다른 곳에서 영어 자원봉사도 하신 적도 있고, (내가 중학생일 때) 신학대학원 석사도 하셨지만, 전문 사역자나 의료봉사자가 아니기에 호스피스에서 부엌일/청소일을 도우셨다고 한다. 그런데 호스피스 직원들이 의료봉사자들이 오면 반갑게 뛰어나가서 환영을 하는데 일반(?) 봉사자들이 오면 그런 환영은 별로 없었다고 하셨다.
그 때 깨달았다. 아, 내가 그런 송구스런 대접을 받은데는 그런 이유도 있겠구나...
일상을 살아가면서는 사회적 지위를 의식하기보다는, 노동자 분들과 더 공감하는 하루하루이지만 말이다. 아이 아빠에게 배운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적 지위는 무슨 "개뿔."
그래도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이나 환자분에게서 전문성을 포함한 다른부분들을 인정 받는 건 느끼기는 한다.
그러할 때 내가 경험하는 세상과 나의 시각만에 한정되지 않고 다른 분들의 입장을 많이 생각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 다른 형태의 삶의 모습을 살아가는 분들을 향한 respect 를 잊지 않으려 많이 노력하려 한다.
부모님께서도, 부하직원들, 파출부 아주머니들,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에게 함부러 대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는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들에게도 존댓말을 쓰기도 해서 어머니께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동생도 함께 일하는 수술 어시스턴트들을 함부러 못 대하는 성격이라고 몇 년 전 나누기도 했다.
그 영향도 있겠지만, 오래. 전 다른 자원봉사를 했던 시절, 약간 불쾌했던 경험이 있어서 더 신경쓰는 편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원시절, 어딘가 자원봉사를 하러 갔었는데 어쩌다 보니 잔심부름 하는 일을 맡게 되었었다. 자원봉사하는거니까 개의치 않고 했다. 마침 학업과정 속에 큰 단계 하나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있는 기간이었기에, 머리 안 쓰고 감정적으로 얽히지 않는 단순노동을 하는게 내게 더 낫기도 했다. 일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수다에도 참여하고 싶지 않았고, 여러모로 피로했기에 '잔심부름 노동'에 기계적으로 집중했다. 일하면서, "한국 회사들 어린 여직원들이 이렇게 일하겠구나," 혹은 "한국 학교 내 선후배 위계질서가 이런걸까," 속으로 생각했다. 훨씬 뒤에 나온 드라마지만 <나의 드라마> 속 여주인공 이지안이 회사에서 하는 그런 종류의 일들이었다.
거기까지는 다 좋았는데, 내게 심부름을 시키시던, 나보다 나이 많은 한 분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저기야,"라고 부르셨다. 한국 사회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그 당시 내게 "저기야,"는 상당히 무례한 호칭으로 여겨졌었다. 나름 고급인력으로서 허드렛 일을 하고 있는데,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고 "저기야" 라고 불리면서 잔심부름을 하는 상태라니. 예를 들면 "저기야, 뭐 좀 가져올래," 하며 내 저 쪽에 있는걸 가져오라는 심부름이다. 그런 식의 대우는 거의 처음 받아봐서 더 열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부르고 존댓말로 얘기했다면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꾹 참고 그 기간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당시 다니던 교회 구역예배에서 그러한 울분을 나눴던 기억이 난다. 모두가 공감하고 위로해줘서 고마웠었다.
그런 일을 겪은 훨씬 후, <나의 아저씨> 를 볼 때, 남주인공 박동훈이 여주인공 이지안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챙기고, 또 이지안의 이름의 뜻을 물어보는 장면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저기야,"라고 불린 사건으로 인해, 이지안같은 위치에 있는 이들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거다. 한국 고딩 학창시절, "반장"이라고 내내 불렸었고 , 미국 대학원시절 지도교수님하고도 서로서로 first name 을 부르는 입장이었고, 지금은 "Doctor 누구누구, 혹은 doc" 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으니, '이지안'같은 경험은 전혀 못해볼 수도 있었는데, 오래전 자원봉사의 현장에서 겪은 일이 감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 때문에라도 assistants 분들을 포함 남들에게 이것저것 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할 때 최대한 공손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가 도울 부분이 있으면 도우려고 한다. 그러할 때 그분들은 하지말라고 그냥 자신들이 하겠다고 그러기는 한다. 미국은 위계질서 의식보다는 평등개념이 훨씬 더 철저하기에, 누군가가 일을 시킬 때, 누군가의 명령에 따른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냥 그것이 자신의 job 이라고 생각하고 일한다. 일터의 setting 밖에서는 동등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거들먹거리면서 무례하게 자신에게 일을 시킨다면 불쾌해 할 것이다. 웨이터같은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걸 말해준다는 the waiter rule 도 공공연히 이야기되어지고있고.
요즘 한 일터에서 한 분이 내게 고민을 털어 놓으실 때가 있다. 여러모로 속상했던 일들을 나누시는데, 그 분의 얘기에 조금이라도 공감하면서 들어드릴 수 있는 것도 위와 같은 경험 덕분이다.
어쨌거나,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만나는 아주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어떤 사람의 배경, 위치, 지위, 나이 등등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존중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어느 곳에서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약한 이들을 알아보고 높이 올릴 수 있음 좋겠다.

:
Posted by pleasing2jc

한국 한 서점사이트에서 베스트셀러 1 위에 오른 걸 보고, 미국 public library 에서 빌려서 읽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무신론자 과학자였다. 저자가 어렸을때, 삶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을 아버지에게 했는데, 아버지는 "Nothing!" 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열역학 제 2 법칙에 따른 Chaos 가 "our only ruler" 라면서, "..you are no different than an ant. A bit bigger, maybe, but no more significant" 라는, 자신의 믿음에 근거한 극단적인 답을 딸에게 해주는 아버지였다고 한다.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과학 전문기자가 된 저자는 삶의 방황의 순간에 삶의 의미를 구하기 위해서 David Starr Jordan 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진화론이 막 나왔을 때 진화론을 받아들인 Jordan 은 물고기종의 체계를 잡는 taxonomy 일을 했고 Stanford 대학의 초대총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샌프란시스코 지진이 나서 그의 샘플들이 다 ruin 되었을 때도 그 위기를 극복해 낸 인물.
그러나 저자는 jordan 을 파고 드는 과정 속에서 위대한 학자처럼 보였던 David Starr Jordan 의 진짜 정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살인자였을 가능성이 있었고, 또 생체계에서 질서를 잡고 진화시키려는 노력이 지나쳐서 우생학 (eugenics) 을 신봉했다. 우생학을 신봉하는 이들에 의해서 더 열등한 사람들로 간주되는 이들을 sterilization 수술하는 일들이 미국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David starr Jordan 연구의 반전은, 그가
그토록 열심히 연구해서 체계를 세우려건 fish category 는 독립된 category 가 될 수 없다고 1980년대 cladists 에 의해서 주장되었다고. (더 자세한 설명 ).
인간이 붙인 이름이 없고 인간의 학문에서 중요하다 여기지지 않더라도 생물체는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fish 라고 분류된 생명체들을 진화론적으로 서로 비교할 때 그들 사이공통점보다는 다른 category 들과의 공통점이 더 크다는 거다. 즉 Fish 라는 진화론적 category 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Why Fish Don’t Exist

Part autobiography, part biography of fish taxonomist David Starr Jordan, and part spiritual guide for scientists, Why Fish Don’t Exist: 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 is an ca…

ecocodebreakers.wordpress.com


결국 저자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연구했던 David Starr Jordan 을 통해서, Jordan 의 삶과 신념과는 전혀 반대되는 의미를 발견하는데...

인간들 중에서도 abnormal 로 여겨지는 이들이 normal 일수도 있고.. 기타 등등
기존의 체계를 버릴 때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 - 대충 그런 결론인듯.


감상:
마지막 부분 그녀의 새로운 발견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긴 했다. 내가 대충 읽어서 그렇기도 하리라. 사실 삶의 의미를 하나님에게서 찾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입장에서  공감이 좀 안되어서 몰입해서 읽지는 못했다. (물론 저자는 기독교를 포함한 어떤 종교도 언급하지 않는다. )
요즘 시대 사람들의 사고가 어떠한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는 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단순히 표현할수도 있지만 그렇게 싸잡아서 categorize 하는것은, 물고기들을 categorize 하고 우생학에 따라 열등한 사람들을 categorize 하던 David Starr Jordan 같은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체계나 사고방식이 절대적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체계에 따라 그들을 정의해서는 안되고 각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저자의 입장에는 동의한다.
저자와 같은 사고수준을 가지고, 그러한 삶을 살고 방황을 겪는 이들에게 기독교 믿음을 일차원적으로 present 했다가는 당연히 무시당하고 말것인다. 또 때로는 폭력이 될 것이다.
삶의 다양한 세심한 또 sophisticated dimension 들을 어떻게 신앙으로 address 할 것인가는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 Stanford 대학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 그 학교 역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David Starr Jordan 이 그 학교 초대 총장임을 배웠고, 2020 년 그의 이름을 딴 학교건물등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도 알았다. 책 초반에 집중이 안되어 포기하려다가, David Starr Jordan 이 스탠포드 총장이 된다는 대목부터 괜히 반가워서 끝까지 읽기를 결심했다.
또 학교 설립자 Jane Stanford 의 죽음에 얽힌 스캔들이나, 그녀는 스탠포드 대학이, 영매를 통해 죽은 이들을 contact 하는 "science" 를 공부하는 학교가 되길 바랬었다는 사실은 엽기적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그런 희망을 가졌던 건 죽은 아들을 그리워해서라니 참 안되기도 헀다. 이런 명문대를 설립했는데, 그녀자신의 삶과 결말은 불행했던 거 같아서 안타깝다.

Stanford will rename campus spaces named for David Starr Jordan and relocate statue depicting Louis Agassiz | Stanford News

President Marc Tessier-Lavigne and the Board of Trustees approved a campus committee’s recommendation both to remove Jordan’s name from campus spaces and to take steps to make his multifaceted history better known. Stanford also will relocate a statue

news.stanford.edu

:
Posted by pleasing2jc
2022. 7. 29. 13:43

Long covid 후기 카테고리 없음2022. 7. 29. 13:43

지난 5 월 중순 코비드를 앓은 후, 약 한 달 반 동안 long covid 기침이 있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텁텁/칼칼하면서 기침이 나기 시작해서 오후/밤이 되면 더 심해졌었다. (post nasal drip 으로 인한 기침)
말을 하면 기침이 많이 나와서 환자들한테 양해를 구했었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기침이 전혀 아니라고.
드디어 어제 아침, 목이 칼칼한 느낌이 사라졌다. 아직 약간의 기침은 나지만 95 프로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Covid 후 첫 2-3 주는 기침과 함께 복부팽만감 (gassy함)도 심해서 정말 많이 불편했다. 환자치료를 하면서도 화장실을 오가야했다.
일을 하는 도중에 나오는 기침을 억지로 참아야 하지, 틈틈히 기침사탕& propolis&용각산을 돌아가며 먹어야 하지, 화장실을 왔다갔다해야하지... 너무너무 고달펐다....
게다가 depression 인가 싶을 정도로 무기력증이 생겼었는데, 마침 억울한 일을 당해서 정신적으로 더 많이 힘들었다.
그러니 만사가 다 귀챦아지고 하루하루가 버겨운 양상...

그런 가운데, 어떤 설교를 들었는데, 설교자가 시편 23 편을 인용했다. 그 설교 속 다윗의 상황이 내게도 적용되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그걸 통해서... 이전에 쓴 글 entry 가 기억났다
the darkest valley(NIV) or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함께 하시는 주님.
그 주님을 의지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래도 겉으로는 비교적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듯 싶다.
실제 삶 속에서도 축쳐진 spirit 을 encourage 해주는 사건들이 몇 있었고.
아직도 백프로 회복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 사는게 뭐 그렇지...

하여튼 내가 어느정도 기력을 회복하고 나니, 아이아빠가 k 조직 모임 후 코비드에 걸려서 며칠 앓았다.
원래 매년 k 조직 모임 후에는 며칠 동안 아프곤 했다. 모임 중에는 무슨 초인이 된 듯 잠도 안 자고 일하다가 집에 오면 골골 아프곤 했다. 아이가 어리고 대학원 생활이 바쁠 때는 남편이 그러는게 솔직히 얄밉기도 했다. 모임에서는 체력 좋다고 큰소리 치고 집에서는 편찮으시니.... 아이가 어리고 학업이 바쁜 대학원생들인데 아이 ride 주고 챙겨주고 집안일하고 학교가서 일하고 하는 걸 혼자 다 해야 하는게 버겨웠다.
이번에는 코비드까지 걸려왔지만, 이제는 측은한 느낌이 더 드는 걸 보면 세월이 흘렀나보다. (나이가 들었나보다?).
6-7 일만에 음성이 나오긴 했는데, 기력이 없다고 해서, 오늘 삼계탕을 끓여줬다.
(그렇다고 내가 식사를 잘 챙겨주거나 요리를 곧잘 하는 와이프는 절대 아니다. 일하느라 늦게 오는 날도 많고 토요일에도 일하기도 하고.)
삼계탕은 닭이 불쌍하고 징그럽고, 조리 후 식기소독을 잘 해야해서 그렇지, 조리 자체는 쉬운 편이라서 자주 해주겠다고 헀다. 통닭이 가엽고 징그러워서 나는 못 먹는 음식이긴 하지만, 아이아빠가 빨리 회복이 될 수 있다면 해줄수 있지.

covid 증상이 이전 strain 에 비해서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long covid 가 너무 심했기에 또 걸리고 싶지 않다. 또 다들 안 아팠음 좋겠다.

시편 23 편을 다시 옮긴다. 또 읽고 또 읽으려고.
시편 23편[개역한글]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2. 7. 23. 14:38

아이 쫓아가기 카테고리 없음2022. 7. 23. 14:38

아이는 English Literature 와 Theatre Arts 를 복수전공했다.
우리 부부 모두 이공계라서,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당연히 이공계를 공부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공연을 한 학기도 빠지지 않고 계속 참여하고, 뮤지컬 해밀턴을 다 외기도 하고, 글쓰는걸 좋아하더니 대학가서도 그 열정은 이어졌다.
쉐익스피어, virginia woolf, Samuel Beckett 등등을 공부하거나, 시나 스토리를 쓰는 클라스를 공부하고, 연극공연에도 계속 참여했다.covid 가 어느정도 심했던 4 학년 때는 professional actors 들과 함께 voice acting 으로 하는 쉐익스피어 맥베쓰를 공연했다 (라디오 극장같은.)
쉐익스피어의 sonnet 이 좋단다. 그리고 John Milton 의 Paradise lost 도 좋단다.
아이가 공연하는 연극은, 고등학교 때부터 다 가서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 내 일이 끝나고 아이연극을 보러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들어온 응급 환자를 부랴부랴 겨우 치료하고 연극시간에 가까스로 맞춰서 간적도 있다. 대학교 때 멀어서 가보지 못한 공연들은 recording 을 챙겨보거나 챙겨들었다.
아이아빠는 일찌감찌 (연극내용 이해를?) 포기했는지 일일이 다 챙겨보거나 듣지는 않더라.
내게도, 쉐익스피어를 포함한 많은 연극 이해는 도전적이다. 아무리 대학교 때 writing 을 부전공했고, 각종 writer 들의 책들을 영어로 가끔씩 읽고, George Eliot 이 여자라는 정도는 알고 있더라도, 고등학교 끝날 때쯤 미국 와서 engineering 을 전공한 이에게 쉐익스피어는 버겹다.
아이의 졸업식 때 그 벽을 더 높이 느꼈다.


대학 졸업식을 위해서 아이와 친구들이 각자의 졸업식 사각모에 그림을 그렸었다. 아이는 왼쪽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졸업모를 쓰고 가운을 입고 곰에게 쫓기는 한 사람의 모습....
이 그림을 보니, 가슴이 쓰라려졌다.
"아, 아이에게 학교생활이 이렇게 힘들었었구나..."
곰에게 쫓기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게 학교생활을 했나보다 짐작했다. 온갖 deadlines 에 쫓기며 잠도 못자고 페이퍼를 쓰던 아이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려졌다.
다른 아이들의 그림은 더 밝은 색으로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흐흐흑.

졸업식이 다 끝나고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런 그림을 그렸어?"

아이의 대답: 응, 그건 쉐익스피어의 "Exit, pursued by a bear" 야.
헉, 자신의 심리묘사가 아니라, 쉐익스피어에 나오는 거라고?




"Exit, pursued by a bear," 는 쉐익스피어의 연극 중 가장 유명하기도 하고 악명높은 stage direction 이라고. <The Winter's Tale> 이라는 연극에 곰이 등장해야 하는데, 실제 곰을 쓸 수는 없으니 곰을 어떻게 실감나게 stage 해야 하는가가 큰 과제였다고. 자세한 정보는 다음 사이트에:
https://obviousstate.com/blogs/journal/exit-pursued-by-a-bear

 

Exit, Pursued by a Bear

"Exit, pursued by a bear" is a stage direction from Shakespeare’s The Winter’s Tale that is infamous for its hilarity and difficulty to stage. It's one of the best literary inside jokes (welcome to the club!) and it's a fun line we wanted to illustrat

obviousstate.com



아이가 공부한 것 중에 stage craft 를 하는 것도 있었는데, 그 떄 배웠나보다.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았다면, 나는 내 스스로의 아마츄어 그림 심리 분석결과를 굳게 믿고 계속 가슴 아파할 뻔 했었다.

STEM 이 대세인 시대에서 전혀 다른 길을 추구하려 하는 아이.
대학 시절 중반 쯤에 법대를 갈까 치대를 갈까 조금 고민하다가, 학교에서 교수님들과 이야기해보더니 Theatre Arts 로 진로를 추구해보고 싶어졌다고.
아이의 얘기를 들은 내 (치과의사) coworker 가 그런다, "정말 adventurous 한 삶을 살려고 하는군요. 우리 세대와는 달라요, (영어로 말했음)"
정말 그렇다.
자신이 택한 길을 creative 하게 잘 개척해 나갈 수 있길 기도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의 뜻으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한다)

한편, 아이의 그 세계를 어떻게 쫓아갈지가 내게는 큰 과제다.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거 같다. 문학, 연극영화 공부도, 쉐익스피어 공부도...

:
Posted by pleasing2jc
2022. 7. 23. 02:10

Tadich Grill 카테고리 없음2022. 7. 23. 02:10

아이가 여기 와 있을 동안, 아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Tadich Grill 에 갔다. 휴가를 내고 평일점심에 가서 테이블 잡는게 쉬웠다. 여름 휴가 여행을 따로 안 가고 staycation을 하는 activity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유명 유튜브에서 보고 갔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오래된 레스토랑이라기에, 보스턴의 오래된 레스토랑 Union Oyester house 비슷한가 궁금했다. (Union Oyseter House 는 간게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이 안 나긴 한다. )
샌프란시스코까지 운전해서 갔는데, 발레 파킹을 했어야 헀다. 샌프란시스코 길도 복잡하고 파킹이 번거로웠다. Caltrain/Bart 를 타고 가는게 나을 듯.

건물의 외양 -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Finacial District 에 있고 Embarcadero 와 Ferry Building에서 걸어서 약 5 분 거리에 있다.

인터넷에서 퍼옴


식당 내부 사진 -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인터넷에서 퍼옴

사진처럼 하얀 옷을 입고 넥타이를 한 백인계 남자분들이 서브를 해 주신다. 우리 테이블은 연세가 좀 있어보이는 어르신이 서브해 주셨다. Bay Area 대부분의 식당뿐민 아니라 어디를 가더라도 유색인종 직원들이 대다수인데 이 식당은 그렇지 않아서 동부가 떠올랐다. 아이가 추측하기로는 레스토라에서 일하는 이들이 모두 한 가족이 아닐까 한단다. 우리 서버 할아버지께서 무척 친절하셨다. 손님들을 보니 남방에 카키 바지 입은 이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Financial District 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아닐까 싶었다.
사진처럼 그릇도 인테리어도 골동품같은 분위기.
나는 Cioppino 를 시켰고 아이는 Veal parmesan 을 시켰다.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Cioppino: 인터넷에서 퍼옴

Veal Parmesan: 인터넷에서 퍼옴

Veal parmesan 은 사진보다 크기가 좀 더 컸다. 파스타는 좀 더 적게 나왔다. 맛은 특별한 건 없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Cioppino 는 seafood 가 정말 신선했다. Scallops, 새우, sea bass 등등이 들어있었는데, 아주 달고 맛있었음. 몇 년 전 Fish Market 에서 먹었던 cioppino 보다 portion size 는 많이 작았지만 맛은 훨씬 나았다. Cioppino 의 기원은 샌프란시스코 의 이탈리안 어부들이다. 추천을 많이. 받는 Sotto Mare 에도 언젠가 가보고 싶다.
보스턴이 고향인 아이는 cioppino 보다는 clam chowder (고향의 맛?) 가 더 좋은 가 보더라. 그 전 날, San Jose 의 San Pedro Square Market 에서 clam chowder 를 먹었기에 따로 시키지는 않았다. 위에 시킨 음식과 그 전에 나온 sour dough 만으로도 양이 많았고.
Tadich Grill 은 너무 멀어서 일부러 또 찾아갈 거 같지는 않지만,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experience 로서 훌륭했다.
---------------
식사를 마치고 Embarcadero 와 Ferry building 산책을 했다. 각종 가게들이 이쁘고 좋았는데, Ferry Building 안 서점 바닥에, 악취를 풍기는 마약중독자가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누워있었다. Security guard 두 분이 그 사람을 꺠우려고 하는 중이었고. 그 화창한 햇살 아래, 그 사람은 왜 그런 상태로 있는건지..... 오랜만의 나들이, 깨어진 세상을 절감하고 돌아왔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2. 7. 18. 11:11

루이지애나 구경 카테고리 없음2022. 7. 18. 11:11

지난 5 월 어머니와 동생네와 함께 루이지애나 구경을 했다.
동생은 지금 다른 지역에 근무/거주 중이지만, 동생집이 루이지애나에 있어서 거기 머물렀다. 대공사중인 본채에는 못 머무르고 완성된 뒷채(옛명칭: slave quarters) 에만 머물 수 있었다. 뒷채는 이층구조에 각 층에 화장실, 작은 부엌, 방들이 있어서 뒷채만 해도 충분히 편했다. 옛날에 slave 가 꽤 있던 집이었나보다. 우리가 지내기에는 보통집 같았는데, 옛날 노예분들이 거기서 생활하던 건 어떠했을까 상상해봤다. 본채가 완공되면 본채에 와서 지내보라고 하는데, 거기는 천정이 보통 높은 게 아니라서 잠이 올지 모르겠다. 드레스를 입고 가야 할 거 같은 분위기다.

하여튼 덕분에 뉴올리언스 및 French quarter immersion 을 며칠 동안 잘 했다.


루이지애나를 다시 찾은 건 거의 20 년 만이다. 공학 대학원생일 때 학회가 있어서 며칠 갔었는데, 지도교수님(당연히 여성)과 함께 숙박한 호텔은 French quarter 와 많이 떨어진 후미진 곳이었는데 정확히 어딘지 기억 안 난다. 그 당시 지도교수님은 교수된 지 얼마 안된 '가난한' 교수였기에 저렴한 호텔을 잡았었다. 그래도 로프트 이층구조라서 각 층에 침대가 따로 있긴 했다. 지도교수님과 교수님의 지인들과 함께 French quarter 의 좀 fancy 한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긴 했었다. Crawfish 가 들어간 creole 요리를 처음 먹어봤었다. 밤에 구경한 French quarter 의 분위기가 흥미로워서 언제 한 번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드디어 구경할 수 있게 된거다.
동생 말로는 French quarter 는 목금토일 밤에 엄청 붐비고 왁자지껄 시끄럽다고. 쓰레기, 오물등이 거리를 오염시키기에 아침마다 청소를 한단다. 아이들과 구경하기에는 건전하지 못한 풍경들도 있었다. 십대도 안 가는게 좋을 듯 하다. 어른들은 꼭 한 번 쯤 가볼만한 곳이다.

뉴올리언스 에서 구경한 것들, 먹은 것들 리스트를 대략 추린다.

(1) Guided Tour Gallier Hisotric Tour. 뉴올리언스 건축가 James Gallier Jr 의 집 구경. 뉴올리언스 역사와 건축양식 등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French quarter 의 건축양식은 spanish 스타일이다. 그런데 난간의 초록색은 Paris Green 이라고. 그 당시 최신 컬러였다고 했다. 뉴올리언스의 무더운 날씨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있는게 흥미로웠다. 발코니 바닥에 경사가 져 있는데 집이 낡아서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비가 많이 올 때 빗물이 아래로 흐르게 하도록 그렇게 지었다고.

https://hgghh.org/ 에서 퍼 온 전경 사진
직접 찍은 정문 사진 - Paris Green 색상
직접 찍은 집 내부 - 가족들이 여가를 즐기던 공간


(2) New Orleans Auction Galleries - 부자들 저택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다 모아서 경매에 부치는 estate sale 을 주로 한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도 큰 창고에 각종 가구들과 조각들, 접시들, 보석들 온갖 물건들이 쌓여있었는데, 그게 다 저택 하나에서 나온 물건들이라고 한다. 아주 큰 식탁만 해도 다섯개는 넘는 거 같았다. 미국 부자들은 이렇게 살아왔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갤러리 외부 - 홈페이지에서 퍼옴
갤러리 내부 - 홈페이지에서 퍼옴


그 중 맘에 들었던 장식그릇 하나 - 미국 역사 속 노예들의 애환이 배여있는 듯 했다. 정확한 가격 (starting price) 은 기억 안 나는데 몇 백불 정도였던 거 같다. 사진만 찍어왔다.

Auction gallery 에서 맘에 든 장식그릇 - 몇 백불 정도의 가격으로 경매가 시작되는듯.


(3) M. S Rau Antique: 말이 '골동품' 가게이지 박물관이나 다름없었다. 몇 층 건물에 시계, 보석, 가구들, 장신구들, 그림들을 전시해 놓고 판매 중이었다. 유명인들이 썼다는 지팡이, 안경 컬렉션도 있었다. 아주 자신있게 들어가서 마치 구매력 있는 고객인듯 구경하다가, 유리진열장에 전시된 큰 체스판을 보고 현타가 왔다. $1,985,000!

M S Rau 홈피에서 퍼온 체스판

모네와 같은 유명화가 그림들에는 몇 밀리언의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십 몇 밀리언 혹은 몇십 밀리언이었을수도 - 기억이 가물가물)
아래 사진은 영화 속 비비안 리가 헀다는 귀걸이. 얼마인지는 기억 안난다.
지금 찾아보니까 이건 좀 '쌌네(???)' . $28,500

영화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귀걸이


이런 물건들을 구입할 능력도 없고, 흥미도 없지만, 그저 'experience' 로 여기고 구경 잘 했다.

(4) 기념품 구입: 위와 같은 곳에서 구경 잘 하고 기념품은 거리의 작은 갤러리에서 구입했다. 원래 돌판에 그림 그린 걸 사려고 했는데, 그 가게는 문을 닫아서 그건 다음에 사기로 하고, 밑의 25 불짜리 그림을 샀다.

내가 막 계산하려고 하는데 동생이 돈을 내줬다. 그 순간 내가 뒤쪽 벽의 더 큰 200 불짜리 그림을 가리키면서, 동생한테 한국어로 "저거 사줘," 그러니까 한국어를 전혀 모를 가게 주인이 알아듣고 웃더라. (가게주인 비지니스 카드)


동생이 더 큰 그림은 안 사줬지만, 동생덕분에 뉴올리언스 구경을 잘 해서 용서해줬다. ride 도 다 해주고, 공연도 구경시켜주고, 잠도 재워주고, 여행가이드도 잘 해주고.


(5) Preservation Hall :

홈페이지에서 퍼 온 사진

Live jazz performance 를 들었던 곳. 동생 덕분에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구경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흑인분들과 백인분들이 뒤섞여있는 팀이었는데, 피아노는 동양계 여자분 (일본이름) 이 치셔서 인상적이었다. 모두 남부 액센트를 쓰시긴 헀다. 신나는 재즈를 뉴올리언스에서 직접 듣다니~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을 불러주는데 아는 노래가 나오니 반가웠다. 루이 암스트롱의 버전 비슷하면서 더 빠르고 신났다.

(6) Pat O'Brien's: Dueling piano lounge
칵테일과 술을 마시면서 피아노 듀엣 연주와 노래를 듣는 곳. 종이에 신청곡을 적어서 지폐와 함께 피아노에 올려놓으면 순서대로 불러준다.
나는 술을 못 하는데, 붉은색 칵테일을 시키긴 했다. 몇 모금 마셨는데 달콤했고, 좀 취하더라. 대부분 남기고 나왔다.
피아노를 치는 두 명 중에, 신청곡을 힙합 스타일로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오른쪽 여자분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께서 "What a wonderful world" 를 신청하셨는데, 왼쪽 사람이 불러줬다. 공연자도 신나게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고 관객들도 떼창하고.. memorable moment 였음

직찍: 우리 간 날 공연한 분들



(7) Cafe du Monde: Bignets - 뉴올리언스에서 유명한 도넛. 발음하는게 불어식인데 잊어버렸다. Bignets 에 관한 정보

인터넷에서 퍼옴

뉴올리언스 특산품이라서 먹었다. 맛이 특별하지는 않으나 자꾸 손이 가긴 하더라. Funnel cake 비슷한 맛이었다.


(8) Luke - 레스토랑 "creole-inspired Brasserie" 란다. 유명 chef John Besh 라는 사람의 소유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시작한 레스토랑인지, 그 사람의 요리책들이 진열되어있었다. 지금 chef 는 Erick Loos IV 라는 사람이란다.

이런 분위기 - 인터넷에서 퍼옴.

Crispy Brussels Sprouts, Gulf Shrimp Etouffee, jumbo Louisiana shrimp &grits, 그리고 이름이 기억 안 나는 홍합탕 종류를 시켰다. 네 명이 나눠먹었는데, 홍합 요리가 양이 많았다. 뉴올리언스 creole 스타일 요리를 오랜만에 다시 맛보니 반가웠다. 또 가서 먹고 싶다.

(9) 호텔 district 는 French quarter 가장자리, Mississippi River 에 가까운 지역에 모여있었다. Westin Hotel 의 event room 에서 내려다 보는 French quarter 전경이 좋다고 해서, 가서 구경만 했다. 이벤트룸에 아스트라제네카 회사 모임이 있는듯 했지만 살짝 들어가서 구경해도 괜찮았다

(10) 그 외에 작은 딤섬 식당, 인도식당, 브런치 식당, 베트남 식당도 갔다. 다 좋았다.
French quarter 바깥쪽 Garden District 의 저택들을 구경했다. 그곳 건축양식은 Greek Revival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 Sandra Bullock 의 집도 겉에서 구경했다. 그녀의 여러집들 중 하나이리라.
French quarter 중심가에는 Nicholas Cage 가 소유했었던 집도 있다.
아, 그리고 영화 Green Book 의 한 장면에 나왔다는 햄버거집도 그 앞에서 봤다. 언제 다음에 가면 먹어봐야겠다.
1770 년대에 지어진 건물에 있는 Lafitte's Blacksmith shop 술집도 인상적이었다 - 구경만 헀음. 해적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오는 전차 Desire (불어식으로 발음해야 하는듯) 도 봤다. 영화를 안 봤는데 언제 영화를 봐야겠다.

워낙 이곳저곳이 역사적 장소이고, 영화배경이 되기도 하고, 문화적으로 리치한 곳이라서 다음 표지판과 같은 joke 가 통하는 곳. 샌드라 불럭 이웃 다른 집에 걸려 있던 표지판이다.



시끌벅적스럽고 문화적으로 다채로운 뉴올리언스를 구경하고 south bay 에 오니,
신나는 재즈 BGM 의 스페니쉬 스타일 화려한 저택배경에서 찍은 3D imax motion picture 을 정신없이 보고와서,
배경음악 전혀 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ranch style house 들을 찍어놓은 still photo 를 마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둘 다 장단점이 있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2. 7. 1. 15:33

visionary 라.... 카테고리 없음2022. 7. 1. 15:33


며칠 전 소포를 하나 받았다.
어느 단체의 visionaries community 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편지와 축하 선물이었다.
대단한 일을 해서 가입된 게 전혀 전혀 전혀 아니다.
그리고 그 community 에서 정기적으로 한다는 on and off line meeting 에도 참여할 수 있는 여건도 못된다.
이전에도 그 단체 모임에 여러번 초대되긴 했는데,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 가기도 했고,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어쩄거나...
visionary 의 사전적 정의를 서치해 보니:

  1. (especially of a person) thinking about or planning the future with imagination or wisdom.
  2.  
  3.  relating to or able to see visions in a dream or trance, or as a supernatural apparition.
     
     
     

그리고 그 단체의 정의: who are dedicated to making a significant impact for those caught in the margins of poverty and oppression
무척이나 거창하고 찬란한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엉겹결에 지정된 이 visionary(?) 의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Long covid symptom 으로 기침 콜록콜록 거리며, "언제 은퇴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벌써부터 스스로에게 종종 던지며 일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과 씨름하고 있다 - 그러다가 가끔 뚜껑이 살짝 열리기도 한다. 매일 도닦는 기분이다. 그런데 사랑과 인내의 도의 경지는 너무나도 멀기만 하다. 게다가 얼마 전 Stop sign 을 잘 못 지켜서 10 년만에 받은 교통 티켓 탓에 online traffic school 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진도가 너무 안 나간다.
얼마 전, 나도 명품가방을 드디어 한 번 구입해보겠다고 선언했는데 (명품가방이 좋아서가 아니라 좀 열받는 일이 있어서 - 이런 종류의 sentiment),
백화점/명품점 VIP 멤버와 비교할 수 없이 멋진, 속된 표현으로 "차원이 다르게 훨씬 더 있어보이는" visionary 멤버초대를 받고 나니, 흠... 명품가방 사지 말라는 하나님의 시기적절한 개입하심인가 갖다 붙인다.

어린 시절 했던 기도가 기억나긴 한다. 국민학교 3 학년 떄인가 한참 여름성경학교를 하던 시절, 자기 전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자 결심하고, 각종 개인기도 후에 세계의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교회에서 배운대로 기도했겠지. 몇 개월동안 그리 했던 거 같은데, 물론 그 기도를 지속하지는 못했다.
대학교 시절 배운 CCM "There is none like you" 찬양을 부르며 Your mercy flows like a river so wide, and healing comes from your hand. Suffering children are safe in your  arms 부분을 부를 때 세계의 아이들을 향해서 흐르는 하나님 자비의 흐름이 그림그려지며 절실함을 느꼈다.
그냥 그정도이다.
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봉사하는 게 어린 시절부터 내 로망이긴 했다. 그러나 vision 이 아니라 로망일뿐이다.
나와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촌부부님께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1 년 선교를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와, 부럽다. 나도 가고싶다," 할 뿐이지 정작 실천하지 못한다 (그 분들은 '믿음'의 헌신을 하셨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지금 하나님의 세계에 아주 조금이라도 참여하고 있다면 그저 하나님의 일하심이시고 하나님의 기도응답이시고 은혜다.
초라한 현실과는 달리, 나름 '초대'를 받았으니,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2. 6. 21. 02:28

피아노 카테고리 없음2022. 6. 21. 02:28

얼마 전 동생집을 방문해서 보니 동생은 매일 하루 1-2 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한다고. 어린 시절부터 워낙 쇼팽을 좋아했었고 요즘은 리스트 등을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아, 동생은 음악가가 아니라  OMFS (oral and maxillofacial surgeon)이다.

동생이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즉흥환상곡을 치는 걸 보고 감동을 받고 와서 그 후로 피아노를 열심히 치기 시작하던게 기억난다.  즉흥환상곡은 양손이 따로 논다고 어찌나 감탄을 하던지 - 막상 자신은 그랬던 사실을 잊고 있어서 이번에 내가 알려줬다. 그랬더니 "아 내가 그래서 즉흥환상곡을 그렇게 연습했구나"  새삼스레 놀란다.  미국 고딩 학창시절부터 쇼팽의 녹턴은 외어서 치곤 하더니 요즘은 즉흥환상곡도 악보를 안 보고 친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생이 자기 분야의 권위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취미일 뿐이었던 피아노에  열정을 가지고 긴세월 쉬지 않고 노력해왔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께서도 피아노 연습을 종종 하시곤 하신다.  피아노 이모 가 살아계실 때 레슨을 받기도 하셨고. 

아이아빠는 바이올린을 좀 배웠다던데 물론 지금은 안 하고 일할 때 클래식 음악은 잘 듣는 듯 하다. 

아이는 초등학교까지 피아노를 좀 배웠고, 키보드로 게임음악 같은 걸 혼자 연습해서 치는 수준이다. 음악 듣는 건 골고루 즐긴다.  

나는 일찍부터 피아노 아니 음악 포기자였다 (피포자 혹은 음포자?). 어머니께서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피아노를 구입하셨었다.  피아니스트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만 4 세인가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동네 피아노 선생님께서  "박자를 잘 못 맞춘다"라고 하셨다는 말을 전해듣고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었다.  그 후 어머니께서도 날 향한 피아니스트의 꿈을 버리셨다. 그래도 초등학교 까지 배우긴 했는데  연습을 정말 안 해서 진도도 안 나갔다. 바이올린으로 갈아타긴 했는데 바이올린도 마찬가지. 바이올린은 박자와 더불어 음정까지 조절해야 하는게 더 어려웠다. 그 당시 S 대 바이올린 전공생이었던 이종사촌언니 선생님을 포함 다른 선생님도 내게 소질이 없다고 했으니 일찍 알아보신 선생님들께 감사하긴 해야 한다.  

어제 한국의 한 소년 피아니스트가 국제 콩쿨에서 우승한 연주 연상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리고 산 속에 들어가서 피아노만 치면서 살고 싶다는 그의 피아노사랑은  현대 자본주의 세속사회에 순수하고 귀하게 여겨졌다. (어떤 분야이건 그런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이들은 참 멋지다). 피아노에 대해서 검색해보다가 David Heftgott 의 biographical movie <Shine (1997)> 도 봤다. 정신이 건강하지 않은가운데서도  피아노에의 열정과 연주가 참 매력적이다. 

사실 피아노 음악뿐만 아니라 요즘은 classical 음악을 더 잘 듣곤 한다. 이전에는 story 가 확실한 trendy 한 k pop 등이 더 좋았었는데.   

시간이 좀 더 흘러 시간이 좀 더 생기면 피아노를 막 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

 

 

:
Posted by pleasing2jc
2022. 6. 10. 11:19

covid 카테고리 없음2022. 6. 10. 11:19

바이러스를 접하는 비교적 최전선에서 일하는 지난 약 2 년 반을 무사히 지나갔는데,
실내와 비행기 위 마스크 규제마저 풀리던 시점에 코비드에 걸렸었다.
아이 졸업식 및 동생집 방문 하고 오는 여행길에 딱 걸렸다.
다행히 함께 했던 가족들이나, 증상 발현 전 함께 일했던 coworker 들이나 환자들 다 괜찮아서 무척 감사했다.
5 일동안 방에서 격리했다.
처음 시작은 인후통. rapid test 양성이 나오자마자 바로 일터들에 연락해서 알렸었고.
약 이틀은 100-104 도의 열이 났고 몸살 증상이 심했다. 하루는 밤낮으로 잠만 계속 잤었다.
그 후로 증상이 급격히 좋아졌는데 5 일이 끝나고 테스트도 음성이 나오고 잔기침이 남아있다.
그래도 6 일이 지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2008 년인가 심한 독감에 걸린 적이 있는데 그 때 증상과 비교해 80% 였다고 할 수 있을까?
Long covid 증상은 좀 있다. - 잔기침, 약간의 소화계 discomfort, 등
원래 2-3 년에 한 번씩 먼지를 많이 들이마시거나, 감기에 걸린 후나, 심한 seasonal allergy 를 겪는 해에는 기침을 두세달씩 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covid 로 인한 shelter in place 가 시작되었던 3 월 중순부터 약 4 달간 기침이 심했었는데 (코비드는 아니었고). 이번에는 그렇게 길게 가진 않았으면 좋겠다.
기침사탕, 기침시럽, propolis spray, 도라지청, nasal steam, 또 심지어는 용각산까지 총동원 중이지만, 내 기침에는 시간이 약이라는 걸 경험상 안다.
아이아빠는 아이 졸업식 전부터, 천식증상이 있었는데, 지금 둘 다 기침과의 사투중이다.
costco 에 대용량 기침사탕 사러 다녀와야겠다.

PS: 아이 졸업식 은  내 졸업식 보다는 아이의 졸업식이 더 exciting 하다는 걸 경험.  아이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을 잘 마치고 좋은 경험도 쌓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교수들과도 가까이 지내는 시간를 가졌기에 감사했다. 아이의 앞날을 축복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2. 6. 2. 13:41

counter cultural 카테고리 없음2022. 6. 2. 13:41


여주인공 배우를 원래 워낙 좋아했기에 보기 시작했는데, 그 배우가 이전 드라마 배역들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나오고 또 드라마 분위기도 생소해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다.
그래도 1, 2 회부터 무척 꽂혔다.
처음에는 한국 시골 풍경과 시골 밥상이 정감있어서..
긴 미국생활 중 외롭고 힘들 떄면, 내가 살아보지도 못한 '한국시골'을 그리워하거나, 한국에서는 관심도 없었던 '전원일기'같은 드라마가 보고 싶어지곤 했었는데, 그 감정선의 연장이었던 듯 싶다. 극한 서울 생활에 지친 ㄱ 씨가 산포시를 쉼터로 여겼던 감정과 통하는 정서가 내게도 있어서 1, 2 회의 풍경과 밥상에 나도 ㄱ 씨처럼 위로를 받았던 듯 싶다.
또한 극중에서는 평범하고 무매력이고 촌스럽다고 묘사되는 인물들이 내게는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세간의 화제인 ㄱ 씨보다는 삼남매의 캐릭터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는 경우가 아주아주 드문데 이 드라마는 방영 초기부터 반복해서 봤다.
ㄴ의 아저ㅆ 도 몇 년 전에 처음 보고 몇 달 전 다시 보다 말았는데,
이 드라마는 1, 2 회는 세 번 정도 봤고, 나머지는 두 번씩 봤다.
백그라운드로 틀어놓는 드라마가 아니라,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집중해서 봐야 하는 드라마였다.
인디영화같기도 하고. 이건 소설로 먼저 나왔어야 하는데 생각도 들었었다.
드라마 등장인물들이 변화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들이 실천하는 추앙, 밀당없는 솔직한 사랑/애정표현, 환대, 축복, 하루 5 분의 행복, 해방, 껍데기없이 투명함, 혼자만의 비밀을 지키고 침묵하는 법을 배우며 성숙해가는 이, 스스로가 1 원짜리 동전이 아닌 산임을 발견함,...등등..
이렇게 counter cultural 한 드라마가 가능하구나 감탄했다.
연출과 연기도 다들 좋았다. 군더더기 에피소드 없이, 드라마 후반 늘어지는 느낌도 없었고..
소위 연기 구멍도 없었고, 초반에 raise 했던 이슈들은 거의 다 매듭이 지어지는 수미쌍관의 구조 ('떡밥회수') 등등등...
무게있는 스토리이나 중간중간 웃긴 장면들도 꽤 있었다.
드라마 한 편이 꽉 짜여진 감동적 작품이라서 여운이 오래 남을 듯 하다.

: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