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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29. 13:23

놀라운 자연 카테고리 없음2020. 6. 29. 13:23

헉 상추도 이렇게 나무처럼 클 수 있구나!

배추꽃 에 이은. 상상치 못한 놀라운 자연현상이다.

베란다 텃밭을 하면서 새로운 자연의 비밀(?)을 많이 배운다. 

귀엽다고 화분 흙 속에 잘 모셨던 달팽이가 해충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옛날, 도시 아이들은 쌀이 나무에서 난다고 한다던 말이 있었는데, 거의 그 수준이 아닌가 모르겠다. 

다시 '국민학교' 로 돌아가 '자연'을 배우는 기분이다. 

물리, 화학, 생물 열심히 공부한 거 같은데, 자연이 생소하기만 하다. 


자연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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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0. 6. 25. 16:43

revolutionary vs sensational 카테고리 없음2020. 6. 25. 16:43

NT Wright 의 책제목 <The Day the revolution began> 처럼 복음은 혁명적이다.

물론 일반적 의미, 전투적 느낌의 혁명이라기보다, NT Wright 표현처럼 "탱크"나 "thunderbolt" 가 아닌, "the poor" "the meek" 를 통한 혁명이다. 그렇게 혁명의 일반적 의미를 뒤집는 세상이 열렸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복음이 sensational 한가? 

Sensational 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1: of or relating to sensation or the senses
2: arousing or tending to arouse (as by lurid details) a quick, intense, and usually superficial interest, curiosity, or emotional reactionsensational tabloid news
3: exceedingly or unexpectedly excellent or greata sensational talent

한국어 정의는 이렇다: 감각의, 감동적인, 선풍적 인기의, 선정적인, 대평판의

대충 보니, 센세이셔널하다는 건 선정적이고 감각적이고 피상적인 것들에 호소하는 의미가 큰 거 같다. 



복음 혹은 십자가 사건이 sensational 한가 아닌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에 따라서 다르리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는 고대 신화나 전설정도 일수 있다. 또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 1:18 에 얘기했듯 또 어떤 이들에게는 아예 "미련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혁명적) 능력이다. 

정확하게 십자가 사건에의 반응은 아니지만, 좀 황당하고 센세이셔널한 일화가 있다. 일본작가 유키오 미시마의 얘기인데, 그 사람은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성화를 보고 'accident?' - 여기 쓰기 민망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화살을 잔뜩 맞고 순교하는 saint  그림을 보고 그러했는지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을거다. 유키오 미시마에게는 그 saint 의 순교사건이 감각적이고 선정적으로  sensational 하게 받아들여졌나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이 워낙 예술적이고 특출난 사람 - (미안하지만) '별난'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남들과 나눴을지도 모르겠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성화를 그린 화가의 의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감상평을 남들과 나눴으리라. 

그런데 유키오 미시마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은 신앙을 통해서 감각적으로 고취되는 경험을 구하기도 한다. 기도나 찬양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up 되는 상태를 구한대거나, 자신의 종교적 행위에 도취되거나... 그 정도는 어느 누구나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복음이  sensational 한가 아닌가의 질문과는 별개로,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들 중에서도 센세이셔널한 예화나 표현을 사용하는 이들이 있는거 같다. 지금 막 검색을 해 보니 센세이셔널 저널리즘이 있다고 하는데, 기독교에서도 그런 센세이셔널리즘을 일으키려는 지도자들이 있어왔다. 예화나 표현을 그런 종류를 쓴대거나, 아이디어 자체가 센세이셔널 한대거나. 

중에 따라서는 그런 tactic 을 써야 겨우 설교에 집중하는 이들도 있긴 할 거다. 그런데   나는 성향탓일까, 나이탓일까, 성격탓일까 자극적 표현, 센세이셔널한 설교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런 센세이셔널한 예언을 전하기도 했고, 어떤 선지자들은  센세이셔널한 예언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만,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이 그러했기에 그런 '수사법'을 사용한 거 아닐까? 

지옥불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자극적' 표현으로 설파한 몇 백년전 설교자들도 있긴 했다

 현대세대에도 그렇게 해야 하나?  적어도 지옥불은 더 이상 안 통하는 거 같다. 

만약 시대적 배경에 맞게 이목을 집중받으려면 사진, 소셜 네트워크식 짧은 문구 나 meme 을 적극 활용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복음은 복음 있는 그대로도, 

십자가 사건은 그 사건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이고,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능력이고 혁명의 사건인데,

센세이셔널리즘을 써야만 이목을 집중받을 수 있는 시대라면 너무 슬프다.

그렇게 해야만 관심을 받을 수 있다면,

엄청난 일을 행하셨고 행하고 계신 예수님께 너무 죄송해진다.

그만큼 딱딱하게 굳은 heart, 눈과 귀를 닫은 세상과 시대라는 얘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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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0. 6. 14. 02:23

done during covid 19 SIP 카테고리 없음2020. 6. 14. 02:23

Shelter in Place (SIP) 가 처음 시작될 때 TV 뉴스인가 어디에서 이런 추천을 했다," 이 기간동안 아주 긴 소설인 <전쟁과 평화>를 매일 몇 페이지 읽으라, 그러면 SIP 기간동안 다 끝낼 수 있을 것이고 이 기간이 끝나면 '나는 이 기간동안 '전쟁과 평화'를 다 읽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쉐익스피어는 그 시대 전염병 기간동안 play 를 완성했다는 일화(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지만) 도 있다. 전염병기간동안 위인들이 어떤 업적들을 남겼나를 다루는 소셜미디어 기사도 있었다. 어제 91 세 생일이었던 앤 프랑크는 (전염병 떄문은 아니었지만) 2 차 세계대전 은신생활을 기록한 일기를 남겼고. 

NT Wright 은 이 기간동안 좀 조용하시다 했더니 어느 날 나타나셔서 그 동안 <God and the Pademic> 이라는 책을 썼다고 하더라. 월터 브루그먼도 <Virus as a Summons to Faith..> 라는 책을 출판했다. 두 책 다 다운로드받아서 읽고 있는 중이다. 


나도 SIP 동안 할 것들 리스트는 길게 써 놓았는데 다 해 내지는 못했다. 달성한 것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자잘한 일들이다.  일부는 이미 여기 썼고. 링크1 링크 2

베란다의 bougainvillea 는 원래 펴있던 꽃이 모두 다 우수수 떨어지더니, 다시 봉우리가 맺히기 시작해서 이제 모두 다 활짝 피고 있는 중이다. 추위를 싫어한다고 해서 쌀쌀한 밤에는 왼쪽 사진처럼 이불을 덮어준다.  그리고 애호박꽃도 폈고 고추열매도 맺히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들인 노력에 비해선 수확량이 엄청 적을 거 같다.  상추는 관상용이다. 밑동의 잎이 시들어지면 따서 버리고 먹지는 않는다.  

이불 덮은 bougainvillea






    • 란다로 나가는 문 스크린 도어 롤러 교체



플라스틱 바퀴 부분이 다 닳아서 문이 자꾸 문틀에서 빠져나오는 걸 고쳤다. 체격과 힘이 되는 아이아빠는 문이 빠져나와도 그냥 쓱싹 껴서 쓰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니 근본적으로 고칠 방법을 찾자 고심했다.

유튜브 찾아서 보고. 홈디포 가서 사오고, 목장갑 끼고 고쳤다. 문이 좀 해체가 되어서 그것도 다시 맞춰야 했다. 

이제는 잘 여닫히고 문이 문틀에서 빠져 나오지도 않는다. 뿌듯. 






    • 차고 정리


차고 구석 정리를 했다. Garage shelf 도 여기저기 검색해서 찾아서 홈디포에서 사왔다. 

















    • 샤워헤드 바꾸기


낡은 샤워헤드를 바꿔줬다. 내가 골라 사오고, 설치는 아이아빠가 했다.  이 정도 설치야 나도 할 수 있지만 그냥 아이아빠가 했다. 
















    • 변기 수리

    집에 있는 변기들이 다들 문제가 있었다 - 물이 다 잘 안 내려가서 여러번 눌러야 한대든가 하는 문제. 아이 방 화장실 변기가 가장 문제가 컸다. Covid 19 이전에는 아이가 기숙사 학교에 가 있었기에 고칠 필요를 크게 못 느끼고 있다가, 아이가 당분간 집에 와서 지내기에, 작정하고 고쳤다

    우선 변기구조와 원리를 찾아본 후에 수리했다. MIT 기계공학 사이트에도 toilet 의 원리에 대해서 나와있더라. 

    홈디포를 몇 번을 왔다갔다고 하고 flapper 을 갈아주고 refill tube 위치를 잘 조정해서 고정했고 flapper 줄 길이를 조정해줬다. Refill tube 를 교체했어야 하는데 맞는 사이즈 찾기 어려워서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약간의 '맥가이버'를 해야했다.  

    수리 후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다. 몇 년은 더 쓰고 새 변기로 다  교체할 계획이다. 



     


    • UV light 소독 박스 만들기



    일터에서 쓰는 portable device 가 몇 개 있다. Caviwipe 로 잘 소독해 주긴 하지만 집에서도 한 번 더 소독해 주는게 좋을 듯 해서 UV light box 를 쓰기로 했다. 

    시중에서 UV sanitizer box 는 100-200 불 정도에 판매하는데 그렇게 fancy 한 거는 필요없다. (이런 종류)

    작은 UV 소독 램프를 구입 ($50 range) 하고 플라스틱 박스 안에 tin foil 을 깔아주니 아주 좋다.  





  • 창문 햇빛 가리개: 리빙룸에 높은 창문이 몇 개 있다. 채광이 좋긴 하지만 여름에는 덥다. 창문에 필름이 붙여져 있지만 열 차단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시기에 사람을 불러 블라인드를 설치할 수는 없어서 집에 있는 쿠션 베개, 상자들을 이용해서 장식했다. theme 은 christmas 다. cardboard box 에 포장지 붙이고 장식하고. 일단 올해는 이렇게 쓰고 내년 블라인드를 설치해야곘다.  어떤 블라인드가 열차단에 좋은지 틈날 때마다 검색해 보고 있다. 

     

  • Fluffy Japanese pancake



  • 아이가 해 보자고 해서 오늘 아침 막 해 봤다. 원래 왼쪽과 같은 모양이 되어야 한다. 레서피는 여기  Ring molds 가 있어야 하는데 없어서 cooking foil 로 만들어서 했다. 그런데 batter 를 넣으면서 그 cooking foil mold 가 벌어지는 낭패가 생겼다. 뒤집는 것도 쉽지 않고...




그래서.. 아래와 같은 모양이 되고 말았다. 



아이는 "It's not very appealing" 하면서 웃는다.

남은 mix 는 지금 오븐에 굽고 있다.

역시 요리는 내게 난공불락의 분야다.   


나도 차라리...

SIP 기간동안 책을 한 권 쓸 거 그랬나보다.


PS: 아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버블티를 집에서 가끔씩 만들고 있다.  버블티 kit 은 인터넷으로 구입하는데 맘에 든다https://www.rareteadi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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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0. 6. 11. 16:43

faceshield prototype 카테고리 없음2020. 6. 11. 16:43

일을 조금씩 시작하고 있는데 현미경을 쓰는 탓에 faceshield 쓰기가 용이치 않다.

현미경의 eyepiece 와 안경 사이가 faceshield 떄문에 벌어져서 field of view 가 제한되기 떄문이다.

오른쪽과 같은 faceshield 을 하고 치료하니 현미경 포거스 맞추는 것도 어려워서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이렇게 eye protection 이 없이 치료하는 건 covid 19 이전에도 옳지 않았다. 아마도 사진 촬영을 위해서 eye protection 을 안 한듯. (인터넷서치에서 찾은 사진이다)1 번1 번


2 번



그래서 faceshield 를 modify 해봤다. 안경부분을 잘라내고 안경 둘레를 foam으로 막아줬다. 

이론이 쉽지, 실제로 foam 을 붙이는 건 쉽지 않았다. 

얼굴과 코의  contour 를 고려해서 foam 을 잘라야 하는데 

foam 을 원하는 모양대로 자르는것도 쉽지 않고 plastic 에 붙이는 것도 힘들었다. 


이렇게 만든 faceshield 를 쓰고 치료할 때 어느 정도 work 하긴 했다.

그런데 불편하고 모양도 맘에 안 들었다. 






3 번


그래서 새로운 시도. 

안경 위쪽에는 짧은 챙의 visor 를 쓰고

안경 옆쪽에는 amazon 에서 구입한 sideshield 을 하고,

2 번 faceshield 아래 부분을 잘라 뒤집어서 목에 둘렀다.  

그렇게 하면 안경 둘레에도 barrier 가 생기고 밑에서 올라오는 aerosol 도 차단될테니.

이건 내일 가서 test 해 볼 예정이다. 

일단 모자챙 visor 는 직접 만들어봤는데 짧은 챙이 있는 rain hat 을 amazon 에서 구입해서 배달을 기다리고 있다.  

rain hat 은  스프레이 소독해서 계속 쓸 수 있고 모양도 더 이쁠테니까. 내일 테스트 해 본 후에 목에 하는 barrier 도 더 refine 해 봐야겠다. 

 





현미경을 쓸 때 얼굴과 눈을 어떻게 protect 할 것인가는 우리 직종  모든 이들의 고민이다.

어떤 이들은 plexiglass 로 특별제작해서 현미경에 부착하기도 했대는데,  내 work 스타일에 맞는지  검증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유보중이다. 일단 버려도 되는 재료들로  prototype 을 만들어서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요즘 재료 찾는것도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안경도수가 들어간 수영 고글을 쓰기도 한단다. 그렇게 하면 좀 우스울 거 같다.  이미 위와 같은 무장을 하는게 우습긴 하지만.  


맨날 이것저것 만들고 뒤집어 쓰고 하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중얼거린다. 


그런데 covid 19 pandemic 이 끝나도 이런 종류의 PPE 는 계속 stay 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80 년대에는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치과치료를 했다는데, HIV/AIDS 이후 universal precaution 이 생겨서 PPE/infection control 이 더 강화된 거처럼 말이다. 


지금은 손으로 붙이고 자르면서 이것저것 만들어서 테스트 해보는 중이지만, 내게 맞는 스타일을 찾으면 얼굴을 3D 스캔, 디자인해서  3D 프린터로 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건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분야라서 디자인하는 법 등을 배워야 하고, 재료들을 어떤 걸 써야 하나 찾아봐야 하고... 일이 많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 

(목에 두르는 faceshield 는 이미 시중에 판매하는 중인 거 같은데  얼굴 전체를 덮기에 내 목적에는 안 맞다. 그리고 링크도 지금은 못 찾겠네..)

:
Posted by pleasing2jc
2020. 6. 1. 03:30

이 땅 카테고리 없음2020. 6. 1. 03:30

지금 뉴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는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흘러넘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 보면 인종에 관계없이 모두 목소리를 높이며 애도하고 있다.  

그 중에는 흑인 동창들도 있는데 그들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personally 받아들이고 있나 읽으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그런데 피드에 간간히 섞여있는 한국 뉴스나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한국 목사님들 피드를 보면, 전혀 다른 내용들이 올려지는 걸 본다. 그건 당연하다. 한국에 있는 이들이 관심있는 이슈와 미국의 이슈가 다른건 무척 당연하지.  

그 divide 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이젠 그전에 비해서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  소속감을 좀 더 느끼는구나 깨닫는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와서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어디에 position 해야 하는지 전혀 아이디어도 없이 살아왔다.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가질 틈도 없이 학업과 삶에 쫓기며 살아왔으니까. 

아니, 인터넷 신문을 볼 때는 한국 신문을 더 많이 봤고, 한국 프로그램 비디오를 미국 tv 보다 더 많이 보면서 한국에의 그리움에 사무쳐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아빠가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로 취직해서 올 당시, 나는 아직 학위 논문을 쓰는 중이었고, 이미 동부에 있는 치대들에서 입학허가를 받아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이 아빠가 캘리포니아에 오니까 나도 캘리포니아의 치대에 인터뷰를 하러 왔었다. 샌프란시코의 치대였는데  그 때 인터뷰하는 분이 흑인 여성 교수이셨다. 

학업과 육아, 살림에 쫓기며 사회 문제에 관심도 가질 틈도 없이 살아온 내게 이런 질문들을 했다.

"LA 폭동 시절 미국에 있었을텐데, 그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가? 그에 대한 네 의견은 무엇인가?" --- 음.. 그 때 미국에 온지 1 년 밖에 안되었던 고등학생이었기에 별 생각이 없었고 그 후로도 인종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틈없이 살아왔기에, 내 답은 허접하기 그지 없었다

"미국의 healthcare system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역시 그 문제에 대해서 무지했고 그럴듯한 의견도 없었다.

그러니, 인터뷰 점수가 당연히 나빴을 거고. 지원한 모든 동부 치대들에서는 금방 입학 허가를 받은데 비해서, 샌프란시스코 치대에서는 waiting list 였다. 내 전공분야였던 biomedical research 에 대한 질문을 안 하고, 지원자 특색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희정책이슈에만 대해서 질문한 interviewer 을 내심 질책했다.   


한편 그렇게 인터뷰 질문에 나올만큼, 인종/불평등의 이슈와 healthcare system 의 이슈는 미국에서 계속해서 큰 문제였다. 미국 역사 속에 계속해서... 

지금  covid 19 시대에 더 불거지고 있다.

나도 그 이슈들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제야 시민다운 시민이 되어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의 아이와,  어린 세대 많은이들 대들이 살아갈 땅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이땅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한다.


1990 년대 중후반 '부흥'찬양을 교회들에서 수도 없이 목터져라 부를 때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가사의 "이 땅"은 당연히 한국이거나 미국 내의 한인사회였다.  1997년 말 (우리 결혼식 며칠 전), 그 당시 한국집 근처 온누리 교회에 혼자 가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렸었다. 한국의 외환위기 직후여서였을까, '부흥' 예배 끝에 부르는데 사람들의 찬양이 무척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보스턴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귀국했던 지체를 우연히 마주쳐서 반가웠다)


최근 며칠동안, 미국뉴스를 접하며 부흥 노래를 기도처럼 절로 떠올리게 된다.  (이 찬양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이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밑에 옮겨온 영상의 배경이 그랜드 캐년 등 미국 땅이네..)




:
Posted by pleasing2jc

5/29 Sojourners 에 Soong-Chan Rah 가 쓴 글이다. 


https://sojo.net/articles/lamentations-5-2020?fbclid=IwAR0be23fu30a09MCaK2CgmcBHWDDHb_vMlrnkDBF3_6A1HI0abNv7NthGBw


Remember, Lord, what happened to Ahmaud Arbery, Breonna Taylor, and George Floyd;
          look and see the disgraceful way their bodies were treated.
Our inheritance of the image of God in every human being
          has been co-opted and denied by others.
The family of Ahmaud, Breonna, and George Floyd has lost their loved ones,
          widowed mothers once again grieve their dead children.
We must scrap for our basic human rights (even to sit peacefully in our homes);
          our basic needs (even the need to breathe) have a great price.
Corrupt officers pursue us with their knees on our necks;
          we are weary and we find no rest.
We submit to uncaring government officials and to big business to get enough bread.
Our ancestors sinned the great sin of instituting slavery;
          they are no more — but we bear their shame.
The system of slavery and institutionalized racism ruled over us,
          and there is no one to free us from their hands.
We get bread (or jog in our neighborhoods) at the risk of our lives
          because of the guns on the streets.
George Floyd is down on the street, his body crying out for air.
Black women have been violated throughout our nation's history;
          Breonna Taylor gunned down in her own home.
Noble black men have been hung, lynched, and gunned down.
          elders and spokesmen are shown no respect.
Young men can't find work because of unjustly applied laws.
          Unjustly incarcerated because of staggering negative expectations.
The elder statesmen and civil rights leaders have been assassinated;
          young people who speak out their protest through music are silenced.
Trust in our ultimate triumph has diminished;
          our triumphant proclamation of victory has turned to a funeral dirge.
Our sense of exceptionalism has been exposed.
          Woe to us, for we have sinned.
Because of this our hearts are faint,
          because of these things our eyes grow dim
For our cities lie desolate with predatory lenders and gentrifiers prowling over them.
You, LORD, reign forever; your throne endures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Why do you always forget us? Why do you forsake us for so long?
Restore us to yourself, Lord, that we may return;
renew as that we may find a new way forward
unless you have utterly rejected us and are angry with us beyond measure.

Excerpted and reworked (again) from Prophetic Lament: A Call for Justice in Troubled Times

:
Posted by pleasing2jc



지난 한 달 여간, 다른 일들을 하느라 차분히 앉아 독서할 틈이 없었다. Covid 19 때문에 주업도 거의 안 하고 있는데 그렇다. Webinars/PPP application 땜에 컴퓨터를 많이 쓰고,  베란ㄷ 프로젝트/gardening, 집정리하느라 육체 노동을 했더니 테니스 엘보우 & 마우스 숄더가 생겼다. 안식에 대한 독서도 했으면서 실천은 꽝이라고 볼 수 있다. 여전히 being 보다는 doing 에, 관계 (covenantal relationship) 보다는 productivity/efficiency 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을 구하고 기도하는건, covid 19 전보다도 오히려 더 못하고 있다.


결국 어제는 목에 담이 걸려서 아무 일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그러면서 지난 한달동안 띄엄띄엄 진도 안나가던 책을  마저 마쳤다. (담걸린 목은 오늘 괜찮다. 어깨랑 엘보우도 낫다)


월터 브루그먼의 <Reality, Grief, Hope: Three urgent prophetic tasks> 

구약 시대, 제국(empire)  narrative 에 저항해, 선지자들이 reality, grief, hope 의 세가지 prophetic tasks 를 이행함으로써 어떻게 하나님의 narrative 를 설파/구현했나 풀어나간다.

그리고 9.11 이래 흔들리기 시작한 미국의 exceptionalism 의 배경 속에, political, economic, ideological 면에서 어떻게 reality, grief, hope 의 three prophetic task 를 실행할까 제시한다.


월터 브루그자신의 요약인터뷰 영상


미국의 (triumphalism과) exceptionalim 에서 grief(lament) 을 얘기했다는 점에서, 1 년 늦게  출판된 Soong-Chan Rah 의 <prophetic lament> 와 공통점이 있지만, Soong-Chan Rah 는 인종차별의 맥락 속에서 사회정의에 촛점을 뒀다면, 월터 브루그먼은 경제, 정치, 이념의 맥락 속에서의 prophetic task 에 중점을 뒀다. Wikipedia 에서 월터 브루그먼에 대한 설명에 나온 거처럼 그의 18 번 분야라고 볼 수 있다. 


He argues that the Church must provide a counter-narrative to the dominant forces of consumerismmilitarism, and nationalism.

2014 년에 출판된 위의 책은 2001 년 이후 post-9.11 시대가 배경이긴 하지만, 그가 주장한 prophetic tasks 는 2020 년 covid 19 시대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많은 언론에서 다뤄지듯, Covid 19 으로 인해서 미국과 중국 등의 패권경쟁 (현대의 제국?들의 경쟁) 이 더 심화되는듯 하고 온갖 갈등과 변화가 있다.   Shelter in Place 집콕상태이지만, 세계적, 영적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강대국들의 갈등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prophetic tasks 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그 경쟁 구도 속에서   "neighborliness" 를 어떻게 추구해나가야 하는가? 여러 질문들이 생긴다.  


글쎄. 경제적/정치적 정책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시민으로서, 앞으로 어느 정치인의 어떤 경제 정책을 지지할 것인가? 등 더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될 듯 하다. (정치/경제에 무관심한 일인이었으나)

또한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구하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막중한 기회와 책임이 있다. 다음 책 인용문처럼 예수님의 example 을 따라서. 

Unlike the "objective" religion of the empire, this narrative features an engaged, interactive, subjective faith. The God of this narrative is impacted by the prayers of the faithful. Thus, lament, complaint, and protest are legitimate ways to interrupt the thin doxologies of the empire by giving voice to the burdened particularity of daily life. The God of this narrative is drawn into that burdened dailyness in transformative ways. 

It is clear, moreover, that this practice of an alternative, seen clearly in the Old Testament texts, is reenacted in the narrative of Jesus:

1. The economy of abundance is featured in the "feeding miracles" wherein five loaves and two fish are enough for five thousand men, plus women and children. (Matthew 14:21).

2. The politics of dialogue is evident in the awareness of Jesus that he has been "touched" in a way that emits transformative power (Mark 5:30). That same demanding interaction is performed in the narrative wherein the outsider woman can challenge Jesus so that she becomes a member of the household; indeed, she becomes Jesus' teacher concerning his vocation (Mark 7:28).

3. The subjective practice of religion is commended in Jesus' parable of "the importunate widow" who is voice "from below" who incessantly addresses power (Luke 18:1-8). 

In each case, Jesus, like his Old Testament antecedents, shatters conventional propriety and legitimate alternative practice that arises from below. In this practice, he both exposes the inadequacy of empire and gives an invitation to the neighborhood. In the parlance of the church, the new selves of emancipated urgency are baptized persons. In the rhetoric of ancient Israel, they are members of the covenantal community that maintains a distinct identiy and a distinct practice in the face of empire.

(p145-146, Reality, Grief, Hope.. by Bruegg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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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0. 5. 9. 23:37

Grocery Shopping in 2020 :) 카테고리 없음2020. 5. 9. 23:37


진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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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0. 4. 30. 13:11

긴 여정 후 집에 도착하신 TP 님 카테고리 없음2020. 4. 30. 13:11

지난 3 월 중순, SIP 오더가 내려진 후, 아마존을 통해서 화장지 (toilet paper = TP) 를 주문했다.

https://howmuchtoiletpaper.com/ 에서 계산해 보니, 그 당시 집에 있던 휴지로는 약 한 달 반을 버틸 수 있을 듯 했다.

휴지가 한달 반 후에도 available 하지 않을 수 있다는 worst case scenario  고려 하에, 아마존에서 열 개 (ten rolls) 에 20 불 & 배달료 공짜인 제품을 구입했다. local store 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Checkout 하며 보니 4 월 말에 도착한댄다. 거의 5-6 주가 걸리다니. C 국에서 오는가보군... 

그래도 나중에 아쉬울까봐 주문했다 - 아주 심한 바가지도 아닌듯 해서.


LA 항구 또는 공항을 거친 긴 여정 끝, 휴지님께서 드디어 집에 도착하셨다. 

(사진에서 R 이라고 써있는 쪽이 이곳 휴지, L 이라고 써 있는 쪽 휴지가 C 국 휴지) 




대충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휴지심 diameter 는 더 크고 휴지 전체 크기는 더 작고. 

양도 양이지만 종이자체에 불순물/중금속이라도 섞여있을까봐 쓰지 않고 버릴 가능성이 크다. 일단은 차고 구석에 뒀다. 


앞으로 아마존에서 프라임이 아닌 셀러의 물건들은 구입 안 할 거다. Made in... 도 꼭 체크할 거고. 



PS1:  다행히 우리집 휴지 보유량은 아직 괜찮다.. SIP 이전에 구입한 것도 좀 남아있고, 그 동안 이곳 스토어들에서도 구입한 것도 있다. 

PS2: 위 사진에 엑스레이 방식으로 R L 을 표시하는데,  빨리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지난 주말까지는 집에서 쉬는게  나쁘지 않았다. 잠도 잘 자고 잘 쉬고, 새로운 hobby 도 픽업하고. honey to do list 도 아이아빠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직접 하고. 이번 주에는 "ready to go back to work"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SIP 가 연장되었다. 

radiographs (엑스레이), 핸드피스,  files, 현미경 (surgical microscope), scrubs & PPE 가 그립다. 함께 일하는  분들과 환자분들이 보고 싶네.

다시 일할 때까지, 어떻게 유익한 시간을 보낼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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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0. 4. 15. 14:43

이 시대 카테고리 없음2020. 4. 15. 14:43


영화 Wall E 에는 쓰레기를 감당못해서 인간들은 탈출한 지구 상에 홀로 남은 쓰레기 치우는 로봇이 주인공이다.

하루종일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나름 열심히 치우고 퇴근한 Wall E 가 영화 Hello Dolly 를 보는 장면이 있다. 

Dystopia 적인 세계를 그린 영화 속에서, 평화롭고 즐거운 시대를 그린 영화를 보는 Wall E 다. 

지구에 위기가 닥치기 훨씬 전 '정상적'인 세계에서 인간들이 손도 잡고 음악도 즐기고 춤도 추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장면을 보면서, Wall E 는 그런 intimacy 등을 흠모한다.

2016 년 후반,  A 라는 인물이 선거에서 당연히 당선될거라 예상하며 아이와 이런 얘길 했었다, "아마도 미래에는 B 가 대통령이 된 dystopian movie 가 많이 만들어질거야."

그런데 모두가 깜짝 놀랄 결과였고 -심지어는 B 조차도 무척 놀란 표정인 결과였고, 시간이 흘러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4 년 전 만약 A 가 당선되었다면, 지금의 covid 19 에 의한 피해가 적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긴 하다.

하지만, 바이러스 자체 때문에라도 온 세계가 참담한 현실을 겪고 있는데, B 의 언행으로 인해 이 시대가 더 dystopian movie 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한 뉴스앵커의 표현처럼 "almost biblical" 한 아프리카의 메뚜기 떼는 또 뭔지......토네이도도 그렇고.... 위해서 기도한다.)


Nitendo switch 의 게임 animal crossing 이 요즘 유행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우리집에도 있다. Nintendo switch shortage 가 심해지기 바로 직전, 중고 기계를 인터넷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한참 대학 캠퍼스 생활을 즐기던 아이가 친구들도 못 만나고, 집에서 온라인 클라스를 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animal crossing 으로 풀고 있다. 아이는 학교 캠퍼스에서 각종 activity 와 교수들/친구들과의 interaction 을 무척 좋아했었다. 


animal crossing 같은 종류 게임의 유행현상을 설명하는 기사들은, 사람들이 게임 안에서 socialize 도 하고 게임 안에서 규칙적인 삶을 살면서 우울한 기분도 치유받고, 그게 현실로 이어져 실제로 부지런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럴 수 있는 거 같다. 

 

한편으로는 게임 속의 세계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Hello Dolly 를 보는 Wall E 같은 심정을 엿보기도 한다. 


게임도 그렇지만, 영화나 문학 등에서도 앞으로 한 동안은 상상 속의 dystopia 를 그리는 장르보다는, feel good movie/literature 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모르겠다.  


Wall E 를 포함한 많은 dystopian movie 들의 happy ending 에서도 그러하듯, 이 험난한 시대가 속히 잘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길 기도한다. (지금 이 시간을 처절하게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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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