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2

« 2025/2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354

  1. 2020.03.21 Act like you already have coronavirus
  2. 2020.03.19 shelter in place
  3. 2020.03.13 Flattening the curve
  4. 2020.03.07 지금
  5. 2020.02.28 Not a matter of if, but when
  6. 2020.02.09 Waiting expectantly for
  7. 2020.02.03 The Two Popes
  8. 2020.01.27 Longing for Revival
  9. 2020.01.01 2020 Royal Priesthood
  10. 2019.12.24 Christ - the sole Mediator in All relationships
2020. 3. 21. 00:59

Act like you already have coronavirus 카테고리 없음2020. 3. 21. 00:59

Act like you already have coronavirus. (벌써 코비드 19 에 감염된 거처럼 행동하라)


요즘 미디어에서 많이 하는 얘기다

무증상 감염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https://www.huffpost.com/entry/act-like-you-have-coronavirus_l_5e721aafc5b6eab7793fc120



:
Posted by pleasing2jc
2020. 3. 19. 16:29

shelter in place 카테고리 없음2020. 3. 19. 16:29

3/13 금요일 저녁, local dental society 에서 이멜이 오기를 치과병원들이 계속 operate 해도 되는거처럼 이메일이 왔었다. elective procedures 는 리스케줄하라고. 그런데 문장 하나 뿐인 recommendation 이었고  얼마나 기간을 두고  리스케줄하라는 건지 vague 했다.

ADA 와 CDA 에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토/일요일 동안 시시각각 급박히 변하는 뉴스를 보고,  치과의사들 게시판을 오가며 과연 월요일부터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척 고민했다.  게시판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게다가 목/금 high pollen count 로 인해 앨러지 기침이 도져서 더 고민했다. 이 상태로 환자를 보면 안될 거 같아서다. 환자들이 불편하게 생각할텐데, 또 만에 하나 바이러스성이면 어떡하나 염려가 되었다. 매년 봄 앨러지로 고생하긴 하는데 예년같으면  앨러지 기침을 하더라도 입에 목사탕물고 일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는 어떡해야 하나? 각종 가이드라인을 찾아보고 앨저리와 ㅋㅂㄷ -19 증상 차이에 대해서 찾아보고... 잠을 설치면서 고민했다. 


3/15 일요일 정오, 일하는 오피스들에 연락했다. 앨러지인 가능성이 많은 기침이 나는데,  혹시 모르니까 2 주 동안 일을 쉬곘다고. 이런 시기에는 앨러지로 인한 기침이라도 쉬는게 좋을 거 같다고. 


3/15 일요일 밤 11 시 반쯤 (3/15) CDA 에서 이멜이 왔다. 캘리포니아의 모든 치과병원들을  2 주 동안 닫는 걸 (강한 어조로) 추천한다고 연락이 왔다. 아주 응급 환자 외에는 보지 말라고. 


3/16 월요일 정오 쯤 Bay Area  6 개 카운티에 shelter in place 하라는 주지사의 오더가 내려졌다. 

ADA 에서 이메일이 오기를 3 주동안 미국 전체 치과를 닫는 걸 권고했다. (아주 심각한 응급환자만 보라고)




3/13 금요일 떄만 해도, 현재 상황에 맞는 응급환자의 기준이 어떠한가에 대한 vague 하기만 했는데  화/수요일 동안 치과협회에서 제공하는 응급환자 기준이 더 많이 refine 되었다. 치과협회들에서도 다른 정부기관들처럼, 모두에게 낯설기만 한현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 따라서 정책을 refine 해 나가고 있는듯하다. 


그렇게 전체 협회의 이메일이 오니까 맘이 편해지기도 했지만, 지난 주말 동안 혼자서 결정을 내리려고 고민한 시간이 허무하긴 했다. 정말 머리 아프도록 잠도 못 자고 고민했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이런 결정 내리는 것만 해도 그러한데...

지금 최전선에서 일하는 분들, 또 정책을 만들고 주관하는 이들은 얼마나 수고를 하고 계실지...

생각만 해도 숨이 턱 하고 막힌다.

모두를 위해서 많이 많이 기도해야겠다.

될 수 있으면 짧은 기간에 세계 곳곳의 모든 것이 정리되면 좋겠다.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보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며칠 사이에 기침은 좀 더 진정이 되었다. 다른 증상은 없고. 그래도 집에서도 마스크하고 social distancing 을 실천하고 있다. 밥도 다 따로 먹고. 아이도 학교에 다시 갔다 오기도 했고, 아이 아빠는 매년 천식이 있기도 하고.  약 2 주간 이렇게 함께 조심하면, 마스크도 벗고 밥도 같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밖에 나갔다 올 경우에는 (market 등-) 여전히 어느정도 조심해야 할 듯 하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0. 3. 13. 13:41

Flattening the curve 카테고리 없음2020. 3. 13. 13:41

여러 미디어 (소셜 미디어 포함) 에서 많이 보도되고 share 된  Flattening the curve 의 도표.


How canceled events and self- quarantines save lives, in one chart 에서.


여러 source 에 따르면 앞으로 인구의 20-70 % 가 coronavirus 에 감염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인용된 기사에서는 20-60% 다른 곳에서는 70% 까지). 
그걸 전제로 할 때, 지금의 public health  정책은 그 속도를 늦추는데 집중되어있다. 그 background 에는 위와 같은 이유가 있다는것. 
즉 병에 감염될 인구수는 어느정도 일정한데 (위의 두 커브 밑 면적), 그 스피드가 빠르면 health care system 에서 manage 할 수 있는 capacity 를 훅 넘어버려서 기저질환이 있거나 노인들의 치사율과 각종 피해가 커진다는 거다. 만약 그 증가 스피드를 늦추면 환자 수가 health care system capacity 이하에 머물기에 병질환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것. 

어쨌거나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장려하고 학교들도 online class 로 전환하고 교회들도 online 예배로 바꾸고 스포츠 게임과 학회들도 취소되고 -- 그런 과정 중에 있다. 
  

근데 우리 직종은 어찌 될지 모르겠다. 원래부터 워낙 아래와 같은 차림 (PPE) 으로 infection control 에 철저해야 하기에 아주 큰 변화를 줄 필요는 없다. (평소에는 respirator 는 안 쓰고 surgical mask 썼었다)

그렇지만 마스크/장갑/가운/disinfectants (caviwipes) etc 을 구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직장마다 미리 확보해 둔 물량은 있지만, 지금 이런 상황이 어느정도 계속될지도 모르니 앞으로 어찌될지 불확실하다. 또 사람들이  치료 받으러 올지 모르겠다.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니 뉴스와 이메일 체크에 정신이 없다. 

어제  Pandemic 선포이후, 협회 (ADA 나 CDA) 에서는 공식적 이메일은 아직 없다. 이미 지난 한 달 간 이메일이 여러개 오긴 했는데, standard precaution 을 계속 따르고 환자들의 여행 history 와 증상을 스크린하라는 연락이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자금 CDC 와 ADA 가 의논중이라는데 어떤 연락이 오는지 두고 봐야겠다. 아마도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듯 하지만서두. 


아래 그림은 여기서 퍼온 그림





:
Posted by pleasing2jc
2020. 3. 7. 15:27

지금 카테고리 없음2020. 3. 7. 15:27


달 전에 $ 14.70 에 두 박스 구입한 똑같은 제품이  어제 $78.50 였다. 

그나마 이건 어제고 지금은 available 하지 않네 - 아마존에서 막았나보다.

어쨌든 100 불 넘게 벌었다고 할 수 있나? 흠... 물론 이걸 어디 팔아서 이익을 남길 생각은 전혀 없다.  


며칠 사이에 이 지역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마스크 한 사람들은 드문드문 있을 뿐이지만, (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하지 말라 그래서 그런지)

지난 월요일 아침부터 출근 길 근처 코스코 주차장은 차들로 붐볐고, 화장실 휴지와 bottled water 을 카트에  가득 채운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한국마켓에 라면은 많은데 쌀은 많이 팔린 모습이었다. 카운터에 여쭤보니 쌀은  들어올 거라고 하신다.


bottle water 하고 코스코 휴지가 품절되는 건 왜 그럴까 궁금하긴 하다. 다른 마켓이나 drug store 에는 휴지가 그대로 있다.

코스코 휴지에 뭔가 특별한게 있나? 물론 unit price 비교하면 훨씬 더 저렴하긴 하겠지만, 다른 곳 휴지에 비해서 코스코 휴지만 동나는게 왜 그럴까?

바이러스 떄문에 수도가 끊기는 것도 아닌데, 물을 왜 그렇게 많이 사 갈까? 수도물에 바이러스가 섞이는것도 아니고, 아니면 수도국(?) 사람들이 아프면 수도가 끊길  가능성이 있나?  문화적 시대적 차이 떄문에 내가 생소하게 느끼는건가? 이전 한국에서는 수도물 (보리차)을 끓여서 마시기도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bottled water 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습기용 distilled water 를 몇 통 사놓았는데, 위기상황에는 우리도 그 물을 마셔야하나? 한다.


H1N1때도 이정도는 전혀 아니었는데, 지금 상황이 생소하다.

전염병 대비라기 보다는 snow storm 또는 지진 등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중국우한에서의 폐렴 뉴스가 나왔을 때는, 폐렴 증상이 무척 심하다기에 어느 정도 panic 하긴 했었는데,

몇 주동안 뉴스를 계속 듣다보니 피로도가 커지고 있다. 


그래도 계속 조심해야지.  미리 (쓸만큼만) 구입해놓았던  hand sanitizer 와 위의 wipe 을 듬뿍듬뿍 쓰고 있다.

무증상상태에서 다른 이에게 옮길 수 있다기에.. 이미 내게 균이 있는건 아닐까?  나도 모르게 underlying condition 이 있는 이들 등에게옮기는 이가 될까? 조심한다.


계 경제에의 여파가 크다니, 일반사람들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여기저기 찾아보게 된다.

지금 이 시간의 의미가 뭘까? 앞으로 세계는 어떻게 변하게 될지?

한 시민으로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데,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지금 어떨지. 


아픈 사람들, 이 상황을 제압하기 위해 애써서 일하는 분들, 이미 경제적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분들... 떠올리며 기도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0. 2. 28. 13:54

Not a matter of if, but when 카테고리 없음2020. 2. 28. 13:54

CDC 가 미국 내에 코로나 바이러스 퍼지는 것이 not a matter of if, but when 이라 했다. 

중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나라들같은 outbreak 들이 미국에 일어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뉴스 업뎃에 더 각별히 신경쓰고 조심하게 된다.

한국의 상황이 걱정이 되기도 하고.


2008 년 초 겨울, 한국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옆옆자리에 앉은 아픈 승객에게서 옮은 독감을 무척 심하게 앓은 경험도 있고, 

(목도리로 코와 입을 가리고 손을 씻었어도 소용없었다)

2009 년  보스턴,  H1N1 flu outbreak  당시 치대가 열흘동안 휴교했고, 그당시  학교사람들에게 돌리는 역학조사 전화를 받은 기억도 있다. (누구를 만났나? 어디를 갔나?)   활발한 social life 의 '젊은 학급친구들' 에 비해, 아이엄마였던 나는 집/학교/아이 픽업 단순한 동선만 있었기에 역학조사 전화가 수월히 끝났었다. 다행히, 나도 아이도 H1N1 flu 에는 안걸려서 휴교한 열흘동안 마침 벚꽃이 만발하던 보스턴에서의 마지막 봄을 즐겼었다. 


보스턴도 그렇지만 Bay Area 기 워낙 diverse 하고 traffic 이 많은 곳이니 조심하게 된다.

그리고 2009 년과는 달리 지금의 내 동선은 워낙 복잡다난하기에 (일터),혹시라도 감염이 되면 안되기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중국발 뉴스가 처음 나온 즈음에 dental supplier 에서 마스크 몇 통을 주문했는데 몇 주만에 배달받았다.

일하는 곳들에 가면 마스크는 많지만, 개인 용도로 쓸 것들을 따로 주문했다. 

local store 들은 물론이고 인터넷에서도 이미 몇 주 전부터 품절상태였기에 배달이 몇 주 delay 되었다.  

마스크 한 통과 hand sanitizer 을 이웃 할머니에게도 나눠드렸다.


마스크 availability 와 긴박한 뉴스에 반해, 이곳 landscape 은 다른 때랑 크게 다름없다. 마스크 쓴 사람들도 아주 드물고 - asian marker 에 가면 드문드문 있고. 음식 등을 사재기 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도 뉴스에 보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2 주 정도의 식량과 물을 준비해두란다.  


얼마전 waiting expectantly for 라는 글을 아래 썼는데,

이건  예수님도 아니고 바이러스가  not a matter of if, but when 이기에 대비해서 준비해야한다니... (오호 통재라..)

이런 outbreak 같은 건 전혀 기다리고 싶지 않다. 


이미 이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들과 한국과 다른 나라들,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기도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0. 2. 9. 03:49

Waiting expectantly for 카테고리 없음2020. 2. 9. 03:49

1. 국민학교 5-6 학년 교회 수련회에서 마태복음 25: 1-13  에 관한 극기훈련 (혹은 상황극?) 을 한 적이 있다.  등불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라려야 했던 처녀들 비유처럼,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불시에 오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은 안 잤고, 한두시간 후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announcement 가 나왔고, 아이들은 부리나케 방에서 뛰쳐나가서 '예수님'을 맞이하러 갔다. 그런데 그 커트라인이 많이 높았던게, 나는 풀러진 신발끈을 묶느라고 몇 초 더 늦었을 뿐인데, 내가 거기 도착했을 때는 '문이 닫혀버렸었다.' 

그게 뭐라고 많이 속상해서 합격못한 친구들과 투덜거렸던게 기억난다, "잠이 들어서 못 일어난것도 아니고 신발끈 묶는라 몇 초 늦었는데 그것도 안 봐주냐?" 등등.  또 친구들에게 얘기는 안 했겠지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당첨?된) 누구누구보다 더 모범생이고 공부도 잘 하고 선생님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착한 아이니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으면 천국에 꼭 갈 수 있을거야."

별 것 아닌 어린 시절 극기훈련인 거 같지만, 몇 년 후 대학생이 되어 예수님을 영접할 때 위의 경험이 기억났다. 3 대째 모태신앙으로 대학생이 될 때까지 교회는 계속 다녔으면서  은혜와 구원이 뭔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선행과 자기의가 신앙이라고 생각했었다는 걸 꺠달았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예수님의 은혜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아직 긴 여정 중이다. 


2. 작년 말 QT 말씀 본문에 다시  열처녀의 비유가 나왔다. 준비하고 깨어있는 삶에 대해서도 묵상했지만,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곰곰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3. 그리고 또 다른 QT 본문에서 하나님꼐서 솔로몬에게 한 가지 소원을 묻는 장면이 나왔다. 내가 솔로몬이라면 뭘 구할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봤다.

4. 심사숙고 후에 내린 결론은, 깨어서 기다려야 하는 한가지 소원은 "예수님 빨리 오세요," 여야 하지 않을까 였다. (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이 땅에 임하는 날,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 그 날. 

----  흠.. 출제자가(하나님께서) 원하는 '정답'은 뭘까 고려한 답이라고 할 수도 있다. 

5. 어찌 보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이래 (대학생 시절 이래)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온거나 마찬가지다. 모든 크리스챤들이 그러하리라.

6.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라는 뉴스에 대해서, 일터의 한 라티노 계열 사람이 "God is coming" 농담한다, 그러니까 마침 옆을 지나가던 중동계 사람이 "ooo (야), STOP preaching in front of the patients" 라 받아친다. 그 상황이 웃겨서 한참 웃었는데, 그처럼 기독교에서 예수님(하나님)께서 언젠가 다시 오신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세계관이다.

7. 물론 2000 년 전 예수님께서 already 의 세계를 여셨지만 not yet 의 삶을 살아가면서, 기다림과 인내는 크리스챤 삶의 자연스런 모드다. 



8. 어떤 기다림인가?

9. 1996 년인가 1997 년인가, 보스턴에서 다니던 한인교회에 한참 새벽기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때, 새로 부임하신  청년부 목사님께서 누가복음 2 장의 시므온 (Simeon) 과 안나 (Anna) 에 관한 설교를 하셨었다. 그 전까지 크게 주목하지 못했던 인물들인데, 한 설교를 다 할당해서 그들을 조명하시니 신선해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중 안나라는 인물의 삶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긴 세월동안 성전을 떠나지도 않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예배하던 인물. 그렇게 기다린 끝에 아기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10. 누가복음 2 장의 본문을 영어 the message 로 보면:

In Jerusalem at the time, there was a man, Simeon by name, a good man, a man who lived in the prayerful expectancy of help for Israel.....

 At the very time Simeon was praying, she showed up, broke into an anthem of praise to God, and talked about the child to all who were waiting expectantly for the freeing of Jerusalem.


Prayerful expectancy  그리고 waiting expectantly, 즉 expectancy 라는 표현을 쓴다. 


11. Expectancy 는 좀 낯선 표현이다. 평소 expectancy 라는 말은 잘 안 쓰고 expectation 을 더 많이 쓰는데 한국어로는 둘 다 "기대"라고 번역된다.  그 두 단어의 차이에 대해서 <Longing for Revival>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져있다. 책 본문을 옮겨오면:


Expectaions demand a certain result; expectancy trusts and hopes. Expectations create anger and disillusionment in our faith when they aren't met; expectancy is an openness to any outcome God desires. Expectations force God into a box to act as we want; expectancy allows God to be God in our lives, acting on his own will. Broken expectations, on their own, lead us to despair; expectancy takes our broken expectations back to God to rebuild our faith. The crisis gives us an opportunity to relinquish our expectations so that expectancy can grown in our soul.  (p53, Longing for Revival) 


러니까 인간이 원하는 모습의 것들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긴 모습이라 할 수 있겠지. 책에서 "Surrender is the essential posture (p54)" 라 한다. 


12. waiting expectantly  의 모습의 근본은 하나님께 surrender 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인간이 그리는 예수님의 재림이던, revival 이건 무엇이든지간에의 expectation 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들을 기다리는 것인가보다.

기다림의 자세는 waiting expectantly/surrender 가 근본 foundation 이지만 그 기다림이 manifested 되는 모양은 여러가지다. Anna 처럼 성전에서 기도/예배/금식하며 기다릴 수도 있고 히브리서 11-12 장의 믿음의 조상들의 모습일 수도 있고 사도바울이나 히브리서 12;1-2 장처럼 믿음의 경주를 뛰는 전투적 모습일 수도 있을테고.



13. 큰 천재지변이나 큰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위의 라티노 계열 coworker 처럼, 말세라고 또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농담(?) 하기도 하지만 에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천년후가 될지 만년후가 될지 언젠가 될지 기약이 없다. 

14. 그런 가운데 <Longing for Revival> 에서 revival 을 longing 하는거처럼, 갈망하게 되는 것은 "메마른 땅에 단비와 같은 은혜" 일텐데...  <Longing for Revival> 에서는 "breakthrough" 라는 표현을 쓴다.  (outpouring (of) grace, ourpouring (of the) Holy spirit, 부흥, breakthrough, 하나님의 임재, 기타등등 결국 다 같은 현상? 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 아닐까? )

 

15. "단비와 같은 은혜" 조차 expectation 이 아닌지. 메마른 은혜도 있는거 아닌지 --  십자가를 치열하고 잔인하고 아픈 은혜라 할 수 있을까?

16. 또한 2000 년 전 오신 예수님도 그 시대 사람들이 기대 (expectation) 하던 메시야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지...


16. 결국 집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실 것들에 대해서 expectation 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기다리며 깨어있어야 하는 거구나.  열처녀 비유에서처럼. 

17. 그런데 지금 곰곰 생각해 보니, 2000 년 전 이미 오셔서 새 세상을 여신 예수님도 깊이 알지 못하면서 더 "큰" 것만을 바라는 거 아닌가 자각한다

18. <Longing for Revival> 에 2000 년 전 오신 예수님에 대해 써 놓은 다음 문장이, 거의 1 주일간 내 존재 안에서 resonate 했었다.

Heaven broke through (p33) 

헉.. 


19. 그래, 물론 앞으로의 은혜들도 약속된 것들이고 믿는 자로서 마땅히 expectantly 기다려야 하지만, 이미 부어주신 엄첨난 은혜를 제대로 깨달아가는 것도 어마어마한 복 (heavenly blessing) 이구나 깨닫는다. 

20. 그걸 제대로 깨달아가는 여정이 breakthrough 의 나날인지도 모르겠다.

.

.

.


21. 조금은 지치는 일상을 살아가며 이렇게 waiting expectantly for 하려고 하루하루 struggle 하고 있다. 

(Hope is a fuction of struggle - Brene Brown, Daring Greatly - cited in <Longing for revival>, p 35)

:
Posted by pleasing2jc
2020. 2. 3. 12:33

The Two Popes 카테고리 없음2020. 2. 3. 12:33



Two Thumbs up.


왼쪽이 공식 포스터.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이미지 중 오른쪽 장면이 맘에 든다. 

영화의 줄거리가  fiction 이라는 사실이 무척 아쉬웠다.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라틴어, 약간의 독일어가 뒤섞여서 나온다.

자막이 꼭 필요하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0. 1. 27. 14:55

Longing for Revival 카테고리 없음2020. 1. 27. 14:55






지난 7 월 pre-order 해서 올해 받은 책. 

부흥/Revival 에 관한 책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 책이 대표적인데, 아무래도 그 분의 책은 그 시대 스타일이고 ,이 책은 오늘날의 문체와 구성이다. 

그래도 두 책이 말하는 부흥의 기본적 특성들은 일치하겠지.


저자 중 한명 (J. Choung) 이 한국계다 보니, 평양대부흥 등의 역사를 소개한다. (선대 어른들이 그 부흥의 영향을 받아서 교회도 세우고 했다고) 

부흥기도와 부흥회가 끊임없던 미국 한인교회에서 성장하면서 부흥에 대해서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던 저자가  시각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지금을 굳이 오른 쪽 도표에 끼어맞추자면 어디쯤일까 생각케 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20. 1. 1. 17:01

2020 Royal Priesthood 카테고리 없음2020. 1. 1. 17:01

2020 년의 내 키워드는 Royal Priesthood 로 정했다.  


밑에 옮긴  1 Peter 2: 9 에 royal priesthood 라는 것만 쏙 뺴놓기에는, verse 전체가 주옥같은 하나님 말씀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올해의  journey 에서 맞닥뜨릴 것들이 단어 하나나 성경 한 구절 한정되지는 않으리라. 

(그 외 소소한 개인적 resolution 들은 몇 있긴 하다. 예를 들면 spanish 배우기 등등)


1 Peter 2:9 English Standard Version (ESV)

But you are a chosen rac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a people for his own possession, that you may proclaim the excellencies of him who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marvelous light.


A new way of being human (<= The Day the Revolution Began 책에서 쓰인 phrase)

The biblical vision of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 "royal priesthood" vocation, is more multidimensional than either of the regular alternatives. To reflect the divine image means standing between heaven and earth, even in the present time, adoring the Creator and bringing his purposes into reality on earth, ahead of the time when God completes the task and makes all things new. The "royal priesthood" is the company of rescued humans who, being part of "earth," worship the God of heaven and are thereby equipped, with the breath of heaven in their renewed lungs, to work for his kingdom on earth. The revolution of the cross sets us free to be in-between people, caught up in the rhythm of worship and mission.  (p363 The Day the Revolution began by NT Wright)



지금까지 들은 설교들

Real Friendship and the Pleading Priest 

왕같은 제사장의 특권 

하나님의 형상과 다스림 


:
Posted by pleasing2jc


“[Jesus] stands between us and God, and for that very reason he stands between us and all other men and things. He is the Mediator, not only between God and man, but between man and man, between man and reality. Since the whole world was created through him and unto him (John 1:3; 1st Cor. 8:6; Heb. 1:2), he is the sole Mediator in the world...

The call of Jesus teaches us that our relation to the world has been built on an illusion. All the time we thought we had enjoyed a direct relation with men and things. This is what had hindered us from faith and obedience. Now we learn that in the most intimate relationships of life, in our kinship with father and mother, bothers and sisters, in married love, and in our duty to the community, direct relationships are impossible. Since the coming of Christ, his followers have no more immediate realities of their own, not in their family relationships nor in the ties with their nation nor in the relationships formed in the process of living. Between father and son, husband and wife, the individual and the nation, stands Christ the Mediator, whether they are able to recognize him or not. We cannot establish direct contact outside ourselves except through him, through his word, and through our following of him. To think otherwise is to deceive ourselves.

But since we are bound to abhor any deception which hides the truth from our sight, we must of necessity repudiate any direct relationship with the things of this world--and that for the sake of Christ. Wherever a group, be it large or small, prevents us from standing alone before Christ, wherever such a group raises a claim of immediacy it must be hated for the sake of Christ. For every immediacy, whether we realize it or not, means hatred of Christ, and this is especially true where such relationships claim the sanctions of Christian principles.,,

There is no way from one person to another. However loving and sympathetic we try to be, however sound our psychology, however frank and open our behavior, we cannot penetrate the incognito of the other man, for there are no direct relationships, not even between soul and soul. Christ stands between us, and we can only get into touch with our neighbors through him. That is why intercession is the most promising way to reach our neighbors, and corporate prayer, offered in the name of Christ, the purest form of fellowship.”


― Dietrich Bonhoeffer, The Cost of Discipleship (Discipleship and the individual 챕터 에서)


<God, Neighbor, Empire> 책에서 설명된 관계성 (relationality) 의 하나님과, 드라마 <ㄷ백꽃 필 무렵> 에 나오는 마을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떠 올리게 된 본훼퍼의 글. 


예수님께서 모든 관계의 mediator 가 되신다는 것.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과 reality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모든 관계의 mediator 가 되신다는 건, 예수님께서 모든 것의 중심, 즉 주인이자 왕이시라는 사실과 통한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mediator 가 되지 않는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한 배를 탄 한 운명 공동체이거나, 아주 친밀한 공동체일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신앙 공동체는 아닐 수도 있다. 

--- <God, Neighbor, Empire> 책에서는 이웃이 된다는 것에는 친밀감보다는 같은 운명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관계성의 하나님 안에서" 라는 조건을 내포하고 있는 거겠지. 

<ㄷ백꽃 필 무렵> 의 마을의 예를 들자면, 서로의 집에 뚝배기(?) 가 몇 개인지 서로 아는 친밀감의 공동체보다는, 남자 주인공 어린 시절, 이웃 아주머니들이 다 함께 그를 키운 거나 다름없다는 운명 공동체가 더 이웃다운 걸까?

물론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예수님께서 mediator 가 되신 관계 속에서 그래야 하는 거겠지.


 

어쩄거나,

하나님의 공동체 밖에서 한 개인이 홀로 생존하거나 성장/성숙할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않은 개개인들이 모인 공동체는 생존하거나 성숙/성장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위 본훼퍼 글의 마지막 부분 - Christ stands between us, and we can only get into touch with our neighbors through him. That is why intercession is the most promising way to reach our neighbors, and corporate prayer, offered in the name of Christ, the purest form of fellowship. 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
Posted by pleasing2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