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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305

  1. 2021.09.26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
  2. 2021.09.23 교회 lab
  3. 2021.09.18 인터넷 안전
  4. 2021.09.13 또 히브리서
  5. 2021.09.07 어떤 유니버스를 살아가는가?
  6. 2021.08.30 시편 102 편 Prayer to the Eternal King for Help
  7. 2021.08.28 knowing God according to...
  8. 2021.08.27 before God
  9. 2021.08.15 거룩한 바쁨
  10. 2021.07.22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2021. 9. 26. 13:45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 카테고리 없음2021. 9. 26. 13:45

 

왼쪽과 오른쪽은 원래 같은 색, 같은 브랜드의 옷이다. 

지난 주 빨래를 개키다가 위 두 티셔츠의 대비가 너무 우스워서 사진을 찍었다. 

 

올해 초 아이아빠 운동복이 오른쪽처럼 낡은 걸 발견하고 (입고 운동하러 가는데 너무 후줄근한거다), 똑같은 걸 찾아서 주문해줬다.

옷을 새로 사줘도 전혀 appreciate 도 안 하고, 옷을 왜 새로 사냐고 내게 화를 낸 적도 있지만서도 그냥 강행했다.  

낡은 옷을 내 맘대로 버리면 잔소리가 심하기에 낡은 옷도 안 버리고 그냥 두었는데, 새 옷을 안 입고 줄기차게 헌 옷만 입는거다. 

그래서 참다참다, 지난 주 빨래한 헌 옷들을 옷장 구석에 숨겨두고 새 옷을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그랬더니, 새 옷을 입고 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이아빠도 나이 탓으로 체형도 바뀌고 옷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해야 할듯해서 옷을 새로 사줘도 안입고 쳐박아만 둔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서 사주는라 나름 엄청 고심해서 사는데,  아이아빠도 자기 맘에 안 드는것도 아닌듯 하다.

싸구려 옷도 아니고 맘에 안들면  리턴해야 하는데 리턴은 안 하고 옷장 속에 쳐박아 둔다. 나도 의욕상실이다.

맨날 입는 옷은 회사에서 준 티셔츠와 낡은 청바지, 낡아서 쭈굴탱이가 된 스니커즈 등등...  

(참  쭈굴탱이 스니커즈가 너무 측은해보여서 실리콘밸리 CEO 들이 신는다는 신발을 검색해 보고 비슷한 스타일로 사줬더니 그건 리턴했다. )

하기야 Bay Area 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다 비슷비슷한 차림이긴 하다. 조금이라도 더 polished 된 차림은 sales person 혹은 쇼핑몰 retail 에 종사하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외국인 관광객처럼 보인다. 

 

그래도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전에 종종 말씀하시길 "멋도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내는게 좋다," 하셨는데...

꾸안꾸를 연구해 봐야겠다.

아니면 콘트라 문둠 실천 차원에서 확 패션니스타로 살아가볼까? 허허허..

 

:
Posted by pleasing2jc
2021. 9. 23. 14:24

교회 lab 카테고리 없음2021. 9. 23. 14:24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small group 이름을 lab 이라 바꾸고 다양한 주제의 모임을 시작했다.  이름이 lab 이라니 실험적 요소가 다분한가보다. 

성경적 관점에서 gender roles 을 들여다 보는 lab 에 가기로 했다. 이 주제에 관해서 석사논문을 쓴 이가 인도한다.

academic 할 거라니 괜히 더 좋다.  주제에 관한 논의 뿐만이 아니라 성경을 바르게 읽는 exegesis/ hermeneutics 에 대해서도 논할 거라니 기대가 된다.  

왜 이 lab 을 선택했냐고 모두에게 물었다.  답할 때,  '어쩔 수 없이' 오래전  한국 신앙공동체들에서의 여성 vs 남성의 roles 에 대해서 나눠야 했고, 한국의 전통이 어떠한가 나눴다.  한인교회를 더 이상은 안나가고, 한국전통의 일정면과 다양한 마찰을 겪어왔다고 나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gender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미 여기저기서 습득한 것들도 반복되겠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 논문을 쓴 사람이 인도하고, 또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이들이 이 주제에 관해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떠할까 궁금해서 더 기대가 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1. 9. 18. 02:20

인터넷 안전 카테고리 없음2021. 9. 18. 02:20

 

인터넷 개인정보 보호와 안전을 위한 한 경찰서 공고 (작년 것이지만 여전히 유효할듯)

:
Posted by pleasing2jc
2021. 9. 13. 00:23

또 히브리서 카테고리 없음2021. 9. 13. 00:23

올해는 히브리서에 집중하는 해인가보다.   

히브리서 11-12 장 을 읽을 때는 정말 가슴이 뛴다.

히브리서 12:1-3 과 가장 비슷한 이미지는 영화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부분이다. 

레미제라블 영화의 그 장면에서 히브리서를 떠올린 건, 그 영화가 처음 나와서 극장에서 봤을 때부터였다. 

영화 속 '선한 싸움'을 싸우며 전사한 이들이 힘찬 노래를 부르고 있고, 그들을 향해 나아가는 장발장. 

영화 속에서는 장발장의 사후 세계에서 마주치는 그들이지만, 히브리서 11-12 장에 영화의 그 이미지를 빌려온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이미,  '믿음의 삶'을 살아간 믿음의 조상들에게 휩싸여 예수님을 향해서 달려나가고 있다는 것. 

아브라함, 모세,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바울 등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기쁜 표정으로 힘찬 찬양을 부르고 있고 예수님께서 중앙 보좌에 앉아계시는 장면 --  그를 향해서 뛰어가는 믿음의 경주

 

어쨌거나 히브리서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작년말부터 히브리서 '공부'라고 하긴 뭣하고 leasurely reading 하듯이 히브리서에 관한 NIV Application commentary 를 다 읽었다. (NT wright 의 짧은 책도 읽었고)

반년도 더 넘는 기간동안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읽다 보니....몇 개월 후에는 앞의 부분을 잊어버렸다. 

기억에 남는 '지식'은 히브리서 저자가 구약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던 지식계층이라는 것 정도.

그리고 exposition 과 exhortation 이 뒤섞여져 있다고. 

그렇게 미온적으로 commentary 를 막 다 읽었는데, encounter with god devotional 본문이 또 히브리서다.

히브리서를 깊이 묵상할 기회를 올해 가져야 할 듯. 

-----------

NT Wright 의 짧은 책자를 다시 읽는데 히브리서 3:7-13 에 관한 내용 중 'Today Mode' 에 관한 설명 "already and not yet" 중 "already" 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Today mode" 라..

The challenge becomes more urgent with the word ‘Today’, the point in the Psalm at which the quotation begins, 

and the point to which Hebrews returns several times, both in this passage and later. 

Along with the other early Christians, the writer believed passionately that God had acted once for all in Jesus 

the Messiah, and that as a result the new day had dawned for which Israel had been waiting. 

They had been living in what you might call ‘tomorrow mode’ for long enough; now it was ‘today mode’, 

the moment when suddenly it was all happening. If only they would remember that, they would stay on track.

Wright, N. T.. Hebrews for Everyone (The New Testament for Everyone) (p. 41). 

Presbyterian Publishing Corporation. Kindle Edition. 

영화 레미제라블의 Finale 의 가사  와 연관되면서, 영화 레미제라블 프랑스 역사 속 혁명가들이 tomorrow 를 꿈꿨듯, 구약 믿음의 조상들도 비슷한 양상으로 꿈꿨을 tomorrow 를 today 로서 살아가는 세대로서 today mode 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괜히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네. 

:
Posted by pleasing2jc

극장에서 영화를 못 본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영화 두 편을 극장에서 봤다. 둘 다 마블 영화다.
마블 영화와 예고편들을 보니, 마블 영화는 꽤 유명한 많은 배우들을 그들의 유니버스에 포함시켜왔고 포함시키려 하는듯하다. 웬만한 배우들은 마블 영화의 슈퍼 히어로나 등장인물들이 되어가고 있는듯.
마블 유니버스에는 꽉 짜여진 서사, 조직체계도, 인간관계, 문화, 룰 등이 있다. 그 유니버스에 속한 배우들은 그 안에서 어떤 동료애나 소속감 같은 걸 느낄 수도 있을 듯 하고, 슈퍼히어로들의 마블 유니버스라니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진정한 배우라면 영화 속의 가상 유니버스와 그 역할과 현실 속의 자신, 또 다른 영화들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잘 분간할 것이다. 마블 유니버스에서 슈퍼 히어로를 맡았다고 해서 현실 속에서 그처럼 행동한다면, 그건 보자기를 등에 두르고 높은 층에서 뛰어내리는 어린 아이와 다름없다.

어찌 보면 많은 조직과 공동체들도 자신들만의 유니버스가 있다. 그 조직이나 공동체 밖에서 볼 때는 낯선 조직체계와 문화를 당연히 여기면서 살아가기도 하고. 한 사람이 그 조직이나 공동체 안에서 맡은 역할과 그 밖에서 맡은 역할이 판이하게 다르기도 하다. 이전 학교의 꽤 잘나가던 교수님이 퇴근하면서 "오늘은 쓰레기차 오는 날이야. 쓰레기 내놓으러 가야해," "이번 주말은 대청소를 해야 해," "개밥 주러 가야해,"하곤 했었는데, academia 에서 훨훨 날던 슈퍼 히어로같던 그 교수님도 일생생활 속에서는 한 생활인일 뿐이라는 걸 절감케 했다.

만약 한 인물이 속한 조직과 공동체의 '유니버스'가 그가 속한 조직/공동체의 다른 '유니버스'를 breach 하기 시작하면 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펩시의 이전 CEO 인드라 누이의 일화는 무척 유명하다. 막 CEO 로 임명받고 집에 와서 어머니께 그소식을 전했더니 어머니께서는 그녀에게 "가서 우유나 사오렴,"하시면서 밖에서는 CEO 일지라도, 집에서는 집에서의 역할을 잘 해야한다고 가르치셨다는 일화. 그렇지. 집에서도 가족에게 CEO 가 부하직원을 대하듯 대하면 문제가 커지겠지. global 대기업 CEO 인데도 마켓에 가서 우유를 사오는 역할을 잘 해야 한다니.

하나님의 유니버스는 어떠한가? 하는 질문이 든다. 하나님의 유니버스 속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왕같은 제사장들,거룩한 나라고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즉 세상과는 분별된 특별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세상 속에서 그렇다고 했다가는 과대망상에 걸렸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왕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함은 군림하고 특권을 행사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쫓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성경에 잘 나와있다.
또한 하나님의 유니버스는 수많은 공동체와 조직들, 나라들, 세상 우주를 아우르는 ultimate universe 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나 신앙 공동체 중에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구분된 이분법적인 곳도 많다. 바운더리 안팎으로 정말 판이하게 다른 세계 같은 양상. 세상 속에서는 잘 나가지 못해서 받는 설움을 교회나 신앙 공동체 속에서 어떤 직위나 사역을 맡음으로서 위로를 받는다는 글도 어디선가 읽었다 (이전 이민 한인교회에 관한 오래전 글이었다). 많은 공동체나 교회들에서는 사역자나 리더가 되면 정말 슈퍼 히어로같은 대접을 받기도 한다. 아니면 celebrity 나 influencer 같은 영향력을 가지기도 한다. 또 많은 경우 그런 대접이나 영향력은 그 교회나 공동체에만 한정되지, 바운더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그건 효력을 잃기도 한다.

주목받는 위치에 있는 사역자나 리더들은 정말 조심해야 할 듯 하다. 인기나 관심, 인간의 평가에 취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할 듯 하다. 공동체나 교회에서 맡은 역할과 실제의 자신을 혼동해서 자아팽창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것을 경계하고 조심하지 못해서 실족하고 무너진 이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위치에 서는 건 자동으로 실족하는 길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때도 있다. 어찌 보면 그런 이들에게는 "가서 우유나 사 오렴" 하는 '어머니'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하나님의 ultimate 유니버스에 속한 이들의 왕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identity 는 슈퍼 히어로, celebrity, influencer 등에 비교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이긴 하다. 그런 이들로서 세상 속에서 자아팽창의 부작용을 경험하지 않고, 건강한 identity 를 가지고 예수님을 뒤쫓는 삶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나? 막 떠오르는 모습은 '가서 우유를 사 오는 것'도 주께 하듯이 사랑으로 하는 것.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게 우유를 사 오는게, 슈퍼 히어로의 (주께 하듯 하지 않는) 파워보다도 더 강력한 것이라는 거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applications....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고민하는 것들이다.

:
Posted by pleasing2jc

시편을 몇 편을 대충 쭉 읽다가 102 편에 주의가 집중되었다.
안그래도 최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있기도 했었고,
지난 주 전력질주를 좀 했더니 몸/마음이 지쳐서 시편저자에 감정이입도 했나보다. (시편저자의 고난과 고통에 비교 될 바 없는 '피로함'일 뿐이다)
또 24 절의 "mid-point of my life" 라는 말도 눈에 띄었다.
'마음에 와 닿은"대로 따라가는 그닥 바람직하지 않은 성경읽기라고 할 수 있으나...

인터넷의 시편 102 편에 대한 강의를 찾아 들으니 개인기도와 공동체 기도가 섞여있는 시편이라고 한다.
한 개인의 고통에서 시작된 개인의 기도를 공동체의 기도로 승화했다고. 이 시편 안의 공동체라 함은 이스라엘 백성.

지금, 이 시편 저자처럼 기도할 공동체가 있다면 지구 공동체가 떠오른다.
질병, 지진, A 국 사태, 허리케인, 산불, 가뭄, 지진, climate change warning -- 지인 중에는 A 국에 가족이 있는 이도 있고, 또 다른 지인은 가족이 위독해서 중미의 자기나라로 급히 갔고. 동생의 지인은 허리케인을 피해 동생집으로 피난을 왔다고. 모두 다 위해서 기도를 안 할 수가 없다.
산불&가뭄은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계속되고 있는 재난이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 (진보와 생산성, 물질, 폭력, 부패, 테러 등등)이 우상화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로 인해 힘없고 약한 이들이 고난을 겪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But) 시편저자의 v12-22 v25-v27 하나님의 왕되심, 하나님의 일하심을 되새기며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주뜻의 이루어짐을 위해 기도해야 겠지

안 그래도 요즘 운전하며 "the blessing" 을 계속 들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맘이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다. 얘기를 나눈 몇몇 이들도 "우리는 괜찮은데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은 어떡해요?" 하며 어떤 위기감을 느끼는듯하다.
시편기자도 마찬가지였구나.
v28. The children of your servants shall live secure; their offspring shall be established in your presence.

21 세기에 "mid-point of my life" 를 보내며 수천년전 시편기자의 기도에 동참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으신 하나님이시다. Verse 27 에도 나와있듯.

:
Posted by pleasing2jc
2021. 8. 28. 14:24

knowing God according to... 카테고리 없음2021. 8. 28. 14:24

.in the person of the Redeemer, we know God not "according to His greatness", secundum magnitudinem, but "according to His love", secundum dilectionem (IV. 34). 

Irenaeus of Lyons (c. 130- c.200) 의 Against the Heresies 라는 책에 나오는 문구라고 - Rowan williams 의 The wound of Knowledge 책 p 27 에 나옴. 

멋지네.

(Rowan williams 의 책은 초반 좀 읽다가 다음에 읽기로 했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1. 8. 27. 13:48

before God 카테고리 없음2021. 8. 27. 13:48

다양한 많은 이들과 일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일을 잘 하고 성실한 사람인지,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어떤지, 정말 일과 사람들에 진심을 가지고 임하는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나쁘게 얘기하면서 자신이 더 인정받으려 하는지 등등 보인다.
성실하기는 한데 요령이 없다거나 그런것도 보이고...

진심과 성실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들은 실력이 못 따라오더라도 이쁘다.
잔머리를 굴려서 자신이 실제보다 많은 일을 하는거처럼 보이게 한대거나
작은 일에도 생색을 내는 이들
행동/성과보다 말이 더 많은 사람들은 피하고 싶다.
다행히 그런 이들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상'보다는 기독교인들 중에그런 이들이 좀 더 많이 보이기도 한다. 기대가 더 커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어쨌거나,
내 눈에도 그렇게 다 보이는데, 나는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고 분발하게 된다.
사람들도 이렇게 다 아는데, 하나님은 얼마나 더 잘 아실까?


아주아주 오래 전 (기독교 강의를 많이 하시는 교수였는데 강직한 선비 스타일로 보였던 ) 어떤 분이 보스턴에 오셔서 강의하시며, 손을 이마 위에서 흔드시며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신다," 하시며 그런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신다고 하셨다. 우리 이마 바로 위에서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거다.

더 나아가 우리 생각과 잠재의식, brain 과 heart 의 모든 것까지 모두 다 꿰뚫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인간들의 눈과 세상의 법들보다도 훨씬 더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고 계신가..
그런 하나님을 의식하고 두려워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1. 8. 15. 14:12

거룩한 바쁨 카테고리 없음2021. 8. 15. 14:12

 오늘 Encounter with God  의 본문 중 Thessalonians 3:6-15 의 말씀이 새롭다. 사도바울의 편지 중에 이런 내용도 있었구나. 

본문의 관찰 해석은 encounter with god 참고

더 나아가ㅡ 거룩한 바쁨, 세속적 바쁨, 안식/거룩함을 가장한 게으름, 거룩한 안식 등등의 차이는 어떠한가 생각해본다. 

2 THESSALONIANS 3:6–18

6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we command you, brothers and sisters, to keep away from every believer who is idle and disruptive and does not live according to the teaching[a] you received from us. 7 For you yourselves know how you ought to follow our example. We were not idle when we were with you, 8 nor did we eat anyone’s food without paying for it. On the contrary, we worked night and day, laboring and toiling so that we would not be a burden to any of you. 9 We did this, not because we do not have the right to such help, but in order to offer ourselves as a model for you to imitate. 10 For even when we were with you, we gave you this rule: “The one who is unwilling to work shall not eat.”

11 We hear that some among you are idle and disruptive. They are not busy; they are busybodies. 12 Such people we command and urge in the Lord Jesus Christ to settle down and earn the food they eat. 13 And as for you, brothers and sisters, never tire of doing what is good.

14 Take special note of anyone who does not obey our instruction in this letter. Do not associate with them, in order that they may feel ashamed. 15 Yet do not regard them as an enemy, but warn them as you would a fellow beli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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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21. 7. 22. 14:55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카테고리 없음2021. 7. 22. 14:55

최근 본 한 환자가 내게 말했다, "마치 잠수함을 운전하는 것 같군요."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치료하는 내가 그렇게 보였나보다. 

그러면서 가끔은 현미경을 뒤집어서 different view 도 보라고 한 말씀하신다.  그 아이디어가 넘 웃겨서 킥킥 웃다가,  그 advice 대로 꼭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안그래도 내 전화에는 최근 하늘을 찍은 사진이 많다. 화창한 낮하늘, 그리고 상쾌한 밤하늘.

눈을 부릅 뜨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일하고, 각종 스크린도 잘 보기에 눈을 휴식하는 경우가 잘 없다. 눈이 많이 혹사당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눈휴식이 필요한 이들이 무척 많으리라. 눈을 감고 가만히 묵상하듯 있어도 좋지만, 눈에 힘을 빼고 맑은하늘이나 살랑거리는 나뭇잎을 쳐다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작년 9 월 apocalytic 오렌지 빛갈 캘리포니아 하늘을 경험한 후, 맑은 하늘을 참 많이 appreciate 하게 되었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 그 문구가 떠올라서 찾아보니 1990 년 학생 영화란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비슷한 영화라고. 그랬었군. 영화는 안 봤을 테고 신문 광고에서 그 제목을 본 기억이 남아있나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나아지지 않았네... 더 심하면 심해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하늘을 본다.

sky 하늘 도 보고 heaven 하늘도 보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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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