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 전인가? 정부와 주정부에서 ADA 와 CDA 를 통해서 마스크를 distribute 했다. 위 사진은 주정부에서 보내 준 분량. ADA 에선 N95 한 박스를 보내줬고. 면허확인 후 배송료만 받고 보내줬다. 수량 제한은 물론있었다.
아.. 그리고 county dental society 에서도 N95 한 박스를 줬었다.
N95 를 받고 얼마나 기뻤었는지 모른다.
당분간 마스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전에는 N95 를 판매하는 곳도 없었지만, 이제는 dental supplier 에서 조금씩 판매한다.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 누군가가 알려주길, 이전에는 N95 한 박스에 12-13 불이었다고. 그런데 지금은 20 개 짜리 한 박스에 150 불이 넘는다. 진품 검증된 KN 95 가격도 대략 그 정도 된다)
1990 년대 후반 같은 교회 (캠브리지, MA) 에 계시던 C 장로님을 약 10 년 후 다른 곳에서 만나 뵌 적이 있다. 아이아빠는 이미 캘리포니아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와 아이는 보스턴에 있던 시절이고 우리는 미국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C 장로님은 여전히 한인교회에 다니고 계셨다.
반갑게 대화를 나누며, 과거 교회생활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억을 나누던 중, 내가 불쑥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 때는 (청년시절의) 우리가 제일 잘 난 줄 알았죠 호호호."
C 장로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선뜻 수긍을 하셨다. "젊을 때는 다 그렇지." ("아니지, 그 때 청년부 정말 대단했지," " 그런 열정의 믿음 아무나 가질 수 있는거 아니지," 뭐 그런식의 말씀이 아니라)
한참 청년부가 뜨겁고 새벽기도가 활발하던 시절, 교회 전체 분위기를 청년부가 이끌어가고 있다고 청년들은 말했었다. 그리고 장로님들 집사님들 어른들도 청년부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그 후 10 년이 지나고 C 장로님과 10 년 전을 돌아보면서, 10 년 전 서툴고 어설펐던 것들이 더 기억났는지 모르겠다.
C 장로님과 회포를 나눈 후, 또 10 년 이라는 세월이 더 흐른 지금이다. 1990년대 후반 같은 청년부에 있던 분들과 작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지금 우리가 그 당시 모 권사님보다 더 나이 먹었어. 이제 청년들이 우리를 보면 그 당시 우리들이 모 권사님 보던 느낌일거야, " 하면서 허허 웃었다.
15 년 전쯤인가, 어떤 수양회에 간 적이 있다. 아이들 보는 일을 도왔는데, 나이 든 집사님들, 권사님들이 오셔서 도와주셨다. 그런데 어떤 교회 리더인 듯한 한 젊은 자매분이 자신의 서너살 되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집사님들 권사님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자매는 큰소리로 "저는 어떠어떠할 때 아이와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등등등 ... 해요," 하면서 마치 연세 든 집사 권사님들 앞에서 가르치듯 얘기를 이어나갔다. 연세 든 권사님과 집사님은 답도 없이 조용히 그 자매분의 얘기를 듣고 계셨다. 많은 일을 겪으셨을 그분들의 시선에서 '살아봐라.. 그게 그렇게 쉬운가...' 하는 속마음이 느껴지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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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대부분은 청년때보다 이론적으로 더 많은 걸 깨우친다.
청년 시절 굳건히 붙잡고 외치던 신념들(신앙?)도 헛점 투성이였다는 걸 꺠닫기도 하다. 그 열정과 순수가 그립기는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지금 청년들의 신앙이나 신념이 이전의 것들처럼 헛점 투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럼 꼰대..)
이론이 전부 다가 아님을, 그 이론이 존재로 integrate 되어지고 삶에서 실천되어지는 것은 그 이론들이 깨우쳐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에너지 (activation energy?)가 드는 도전이라는 걸 배운다. 말처럼 쉽지 않은 것임을....
영화 속 영어를 다 알아듣지도 못하던 시절에도, 그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그 문장을 일기장에 써 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인용문은 CS Lewis 가 실제로 한 말은 아니었던 거 같다. 세월이 지나고 영화를 다시 보니 영화는 CS Lewis 에게 한정되지 않은, 모든 인간이 거치는 성장통을 통한 성장스토리라고 볼 수도 있다. Boy 와 man 이라고 했지만 girl and woman 도 포함하는.
(CS Lewis 의 <The problem of Pain> 이 1941 년 출판되었고 <Grief observed> 가 1960 년 출판되긴 했다.... <Grief Observed> 를 읽으면 <The Problem of Pain> 을 썼던 이성적/논리적 CS Lewis 는 어디있는가 싶긴 하다)
하나님 앞에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걸 surrender 하는 과정, 나의 힘이 빠지고 나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과정이다. 성경 속의 많은 인물들이 그러했듯...
예를 들면 야곱이 하나님(천사)와의 씨름 후 정강이 뼈가 부러져서 절룩거리게 된 후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되었고 등등...
지금 이 시간 2020 년이 하나님을 믿는 많은 이들에게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싶지만... 이 기도 자체가 두려울 정도로 '성장통'은 너무나도 아픈 것이기에 쉽게 기도할 수조차 없다.
그저께인가, 요즘 세상 상황을 두고 기도하는데 (자세잡고 하는 기도는 아니고 화살기도) 하나님께 "이게 뭡니까?" 소리가 절로 나왔다.
NT Wright 이 고대 이스라엘사람들의 기도가 무척 솔직하다 뭐 그런 얘기를 한 듯도 한데, 그런 경지에 이른 건 아닌거 같고 그냥 푸념 수준.
오늘 또 자기 전 지금 막 주기도문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자자 했다
원래 2020 년 올해 resolution 중 하나가 매일 주기도문 기도하며 묵상하자 였다.
2 월 말까지 대충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covid 19 이 닥쳤고 내 묵상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에서 stuck 되어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그 부분을 가장 잘 묵상하고 싶었는데 몇 달 째 소강상태다.
그래도 내 covid 19 praise song playlist 에는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주기도문이 들어있긴 하다.
오늘 자기 전 지금 막 주기도문을 외는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서부터 딱 stuck 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문득 아주 오래 전 내 동생이 한 말이 기억났다.
내가 초딩 3 학년, 동생이 초딩 1 학년일 떄, 어머니께서 교회 중학생 sunday school 선생님을 하셨다.
중등부에서 여름성경학교 몇박며칠 수련회를 갔고 어머니께서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가셨다 (나는 옆 친구집에서 sleep over).
더운 여름 날, 수련회 야외에서 중학생들을 향해, 어머니께서 좋으신 하나님에 대해서 설파하고 계셨나보다.
그런데 옆에 앉아서 듣던 어린 동생이 큰소리로 이랬단다, "우리는 이렇게 더운데, 하나님은 혼자 좋은 하늘나라에 계시고.."
그래서 모두 웃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어머니보다도 이제는 훨씬 나이든 내가 주기도문을 외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는데, 그 당시 초딩 1 학년이었던 동생같은 맘이 확 드는거다. 동생은 그 당시 아주 어렸으니 용서가 되고 귀여웠지만, 나는 나이를 먹을 대로 먹어서는,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계시면서 Covid 19 에 시달리는 우릴 지켜보시만 하시고?' 이런 생각이 확 드는 건 뭔지????
그렇지 않으시다는 거 머리로는 안다.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들의 모욕과 핍박을 감당하시며 십자가를 겪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의 한 복판에서 함께 하시고 도움 주시고 함께 호흡하시는 예수님/하나님/성령님...
그런데도 거기까지는 깊이 묵상을 못해서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는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딴 생각이 드는건지...
그러고 보니 주기도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전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다.
주기도문 내용 중에는 예수님 십자가 사건 얘기도 부활 사건 얘기도 없구나.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셨을 때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궁금해진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햐실 때와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실 때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그 때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 상상해보며, 지금의 푸념과 투정을 회개하고,
예수님의 영으로 기도케 해 달라고 구한다.
그래.. 주기도문 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지이다" 는 인간이 바라는 이상향 - 유토피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본능 (죄성) 은, 교육, 사회적 지위,....... 심지어는 신앙으로도 제어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이토록 그런 일들이 빈번한 것은,
오랫동안 그런 일들이 당연시되기도 헀고,
여러 이유로 기준이 불분명하기도 헀고...
쉬쉬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한 사람보다 다수의 평화를 위해서 평생 상처와 수치를 끌어안고 스스로를 희생한 수많은 '한 사람'들이 있어왔다.
그렇게 지켜진 평화가 거짓일지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대나무숲에라도 속시원하게 한번 외치지 못하고 무덤까지 비밀을 지킨 '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을 거다.
그렇게 희생하도록 몰아가고 억압한이들도 무수히 많다.
사람을 대상화하는 태도
권력 남용,
상대편의 친절을 호감으로 착각하는 병,
자신의 욕망을 읽어내고 스스로의 언행이 미치는 영향을 미리 생각할 수 있는 능력결핍,
불분명한 사회적 기준 속에서 아슬아슬 선을 넘는 언행들,
그렇게 해야만 accept 되어지는 peer pressure,
무지
self control 결핍
등등..
무조건 참는 걸 미덕으로 가르치는 잘못된 교육
추행을 호감의 표현인가 아닌가 혼란스워하게 하는, 틀어져벌린 인간관계의 양상
밝혀내도 소용없다고 아예 포기하게 만드는 권력구조
기타등등
이미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을 무작정 옹호하거나 공격하는 한 사람에의 평가에 집중하기보다는,
systemic problem 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교통규칙, 식사예절, 위생교육 등등을 가르치듯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가르치고,
배우고 훈련되어서 몸에 배어야 하는 것들이 아닐지...
예를 들면, 유치원에서 <둥근 해가 떴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등교 전 세수/양치를 잘 하고 복장 등을 갖춰야 한다는 걸 배우듯 말이다.
최근 뉴스를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국민학교 고학년 때다.
비교적 체격이 컸던 여학생들 4-5 명이 여선생님에게 이렇게 토로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xxx 선생님(남자 선생님)이 자꾸 등도 만지고 여기저기 만지세요.." 그래서 불쾌하니 여선생님께서 그 남선생님꼐 좀 얘기 좀 해 주라는 호소였으리라. 그 얘기를 들은 중년의 여선생님께서 허허 웃으시며 "그건 귀엽다고 그러시는거야," 하면서 얼버무리셨다. 그런데 그 말씀이 어린 나이에 듣기에도 자신없게 들렸다.
학창시절에그런 비슷한 일들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 시대의 "me too" 는 묵살되어지고 때로는 허허 웃어넘겨지기도 했다.
2:arousing or tending to arouse (as by lurid details) a quick, intense, and usually superficial interest, curiosity, or emotional reactionsensationaltabloid news
3:exceedingly or unexpectedly excellent or greatasensationaltalent
대충 보니, 센세이셔널하다는 건 선정적이고 감각적이고 피상적인 것들에 호소하는 의미가 큰 거 같다.
복음 혹은 십자가 사건이 sensational 한가 아닌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에 따라서 다르리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는 고대 신화나 전설정도 일수 있다. 또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 1:18 에 얘기했듯 또 어떤 이들에게는 아예 "미련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혁명적) 능력이다.
정확하게 십자가 사건에의 반응은 아니지만, 좀 황당하고 센세이셔널한 일화가 있다. 일본작가 유키오 미시마의 얘기인데, 그 사람은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성화를 보고 'accident?' - 여기 쓰기 민망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화살을 잔뜩 맞고 순교하는 saint 그림을 보고 그러했는지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을거다. 유키오 미시마에게는 그 saint 의 순교사건이 감각적이고 선정적으로 sensational 하게 받아들여졌나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이 워낙 예술적이고 특출난 사람 - (미안하지만) '별난'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남들과 나눴을지도 모르겠다.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성화를 그린 화가의 의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감상평을 남들과 나눴으리라.
그런데 유키오 미시마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은 신앙을 통해서 감각적으로 고취되는 경험을 구하기도 한다. 기도나 찬양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up 되는 상태를 구한대거나, 자신의 종교적 행위에 도취되거나... 그 정도는 어느 누구나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복음이 sensational 한가 아닌가의 질문과는 별개로,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들 중에서도 센세이셔널한 예화나 표현을 사용하는 이들이 있는거 같다. 지금 막 검색을 해 보니센세이셔널 저널리즘이 있다고 하는데, 기독교에서도 그런 센세이셔널리즘을 일으키려는 지도자들이 있어왔다. 예화나 표현을 그런 종류를 쓴대거나, 아이디어 자체가 센세이셔널 한대거나.
청중에 따라서는 그런 tactic 을 써야 겨우 설교에 집중하는 이들도 있긴 할 거다. 그런데 나는 성향탓일까, 나이탓일까, 성격탓일까 자극적 표현, 센세이셔널한 설교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런 센세이셔널한 예언을 전하기도 했고, 어떤 선지자들은 센세이셔널한 예언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만,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이 그러했기에 그런 '수사법'을 사용한 거 아닐까?
지옥불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자극적' 표현으로 설파한 몇 백년전 설교자들도 있긴 했다.
현대세대에도 그렇게 해야 하나? 적어도 지옥불은 더 이상 안 통하는 거 같다.
만약 시대적 배경에 맞게 이목을 집중받으려면 사진, 소셜 네트워크식 짧은 문구 나 meme 을 적극 활용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복음은 복음 있는 그대로도,
십자가 사건은 그 사건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이고,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능력이고 혁명의 사건인데,
Shelter in Place (SIP) 가 처음 시작될 때 TV 뉴스인가 어디에서 이런 추천을 했다," 이 기간동안 아주 긴 소설인 <전쟁과 평화>를 매일 몇 페이지 읽으라, 그러면 SIP 기간동안 다 끝낼 수 있을 것이고 이 기간이 끝나면 '나는 이 기간동안 '전쟁과 평화'를 다 읽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쉐익스피어는 그 시대 전염병 기간동안 play 를 완성했다는 일화(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지만) 도 있다. 전염병기간동안 위인들이 어떤 업적들을 남겼나를 다루는 소셜미디어 기사도 있었다. 어제 91 세 생일이었던 앤 프랑크는 (전염병 떄문은 아니었지만) 2 차 세계대전 은신생활을 기록한 일기를 남겼고.
나도 SIP 동안 할 것들 리스트는 길게 써 놓았는데 다 해 내지는 못했다. 달성한 것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자잘한 일들이다. 일부는 이미 여기 썼고. 링크1링크 2
베란다의 bougainvillea 는 원래 펴있던 꽃이 모두 다 우수수 떨어지더니, 다시 봉우리가 맺히기 시작해서 이제 모두 다 활짝 피고 있는 중이다. 추위를 싫어한다고 해서 쌀쌀한 밤에는 왼쪽 사진처럼 이불을 덮어준다. 그리고 애호박꽃도 폈고 고추열매도 맺히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들인 노력에 비해선 수확량이 엄청 적을 거 같다. 상추는 관상용이다. 밑동의 잎이 시들어지면 따서 버리고 먹지는 않는다.
이불 덮은 bougainvillea
베란다로 나가는 문 스크린 도어 롤러 교체
플라스틱 바퀴 부분이 다 닳아서 문이 자꾸 문틀에서 빠져나오는 걸 고쳤다. 체격과 힘이 되는 아이아빠는 문이 빠져나와도 그냥 쓱싹 껴서 쓰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니 근본적으로 고칠 방법을 찾자 고심했다.
유튜브 찾아서 보고. 홈디포 가서 사오고, 목장갑 끼고 고쳤다. 문이 좀 해체가 되어서 그것도 다시 맞춰야 했다.
이제는 잘 여닫히고 문이 문틀에서 빠져 나오지도 않는다. 뿌듯.
차고 정리
차고 구석 정리를 했다. Garage shelf 도 여기저기 검색해서 찾아서 홈디포에서 사왔다.
샤워헤드 바꾸기
낡은 샤워헤드를 바꿔줬다. 내가 골라 사오고, 설치는 아이아빠가 했다. 이 정도 설치야 나도 할 수 있지만 그냥 아이아빠가 했다.
변기 수리
집에 있는 변기들이 다들 문제가 있었다 - 물이 다 잘 안 내려가서 여러번 눌러야 한대든가 하는 문제. 아이 방 화장실 변기가 가장 문제가 컸다. Covid 19 이전에는 아이가 기숙사 학교에 가 있었기에 고칠 필요를 크게 못 느끼고 있다가, 아이가 당분간 집에 와서 지내기에, 작정하고 고쳤다.
홈디포를 몇 번을 왔다갔다고 하고 flapper 을 갈아주고 refill tube 위치를 잘 조정해서 고정했고 flapper 줄 길이를 조정해줬다. Refill tube 를 교체했어야 하는데 맞는 사이즈 찾기 어려워서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약간의 '맥가이버'를 해야했다.
수리 후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다. 몇 년은 더 쓰고 새 변기로 다교체할 계획이다.
UV light 소독 박스 만들기
일터에서 쓰는 portable device 가 몇 개 있다. Caviwipe 로 잘 소독해 주긴 하지만 집에서도 한 번 더 소독해 주는게 좋을 듯 해서 UV light box 를 쓰기로 했다.
시중에서 UV sanitizer box 는 100-200 불 정도에 판매하는데 그렇게 fancy 한 거는 필요없다. (이런 종류)
작은 UV 소독 램프를 구입 ($50 range) 하고 플라스틱 박스 안에 tin foil 을 깔아주니 아주 좋다.
창문 햇빛 가리개: 리빙룸에 높은 창문이 몇 개 있다. 채광이 좋긴 하지만 여름에는 덥다. 창문에 필름이 붙여져 있지만 열 차단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시기에 사람을 불러 블라인드를 설치할 수는 없어서 집에 있는 쿠션 베개, 상자들을 이용해서 장식했다. theme 은 christmas 다. cardboard box 에 포장지 붙이고 장식하고. 일단 올해는 이렇게 쓰고 내년 블라인드를 설치해야곘다. 어떤 블라인드가 열차단에 좋은지 틈날 때마다 검색해 보고 있다.
Fluffy Japanese pancake
아이가 해 보자고 해서 오늘 아침 막 해 봤다. 원래 왼쪽과 같은 모양이 되어야 한다. 레서피는 여기 Ring molds 가 있어야 하는데 없어서 cooking foil 로 만들어서 했다. 그런데 batter 를 넣으면서 그 cooking foil mold 가 벌어지는 낭패가 생겼다. 뒤집는 것도 쉽지 않고...
현미경의 eyepiece 와 안경 사이가 faceshield 떄문에 벌어져서 field of view 가 제한되기 떄문이다.
오른쪽과 같은 faceshield 을 하고 치료하니 현미경 포거스 맞추는 것도 어려워서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이렇게 eye protection 이 없이 치료하는 건 covid 19 이전에도 옳지 않았다. 아마도 사진 촬영을 위해서 eye protection 을 안 한듯. (인터넷서치에서 찾은 사진이다)
1 번
2 번
그래서faceshield 를 modify 해봤다. 안경부분을 잘라내고 안경 둘레를 foam으로 막아줬다.
이론이 쉽지, 실제로 foam 을 붙이는 건 쉽지 않았다.
얼굴과 코의 contour 를 고려해서 foam 을 잘라야 하는데
foam 을 원하는 모양대로 자르는것도 쉽지 않고 plastic 에 붙이는 것도 힘들었다.
이렇게 만든 faceshield 를 쓰고 치료할 때 어느 정도 work 하긴 했다.
그런데 불편하고 모양도 맘에 안 들었다.
3 번
그래서 새로운 시도.
안경 위쪽에는 짧은 챙의 visor 를 쓰고
안경 옆쪽에는 amazon 에서 구입한 sideshield 을 하고,
2 번 faceshield 아래 부분을 잘라 뒤집어서 목에 둘렀다.
그렇게 하면 안경 둘레에도 barrier 가 생기고 밑에서 올라오는 aerosol 도 차단될테니.
이건 내일 가서 test 해 볼 예정이다.
일단 모자챙 visor 는 직접 만들어봤는데 짧은 챙이 있는 rain hat 을 amazon 에서 구입해서 배달을 기다리고 있다.
rain hat 은 스프레이 소독해서 계속 쓸 수 있고 모양도 더 이쁠테니까. 내일 테스트 해 본 후에 목에 하는 barrier 도 더 refine 해 봐야겠다.
현미경을 쓸 때 얼굴과 눈을 어떻게 protect 할 것인가는 우리 직종 모든 이들의 고민이다.
어떤 이들은 plexiglass 로 특별제작해서 현미경에 부착하기도 했대는데, 내 work 스타일에 맞는지 검증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유보중이다. 일단 버려도 되는 재료들로 prototype 을 만들어서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요즘 재료 찾는것도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안경도수가 들어간 수영 고글을 쓰기도 한단다. 그렇게 하면 좀 우스울 거 같다. 이미 위와 같은 무장을 하는게 우습긴 하지만.
맨날 이것저것 만들고 뒤집어 쓰고 하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중얼거린다.
그런데 covid 19 pandemic 이 끝나도 이런 종류의 PPE 는 계속 stay 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80 년대에는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치과치료를 했다는데, HIV/AIDS 이후 universal precaution 이 생겨서 PPE/infection control 이 더 강화된 거처럼 말이다.
지금은 손으로 붙이고 자르면서 이것저것 만들어서 테스트 해보는 중이지만, 내게 맞는 스타일을 찾으면 얼굴을 3D 스캔, 디자인해서 3D 프린터로 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건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분야라서디자인하는 법 등을 배워야 하고, 재료들을 어떤 걸 써야 하나 찾아봐야 하고... 일이 많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
(목에 두르는 faceshield 는 이미 시중에 판매하는 중인 거 같은데 얼굴 전체를 덮기에 내 목적에는 안 맞다. 그리고 링크도 지금은 못 찾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