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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Journey Together 전체 보기'에 해당되는 글 354

  1. 2019.08.04 "Waters to Swim in"
  2. 2019.07.18 useful~
  3. 2019.07.14 속성 욥기
  4. 2019.07.03 약속의 앞자락, 약속의 끝자락
  5. 2019.07.01 hi angel
  6. 2019.06.25 Demanding God or just Demanding
  7. 2019.06.25 transparency and integrity
  8. 2019.05.31 뒤늦게 읽는 책
  9. 2019.04.28 알곡과 가라지
  10. 2019.04.22 부활절
2019. 8. 4. 01:06

"Waters to Swim in" 카테고리 없음2019. 8. 4. 01:06

사도바울은 신앙의 journey 를 운동경기에 많이 비유했다.   고린도전서, 디모데 전후서, 유다서 등에 그런 비유가 나와있다. 

사도바울 전기 영화 중 2013 버전 의 초반에 보면 사도바울이 씨름같은 운동을 즐긴 걸로 묘사된다.  사도바울의 성격과 삶은 프로운동선수나 전사와 같이 치열하다.  차나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선교여행을 다녔고 핍박받으며 매도 맞고 감옥에도 갇히고 도적도 만났고 풍랑도 만나며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그런 사도바울이 "straining forward (Phil 3:13)"  등  '인간적 노력' 넘치는 듯한 표현을 쓰는 것도 이해가 된다. 아무나 사도바울을 흉내내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는 NT Wright 도 "Everywhere Paul went, there was a riot; everywhere I go, they serve tea, " 라 한다. (correction: 후에 찾아보니 NT Wright 이 스스로에 대해서 한 말이 아니라 어떤 bishop 이 한 말이라고. NT Wright 이 자주 인용한다)



직업병과 fall 로 인해 허리+다리가 많이 불편하던 지난 5 월, QT 본문 중  고린도 전서 9:24-27 QT 본문을 읽다가 빵 터졌다.

2Do you not know that in a race all the runners run, but only one gets the prize?Run in such a way as to get the prize. 25 Everyone who competes in the games goes into strict training. They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not last, but we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last forever. 26 Therefore I do not run like someone running aimlessly; I do not fight like a boxer beating the air. 27 No, I strike a blow to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 (1 corinthians 9:24-27)


걷기도 앉기도 불편한 몸으로 일상도 겨우겨우 소화해내고 있는데, 운동선수에 비교되는 믿음의 경주라니요? strict training 이라니요? ..  "하나님 절 놀리시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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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 디모데 전서가 QT 본문이었다. 역시 운동에의 비유가 섞여있다. 디모데서를 디모데 또래 20 대 초반에 읽는 느낌과 40 대  중후반에 읽는 느낌은 무척 다르다.  어릴 때는  사도바울 디모데에게 "fight the good fight of faith!" 하면, 덩달아 의기충천했었다.   


40 대 중후반, 지금은  "the good fight of faith" 가 뭔지 잘 모르겠다. General 한 믿음의 싸움이 아닌 더 specific 한 의미에서 그러하다.  사도바울처럼 "fight the good fight of faith" 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할 나이일텐데.... 디모데나 사도바울이  싸워야 하는 싸움은 뭔가 분명했는데, 21 세기 Bay Area 에서 나는 어떤 싸움을 싸워야 하지?  믿음의 싸움은 종류별로 지척에 널린 듯 한데,  무엇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싸움인지  모르겠다. 

그럴 때는 그냥 주신 자리에서 순종하며 최선을 다 하는건데, 몸부터가 예전같지가 않다. injury 와 직업병 탓도 있지만, 회복이 더딘거 보면 나이탓도 크다. 


어쩄거나 몸을 회복하는게 우선이기에, 마사지도 받고 스트레칭도 하고 수영도 하고 있다. 


어느 주말 아침 수영장에 갔는데, 내 옆 레인에서 열심히 수영하는 여성분이 눈에 띄었다. Tilda Swinton 같은 포스의 분이셨다. 40-50 분 이상을 쉬지도 않고 멋지게 수영하시는 에너지 넘치는 분이셨다. 수영을 마치시고 물 밖에 나가셨는데, 헉... 몸피부가 쪼글쪼글하고 등이 살짝 굽은 노인이시다.  물 속에 계실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 


주의를 기울이니 그런 노인분들이 꽤 많이 보인다. 물 밖에서는 등도 굽고 걸음도 절름거리는데 물 안에서는 물개같으신 분들. 

 청년이 아닌 사람들도 물 속에서는 '청년' 이 될 수 있다니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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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어찌하다보니  에스겔서 47:1-12 와 그에 대한 Charles Spurgeon 의 설교 "Waters to Swim in" 을 읽게 되었다.

 Charles Spurgeon 은  "Waters to Swim in" 이라는 문구를 반복하며  에스겔서 47:5 설교를 풀어나간다.  믿음의 성숙과정을 수영에 비유하기도 한다.

에스겔서 47:1- 12 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 점점 더 깊어져서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강이 되어 Dead Sea 조차 fresh 하게 만들고 온갖 물고기와 과일나무가 풍성하게 자라게 한다. 


 생명의 강과 같은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기도하게 되는데....

요한복음 7:37-39  을 보니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서는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단다.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막 흘러나오고 그 강에서 수영하는 이미지가 우습다.

사도바울이 푯대를 향해 뛰어가던 그 열심으로 수영하는 중장년이라.. 배에서는 생수의 강을 뿜어내며, 그 강가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재미있군. 

결국 그 생수의 강이란 예수님께서 흘러나오는 것일텐데 (성령님)... 



척박한 광야를 터벅터벅 걸어 가는있는듯한  이 시간 --- 

예수님의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시간이 오게 되길 간구한다.

청년들은 물론이고 청년의 때를 지난 많은 이들도 그 생수의 강을 경험하는 시간이 오게 되길 기도한다. 

흐려보이기만 하는 푯대가 더 확실하게 보이고 그 푯대를 향해 힘차게 수영해나갈 수 있는 시간이 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힘겹게 수영하는 것이 아니라, 생수의 강에 번성하는 물고기 등 생명체와 나무들과 함께 즐기면서...


때까지는 훈련이닷!


(몸은 여전히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회복된 편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점도 많다 - 잠이 많이 준 것 비롯해서.   좀 피곤한 아침,  그간의 묵상을 정리하며 힘낸다. 말씀으로 힘과 소망 주시니 생명수 맞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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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9. 7. 18. 11:53

useful~ 카테고리 없음2019. 7. 18. 11:53



the Bible Project 의 위와 같은 유튜브 클립들 잼있다 (뒤늦게 발견). 도움도 많이 되고. useful 자료들이 정말 많구나. 


요즘은 쉬고 있지만 교회 소그룹 모임에 나갈 떄 보니까,

교재에 관한 비디오 시리즈를 함께 보고 discussion 하는 형태를 많이 취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방법도 이해가 된다.

예습도 제대로 안 해가는 상태에서 엉뚱한 discussion 을 하고 엉뚱한 결론을  낼 가능성도 있는데

검증된 자료들을 보면서 foundation 을 확실히 하고 그 위에서 discussion 을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듯 하다.


위의 Bible Project 에 관한 리뷰들 (나중에 읽어보자 - 지금은 일단 올리고). 

 

https://au.thegospelcoalition.org/article/review-bible-project-brilliant-flawed/

https://www.christianitytoday.com/ct/2019/april/bible-project-tim-mackie-jon-collins-scripture.html


어쨌거나 각종 책들의 개요 등을 대충 짚어보고 지나가는데는 도움이 되는 channel 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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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9. 7. 14. 02:18

속성 욥기 카테고리 없음2019. 7. 14. 02:18

7/1 부터 오늘까지 Encounter with God 로 욥기 QT 를 시작했다.

워낙 긴 책 중 몇 챕터만 뽑아놓은 QT 였고 휙 읽고 말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이전에 욥기를 읽을 때는 항상 내 상황이 안 좋았기에 욥에게 감정이입해서 읽었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1998 년 여름 즈음인가 욥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QT 했었다. 무척 어려운 책이었다. 그 당시 내릴 수 있던 결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자였다. 그걸 실천하는 것도 어렵다. 그 QT 이후 지난 20 년을 돌아보니 나의 좌충우돌 속에서도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본다.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기도한다. 

5 년 전  슬픔/그리움/황망함/상실감/분주함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후, 한국집으로 돌아가 현실을 마주하며 정원을 거닐다 갓 태어나서 눈도 못 뜨는 야생 아기새를 봤다. 욥기 마지막 부분의 하나님이 떠올려졌다. 

 

이번에는 좀 더 객관적으로 읽었다고 해야 하나? 정말 어려운 책이라는 걸 다시 발견한다.

속성으로 읽어서는 안되는 책. 


가볍게 읽었지만 그래도 새롭게 다가오는 몇가지를 기록한다 


(1) 41 장에 붙은 Encounter with God 제목처럼 The Supreme Otherness

욥기의 마지막 부분은 가장 인간다운 (인간스런) 인간모습의 욥과 가장 '신'다운 모습의 하나님의 Encounter 인 듯 하다. 


(2) 흔히들 욥기를 예수님 십자가 사건의 shadow라고 한다. 그렇다면 십자가 위의 예수님 안에서  가장 인간같은 모습의 인간과 가장 '신'다운 모습의 하나님 사이의 벽이 허물어져서 '하나'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 분이 예수님이시다. 


(3) 욥기 41 장 마지막 부분: 하나님께서 욥을 회복시켜 주시며 다시 일곱 아들들과 세 딸을 주셨다는데, 일곱 아들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데, 세 딸의 이름은 써놓았다..    그리고 딸들에게도 아들과 같이 inheritance 을 주었다고 명시한다. 왜 굳이 그걸 써놓았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시대에는 드문 일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 딸들이 너무 아름다운 여인들이었기에, 저자도 흑심을 품었기에 그 딸들의 이름을 써 놓았는지도 모르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  그저 그 전에는 간과했던 부분이다


(4) 욥기를 쓴 저자가 누군가 불분명하대는데, Psalm 88 을 쓴 이가 저자라는 설도 있다고. 그게 사실이건 말건 시편 88 편도 함께 읽어봐야겠다.


(5) 이건 번외: 어쩌다 보니 욥기 QT 하는 기간에 아모스서를 함께 읽었다. 욥과 같은 의인의 고난도 있긴 하겠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하나님을 잘못 예배하고 있던) 죄를 저지르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연단으로서의 고난도 있다는 것. . 욥에게 엉뚱한 말을 하던 욥의 세 친구같은 이들도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따끔한 말을 해 주던 선지자들도 있다. 시대와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분별력이 필요하다


(6) 욥기의 happily every after 같은 결말은 참 유혹적이다... 기복신앙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그보다는 하나님께 촛점을 맞춰야 한다. 약 4000 년 전 족장시대가 아니라, 21 세기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회복은 뭘까? 



이번 주말에는 욥기와 아모스를 좀 더 깊이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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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옛 일기장을 뒤적거리다 저 밑의 저런 엔트리를 봤다. 2006 년 5 월. 이 때는 치대 1 학년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다. 이런 QT 를 했는지 학교 소그룹 모임에서 뭘 나눴는지도 잊고 있었다. 

이 때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QT 하며 히브리서를 떠올리지 않았나보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이삭과 이스마엘 두 명에 한정되지 않았다는걸, 불과 2 년 전에야 QT 하면서 발견했다.  

현재의 QT 도 글들도 그렇게 오점이 많고 불완전하지만, 부족한대로 그냥 QT 하고 그냥 써내려간다. 배움의 과정이고 긴 여정이니까... 내가 어디 가서 가르치거나 주장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설교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인 차원의 끄적거림이니.


하나님 나라의 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지금은 약속의 앞자락이 아니라 약속의 끝자락이라고 볼 수 있겠지. 하나님의 약속 자체셨던 예수님께서 오셔서 희미하던 것들의 뚜렷해졌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already 이뤄진 시대. 

하지만 여전히 Not Yet 의 realm 안에서 그 약속을 모든 영역에서 이뤄주시길 기도하고 있고, (혹은  세세한 영역의 약속들이 뭔가 여전히 파악하고 있고...)  언젠가는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는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이다 - 그리 해 주시길 기도한다.  히브리서 11:39-40 처럼  믿음의 조상, 신약시대 사람들... 또 우리 세대 모두, 전 세대를 꿰뚫는 역사를 토해서,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들을  완성해나가시는 하나님의 약속. 

39 These were all commended for their faith, yet none of them received what had been promised, 40 since God had planned something better for us so that only together with us would they be made perfect. (Hebrews 11:39-40)




2006 년 5 월 ========================================

아브라함에 대해서 QT 중이다. 지구 상위의 먼지와도 많고, 하늘의 별과도 많은 자손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 이삭도 아주 나이 들어서야 얻고...그가 이 생에서 본 자손은 이삭 한 명 이었던 같다. (이스마엘도 있지만 예외로 치고)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져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여러모로 정말 많다...
 
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란것... 어쩌면 이 생에서 그 약속이 이뤄지는 걸 내가 볼 수 있는 만큼은,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내 후대에도 계속해서 하나님께선 그 약속을 이뤄나가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어찌보면 좀 아쉬운 일이다. 이 생에서 그 약속들이 이뤄지는 걸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나는 거 사실이다.
 
흠.. 다시 한 번 촛점을 하나님의 purpose 에 맞추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뤄나가시는 큰 그림 속에서
난 그저 그림을 이루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것. 학교 소그룹 모임에서 얘기되어졌듯, 내가 주연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께서 주인공이시고  난 그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내지 소품이라는 것...
나에게 주어진 role 을 잘 소화해 내는 것이  내겐 가장 큰 기쁨이 된다는것. 
 
미국 첨 올 때 했던 기도들, Christian 이 첨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들, 그 후의 삶 속에서 하나님꼐서 약속해 주신 것들... 몇 가지 예를 들면, 보스톤의 부흥, 언젠가 내가 다니고 있던 교회들의 회복 등등과
내 개인적인 차원의 소망들
 
지금 그저 그 약속들의 가느다란 앞자락들을 보고 있는거 같다. 아브라함이 이삭 한 명이 태어나길 기다렸듯이,
혹은 이삭 한 명을 바라봤듯이...
 
하지만 그 가느다란 앞자락의 끝에는  하나님께서 완성하시는 엄청난 약속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생에서 그것들을 다 못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느다란 앞자락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기뼈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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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9. 7. 1. 16:09

hi angel 카테고리 없음2019. 7. 1. 16:09

저녁 아이와 함께 gym에 갔다

내가 먼저 운동을 끝내고 밖의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아이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까불며 놀던 5-6 세 두형제의 인형이 내 무릎을 때렸다.  같이 있던 엄마가 내게 "sorry" 를 연발하며 아이들을 혼낸다.  동양인이 아닌 유색인종이다. ㅌ 옹이 경계하는 종류의..  그 엄마의 영어도 서툴다.

나도 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인형이 퍽 날아와 방해가 되었길래 조금 언잖았지만 그냥 괜찮다고 하고 책에 다시 집중했다. 옆에서 다시 떠들고 노는 애들이 시끄럽다는 생각 등등이 몰려온다.  

그런데 문득...
이 아이들이 다른 인종이었어도 내가 이렇게 차갑게 반응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어떤 동양인들은 아이 자존감(?) 살린다고 (기 안죽인다고) 이런 경우에 사과도 안 하고 너무나도 당당한 경우도 봤다. 그럴 경우 나는 더 차갑게 대하거나 인형에 맞아서 아프다고 오버를 했겠지만. 
엄마는 내게 몇 번이나 미안하고 아이들을 타이르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미안해졌다
책에서 눈을 떼고, 인형을 들고 있는 아이에게 인형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영어를 전혀 못 한다
그 엄마가 알아들었는지 자기나라말로 뭐라고 뭐라고 통역해도 큰 눈으로 멀뚱멀뚱 답이 없다 그 엄마가 대신 "angel" 이라고 답한다.
아이와 인형을 쳐다보며 웃으며 " hi angel" 했더니
..

그 후로 약 10 분동안, 그 아이는 내 주위를 몇 바퀴 뱅뱅 돌며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날 쳐다보며 손을 흔든다. 기분이 무척 좋은가보다. 천진난만 그 자체. 나도 아이엄마도 미소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집에 와서도...

그 아이와 그 가족이 계속 떠오른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이 땅에 거주하는 이들일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지금도 어딘가에서 traumatic experience 을 겪고 있을 많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잠도 못자고 지켜본  ㅌ 옹의 깜짝쇼 탓에 다음 선거 때 그를 찍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기도한다....


:
Posted by pleasing2jc
2019. 6. 25. 19:13

Demanding God or just Demanding 카테고리 없음2019. 6. 25. 19:13

언젠가 한 모임에서 어떤 이미지의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하는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그 때 내 답은 "어린 시절에는 하나님께서 내게 demanding God  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Lord 이고 Savior 이시다," 였다.

어린 시절 그런 이미지를 가졌던 건, 

아무래도 한국 및 미국 대학교의 교육환경과 부모님과 사람들의 기대가 무겁게 느껴져서 그럤던 듯 싶다.

그런데 이제는 그 demanding God 의 이미지로부터는 어느정도 자유로워졌다. 


그렇지만 스스로 많이 절제하는 편이다.. 내게는 stoicism 의 성향이 다분하다 - 적어도 최근 몇 년은 그런 모드다. 


내 매일매일 signature 옷은 주머니 많이 달린 scrubs 이 된 게 몇 년 쨰고, - 바지 무릎팍 주머니에 셀폰을 차고 다니는 등 주머니가 많아서 편하다. 내 스크러브가 회색이다 보니 스스로 무슨 고행자나 수도자가 된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내 명품가방은 Stanley 연장통이다. - 치료에 필요한 도구들을 다 챙겨서 다니는데, 한 때는 여행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작년부터 연장통을에 넣어서 끌고 다닌다.  언젠가 치료 device 가 든 가방을 보고, 아이아빠가 "이쁜 것 좀 들고 다니지," 하는데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러는데," 그러려다가 말았다. 누구는 이쁜 명품 안 쓰고 싶나?  한번은 (하루 수입도 안되는 가격대의) 가방을 하나 사 볼까 하고 쇼핑몰을 몇 시간 내내 배회하며 고민하다가 처음 생각했던 1/10 가격의 가방 하나 사서 나왔다. 그게 너덜너덜해 졌는데 그냥 들고 다닌다.


신발은 일할 때 움직임이 편하도록 운동화를 신는다. 허리건강 등을 위해서 3 개월에 한 번씩 새 걸 사려고 한다.

간단한 점심이나 간식 등은 싸가지고 다닌다. 


출퇴근 길, 회색 scrub 을 입고  오피스에서 주차장까지 각종 가방을 들고 연장통을 질질 끌며 가는 내 모습이 우스울 때가 많다. 

내가 고등학교 대학입학허가 받은 후  어머니께서 하신 일 중  하나는 내 골프레슨을 등록하신 거였다. 적어도 그 당시에 부모님께서 내가 살리라 예상하신 라이프스타일은 그러했다.

어머니꼐선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가 공대생 출신이라 그렇다고 하시지만, 사실 신앙의 영향이 더 크다. 

그리고 워낙 결혼 이후 학생시절 절약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았고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셜 시큐리티 페이지에 로그인해서 보면 대학 2 학년부터의 수입리스트가 있다.

대학 2 학년 끝나고 여름방학 동안, 리서치를 돕는 일을 하며 인컴 액수도 기록되어 있다.

그게 25 년 전 일이라 inflation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요즘 어떤 날은 하루만에 그만큼의 수입이 있는 날도 있다. (매일 그런 건 아니다)

수입이 늘어난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늘어날 수 있는 소비를 컨트롤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사는 걸 원하실까? 잘 모르겠다.  

하나님의 관심은 절제/ 절약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겸손과 사랑, 나눔에 있을 듯 하다.  

이렇게 사는게 편하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는 남의 시선 신경 많이 안 써도 되고.

스스로와 이웃을 돌아보는 reminder 가 되기도 한다 - scrubs, 연장통 등등. 


그.런,데, 여기서 고삐를 더 조이라는 외부의 소리가 들릴 떄는 열받는다. 

게다가 이중잣대를 적용해서,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는 일부 사람들은 관용하면서 

내게만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말이 들릴 때는 화가 좀 난다.

이런 감정마저 다스리고 하나님꼐 드려야 하는지... 그것에 대해서는 좀 있다 생각해 보자.


:
Posted by pleasing2jc
2019. 6. 25. 15:06

transparency and integrity 카테고리 없음2019. 6. 25. 15:06

셀모임, 오이코스, 구역에배, 성경공부모임, 목장, 등등 다양한 명칭의 소그룹 모임에 참여했는데,

대학시절 모임에서는 개인의 얘기든 기도제목이든 나눌 때, transparency 가 중요하다고 배웠었다.

아니면 서로 가면을 쓴 상태에서 피상적인 얘기만을 나눌 뿐이고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런 요지.

그래서 대학생 시절 다니던 교회 두 군데 소그룹 내에서 솔직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30 -40 대  리더분들의 집중 케어를 받거나 성경적 "rebuke" 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transparency 에 중점을 맞출 경우 God centered 이지 못하고 problem-centered 나눔으로 끌날 수 있거나,

self-absorbedness or self-centeredness 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있다. 

또한 성숙하지 못한 그룹에서는 confidentiality 가 지켜지지 않고 진정한 중보기도가 있기전에 

gossip 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생각의 흐름 속에 검색을 해 보다가, transparency 에 구별되는 integrity 라는 덕목이 있다는 걸 발견.


5 reasons for church small groups to replace “transparency” with “integrity” 에서 퍼 온 transparency 와 integrity 의 차이.


“Transparency” says we’re all supposed to pull out our sins for others to examine. If you don’t think you have any, you need to dig deeper, because of course you know your heart is a deep dark well of sin (even your heart that has been redeemed and made new by the shed blood and resurrection power of Christ). So it’s important to keep digging until you find it, because basically we’re all sinning every moment of every day in thought, word, and deed. As CJ Mahaney said (discussed in detail here), he wanted to live “close to the doctrine of sin.” The focus of transparency is on sin.

“Integrity,” on the other hand, focuses more on our new life in Jesus Christ. It says that it’s possible to live as the same person at all times. This doesn’t mean you won’t sin. It doesn’t mean there won’t be times you need to confess and repent. But it assumes that if you’re truly born again and made new, you love Jesus and want to follow Him with your whole heart, your whole self.

위 글 결론부분처럼 transparency 만으로는 integrity 에 이르지 못하지만, transparency 가 integrity 에 이르는 첫 스텝 중 하나이기도 하다.

It is important that we are people of integrity. One of the first steps toward getting there is transparency, that we are real with ourselves and others about our shortcomings. For integrity to grow from there it is going to take more than a complacent acknowledgment of problems. We have to let that knowledge and experience refine our lives into a more holy existence. That can only be done in partnership with God and a community of faith.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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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9. 5. 31. 09:49

뒤늦게 읽는 책 카테고리 없음2019. 5. 31. 09:49

며칠 전 한 기독교 신문 홈페이지에 아래책 저자의 사진이 크게 떠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 신문은 평소 기독교 교회나 사역자들의 비리 등을 꾸밈없이 고발하는 기사를 많이 싣는다. 그 신문에서 사진을 보는 순간, 헉 이 사람조차도 하면서 가슴철렁했는데,  헤드라인을 보니 그 분의 한국 강연 소식을 전하는 기사라서 안도했다. 



오디오 북과 페이퍼백을 둘 다 가지고 있어서 올해초부터 띄엄띄엄 읽고 듣고 하는 중이다.  

오른쪽 옆 목차에 보듯이 정리가 무척 잘 되어 있어서 교과서같다.  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중고등학생도 읽어도 될 듯 하다.  검색해 보니 비디오 클라스도 있다. 아깝다. 대학생 때 읽었다면 좋았을텐데.. (책은 2010 년에 나온 듯)


comprehensive 내용을 무척 체계적으로 정리했기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그 rich 한 내용을 살아가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이기에 진도가 더디 나간다. 

띄엄띄엄 (운전하며) 듣고  읽기보다는 정기적으로 한 챕터씩  찬찬히 읽고 고민해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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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9. 4. 28. 14:46

알곡과 가라지 카테고리 없음2019. 4. 28. 14:46

최근 뉴스피드에 뜬 기사들

(1) 엘리자베스 홈ㅅ (Theranos) 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  한 때  촉망받던 벤처기업가로 인정받았으나, 회사설립 15 년만에 사기인 것이 드러난 사건.  TV, 유튜브, 신문기사들을 보면   이 인물이 어떻게 자신을 그럴 듯 하게 포장해서 사기를 저질렀나,  이 인물의 어린시절, 가정환경 등까지 분석하기도 한다. 

(2) 최근 재판을 했었던 (혹은 진행 중인) 종교계 몇몇 인물들이나 교회들에 대한 기사들.

(3) 한 종교계에서 과거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 리스트를 공개했다는 기사. 

(4) 수많은 팬을 거느렸던  연예인들이나 심지어는 누구보다도 더 법을 잘 지켜야 하는 이들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과 거짓말들.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몇 년 전 (1) 의 벤처기업가가 하는 TED 강의를 들으며, 저 기술을 어떻게 저렇게 빨리 실현시켰을까 의문을 가지긴 했었다. 그래도 실리콘 밸리의 천재가 하는 일이고 어마어마한 이들이 자본을 댈 정도니 가능했겠지 했었는데, 그게 다 사기였다니... 워낙 극적인 사기극이기에  앞으로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거란다. 

(2), (3), (4) 와 같은 일들을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들로 인해서 엄청난 상처와 피해를 입은 이들이 떠올라서 안타깝다. 하루라도 빨리 옳고 그름이 판단되어야 더 이상 피해입는 이들이 안 생길 텐데....  

.

세상 어느 곳이나 어느 영역에서나 알곡과 가라지는 섞여있고, 그것들을 가려내는 작업은 시급하다. 


그런데....

마태복음 13:24-30 에서 예수님께서는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신다. 

추수때가 되어서 알곡과 가라지가 다 자라면  그것을 구분하는게 더 쉽다는 예수님 말씀.  

지금은 아직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추수때가 아닌 것일까?   

일부 종교계에서는 알곡과 가라지를 가려내는 기준이 좀 더 모호한 듯 해보인다혹은 왜곡된 기준이 적용된다. 그럴 듯 해 보이는 외양이 알곡으로 보여서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한다. 또 외양이나 결과물이 그럴 듯 해 보이면 다른 것이 다 용서되기도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구하고 따르는 이들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 보시는 알곡과 가라지의 기준은 무엇인가 질문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하나님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세상의 잘못된 것들을 솎아내시면 좋겠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나 가능할까? 


오늘 Encounter with God 본문이었던 Jer 12:1-17 의 예레미야도 똑같은 고민을 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고 투정하는데, 하나님께서 대답하신다.  (직접 하나님의 답을 들었던 예레미야는 그게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알았을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비유에서처럼 "포도원,  밭, 황무지, 밀 (wheat), 뿌리채 뽑는다, harvest (소출)" 등 농업적 표현들을 쓰셨네.


그런데 마태복음 13:24-30 과 예레미야 12:1-17 을  함께 읽다 보니, 전에는 간과했던 몇가지를 새로이 보게된다.

(1) 예수님의 비유에서 잡초를 미리 뽑지 않는 이유는, 잡초를 뽑으며 어린 밀까지 함께 뽑지 않기 위해서다. 즉 잡초를 안 뽑는 이유는 어린 밀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2) 이스라엘 백성을 연단하기 위해서 이방나라들을 쓰시고, 그 후 이방나라 또한 벌하시지만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예레미야서 12:14-17).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알곡 (밀)또한 가라지처럼 될 수 있고, 또 가라지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알곡이 될 수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성미 급한 인간들이 바라는 거처럼 빨리빨리 action 을 취하지 아니하시는건,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또한 가라지들에게도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는 것. 혹은 심판의 날 이후 -- 벌 준 후에도 (연단하신 후에도) 기회를 주신다는 것.  

예레미야에 말씀되어진 심판은 무시무시하고 추수의 날에 가라지는 가려져 불태워질테지만

하나님의 온 인류를 향한 compassion 은 어마어마하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고 또 기도해야 하나보다. 정죄의 기도가 아닌, 그의 compassion 을 담은 기도를...



Matthew 13:24-30 English Standard Version (ESV)

24 He put another parable before them, saying, “The kingdom of heaven may be compared to a man who sowed good seed in his field, 25 but while his men were sleeping, his enemy came and sowed weeds[a] among the wheat and went away.26 So when the plants came up and bore grain, then the weeds appeared also.27 And the servants[b] of the master of the house came and said to him, ‘Master, did you not sow good seed in your field? How then does it have weeds?’ 28 He said to them, ‘An enemy has done this.’ So the servants said to him, ‘Then do you want us to go and gather them?’ 29 But he said, ‘No, lest in gathering the weeds you root up the wheat along with them. 30 Let both grow together until the harvest, and at harvest time I will tell the reapers, “Gather the weeds first and bind them in bundles to be burned, but gather the wheat into my barn.”’”


Jeremiah’s Complaint
12 You are always righteous, Lord,
when I bring a case before you.
Yet I would speak with you about your justice:
Why does the way of the wicked prosper?
Why do all the faithless live at ease?
2 You have planted them, and they have taken root;
they grow and bear fruit.
You are always on their lips
but far from their hearts.
3 Yet you know me, Lord;
you see me and test my thoughts about you.
Drag them off like sheep to be butchered!
Set them apart for the day of slaughter!
4 How long will the land lie parched
and the grass in every field be withered?
Because those who live in it are wicked,
the animals and birds have perished.
Moreover, the people are saying,
“He will not see what happens to us.”

God’s Answer
5 “If you have raced with men on foot
and they have worn you out,
how can you compete with horses?
If you stumble in safe country,
how will you manage in the thickets by the Jordan?
6 Your relatives, members of your own family—
even they have betrayed you;
they have raised a loud cry against you.
Do not trust them,
though they speak well of you.

7 “I will forsake my house,
abandon my inheritance;
I will give the one I love
into the hands of her enemies.
8 My inheritance has become to me
like a lion in the forest.
She roars at me;
therefore I hate her.
9 Has not my inheritance become to me
like a speckled bird of prey
that other birds of prey surround and attack?
Go and gather all the wild beasts;
bring them to devour.
10 Many shepherds will ruin my vineyard
and trample down my field;
they will turn my pleasant field
into a desolate wasteland.
11 It will be made a wasteland,
parched and desolate before me;
the whole land will be laid waste
because there is no one who cares.
12 Over all the barren heights in the desert
destroyers will swarm,
for the sword of the Lord will devour
from one end of the land to the other;
no one will be safe.
13 They will sow wheat but reap thorns;
they will wear themselves out but gain nothing.
They will bear the shame of their harvest
because of the Lord’s fierce anger.”

14 This is what the Lord says: “As for all my wicked neighbors who seize the inheritance I gave my people Israel, I will uproot them from their lands and I will uproot the people of Judah from among them. 15 But after I uproot them, I will again have compassion and will bring each of them back to their own inheritance and their own country. 16 And if they learn well the ways of my people and swear by my name, saying, ‘As surely as the Lord lives’—even as they once taught my people to swear by Baal—then they will be established among my people. 17 But if any nation does not listen, I will completely uproot and destroy it,” declares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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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
2019. 4. 22. 15:48

부활절 카테고리 없음2019. 4. 22. 15:48

오늘 부활절, 차도 많아서 차도 멀리 세워야 했고 예배에 참석한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부활절에 매년 그렇다는 걸 잊었었다.

침례가 있었다. 틴에이저 몇 명이 침례를 받는데 어찌나 귀하던지.

그저께 읽은 Rowan Williams 의 <Being Christian> 의 첫 챕터에서 읽은 baptism 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왔다.

침례받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아주 오래전 내가 침례받았던 대학시절도 떠올랐고,  침례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화창한 햇살을 받으며 나오는데,  예배당 밖 휠체어에 앉아있는 한 소년과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이가 눈에 띄었다.  cerebral  palsy 를 가지고 있는 소년.

다른 날 예배시간, 종종 예배당 뒤쪽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던 그 소년인거 같았다. 말끔한 차림의 아버지는 그 소년의 휠체어 옆 돌의자에 걸터앉아있고.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 지나치는데, 갑자기 핑 도는 눈물.

갑자기 웬 눈물. 감상적 생각을 한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큰 동정심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compassionate 한 사람도 아닌데... 웬 눈물이지? 스스로 의아했다.

문득 드는 생각 ---- 이건 내 눈물이 아니구나.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그 분의 눈물인가보다... 

그래서 기도했다. 그저 그 소년과 그의 가족이 겪어왔을, 또 겪고 있는 힘든 시간들을 떠올렸고, 그들과 함께 해 주시고 위로를 해 주시라고.  예수님이나 제자들이 가졌던 기적의 치유능력이 내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David Platt 의 최근 설교를 별 생각없이 듣기 시작했는데....

설교 후반부에,  Cerebral Palsy 가 있어 거동이 불편하고 휠체어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한 소녀의 침례를 보여주는것이 아닌가?.... 침례를 받으며 기쁘게 웃는 그녀. 


오늘 아침에 봤던 그 소년을 떠올리며 또 다시 기도한다.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이, 또 부활과 생명의 능력으로 인한 기쁨과 소망이 그에게 임하기를, 또 그 가족에게 임하기를.  

그가 다스리는 그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는 날,  건강해진 소년과 소녀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구원과 침례, 신앙 등에 대해서 기도할 생각을 조금도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고 회개한다. 

난데없이 핑 도는 눈물이 아니었으면 기도도 안 했을 내게 기도케 하신 그이시다.


Rowan Williams 의 Baptism 에 관한 chapter 를 다시 읽으며 baptized people 의 자리와 기도가 어떠한 것인가 복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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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easing2jc