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뉴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는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흘러넘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 보면 인종에 관계없이 모두 목소리를 높이며 애도하고 있다.
그 중에는 흑인 동창들도 있는데 그들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personally 받아들이고 있나 읽으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그런데 피드에 간간히 섞여있는 한국 뉴스나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한국 목사님들 피드를 보면, 전혀 다른 내용들이 올려지는 걸 본다. 그건 당연하다. 한국에 있는 이들이 관심있는 이슈와 미국의 이슈가 다른건 무척 당연하지.
그 divide 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이젠 그전에 비해서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 소속감을 좀 더 느끼는구나 깨닫는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와서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어디에 position 해야 하는지 전혀 아이디어도 없이 살아왔다.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가질 틈도 없이 학업과 삶에 쫓기며 살아왔으니까.
아니, 인터넷 신문을 볼 때는 한국 신문을 더 많이 봤고, 한국 프로그램 비디오를 미국 tv 보다 더 많이 보면서 한국에의 그리움에 사무쳐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아빠가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로 취직해서 올 당시, 나는 아직 학위 논문을 쓰는 중이었고, 이미 동부에 있는 치대들에서 입학허가를 받아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이 아빠가 캘리포니아에 오니까 나도 캘리포니아의 치대에 인터뷰를 하러 왔었다. 샌프란시코의 치대였는데 그 때 인터뷰하는 분이 흑인 여성 교수이셨다.
학업과 육아, 살림에 쫓기며 사회 문제에 관심도 가질 틈도 없이 살아온 내게 이런 질문들을 했다.
"LA 폭동 시절 미국에 있었을텐데, 그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가? 그에 대한 네 의견은 무엇인가?" --- 음.. 그 때 미국에 온지 1 년 밖에 안되었던 고등학생이었기에 별 생각이 없었고 그 후로도 인종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틈없이 살아왔기에, 내 답은 허접하기 그지 없었다.
"미국의 healthcare system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역시 그 문제에 대해서 무지했고 그럴듯한 의견도 없었다.
그러니, 인터뷰 점수가 당연히 나빴을 거고. 지원한 모든 동부 치대들에서는 금방 입학 허가를 받은데 비해서, 샌프란시스코 치대에서는 waiting list 였다. 내 전공분야였던 biomedical research 에 대한 질문을 안 하고, 지원자 특색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희정책이슈에만 대해서 질문한 interviewer 을 내심 질책했다.
한편 그렇게 인터뷰 질문에 나올만큼, 인종/불평등의 이슈와 healthcare system 의 이슈는 미국에서 계속해서 큰 문제였다. 미국 역사 속에 계속해서...
지금 covid 19 시대에 더 불거지고 있다.
나도 그 이슈들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제야 시민다운 시민이 되어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의 아이와, 어린 세대 많은이들과 후대들이 살아갈 땅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이땅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한다.
1990 년대 중후반 '부흥'찬양을 교회들에서 수도 없이 목터져라 부를 때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가사의 "이 땅"은 당연히 한국이거나 미국 내의 한인사회였다. 1997년 말 (우리 결혼식 며칠 전), 그 당시 한국집 근처 온누리 교회에 혼자 가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렸었다. 한국의 외환위기 직후여서였을까, '부흥'을 예배 끝에 부르는데 사람들의 찬양이 무척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보스턴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귀국했던 지체를 우연히 마주쳐서 반가웠다)
최근 며칠동안, 미국뉴스를 접하며 부흥 노래를 기도처럼 절로 떠올리게 된다. (이 찬양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이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밑에 옮겨온 영상의 배경이 그랜드 캐년 등 미국 땅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